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5 신입 4팀
《암흑 거인 데론
▷ 암흑 거인 데론은 움직임은 느리지만, 생명력과 공격력이 높은 몬스터입니다. 어그로를 잡는 탱커는 특수 공격을 제외한 일반 공격은 허용하지 않겠다는 생각으로 전투에 임해야 합니다.
▷ 어둠 기둥 – 데론이 자신의 망치를 휘둘러 영웅을 강타합니다. 공격 속도가 빠르지 않기에 미리 대비만 하고 있으면 충분히 피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데론의 망치가 내리쳐진 자리에 어둠의 마나가 들끓기 시작하므로 영웅들은 바로 그 자리에서 피해야 합니다. 특히, 원거리 딜리와 힐러 들은 어둠 기둥을 피하면서 아군과 이격되지 않게 주의해야 합니다.
▷ 어둠 고통 – 데론이 한 대상을 정해 저주의 주문을 읊습니다. 저주의 대상이 된 영웅은 10 초 뒤에 어둠의 마나에 의한 피해를 받고 주위 10 m 내의 동료 중 한 명에게 저주를 전염시킵니다. 단, 10 m 내에 대상자가 없으면 3 초간 기절 후 저주는 사라집니다.
어둠 고통의 대상자는 탱커를 제외한 모든 영웅들입니다. 그러므로 저주의 대상자가 된 영웅은 빨리 아군의 진영에서 이탈해야 합니다. 하지만 진영에서 너무 멀리 이탈해 힐러의 회복 거리에 벗어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 어둠 마나 폭풍 – 데론이 어둠의 폭풍을 만들어 냅니다. 어둠의 폭풍은 전장을 휘돌며 대상 지역의 영웅들에게 큰 피해를 입힙니다. 근처의 영웅들은 어둠의 폭풍이 다가올 경우 재빨리 자리를 피해야 합니다.》
“전형적으로 팀원들의 무빙과 판단력을 시험하는 몬스터네.”
민국이 R’s 클랜에서 보내준 던전 보고서를 읽어보며 말했다. 역사가 오래된 클랜이라 그런지 던전 보고서의 내용은 굉장히 충실했다. 보스급 몬스터의 특징과 공격 패턴은 물론이고, 위기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해야하는지도 상세하게 설명이 되어 있었다.
새로운 팀원들과 함께하는 이번 던전은 세 마리의 3 등급 몬스터가 등장하는 던전이었다. 하지만, 앞의 두 녀석은 3 등급의 틀을 하고 있는 2 등급의 녀석들이었다. 체력과 공격력 정도가 높을 뿐, 공격 패턴은 그리 까다롭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결국 공략에 주의해야 할 몬스터는 던전의 수호자라 할 수 있는 암흑 거인 데론 뿐이었다.
“어떻게 공격을 할지는 대충 예상이 가긴 하는데…. 그래도 붙어봐야 감이 올 것 같은데?”
현아가 자신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보고서의 내용은 이해할 수 있었지만, 머리로 이해했다고 해서 몸이 그대로 움직여주는 것은 아니었다.
“저도요….”
R’s 의 새로운 신입단원인 유나도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민국이 잠시 생각을 하다가 입을 열었다.
“클랜에 공략 성공 영상 자료가 있을 거야. 내일까지 영상을 몇 번 돌려보면 어느 정도 감이 잡히겠지.”
아마 그 정도만 해도 상당한 도움이 될 터였다.
설명은 까다롭지만 결국 정리하자면 간단했다. 보스 몬스터의 공격 패턴에 맞춰 팀원들 사이의 거리 유지 그리고 진영 이동만 잘하면 클리어 할 수 있는 녀석이었다.
이어서 민국의 눈동자가 신입 4 팀 회의실의 책상 오른편으로 향했다. 턱에 살짝 닿을 정도의 길이를 한 회색빛 머리의 성숙한 미녀가 진중한 표정으로 던전 보고서를 보고 있었다.
‘김소정.’
민국은 자신이 봤던 그녀의 프로필을 떠올렸다.
대검을 무기로 사용하는 소정은 올해 레이드 자격시험에 통과한 딜러 중 랭킹 26 위의 유망주로 전체 랭킹은 82 위의 영웅이었다.
팀원 중 랭킹이 가장 높은 현아가 탱커 랭킹 19 위로 전체 랭킹 71위였는데, 딜러나 탱커보다 힐러의 랭킹을 높게 치는 분위기 때문에 전체 랭킹은 둘 다 좀 낮게 집계되는 편이었다.
올해 20 대 후반의 나이인 김소정은 나이로 알 수 있다시피 굉장히 늦게 마력을 각성한 특수한 케이스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망주 랭킹에 집계된 것을 보면 그녀의 재능 혹은 정신력이 상당하다는 거겠지?’
어쨌든 성숙한 분위기에 가슴 윗부분을 훤하게 드러낸 파격적인 의상은 첫 만남부터 민국에게 굉장히 강렬한 인상을 주고 있었다. 처음에는 좀 당황했는데 자신을 제외한 그 누구도 소정의 의상에 신경 쓰지 않는 모습에 지금은 덤덤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특이사항으로는 네 살 아이가 한 명 있다고 했다. 성별은 여자, 아기 아빠와는 이혼한 것으로 적혀 있었는데, 남자가 임신 사실을 알고 나자 도망을 간 모양이었다.
‘그리고 정예린.’
딜러 랭킹 31 위, 전체 랭킹 93 위의 영웅이었다.
움직이는 데 불편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머리카락이 허리까지 내려오고 있었다. 그래도 넓게 펼쳐진 머릿결이 상당히 부드러워보였다.
게다가 처음 눈을 마주쳤을 때, 민국이 자신도 모르게 큰 소리를 냈을 정도로 예린은 진한 푸른색의 서클 렌즈를 끼고 있었다.
오늘의 복장은 푸른색 원피스에 노란색 코트. 아무리 봐도 어울리지 않는 색상의 조합이었다. 그리고 뒤에는 반짝반짝 빛나는 하늘색의 지팡이가 메어져 있었다. 모르는 사람이 봐도 얼음 마법사라는 것을 알 수 있는 지팡이였다.
나이는 24. 특이 사항으로는 자신보다 영웅 학교 기수가 1 기수 더 높았다.
“두 분 역시 원활한 공략을 위해서 영상 자료를 시청해 주시기 바랍니다.”
“알겠어요. 그런데 공대장님, 이번 던전은 몇 번의 트라이를 예상하고 있나요?”
질문의 주인공은 김소정이었다. 그리고 민국이 당연하다는 말투로 답했다.
“제 지시에만 잘 따라주시면 원 트(One Try)에 끝낼 수 있을 겁니다.”
“……원 트요?”
“네.”
소정이 입을 다물었다.
올해 R’s 에 입단한 딜러 중 랭킹이 가장 높은 그녀는 지금의 상황이 조금 불만스러웠다. 일단 자신이 속한 팀이 4 팀이라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당연히 4 팀 보다는 1 팀에 소속이 되고 싶었다. 아무래도 숫자가 앞설수록 클랜에서 생각하는 중요도가 높을 것 같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아이가 있는 그녀는 다른 이들보다도 빨리 영웅으로 성공해 좀 더 높은 조건의 계약을 이끌어내야 했다.
게다가 4 팀의 공대장은 남자 영웅이었다. 그것도 공대장으로 활동한 기록이 일주일 밖에 되지 않는 초짜였다.
자신도 올해 갓 레이드 자격증을 손에 넣은 신입 영웅에 불과했지만, 그래도 소정은 초짜 보다는 어느 정도 경험이 있는 공대장의 아래에서 자신의 경험과 커리어를 쌓고 싶었다. 랭커 클랜인 R’s (장미 방패단)에 입단한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었다.
“제 프로필에 대해서는 이미 두 분 다 알고 있으실 겁니다. 뭐, 별로 신뢰가 가지 않는 초짜 공대장으로 보이시겠죠. 하지만 저는 일주일 동안 열 번의 3 등급 몬스터를 레이드 해 성공적으로 클리어 했습니다. 그 중 원 트(One try) 가 7 번 이었죠.”
“…….”
소정이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말해 믿기 힘든 기록이었다. 하지만 그 기록 때문에 그녀는 클랜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4 팀에 남아 있었다. 만약 프로필에 적힌 공대장의 기록이 사실이라면…. 그는 진짜 뛰어난 공대장이라는 말이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민국이 웃으며 말했다.
“그 기록은 거짓이 아닙니다. 내일 던전 공략에서 아마 확인하실 수 있을 겁니다. 제 지시에만 잘 따른다면 말이죠.”
올해 자격증을 취득한 똑같은 신입 영웅 치고는 자신감이 과도하게 넘치는 공대장이었다. 하지만 그 모습이 소정은 나쁘지 않게 보였다. 저렇게 자신감이 넘친다는 것은 그만큼 실력에도 자신이 있다는 말이기 때문이었다.
* * *
계약서에 따라 앞으로 1 년간, R’s - 신입 4 팀이 해결해야 할 던전 개수는 총 80 개였다.
그 기간 동안 클랜에서 지원하는 부활석이 총 180 개니 평균적으로 던전 공략 한 번 당 2, 3 개의 부활석 만을 사용해 던전을 클리어 해야 했다.
“엄청나게 빡빡하네요?”
“랭커 클랜의 지원이 이 정도면…. 중소 클랜이나 소규모 클랜은 대체 지원이 어떻다는 거야? 부활석 없이 던전을 공략할 수 있나?”
유나의 말에 현아가 공감하며 고개를 깊게 끄덕였다. 이렇게 듣고 보니 랭커 클랜 입단에 실패했던 유나가 울면서 민국을 찾은 이유가 조금은 이해가 되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대부분의 신입 영웅 공대는 보통 난이도가 쉬운 던전 혹은 이미 클리어 한 경험이 있는 던전을 반복적으로 공략하곤 해. 그리고 획득한 전리품을 매각해 부활석을 구입한 후 새로운 던전을 공략하는 식이지.”
소정이 말했다. 그러면서 민국을 바라보았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클랜에 입단해 새롭게 활동을 시작하게 된 신입 공대장들은 자신이 레이드 자격시험 준비했을 때 클리어 했던 던전을 다시 찾는 게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민국은 그렇지 않았다. 전에 경험하지 않은 새로운 던전을 선택한 것이다. 그것도 【B – 9】 난이도의 던전으로 3 등급 몬스터가 등장하는 C 난이도의 던전이 아니었다.
민국을 포함한 신입 4 팀은 클랜 버스를 타고 중랑구에 위치한 던전으로 이동했다.
그렇게 이동을 하면서 민국은 이번 던전에서 만날 몬스터에 대한 질문을 팀원들에게 날리기 시작했다. 이미 이런 민국의 스타일을 경험해 본 적이 있는 현아와 유나는 갑작스러운 민국의 질문에도 답을 곧잘 해냈다.
“다음은 김소정씨. 아군 진영이 5 시에 있을 때 어둠의 마나 폭풍이 6 시에서 5 시 쪽으로 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진영의 우측에 있던 본인이 어둠 고통에 걸렸어요.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지만 소정과 정예린은 자신에게 질문이 날아올 때 마다 대답을 버벅거릴 수밖에 없었다. 구두시험처럼 질문을 던지는 민국의 스타일은 다른 공대장 밑에서는 경험해 본 적이 없는 특이한 방식이었다.
그리고 답이 조금이라도 이상하게 나올 때 마다 민국의 호된 질책이 이어졌다.
“……저기, 너는 전부터 한민국 공대장하고 같이 활동했다고 했지? 매번 이렇게 시험 같은 것을 봐야 하는 거야?”
벌써부터 전투를 마친 것 마냥 등이 땀으로 축축해진 예린이 유나를 툭 건드리며 물었다.
“네…. 그래도 하다보면 익숙해져요.”
“후우…. 영웅 학교 졸업한 지 1 년이 다 되어 가는데.”
유나의 대답에 예린이 멍하니 중얼거렸다. 하지만 민국의 이런 시험은 실전에서 크게 도움이 되고 있었다.
“6시 회오리! 어둠 고통 김소정! 본진은 중앙으로 이동하고 김소정은 2 시로 달려!”
공략 던전의 최종 보스급 몬스터인 암흑 거인 데론을 상대하던 와중, 민국이 말했던 상황과 거의 흡사한 상황이 눈앞에 펼쳐진 것이다.
곧바로 탱커인 현아가 데론의 어그로를 잡으며 전장의 중앙으로 이동을 시작했고, 소정은 바로 전장으로 2 시 방향으로 달렸다.
그리고 두 명의 딜러는 회오리를 피해 중앙에 가까운 12 시 방향으로 그리고 민국이 소정과 딜러의 사이에 자리를 잡으며 회복 마법을 사용했다.
“크윽!”
어둠 마나가 자신의 몸을 헤집는 고통에 소정이 입술을 깨물었다. 하지만 고통은 잠시 민국의 회복 마법이 그녀가 입은 상처를 바로 치유시켰다.
심지어 전투 중 새로 교체한 어웨이큰 스킬까지 사용해 3 초간 기절상황에 빠지자마자 곧바로 깨어나게 만들었다. 혹시 모를 위기를 완전 차단해 버린 것이다.
“이게 올해 레이드 자격시험에 통과한 신입 공대장이라고…?”
소정은 말을 삼켰다. 민국이 자신의 실력에 자신 있어 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민국의 위기대처 능력과 그에 따른 오더는 놀랍다 못해 전율이 흐를 정도였다. 그리고 그가 장담한 대로 민국은 이번 던전 공략에서 단, 한 명도 팀원들을 죽이지 않았다.
- 그워어어어어어!
영웅들의 마력이 실린 공격이 암흑 거인 데론을 연달아 강타했다. 그리고 단발마의 비명과 함께 거인의 몸체가 서서히 쓰러지기 시작했다.
삐익!
▶ “거인의 소형 전장”의 토벌을 완료했습니다.
▶ 영웅 패드에 업적 포인트가 1 주어집니다.
▶ 영웅 도감의 횟수가 갱신되었습니다.
“자, 잡았다?!”
공격 마법을 캐스팅하던 예린이 지팡이에 보내던 마력을 중단하고는 데론의 시체를 확인했다. 그리고는 공대장인 한민국을 바라봤다. 어느새 그녀의 입이 조금씩 벌어지고 있었다.
“진짜로 원트(One Try)잖아?”
팀원 중 단 한 명도 ‘거인의 소형 전장’을 경험한 영웅이 없었다. 심지어 공대장인 민국도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국은 정확한 상황 판단과 적절한 오더로 보스급 몬스터를 한 번의 도전으로 쓰러뜨려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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