소설리스트

영웅 소녀 전쟁-20화 (20/486)

EP.20 레이드 자격시험

오크 던전을 성공적으로 공략한 민국은 바로바로 다음 던전의 공략을 시작했다.

레이드 자격시험까지 날짜가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공략 던전은 B – 9 에서 C – 2 사이의 난이도를 찾았다. 그 이상의 난이도도 공략을 시도해 보고 싶었지만 B – 8 난이도의 던전 부터는 4 등급 몬스터가 등장한다고 해서 공략을 포기했다.

‘레이드 자격시험이 얼마 남지 않았더라면….’

팀원들을 데리고 공략을 해봤겠지만, 지금은 영웅 도감에 3 등급 몬스터의 공략 횟수를 갱신하는 게 더욱 중요했다.

그렇게 오 일이라는 시간 동안 민국과 팀원들은 하루도 쉬지 않고 던전을 토벌했다. 이미 레이드 자격시험 조건을 만족시킨 상황에서도 민국의 던전 토벌은 계속되었는데, 이번에 영웅 학교를 졸업한 최유나의 업적 횟수도 채워야 했기 때문이었다.

“고, 고맙습니다! 진짜 감사해요! 단지 경험만 채우려고 했는데…. 이번에 레이드 자격시험을 볼 수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어요.”

영웅 도감에 10 회의 3 등급 몬스터 클리어 횟수가 적힌 것을 확인한 민국을 향해 허리를 꾸벅 숙였다. 고작 일주일 만에 업적을 전부 채웠다는 사실이 믿기지가 않은 모양이었다.

“다 같이 고생했는데, 결과물은 함께 나눠야지.”

“역시! 우리 대장님, 하는 말도 이렇게 예쁘다니까? 그러면 자격시험 조건을 만족시킨 기념으로 오늘도 한잔? 시험에 통과하고 나면 팀도 자연스럽게 해체될 테니 쫑파티라도 해야지?”

애슐린이 입천장을 똑 튕기며 잔을 홀짝거리는 제스처를 했다. 그녀는 예전 회식 자리에서의 실패를 이번 기회에 만회할 생각이었다.

어차피 팀 GGW 는 레이드 자격시험 통과를 목적으로 만들어진 임시 팀에 불과했다. 그리고 린샤는 자격증을 획득하고 나면 중국으로 애슐린은 LA 로 향할 계획이었다. 결국 오늘이 마지막 만남이라는 말이었다. 애슐린은 민국을 맛 볼 마지막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의 기대와는 다르게 민국의 고개가 가로로 저어졌다.

“오늘은 경매장을 가야 해서 안 돼. 내일 모레가 당장 시험인데, 아직 Gear Score를 만족시키지 못했거든.”

“Wow….”

민국의 대답에 애슐린이 입에서 탄성을 토해냈다. 다른 여자들도 놀란 건 마찬가지였다. 3 등급 몬스터를 상대하면서 힐량이 부족하거나 팀이 위기에 빠진 적이 거의 없다시피 한 터라 생각지도 못한 내용이었다.

“너 아직 장비 스코어가 80 이 안 돼?”

“……71.”

그것도 레이드를 하면서 힐러 장비를 몇 개 얻었기에 높일 수 있었던 점수였다. 하지만 레이드 자격시험의 조건을 만족시키려면 아직도 9 라는 장비 스코어를 더 높여야 했다.

“하아. 뭐, 이런 천재가 다 있어?”

민국의 대답에 애슐린이 허탈한 듯 웃으며 어깨를 으쓱했다. 그녀가 이제껏 경험했던 공대장 중에서 민국의 오더 능력과 실력은 단연코 최고였다. 어쨌든 그런 이유로 인해 일행들은 회식 대신 경매장으로 향했다.

“……뭐가 이리 비싸?”

“운 좋게 티켓을 획득하거나 상급의 몬스터들한테서나 얻을 수 있는 장비니까. 어쩔 수 없어.”

경매장의 장비 값은 민국의 예상을 훌쩍 뛰어넘을 정도로 비쌌다. 결국 민국은 스코어 80을 맞추기 위해 경매장에서 부활석을 하나 팔아야만 했다. 덤으로 예전에 현아에게 빌렸던 구체 관절 인형에 쓸 돈도 갚았다.

그렇게 Gear Score 80을 완성시키는 것을 마지막으로 레이드 자격시험의 모든 준비가 끝이 났다.

* * *

레이드 자격시험이 시작되는 일요일.

서울의 영웅 협회 앞은 도떼기시장이 따로 없을 정도로 사람들이 바글거리고 있었다. 레이드 자격시험에 참가하는 영웅들은 물론이고, 그들의 가족들 또한 영웅 클랜 관계자들과 언론 관계자들까지 모두 모여든 탓이었다.

“서울에 있는 예비 영웅과 가족들은 다 모인 것 같네.”

민국의 옆에서 현아가 말했다. 서로 동거 중인만큼 당연히 함께 자격시험을 치르러 온 것이다. 다른 팀원들은 가족과 함께 애슐린은 남자 친구랑 함께 시험장에 간다고 알려 왔다.

“너도 언니가 오지 않아?”

오현아의 언니인 오현정은 서울의 레이드 클럽 R’s, 장미 방패단의 단장이었다. 오늘 같은 날 그녀가 이 자리에 빠질 리 없었다.

“그렇기는 한데, 우리 언니는 조금 바쁘다고 해서. 이번 시험을 치르고 클랜으로 입단 예정인 신입들을 신경 써야 하는 모양이더라고.”

거짓말이었다. 민국이랑 가기 위해 현아가 오지 말라고 했다. 단장의 동생인 것을 제외하더라도 영웅 학교에서 실력 있는 탱커로 두각을 드러냈던 현아였기에, 현아의 행보에 관해서는 장미 방패단에서도 크게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아, 오빠! 민국 오빠!”

그 때 누군가가 뒤에서 민국의 이름을 불렀다. 민국과 현아가 동시에 뒤를 바라보니 등에 활을 맨 익숙한 얼굴의 소녀가 눈에 들어왔다. 최유나였다. 그녀의 손에는 따끈따끈한 레이드 자격증이 들려 있었다.

“이제 시험 보러 가세요?”

“어, 응. 어떻게 찾았다?”

“그냥 보이던데요? 여기서 영웅 장비를 착용하고 있는 남자는 오빠 혼자잖아요?”

“아….”

마력의 각성은 여자만이 할 수 있었다. 남자가 각성하는 일은 기적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드물었다. 그 증거로 대한민국의 남자 영웅은 딱 열 명밖에 없었다. 레이드 자격시험을 통과하고 실전에서 활동하는 것을 기준으로 삼으면 그보다도 더 적었다.

그래서일까? 어느새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민국에게로 집중이 되고 있었다. 카메라들 또한 특종을 발견한 것처럼 민국에게 다가오는 모습이었다.

“사람들 모이면 복잡해. 빨리 들어가자. 우리 먼저 들어갈게.”

현아가 민국의 손을 잡고 끌었다. 마력까지 동원한 까닭에 민국의 몸이 절로 끌리고 있었다.

“어? 어어…? 그래, 유나야. 나중에 보자.”

그 말을 끝으로 민국은 현아의 도움을 받아 인파의 벽을 뚫고 협회의 안으로 들어설 수 있었다. 협회의 내부 역시 밖이나 다를 바가 없을 정도로 사람들이 굉장히 많이 있었다.

“어? 남자잖아. 남자 영웅이 다 있었네?”

“와, 존나 맛있겠다….”

“남자가 자격시험을 본다고? 어디어디?”

아니나 다를까, 협회 내부에서도 민국은 모두의 시선을 집중시켰다. 남자 영웅이라는 희귀함 때문이었다. 중간 중간 성희롱에 가까운 말도 들려왔지만, 현아만이 얼굴을 굳힐 뿐 민국은 그에 대해 딱히 신경을 쓰지 않았다.

오히려 예쁜 여자들이 자신에게 성희롱을 하는 상황 자체가 되게 신기했다. 원래의 세계에서는 결코 일어나지 않을 일이기 때문이었다. 여기서 살짝 상의를 들어 올려 초콜릿 복근을 보여주기라도 한다면?

‘완전히 난리가 나겠지?’

그런 상상을 하는 동안 어느새 민국의 차례가 돌아왔다. 당연히 접수원은 여자였다.

“영웅 패드(Hero Pad)를 제출해 주세요.”

접수원의 말에 민국은 자신의 패드를 그녀에게 건네주었다.

레이드 자격시험의 통과 여부는 굉장히 간단했다. 필기나 실기와 같은 시험은 하나도 없었다. 자격시험에서 보는 것은 오직 하나, 영웅 패드에 적힌 업적 포인트와 공략 횟수 그리고 착용한 장비 스코어였다.

실력이 떨어지는 영웅들이 괴물들의 손에 허무하게 죽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일 뿐. 애당초 떨어뜨릴 생각이 거의 없는 의도의 시험이었다. 인류를 위협하는 어둠의 괴물들을 막아내야 하는 영웅의 숫자는 아무리 많아도 부족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렇기에 자격시험에 필요한 조건은 완벽하게 만족시켜야 했고, 또한 협회도 까다롭게 확인했다.

민국의 영웅 패드를 받은 접수원이 무언가를 검색하고 복사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1 분의 시간이 흐른 후, 접수원이 영웅 패드를 돌려주며 말했다.

“네, 이상 없고, 장비 관련 서류도 제출해 주세요.”

장비 관련 서류는 경매장에서 확인 후 뗄 수 있었다. 소정의 수수료가 들기는 하지만, 그리 비싼 편은 아니었다.

그래도 이 수수료는 영웅 협회 운영비의 큰 비율을 차지하고 있었는데, 현아의 말에 의하면 영웅들이 다른 이들 혹은 공대장이나 클랜에 자신의 스펙을 제출할 때도 사용되는 서류라 하루에도 수 만, 수십만 건의 서류가 발급되기 때문이라고 했다.

‘서류 제출이라니…. 뭔가 굉장히 체계적이네.’

원래의 세계에서 레이드를 컨텐츠로 하는 가상현실게임이 있었다. GGW 가 나오면서 접기는 했지만, 민국도 공대장으로 활동했던 경험이 있었다. 그리고 그 게임에서는 ‘돚거 손’, ‘도법냥풀’ 이라는 천민 딜러를 가리키는 슬픈 단어가 있었었다.

하지만 이 세계 공대나 클랜들은 자신들이 필요한 탱커, 딜러, 힐러를 서류 제출로 뽑고 면접으로 결정하는 모양이었다.

마치 회사에 취직하는 것과 비슷한 시스템이었다. 덕분에 지옥풀 보다도 많다는 도냥풀이라던가 돚거 실업자들이 아이언포지 정문에서부터 모단호수 까지 줄을 서 있는 것과 같은 모습은 볼 수 없을 것 같았다.

‘대신 수많은 서류들이 파쇄기에 갈리겠지.’

생각해보니 그게 더 잔인한 모습일 수도 있었다.

그렇게 민국이 딴 생각을 하는 동안 접수원은 열심히 무언가를 검색하고, 적고 확인하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 합격 메시지와 함께 레이드에 참가할 수 있는 자격증이 민국의 손에 주어졌다.

“되게 간단하네?”

“자격만 만족시키면 99 % 통과하는 시험이니까.”

“나머지 1 %는 뭔데?”

“자격은 만족시켰는데, 마력이 오염된 영웅들. 그런 영웅들은 오염 농도에 따라서 레이드 허가를 내주지 않는 경우도 있어.”

“……아.”

자신과는 관계가 없다는 생각 때문일까? 예상도 못한 이유였다. 어쨌든 이제부터는 레이드에 참가할 수 있었다.

그래봤자 민국이 알고 있는 진정한 레이드를 경험하려면 아직 시간이 더 필요했다. 열 명의 공대로 이루어지는 레이드는 B – 1 난이도에서부터 등장하는 5 등급 몬스터부터 시작되기 때문이었다. 그보다 쉬운 난이도의 던전은 지금과 마찬가지로 5 인 팀으로 공략 할 수 있는 던전이었다.

“그러면 이제 뭘 해야 하나….”

현아와 함께 협회에서 나오며 민국은 머리를 긁적였다.

엄밀히 말해 앞으로 해야 할 일은 산더미 같이 쌓여 있었다. 일이 너무 많아서 쉽게 감이 잡히지 않는 것뿐이었다.

그래도 어느 정도의 윤곽은 잡고 있었다. 크게 놓고 보면 두 개의 선택 중 하나를 결정해야 했다. 자신이 소속될 클랜을 구하거나, 직접 운영할 공대를 만들거나.

그리고 클랜을 구하게 되면 어떤 클랜에 입단 서류를 제출해야 할지 결정해야 했고, 입단할 클랜이 자신에게 맞는지를 확인해야 했다.

이와 반대로 공대를 만들게 되면 공대에서 활동한 팀원들을 모집해야 했다. 그 전에 공대가 소속될 클랜도 하나 설립해야 하고 말이다. 둘 다 단기간에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쟤는 아마 장미 방패단에 들어갈 것 같고….’

민국의 시선이 옆에서 걷고 있는 현아를 향했다. 솔직히 탐나는 인재긴 했다. 재능충이 분명한 데다가 앞으로의 성장가능성도 무궁무진해 보였다.

하지만 무려 단장의 동생이었다. 게다가 자신이 인정하는 뛰어난 재능의 소유자였다. 영웅 학교에서의 성적도 좋았으니 장미 방패단이 그런 현아의 입단을 거절할 리 없었다.

만약 이 몸의 원 주인이었다면, 그런 현아에게 꼽사리를 끼어 함께 장미 방패단에 입단하려고 들었겠지만 민국은 사라져버린 그 녀석이 아니었다. 더욱이 민국은 레이드의 팀원으로 활동하는 것이 아닌 자신의 공대를 운영할 계획이었다.

그렇게 민국이 앞으로의 일을 고민하던 중이었다.

띠링

갑작스럽게 홀로그램으로 이루어진 창이 민국의 눈앞으로 나타났다.

《역시 카오스님이 주시하시는 분다운 굉장한 활약이었습니다. 카오스님께서 창조하신 이 뿌우가 민국님의 <‘레이드’자격증을 획득하라!> 퀘스트 성공을 축하드립니다. 불필요하게 1 년의 시간을 낭비하지 않아도 되겠어요.

[목표] - ‘레이드’ 자격증을 획득하라! - 달성!

[보상] - 브론즈 티켓 3 장 !》

동시에 핫 팩이라도 넣은 것 마냥 민국의 가슴이 뜨거웠다. 민국이 깜짝 놀라 손을 넣어봤더니, 갈색으로 빛나는 티켓 세 장이 손에 잡히고 있었다. 비록 단 한번뿐이지만, 레이드 보상으로 받았던 실버 티켓과 엇비슷한 생김새였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민국이 티켓의 정보를 확인했다.

【브론즈 티켓(50 - 70)】

“으음…….”

퀘스트의 보상은 똥색의 쓰레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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