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영웅 소녀 전쟁-28화 (28/486)

EP.28 신입 4팀

던전으로 이동하는 동안에도 브리핑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상대가 상대인 만큼 몇 번을 말해도 부족했다.

“화염 바퀴는 탱커인 현아 네 위치에서부터 떨어질 거야. 너는 화염 바퀴가 떨어질 때면 그 누구보다도 빨리 움직여야 하는 거 잊지 마. 오더 줄 테니까 바로바로 움직이고.”

이틀 동안 헉헉거리며 민국이 던진 공을 피했다. 민국의 말에 현아가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무기를 강하게 움켜쥐었다.

“화염의 숨결 상황에서 화염 바퀴가 동시에 달려오면 몬스터를 향한 공격을 포기하더라도 화염 바퀴를 피하는 것에 집중합니다. 어떠한 경우에도 팀의 생명력은 제가 책임질 테니 걱정마지 마시고요.”

이번 공략을 위해 민국은 단일 힐 계통, 도트 힐 계통 그리고 보호막 계통으로 스킬 세팅을 바꿨다. 전부 B 등급 스킬이었다. 1 성 영웅이 착용할 수 있는 가장 높은 등급이었다. 필요한 스킬 스톤은 클랜에서 빌렸다. 잘 쓰고 다시 돌려주면 되는 거라 빌리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이런 스킬 세팅은 전부 화염 숨결을 대비하기 위해서였다. 공략 영상은 대부분 화염 바퀴의 위험성만 강조하고 있었지만, 민국이 생각하기에 이프리트의 진정한 무서움은 공대 전체에게 큰 피해를 주는 화염 숨결이었다.

게다가 화염 숨결 도중 화염 바퀴까지 사용하니 힐러는 바퀴를 피하면서 팀원들의 생명력 또한 회복시켜야 했다. 상당히 까다로운 움직임과 센스를 요구했지만 민국은 충분히 자신이 있었다.

“……와우.”

자신감 넘치는 공대장의 말에 예린이 휘파람을 불었다. 동성인 여자가 해도 멋진 말인데, 남자가 하니 몸이 절로 떨렸다.

“R’s 클랜의 레이드 팀 GGW 되십니까?”

“네, 제가 공대장인 한민국입니다.”

‘화염 다리’는 서울의 천호동에 위치해 있었다. 영웅들이 기피하는 던전이라 그런지 던전 타이머가 6 시와 7 시 사이를 가리키고 있었다. 그런 연유 때문인지 던전을 지키고 있던 공무원이 다행이라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민국은 바로 부활석을 설정하고 던전으로 진입했다. 던전에 들어서자마자 뜨거운 열기가 피부를 내리눌렀다.

“바로 앞이네요.”

던전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멀리 불꽃으로 타오르는 괴물이 모두의 눈에 들어왔다. 이프리트였다. 이동하는 동안 아무 몬스터들도 나타나지 않았다. 이 던전에서는 오직 이프리트만이 영웅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원트(One Try) 갑니다.”

“혹시 원트 하면 공대장이 뽀뽀해줍니까?!”

“입술에 해줍니다.”

“……어, 음.”

긴장도 풀 겸 짓궂게 질문을 던졌던 예린이 바로 이어지는 민국의 대답에 자신도 모르게 입술을 매만졌다. 그런 예린을 향해 민국은 이유 모를 작은 미소를 지었다. 공략의 성공 보상이 더 생긴 느낌이었다.

그리고 전투가 시작되었다.

“꺄앗!”

이프리트를 향해 앞으로 달려 나가던 현아가 갑자기 주위가 빛으로 화하자 본능적으로 멈춰 섰다. 그런 현아의 뒤로 민국의 외침이 이어졌다.

“공략 영상에 나온 대로 전장이 바뀌는 거야! 당황하지 마!”

“아, 알았어!”

고개를 끄덕인 현아가 다리의 끝을 향해 달렸다. 그곳에는 이프리트가 뜨거운 불길을 내뿜으며 영웅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일반인이었다면 고통스러워할 열기였지만, 마력을 다룰 수 있는 영웅들에게는 아무런 피해도 주지 못하는 불꽃이었다.

하지만 이프리트를 향해 무기를 휘두르는 순간 현아는 자신의 생각을 바꿔야만 했다.

‘생각보다 뜨겁잖아?!’

무기를 휘두를 때 마다 현아의 팔이 이프리트의 화염 속에 휘감겼다. 마력으로 신체를 보호하고 있다 해도 까닥하다가는 화상을 입을 것 같았다. 게다가 이프리트의 공격을 막을 때면 절로 몸이 불꽃에 휩싸였다.

“크으윽…!”

화염에 타 들어가는 고통에 현아가 얼굴을 잔뜩 구겼다. 그 때였다. 따뜻한 마력이 현아의 몸을 휘감았다. 민국의 보호막이었다. 보호막에 가로막힌 화염은 더 이상 아무런 문제가 되지 못했다.

이어서 그슬렸던 피부가 곧바로 재생되었다. 캐스팅을 끝낸 민국의 도트 힐이 현아의 몸을 감싸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게 현아와 근접 딜러인 김소정에게 보호막과 도트 힐을 걸어준 민국은 재빨리 탱커의 누적되는 피해로 인한 보호막의 유지시간을 확인했다.

일반적인 3 등급 몬스터에 비해 능력은 떨어진다는 평가가 맞는지, 금방이라도 깨질 것 같은 보호막이 5 초 정도는 유지되고 있었다. 화염 숨결이 겹쳐져도 2, 3 초는 충분히 버틸 수 있을 것 같았다.

거기까지 계산을 끝낸 민국은 곧바로 팀원들의 위치를 확인했다. 화염 바퀴와 화염 숨결을 대비하기 위함이었다.

“정예린! 좀 더 앞으로! 김소정은 우측으로! 중앙과 오른쪽의 중간에 서세요!”

의외로 최유나는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았다. 아무래도 열심히 갈군 보람이 있었다. 그렇게 민국의 오더에 따라 팀원들이 다시 위치를 잡았고, 그 순간 이프리트가 자신의 숨을 들이키기 시작했다.

“화염의 숨결!”

손이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민국의 마력이 새롭게 구입한 지팡이에 몰려들기 시작했다. 민국이 시전 하는 것은 착용한 스킬 중 가장 캐스팅 시간이 짧은 보호막이었다.

순식간에 보호막이 민국의 몸을 감쌌고, 이어서 정예린과 최유나의 몸을 둘러쌌다. 그 때, 이프리트가 불꽃의 숨결을 내뿜었다. 뜨거운 열기가 다리 위를 흔들기 시작했다.

“크으으으윽!”

생각보다 강한 바람과 열기에 팀원들이 몸을 휘청거렸다. 마치 눈앞에서 커다란 강풍기가 돌아가는 느낌이었다. 그나마 탱커인 현아만이 제대로 자세를 잡고 있었다.

이프리트의 강렬한 숨결은 동시다발적으로 팀원들을 불태웠다. 그러나 이미 보호막으로 감싸져 있는 민국과 정예린, 최유나는 별다른 피해를 입지 않았다.

이어서 김소정에게는 도트 힐이 탱커인 현아에게 단힐 힐이 사용되었다. 잠시 후, 현아의 생명력이 안정화되자 김소정에게도 힐이 들어가며 모든 상처가 치유되었다.

‘역시 3 등급에 불과한 건가?’

위기 상황을 넘긴 민국은 현아를 향해 보호막을 캐스팅 하며 보스 몬스터를 바라봤다. 가장 위험한 패턴이라고 생각한 화염의 숨결은 보호막 하나만으로도 어느 정도 버틸 수 있을 정도로 생각보다 위력이 약했다. 강풍이 조금 걸리기는 했지만, 마력을 사용하면 충분히 움직일 수 있었다.

잠시 후, 민국의 눈에 이프리트가 손을 들어 올리는 모습이 들어왔다. 이어서 다리의 우측, 왼쪽, 중앙 순서대로 커다란 바퀴가 생겨났다. 불꽃의 바퀴들은 빠른 속도로 생겨났다. 하지만 순서를 외우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화염 바퀴!!! 오른! 왼! 중앙! 중앙에서 버티고 있다가 왼쪽 바퀴가 지나가면 왼쪽으로 피해!!!”

바퀴가 가장 늦게 떨어지는 중앙에서 버티고 있다가 오른쪽으로 피하게 되면 돌아오는 바퀴에 치일 경우도 있었다.

등 뒤에 눈이 달리지 않은 이상 몸을 돌려야만 후방을 확인할 수 있는 만큼 앞에서 굴러오는 바퀴보다는 다리를 지나갔다가 다시 돌아오는 바퀴를 조심해야 했다.

“얍!”

“피했다!”

이미 충분히 연습했던 대로 팀원들은 화염 바퀴를 처음 경험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별다른 위기 없이 이프리트의 공격을 잘 피해냈다.

이제 남은 것은 응용이었다. 과연 화염의 숨결 도중 바퀴를 피할 수 있느냐와 얼마나 많은 실수를 하느냐. 이에 따라 공략의 승패가 달렸다.

“중앙! 왼! 오른! 왼쪽 바퀴가 통과하면 그리로 피했다가 중앙의 바퀴가 돌아오고 나면 중앙으로 뭉쳐!!!”

계속해서 오른쪽으로 피했다가는 중앙으로 이동했을 경우 돌아오는 바퀴에 깔릴 가능성이 높았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왼쪽의 바퀴를 등 뒤에 놓고 중앙의 바퀴가 돌아오고 나서 이동하는 게 훨씬 안전했다.

중요한 것은 빠른 움직임이었다. 그러나 이어지는 화염의 숨결이 팀원들의 움직임을 방해했다. 조금씩 상황이 정신없게 변하고 있었지만 민국은 집중의 끈을 놓치지 않았다. 자신의 실수 하나가 팀원들을 전멸로 몰아넣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 민국의 눈에 현아가 갈팡질팡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이프리트를 상대하느라 자신의 위치를 까먹은 것이다. 게다가 화염의 강풍이 그녀의 감각을 헷갈리게 만들고 있었다.

“오현아!!! 김소정 쪽으로 달려!!!”

민국의 지시에 소정의 위치를 확인한 현아가 그리로 달렸다. 뒤에서 이프리트의 화염이 그녀를 불태웠지만, 피해에 신경을 쓸 겨를이 없었다. 그리고 몇 십 센티 차이를 두고 화염 바퀴가 현아가 있던 자리를 긁고 지나갔다.

“다시 원위치! 최유나! 반대쪽!!!”

이번에는 최유나가 어리바리를 타고 있었다.

그래도 민국의 오더에는 집중을 하고 있던 모양인지 유나는 민국의 목소리가 들리자마자 몸을 틀고는 그대로 하늘을 날았다. 다행히 무사통과였다. 그렇게 아무 피해 없이 화염의 숨결과 화염 바퀴의 상황이 지나갔다.

하지만 모두의 얼굴은 긴장감으로 가득 해 있었다.

특히 현아와 유나는 뜨거운 열풍이 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등 뒤로 소름이 돋고 있었다. 하마터면 죽을 뻔했던 것이다. 민국의 리딩이 아니었다면 백 퍼센트 죽은 목숨이었다.

이프리트의 생명력은 이제 막 십오 퍼센트 가량이 줄어들어 있었다. 몬스터의 공격 패턴을 피하느라 딜러들이 제대로 딜을 넣지 못한 까닭이었다. 앞으로 이런 상황을 몇 번이나 더 마주해야 할지 몰랐다.

* * *

“이잌!”

자신을 향해 불꽃을 토해내는 이프리트를 상대로 현아는 방패를 들어 괴물의 공격을 막아냈다. 뜨겁기는 했지만, 힐러의 힐만 있으면 어렵지 않게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그러나 현아의 머릿속은 복잡하게 헝클어져 있었다.

‘어디지? 어디로 오는 거지?’

화염 바퀴. 그 빌어먹을 녀석이 문제였다. 이프리트를 상대하는 와중에 다가오는 죽음의 굴렁쇠는 조금이라도 정신을 놓는 순간 타이밍을 놓쳐버리기 일쑤였다. 연습실에서의 훈련이 아니었다면 죽어도 골백번은 더 죽었을 터였다.

“오현아! 뒤쪽으로 달려!”

민국의 목소리가 그녀의 귀로 날카롭게 파고들었다. 현아는 곧바로 몸을 틀었다. 어느새 소정도 그녀와 함께 달리고 있었다. 잠시 후, 현아가 있던 자리로 불꽃의 바퀴가 데굴데굴 굴러갔다.

“그리고 원 위치!”

순간적인 급정거에 몸이 기우뚱했다. 하지만 빠르게 균형을 잡은 현아는 곧바로 자신이 있던 거리로 달렸다. 불꽃의 괴물이 앞에 있었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양손을 교차한 현아가 이프리트의 몸을 통과했다.

‘아?!’

마침 타이밍 좋게 민국의 보호막이 들어오며 현아는 큰 피해 없이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 불꽃의 피해를 감당하지 못한 보호막이 곧바로 깨져 나갔지만 이어서 도트 힐이 들어와 불꽃의 뜨거움을 치유시켰다.

“보통 남자들이 공간 지각 능력이 뛰어나다고 하던데…. 정말로 맞는 모양이야. 어떻게 우리 공대장은 이 모든 상황을 전부 파악하고 있는 거지?”

얼굴 가득 놀람이 담겨 있는 김소정이 자신의 대검을 휘두르며 말했다. 마력이 실린 그녀의 대검이 이프리트의 몸을 꿰뚫고 지나갈 때 마다 주위로 불길이 크게 튀었다.

“그러게요.”

그런 이프리트의 불꽃을 피하며 현아 또한 자신의 무기를 찔러 넣었다. 그러자 몬스터의 괴상한 소리가 현아의 귀를 파고들었다. 왠지 모르게 씁쓸한 생각이 들었다. 공대장의 지시가 없어도 충분히 피해내야 하는데….

민국이 모든 팀원들을 컨트롤 할 정도로 뛰어난 공대장이기에 버티고 있었지, 다른 공대장이 리딩을 대신했다면 전멸을 해도 몇 번이나 전멸했을 상황이었다. 전투를 하고 있는 팀원 모두가 민국에게 두 번 이상 지적을 받았다.

게다가 민국은 화염의 숨결과 화염 바퀴를 버티면서 팀원들의 생명력도 책임져야 했다. 하지만 레이드에 들어가기 전에 장담했던 대로 민국은 확실하게 팀원들을 커버했다.

“이런 실력이라면 부족해….”

현아는 입술을 깨물었다. 특수 개체라고는 하지만 고작 3성에 불과한 몬스터였다. 좀 더 능력을 발전시켜야 했다. 그래야 뛰어난 실력을 지닌 공대장과 계속 함께 할 수 있었다.

“11 % 집중해!”

그런 와중에도 이프리트의 목숨줄은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 그리고 단발마의 비명과 함께 이프리트의 불꽃이 재로 변해 사라졌다.

삐익!

▶ ‘화염 다리 – 이프리트’의 토벌을 완료했습니다.

▶ 영웅 패드에 업적 포인트가 1 주어집니다.

▶ 영웅 도감의 횟수가 갱신되었습니다.

“잡았다?”

“와아아아아아!!!”

이프리트가 사라지는 것을 확인하자마자 유나가 만세를 들어올렸다. 그녀의 손에 있던 활이 하늘을 날아 땅바닥으로 떨어졌다.

뜨거운 열기와 싸워야 했던 까닭에 갑옷이 땀으로 범벅이 된 소정은 그대로 갑옷 상의를 벗어서 집어 던졌다. 그리고는 자리에 털썩 앉았다. 커다란 가슴이 출렁이며 분홍색 유두가 모습을 드러냈지만,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모습이었다.

다른 이들도 비슷하게 주저앉았다. 몬스터에게 승리를 거둔 것은 자신들인데, 온 몸이 검댕이로 가득한 것이 거지꼴이 따로 없었다.

그리고 민국은 자신의 지팡이를 한손으로 들어 올리고는 아저씨처럼 어깨를 두드리고 있었다. 이프리트라는 특수 개체를 원트(One Try)로 잡았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당연하다는 모습이었다.

그렇게 느릿한 걸음으로 팀원들에게 다가오던 민국이 그만저만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어때? 별거 아니지?”

민국의 말에 현아와 소정이 허탈하게 웃었다. 예린은 대놓고 얼굴을 구기고 있었다. 레이드에 관해서는 민국에게 충성을 맹세한 유나도 표정관리가 되지 않는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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