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영웅 소녀 전쟁-22화 (22/486)

EP.22 레이드 자격시험

‘나도 저 정도는 받겠지? 아니, 좀 무리인가?’

남성 영웅, 리딩이 가능함. 수요가 많은 힐러 클래스.

민국을 자신의 능력을 과소평가하지 않았다. 이것만 생각해도 충분히 어떤 클랜이라도 관심을 가질 것 같았다. 메일함이 그 증거였다. 하지만 그 중 민국이 들어본 적 있는 유명한 공격대의 초대 메시지는 없었다.

그리고 민국은 내심 그 이유를 짐작하고 있었다. 과거의 행적이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이다. 민국이 리딩을 하며 힐러 클래스로 활약을 한 기간은 고작해야 일주일에 불과했다.

그에 반해 평범한 영웅의 수준보다도 못한 원거리 딜러로 활동한 것은 무려 2 년이 넘었다. 그 기록들이 전부 영웅 패드에 남아 있는 것이다.

자신에게 관심이 있는 클랜들이 그 사실을 의식하지 않을 리 없었다. 그렇기에 민국은 단지 게임처럼 클랜에 들어가서 자신만의 공대를 운영할 수 있다면 조건은 별 상관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돈이야 뭐….’

부활석을 판 자금이 남아 있었고, 퀘스트의 보상으로 받은 쓰레기를 팔고 난 돈도 있었다. 참고로 【브론즈 티켓(50-70)】은 장당 600 달러 정도나 했다.

‘지금 당장 많은 계약금과 같은 조건은 나한테 필요 없는 것에 불과해. 아이템도 마찬가지일 테고.’

어차피 대우는 앞으로 보일 성과에 따라 크게 달라질 게 분명했다. 그리고 민국은 자신의 활약을 의심하지 않았다. 그렇게 생각을 정리한 민국이 현아를 돌아보며 말했다.

“나는 나만의 공대만 운영할 수 있으면 어떤 클랜이던 간에 상관없어. 서포트를 해주는 곳이면 더욱 좋겠지만…”

“그래?”

“돈은 대충 월급으로 1500 달러 정도면 만족해. 그 정도면 평균보다 조금 더 받는 수준일 테니. 장비는 레이드를 통해 맞추면 되는 거고.”

일반적으로 다른 영웅들이 원하는 것들과는 거리가 먼 조건이었다. 보통 신규 영웅들은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기 위해 계약금이나 주급 혹은 장비의 지원을 바라는데, 민국은 오직 하나 공대의 운영권만을 원했다.

‘언니한테 바로 물어봐야겠다.’

레이드를 리딩 할 수 있는 공대장은 언제나 부족했다. 더욱이 민국처럼 뛰어난 실력의 공대장은 어떤 클랜이던 간에 모셔가려는고 하는 존재였다.

더욱이 그 희귀하다는 남자 영웅이었다. 지금도 남자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민국을 리스트에 올려놓고 영입을 준비 중인 클랜이 다수 있으리라. 그리고 현아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지금 내가 언니에게 한 번 물어보려고 하는데….”

“언니? 장미 방패단? 거기는 신입 내정 끝나지 않았어?”

순간 민국의 얼굴에 의문이 깃들었다. 대충이나마 조사를 해 본 결과 장미방패단과 같은 명성 있는 클랜들은 일찌감치 신입 단원을 내정해 놓는다는 글을 어디선가 본 적이 있었다.

“그러니까 어…. 우리가 함께 GGW 로 같이 활동했던 것 꽤나 좋았잖아? 왠지 그게 아쉬워서 내가 언니에게 추천을 해보려고. 만약에 말이야…. 공대 운영권만 받을 수 있으면 민국이 너도 장미 방패단에 들어올래?”

“오호라!”

당연히 환영이었다. 현아는 재능이 넘치는 탱커였다. 그녀와 함께 한다면 자신이 구상하는 공격대의 T.O 한 곳을 바로 채울 수 있었다. 게다가 뜨거운 사이인 그녀와 떨어질 일도 없었다. 함께 레이드를 하면서 가끔씩 이렇게 회포를 풀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면 완전 땡큐인데?”

“오케이. 잠깐만 기다려봐.”

예상보다 훨씬 긍정적인 민국의 반응에 현아가 허둥지둥 자신의 핸드폰을 찾기 시작했다.

* * *

촤라락.

영웅들의 프로필이 적힌 종이가 빠르게 넘어가고 있었다. 올해 새롭게 클랜에 가입할 예정인 신입 단원들의 프로필이었다. 그러나 프로필을 확인하는 현정의 얼굴은 짜증이 가득 담겨 있었다.

그녀가 단장으로 있는 R’s(장미 방패단)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영웅 클랜이었다. 아, 물론 예전의 이야기였다. 지금도 대한민국에서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로 높은 명성을 자랑하고는 있었지만, 과거에 비하면 장미 방패단은 확연한 내림세를 타고 있었다.

“올해의 신입 단원 중 랭킹 100 위권 내의 영웅은 고작 두 명에 불과하네요?”

“최근 들어 해외로 나가려는 인재가 크게 늘고 있습니다.”

“누가 그걸 몰라요? 그러면 ‘영웅시대’는요? 그쪽은 랭킹 4위 이슬하고 랭킹 11 위 조윤정이 입단했다고 대대적으로 기사를 터뜨리던데? 그런데 우리는 랭킹 71 위인 오현아가 최고로 높은 순위네요? 그것도 오현아는 제가 데리고 온 것 알죠?”

현정의 날카로운 목소리에 프로필을 올렸던 스카우트 팀장은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는 장미방패단의 현재 위상을 보여주는 결과물이었다. 단장인 오현정도 그것을 모르지는 않았다.

‘후. 어쩌다가 우리 장미 방패단이….’

대한민국에서 가장 처음으로 만들어진 클랜이자 최초로 8 등급 보스 몬스터 레이드에 성공했던 장미 방패단은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한국 최고의 명문 클럽이었다.

그러나 이십년 동안 R’s 의 1 군을 맡았던 공대장 박다영이 나이를 이유로 은퇴하고 난 이후, 장미 방패단은 날개를 잃어버린 새처럼 빠르게 추락했다.

박다영의 후임으로 들어온 영웅들은 전부 제대로 된 성과를 내지 못하고, 쫓기듯 공대장에서 물러나 다른 클랜으로 이적을 했다. 물질적인 손해도 많이 봤다.

그리고 그런 것들이 차곡차곡 쌓여 지금의 R’s 는 대한민국 클랜 랭킹 5 위를 유지하는 것조차 벅찰 정도의 어려운 상황을 겪고 있었다. 아니, 조만간 10 권 밖으로 밀려날 것이라는 소문이 이미 파다했다.

아직 과거의 명성이 남아 있던터라 지원을 하는 영웅들은 제법 있지만, 제대로 된 유망주들은 찾지 않는 클랜. 그게 장미 방패단의 현 상황이었다.

“후우…. 그건 그렇다 치고 유서연은 어떻게 됐죠?”

딜러 랭킹 29 위. 전체 랭킹 112 위인 유서연은 현정이 눈여겨보고 있던 영웅이었다. 리딩을 제법 괜찮게 한다는 소문 때문이었다. 실제로 확인해 본 결과 재능도 충분히 있었다. 잘만 키운다면 괜찮은 공대장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높았다.

“……미국으로 간다고 합니다. 엔터프라이즈 그룹의 지원을 받는 엔터프라이즈 공대에서 스카웃을 받았다고 합니다. 주급으로 4120 달러를 받기로 했다더군요.”

“큭.”

스카우트 팀장의 말에 현정이 자신의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자신들의 제안에 어물쩍거리는 모습을 보였을 때부터 느낌이 좋지 않더라니만. 일찌감치 미국으로 떠날 생각을 하고 있던 모양이었다.

‘이렇게 되면 올해 입단하는 유망주들은 현아를 중심으로 팀을 짜야 하나? 후우…. 리딩은 어떻게 하지? 프로필에는 마땅한 애가 없는데….’

1, 2, 3 군도 문제였다. 그나마 1 군은 베테랑들이 중심을 잡고 있었다. 하지만 2 군과 3 군은 6 등급 몬스터가 등장하는 A – 9 이상 난이도의 던전조차 공략하지 못할 정도로 상태가 엉망이었다.

그렇게 앞으로의 미래에 대해 현정이 고민을 하던 중이었다. 책상 위의 핸드폰이 크게 진동하기 시작했다. 동생인 오현아였다.

- 언니 바빠? 통화 되지?

“아, 응. 잠시만 기다려봐.”

대답을 한 현정이 스카우트 팀장을 향해 손짓을 보냈다. 어차피 할 말은 다 끝났으니, 다른 이야기는 나중에 해도 상관없었다. 잠시 후, 문이 닫히는 소리와 함께 단장실에는 현정 혼자만이 남게 되었다.

“사랑스러운 우리 유망주께서 무슨 원하는 게 있어서 이렇게 통화를 했을까? 내가 크게 신경 써서 입단 조건 제시한 거 알고 있지?”

- 그, 그런 건 아니고. 따로 부탁이 하나 있는데 들어줄 수 있어?

“그래? 일단 들어보고. 뭔데?”

말을 하면서 현정은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독립적인 성격을 가진 현아가 자신에게 부탁을 하는 모습이 새삼스러웠기 때문이었다. R’s 입단도 자신의 실력으로만 하겠다며, 조금의 지원도 받지 않았던 동생이었다.

그 때문에 자신이 얼마나 발을 동동 굴렀던가? 특히나 프랑스 출신의 이상한 공대장을 만나 일주일전까지도 레이드 자격시험 조건을 충족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알았을 테는 정말 기겁을 했었다.

결과적으로 일이 잘 풀리기는 했지만, 아직도 그 때만 생각하면 현정은 가슴이 벌렁벌렁했다.

- 클랜에 신입 단원을 한 명 추천하고 싶어. 힐러야.

“추천…?”

- 응. 한민국이라고….

현정도 아는 이름이었다. 올해 레이드 자격시험에 통과한 남자 영웅. 직접 인터뷰를 한 내용은 없었지만, 매스컴에는 올해 유일하게 자격시험에 통과한 남자 영웅이라고 기사를 파다하게 내보냈었다.

그러고 보니 클랜 일 때문에 제대로 신경 쓰지는 못했지만, 얼핏 현아와 동거중이라고 들었던 것 같았다. 그리고 현정이 기억하는 한민국은 평범한 수준의 영웅에 불과했다.

남성 영웅이라는 메리트는 확실히 무시할 수 없었지만, 실력만 본다면 R’s 에는 어울리지 않는 기량이었다.

“음. 남성이라는 사실은 확실히 큰 장점이기는 한데…. 딜러는 현재 T.O가 없는데.”

현정이 온화하게 거절의 뜻을 내비쳤다.

- 어? 아니야. 민국이 힐러야.

“힐러?”

동생인 현아의 말에 현정은 빠르게 영웅 패드로 한민국의 정보를 검색했다. 분명 한민국은 원거리 딜러였을텐데?

‘뭐야, 이건?’

현아의 말대로 최근 민국의 전투 정보는 힐러로 기록이 되어 있었다. 그것도 열 번의 3 등급 몬스터를 상대해 평균 A+ 기여도를 받았다.

이 정도의 기여도는 힐러 유망주 순위에서도 수위에 꼽히는 애들이나 기록할 수 있는 성적이었다. R’s 의 3 군도 3 등급 몬스터 전투에서 A + 의 기여도를 받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힐량, 몬스터 에게 받는 데미지, 몬스터 에게 주는 피해, 오버 힐(아군의 상황에 따른 정확한 마력으로 힐을 시전 해 마력의 낭비가 없게 하는 것)의 유무 등 여러 결과물들을 종합해서 나오는 게 기여도였다.

“……이거 무슨 기록이야?”

현정의 목소리가 날카롭게 변했다. 평균 C- 성적을 기록했던 원거리 딜러가 불과 일주일 전에 한 번도 활동한 기록이 없는 힐러로 자신의 클래스를 전직하더니만 이어지는 열 번의 레이드동안 A+ 의 성적을 기록했다.

당연히 조작이라고밖에 생각을 할 수가 없었다.

- 자신의 천부적인 재능은 깨달은 거지. 민국이는 원거리 딜러가 적성에 안 맞았던 거야. 조작 같지? 그런데 아니야. 내가 직접 봤거든.

“정말?”

하기야 자신의 성격을 아는 동생이 거짓말로 영웅을 추천 할 리 없었다. 하지만 아무리 봐도 믿을 수 없는 기록이었다. 그러나 현정의 놀람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 그리고 얘 리딩도 엄청 잘해. 일주일 동안 3 등급 보스 열 마리를 잡았는데, 전부 민국이가 리딩했어. 그 중 원트(One Try) 가 무려 일곱 번이나 돼.

“뭐어?! 그게 말이 되는 소…. 꺄악!”

깜짝 놀란 현정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가 미끄러지며 엉덩방아를 찧었다. 하지만 몸이 아픈 것보다 방금 자신이 들은 이야기에 대해 더욱 자세히 알고 싶었다. 그녀의 손가락이 반사적으로 한민국의 얼굴이 나타나 있는 영웅 패드를 누르기 시작했다.

“이거 한민국의 시점으로 된 전투 기록 영상. 공유할 수 있지?”

- 잠시만 기다려봐, 바로 물어볼게. ………. 됐어. 암호 GGW 로 치면 볼 수 있을 거야.

현아의 말에 현정은 비밀번호를 입력하고 영웅 패드(Hero Pad) 로 영상을 재생시켰다. 3 등급 몬스터 ‘어둠의 칼루’ 전투 영상이었다.

남자라 그런지 영상에 등장하는 목소리는 굉장히 부드럽고 듣기 좋았다. 단장 임무 때문에 현역에서 물러난 자신의 가슴을 절로 떨게 만들 정도였다. 이런 영상은 공유만 해도 상당한 인기를 끌 수 있을 것 같았다.

생각해 보니 남자 영웅이 공대장으로 활동한 기록은 이제껏 한 번도 없었던 것 같았다. 심지어 5 인 팀에서도 남자가 리딩을 한다는 이야기는 들어보지 못했다. 그리고 전투가 시작되었다.

“흐음. 제법이네.”

영상 속 레이드는 굉장히 부드럽게 진행되었다. 기록은 1 회 클리어라고 되어 있는데, 처음 상대하는 몬스터라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을 정도였다.

그러나 탱커와 딜러들이 범하는 사소한 실수들을 보면, 분명 ‘어둠의 칼루’를 처음 상대하는 것은 맞는 것 같았다. 다들 실력이 제법이었다. 하지만 놀라운 것은 이들을 이끄는 공대장의 리딩이었다.

- 최유나, 다크 볼! 아, 라인까지 같이 오네. 다크 볼만 피하고 나한테 일정 거리 이상 떨어지지 마!

- 린샤! 차단!

- 오현아! 포효 온다!!! 뎀감기(적의 데미지를 감소시키는 탱커의 기술) 쓸 수 있으면 바로 사용해!

마치 미래를 보는 것 마냥 몬스터의 상태를 보고 정확히 오더가 내려지고 있었다.

주인공이 누군지 모르고 봤다면 R’s 의 단장인 그녀조차도 영상 속에 등장하는 영웅이 잔뼈가 굵은 베테랑 공대장이라고 착각했을 정도였다. 하물며 그렇게 오더를 내리면서 공대원의 생명력을 안정적으로 유지시키기까지 했다.

심지어 위험한 상황이 몇 번이나 찾아왔음에도 불구하고 영상 속의 한민국은 단 한 명도 큰 부상을 입히지 않고 제대로 살려냈다. 그런 한민국의 기록에는 【Gear Score – 61.3】 이라는 숫자가 적혀 있었다.

현정의 눈이 부릅떠졌다. 이 숫자가 의미하는 것은 영상 속의 한민국이 일반적으로 C – 2 난이도의 공략에 필요한 장비보다도 떨어지는 수준의 장비를 착용하고 전투에 임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었다.

그것도 공대원의 생명을 책임지는 막중한 자리에 있는 힐러 클래스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레이드는 안정적으로 진행되고 있었다. 현정의 입에서 절로 감탄이 터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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