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9 신입 4팀
민국을 제외한 나머지 공대원들은 ‘화염 다리 – 이프리트’를 쓰러뜨렸다는 기쁨에서 쉽게 헤어 나오지 못했다.
이프리트는 3 등급 몬스터에 속하기는 하지만 까다로운 공격 패턴과 전투 중 조그마한 실수만 저질러도 바로 공대가 전멸했기에 영웅 협회에서도 특수 개체라고 지정된 몬스터였다. 3 등급이지만 3 등급이 아닌 보스급 몬스터. 그게 바로 3+ 등급 이프리트였다.
특히나 이프리트 공략은 공대원 중 한 명인 힐러의 역량에 따라 공략의 성패가 크게 좌우되는 몬스터였다. 그렇기에 부담감을 느끼는 힐러들은 화염 다리를 공략하는 것을 굉장히 꺼리는 편이었고, 결국 이프리트는 다수의 공격대가 찾지 않는 특수 개체가 되었다.
실력에 자신 있다는 공격대들도 마력을 결정을 노리고 도전했다가 계속되는 실패로 내분이 벌어져 팀이 해체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그만큼 랭킹에 이름을 올리는 힐러들도 그리고 떡잎이 보이는 신규 공격대들도 이프리트 공략에는 난색을 표하는 게 대부분이었다.
‘그런 이프리트를 내, 내가 잡다니….’
그을음과 검댕으로 초췌하고 피폐해진 얼굴이었지만 예린은 자신의 영웅 도감을 확인하며 환희에 찬 표정을 지었다. ‘화염 다리 – 이프리트’ 공략 횟수 – 1회. 이건 누구에게도 자랑할 만한 대단한 업적이었다. 그것도 원트(One Try)였다.
같은 영웅학교를 졸업한 동기들이 이 업적을 확인했다면 부러움으로 가득한 표정을 지었을 게 분명했다. 그만큼 갓 레이드 자격증을 딴 예린에게는 정말 엄청난 성과였다.
‘한민국!’
그런 예린의 시선이 현아와 장난을 치는 남성 영웅에게 향했다. R’s 의 신입 4 팀 공대장이자 같은 1 년차 힐러 영웅.
하지만 전투에서 보여주는 그의 리딩 능력은 정말 상상을 초월했다. 힐러로서의 역량도 대단했다. 자신보다 한 기수가 낮은 영웅이라는 사실이 도저히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 오현아!!! 김소정 쪽으로 달려!!!
- 다시 원위치!!! 최유나 반대쪽!
방금 전 있었던 이프리트의 전투 과정이 예린의 머릿속으로 주마등처럼 스치고 지나갔다. 전투 도중 맞닥뜨린 여러 위기 속에서도 민국은 정확하고도 직관적인 오더로 아군의 위기를 몇 번이나 해결해 냈었다.
그 결과가 ‘화염 다리 – 이프리트’의 레이드 성공이었다.
‘어, 라라?’
그렇게 민국의 얼굴을 보고 있던 예린이 문득 드는 생각에 얼굴이 절로 화악 붉어졌다. 생각해보니 원트에 이프리트 레이드에 성공하면 한민국 공대장이 자신에게 해주기로 한 보상이 있었다.
“분명….”
예린의 가느다란 손가락이 자신도 모르게 입술을 매만졌다.
“예에! 전리품이다!!!”
현아의 외침에 모두의 시선이 전장의 한가운데로 향했다. 언제 생겨났는지 철로 만들어진 전리품 상자가 공격 대원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특수 개체의 전리품 상자답게 생긴 것도 평범한 3 등급 몬스터가 주는 것과는 다른 느낌이었다. 아니, 자세히 보면 그 차이를 알 수 있었다. 마치 왁스칠이라도 한 것 마냥 이프리트의 철 상자는 반짝반짝 빛이 나고 있었다.
“저게 바로 이프리트의 전리품 상자…!”
“마, 마력의 결정이 나오는 상자죠? 확률이 얼마나 되요?”
“영웅 도감의 정보에 따르면 평균 30 % 정도라고 하던데? 그리고 최대 두 개까지 나왔다는 기록이 있어.”
“두, 두 개나요?!”
질문을 던졌던 유나가 현아의 말에 동그랗게 눈을 떴다. 그녀의 고개가 홱 하고 전리품 상자로 돌아갔다. 그만큼 능력을 크게 높일 수 있는 진귀한 아이템 - 마력의 결정은 영웅이라면 누구라도 탐을 내는 아이템이었다.
해당 몬스터 레이드에 참여한 영웅만이 흡수할 수 있다는 제약이 있었지만 여기 있는 이들에게는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았다. 어떤 결정이던지 나오기만 하면 무조건 좋은 일이었다.
“누가 열어 볼래?”
민국이 모두에게 물었다. 하지만 다들 반응이 조용했다. 아무래도 본인들이 손을 댔다가 마력의 결정이 나오지 않기라도 한다면 그것도 굉장히 미안한 일이기 때문이었다. 그런 팀원들의 모습에 민국이 어깨를 으쓱하며 모두에게 들리게끔 입을 열었다.
“확률이 낮은 아이템이 그렇게 쉽게 나오나? 안 나오면 또 잡으면 되는 거지?”
난이도가 있다 해도 어차피 클리어 한 녀석에 불과했다. 그만큼 경험이라는 것은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실력이었다.
그리고 뺑뺑이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 법이었다. 30 % 의 확률은 10 번을 돌면 3 번 정도는 나온다는 이야기였으니까. 일단 돌면 언젠가는 결정을 얻을 수 있었다. 지금 당장이 아니더라도 말이다.
“자자!”
민국이 박수를 치며 조용해진 분위기를 환기시켰다. 그리고는 현아를 향해 말했다.
“여기가 천호동이니까 천호동 럭키 걸이 열어야겠지? 오현아?”
“어, 어? 내가 열어?!”
민국의 지목에 현아가 침을 꿀꺽 삼켰다. 제법 부담감을 느끼는 모양인지 몸을 일으키는 모습이 로봇처럼 삐걱거렸다. 현아의 눈동자가 다른 이들에게 향했다. 하지만 다들 은근슬쩍 그녀의 시선을 피하는 모습이었다.
“그러면 제가 열게요! 안 나와도 원망하지 않기!”
결국 모든 것을 내려놓은 현아가 그렇게 말하고는 성큼성큼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거침없이 전리품 상자를 열었다. 아주 조금의 머뭇거림도 없었다.
“어, 어어어? 어어어!!”
상자의 내용물을 확인한 현아의 눈가에 눈물이 글썽이기 시작했다. 엄청나게 빠른 감정변화였다.
“너…. 우, 우는 거야? 아니야! 괜찮아! 마력의 결정 같은 거 안 나오면 어때? 말했잖아. 또 잡으면….”
생각 이상으로 격렬한 현아의 반응에 민국이 당황하며 그녀에게 뛰듯 달려갔다. 그러나 민국은 자신의 행동을 중간에서 멈춰야만 했다. 눈물을 그렁그렁하게 달고 있는 현아가 갑자기 만세를 불렀기 때문이었다.
“……떠, 떴다!!!”
* * *
“앞으로 나를 천호동 슈퍼 럭키 걸이라고 부르라고!”
“와아아아!!! 오현아! 오현아! 오현아!”
콧대가 한껏 높아진 현아의 옆에서 유나가 응원의 춤을 추고 있었다. 옆에서 예린도 물개 박수를 치고 있었다. 하지만 현아는 그런 축하를 받을 만한 자격이 있었다. 전리품 상자의 내용물을 확인한 민국이 고개를 갸웃했다.
“……이게 말이 되나?”
이프리트의 전리품 상자에는 부활석 하나와 힘과 체력의 결정. 그러니까 마력의 결정이 무려 두 개나 들어 있었다. 민국의 시선이 하늘 높이 고개를 치켜들고 있는 현아에게로 향했다. 아무래도 쟤, 평생의 운을 여기에 다 쏟아 부은 것 같았다.
“진짜로 나왔네요.”
슬그머니 다가와 전리품 상자를 확인한 소정이 신기한 눈으로 마력의 결정을 바라보았다. 영웅학교에서 영상 자료로 접하기는 했지만, 직접 마력의 결정을 보는 것은 그녀도 지금이 처음이었다. 아니, 여기에 있는 모두가 처음이었다.
“힘과 체력. 딱 필요한 것들만 나왔네요. 힘은 김소정, 체력은 오현아 영웅에게 분배합니다.”
“저요?”
민국의 말에 소정이 놀란 얼굴로 다시 물었다.
힘의 결정이 나왔을 때부터 혹시나 하는 마음은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민국과 친분이 있는 탱커인 현아도 있었고 활을 다루는 유나도 힘이 중요한 편이었기에 그녀는 어느 정도 욕심을 내려놓고 있었다. 그런 소정을 향해 민국이 고개를 갸웃했다.
“대검을 무기로 쓰는 근접 딜러면 힘이 코어 능력(제일 중요한 핵심능력) 아닌가요?”
“마, 맞기는 한데…….”
마력의 결정은 그런 이유만으로 분배하기에는 너무나도 진귀한 아이템이었다. 하지만 자신들의 신입 공대장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민국이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렇다면 팀의 전력 상승을 위해 힘이 가장 중요한 근접 딜러에게 힘의 결정이 분배되는 게 맞는 겁니다. 단, 함께 고생을 한 팀원들에게 적당한 보상은 주셔야 할 겁니다.”
민국의 손이 영웅 패드(Hero Pad)를 두드렸다.
“이건 1, 2 성 영웅에게 효과가 있는 레드급 결정이네요. 영웅 패드의 기록에 따르면 레드급 결정을 획득한 영웅들은 팀원들에게 평균적으로 각각 오천 달러씩을 결정 가격으로 지급했다고 하더군요.”
“드릴게요!”
소정이 재빨리 대답했다. 총 네 명이니 이만 달러였다. 마력의 결정이 가지는 가치를 생각하면 충분히 지불하고도 남을 돈이었다. 게다가 좋은 계약으로 R’s 클랜에 입단한 소정은 이만 달러를 지불할 수 있는 재정적 여유가 있었다.
현아도 마찬가지였다. 체력의 결정은 탱커라면 그 누구도 거부하지 못할 최고의 아이템이었다. 마지막으로 민국이 전리품 상자의 부활석을 품에 챙겨 넣으며 말했다.
“이 부활석은 팀의 공동 재산으로 다음 번 ‘이프리트’ 공략에 사용하겠습니다.”
“어? 이프리트 또 잡으실 거예요?”
“당연하지. 결정 안 먹을 거야?”
질문을 했던 유나가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계속 이프리트만을 잡아서 모두가 2 성까지 등급을 높인 후에 새로운 던전을 공략할 거야.”
그래야 4 성 보스급 몬스터를 클리어 할 수 있는 각을 볼 수 있었다. 이어서 민국이 예린을 바라봤다.
“죄송하지만 2 성 영웅인 정예린 씨는 아무래도 차선 순위가 될 것 같습니다. 그래도 제가 2 성이 된 이후에는 이프리트가 떨어뜨리는 지력과 정신력 결정을 모두 정예린씨가 흡수할 수 있도록 분배하겠습니다.”
정예린은 팀에서 유일한 2 성 영웅으로 레드 급 결정을 아무리 흡수해도 3 성 영웅이 될 수는 없었다. 그래도 결정의 효과를 아예 보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다.
계속해서 결정을 흡수하다보면 2 성의 한계까지 능력을 높일 수는 있으니, 훗날 다음 등급의 결정을 얻게 되면 바로 3 성이 될 수 있었다.
“알겠어요.”
그렇게 자신을 챙겨주는 민국의 모습에 예린이 고맙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화염 다리 – 이프리트’ 뺑뺑이가 시작되었다.
하지만 원 트(One Try)에 공략을 성공했던 첫 번째 레이드는 그냥 운이 좋았던 것이었다. 두 번째 레이드도 처음과 마찬가지로 엄청나게 어수선하게 진행이 되었다. 간단히 말해 다들 제대로 감을 잡지 못하고 있었다.
콰지직!
끔찍한 소리와 함께 커다란 화염 바퀴에 유나의 몸이 제대로 깔렸다. 보호막이 없었더라면 즉사였을 상황이었다. 이어서 민국의 힐이 유나의 몸을 감쌌다.
“최유나! 정신 안 차려!!!”
“죄, 죄송해요!”
“말보다 행동!!! 또 온다!”
화염 바퀴가 다리를 구르는 순서와 방향을 예측하고, 정확한 위치를 잡지 않으면 순식간에 위험에 빠지는 레이드였다.
아무것도 없다면 어렵지 않게 피해낼 수 있는 패턴이지만, 이프리트와의 격렬한 전투 그리고 다리 위를 휘감는 뜨거운 열풍이 팀원들의 감각과 위치 선정을 계속해서 방해했다.
“꺄아아아아악!!!”
결국 레이드 중 처음으로 희생자가 나왔다. 화염 바퀴를 피하려던 정예린이 발을 헛디디며 다리에서 떨어진 것이다. 이제까지 공대원들의 체력을 안정적으로 유지시키던 민국도 도저히 살려낼 수 없는 사고였다.
“모두 집중!!! 정예린은 전투가 끝나고 부활시키면 돼!”
던전에 진입하기 전, 부활석을 미리 사용해 놓았으니 큰 문제는 없었다. 죽음을 경험한 정신적인 충격이 조금 있기야 하겠지만, 영웅이라면 어렵지 않게 극복해낼 수 있었다.
“더 이상 딜러가 한 명이라도 죽으면 클리어가 힘들어져! 제대로 정신 차려!!!”
민국의 다그침에 모두가 집중하며 이프리트를 향해 달려들었다.
하지만 의지만으로 상황을 해결할 수 있다면 이프리트가 특수 개체라는 평가를 받지는 않았을 터였다. 결국 이프리트가 쓰러질 때까지 남아 있던 팀원은 민국과 현아 둘 뿐이었다.
“이게 무슨 꼴이야.”
민국이 얼굴을 구겼다. 최유나는 정예린과 마찬가지로 화염 바퀴를 피하다가 다리에서 떨어졌고, 김소정은 자신 혼자서 어떻게든 딜을 넣어야 한다는 생각에 정신을 놓았다가 머리 위로 떨어지는 바퀴에 깔려 죽었다.
“아니?! 처음 잡았을 때는 아무도 죽지 않았는데, 이번 트라이는 왜 자꾸 실수를 하는 겁니까?!”
민국의 질책에 모두들 고개를 푸욱 숙였다. 뭐라 할 말이 없었다. 이프리트 레이드에서 가장 고생을 하는 힐러이자 공대장인 민국은 단 한 번도 화염 바퀴에 쓸린 적이 없었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역할인 힐러의 임무도 톡톡히 해내고 있었다.
“후우. 그래도 잡기는 잡았으니….”
하지만 민국의 질책은 거기서 끝이었다. 일단 잡았으면 만사오케이라는 과거의 경험 때문이었다.
어차피 한 번에 잘할 것이라는 기대는 하지도 않았고, 전투 경험이 계속해서 쌓이면 움직임 또한 점점 나아질 거라는 생각이었다. 그리고 또 다시 천호동 럭키 걸이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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