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30 신입 4팀
“역시나….”
전리품 상자를 확인한 민국이 당연하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조금 전이 특이한 상황이었고, 이번이 정상이었다. 상자 안에는 【Gear Score】 100 짜리 장비 세 개가 들어 있었다.
안타깝게도 힐러 용 장비는 없었지만, 유나가 쓸 수 있는 장갑이 하나 나왔으니 성과는 아예 없지는 않았다. 또한 이제껏 보지 못했던 독특한 아이템도 하나 끼어 있었다. 바로 클래스 스톤이었다.
【클래스 스톤(B) – 화염 궁수】
화염의 기운을 실어 원거리 공격이 가능한 B 등급의 클래스였다. 특이하게도 화염 궁수로 전직을 하게 되면 폭발시라는 B 등급 스킬이 강제적으로 착용이 된다는 설명이 있었다. 클래스를 변경하지 않는 한 해제조차도 할 수 없는 모양이었다.
“광역 공격에 특화된 클래스인가 보네?”
손바닥 크기의 돌멩이를 손에 든 민국이 유나를 쳐다보았다. 여기서 화염 궁수로 전직을 할 만한 영웅은 활을 무기로 사용하는 유나밖에 없었다. 그리고 민국의 시선을 받은 유나가 고개를 저었다.
화염 궁수가 딱히 좋은 클래스도 아니었고, 그녀는 지금의 클래스에 만족하고 있었다.
“그럼 이것은 클랜에 제출하는 걸로….”
계약에 따라 공격대가 레이드에서 획득하는 전리품 중 사용하지 않는 물품들은 전부 클랜에 제출해야만 했다.
그러면 클랜에서 적당한 가격으로 아이템을 매입을 한 후 계약서에 나온 비율대로 정산해서 돈을 지급했다. 이미 착용하거나 사용한 아이템들 역시 정산 때문이라도 보고해야 했다.
뭐, 특수 개체인 이프리트에게서 나왔다지만 그래봤자 B 등급 클래스. 가격이 크게 나가지는 않을 것 같았다. 민국의 B 등급 클래스인 ‘세인트’도 클래스 스톤 가격은 400 달러 정도에 불과했었다.
그리고 7 시간 뒤.
아침부터 시작했던 ‘화염 다리 – 이프리트’ 레이드는 오후 늦게 되어서야 끝이 났다. 그 시간 동안 민국은 일명 뺑뺑이라 불리는 반복 공략을 무려 네 번이나 진행했다.
그런 한민국 공대장의 강행군에 현아를 비롯한 다른 팀원들은 휴식 시간 1 시간을 제외한 나머지 시간 동안 한 치의 긴장도 풀지 못하고 뜨거운 불길에서 사투를 벌여야 했다. 불평불만은 할 수도 없었다. 공격대에서 가장 고생하는 힐러가 바로 민국이었다.
“어흐흐흐. 영웅 학교 졸업 훈련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빡센데요?”
“그리고 그 때는 교관들도 있었어. 몬스터들도 1, 2 등급에 불과했고….”
목소리에 울음이 섞여 있는 유나의 말에 소정이 몸을 부들부들 떨다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한민국 공대장과 함께한 지 나흘째. 그리고 오늘 두 번째 던전도 성공적으로 공략할 수 있었다. 공격대의 활동이 그만큼 순조롭게 진행이 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오늘 1성 영웅이라면 꿈에서나 그리는 아이템인 마력의 결정도 흡수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인간적으로 너무 힘들잖아….’
20 대 초반의 젊은 공대장이라 그런가? 후반인 자신은 에너지가 따라가지 못하는 느낌이었다.
R’s 클랜의 신입 4팀 GGW 는 네 번의 레이드에서 모두 이프리트를 쓰러뜨릴 수 있었다. 비록 전투가 끝날 때 마다 목숨을 잃는 이들이 한, 두 명씩 생겨나기는 했지만 힐러가 건재했고 탱커가 무사했던 터라 어떻게든 꾸역꾸역 보스 몬스터를 잡아냈다.
하지만 마력의 결정은 처음을 제외한 나머지 세 번의 전리품 상자에서는 등장하지 않았다. 그리고 오늘의 모든 전리품 상자는 자칭 천호동 슈퍼 럭키걸이 열었다.
“확률이 30 % 라면 그래도 두 번은 나와야 되는 거 아닌가?”
“결과적으로 두 개가 나오긴 했잖아요.”
하지만 첫 끗발이 너무 좋았기 때문일까? 모두의 얼굴에는 아쉬움이 담겨져 있었다. 가장 가치가 높은 전리품인 부활석도 첫 번째 상자에서만 얻을 수 있었다.
“그러면 오늘은 여기서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이틀 정도 휴식한 후에 다시 ‘화염 다리’ 공략에 들어가도록 하죠.”
민국이 팀원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내일도 뺑뺑이를 돌고 싶었지만, 오늘 너무 고생한 모양인지 팀원들의 상태가 그리 좋아 보이지 않았다.
‘아직 하드코어하게 도는 건 힘든 모양이네. 아무래도 레이드 수준이 조금 떨어지는 세계인 것 같으니까….’
자신이 게임에서 한창 활동했을 때는 뺑뺑이 정도는 쉬지 않고 열 번 이상은 돌아야 어디서 조금 돌았다고 말을 할 수 있었다.
마력의 결정은 얻었지만 결국 소정과 현아 둘 중 한 명이라도 영웅 등급을 높이는 것에는 실패했다. 아직 능력의 한계에 도달하지 못한 것이다.
확실히 30 % 의 확률이 높은 건 아니었다. 게다가 레이드 진행도 부드럽지 못한 터라 여기저기서 사고가 펑펑 터진 까닭에 공략을 빠르게 진행하지도 못했다.
‘다들 실력이 없지는 않단 말이야. 실수가 나오기는 하지만 경험이 쌓이다 보면 문제없을 수준이고….’
그래도 공략의 실패가 한 번도 없었다는 점에서는 충분히 높은 점수를 줄 수 있었다. 다들 평균 이상은 한다는 이야기였으니까.
영웅 패드(Hero Pad) 에 나온 기여도에는 탱커인 현아가 B+ 로 가장 높았다. 참고로 단 한 번도 죽지 않았고, 공대원들의 생명력도 아주 안정적으로 유지시켰던 민국은 기여도가 S 등급이었다.
어쨌든 현아는 민국과 마찬가지로 4 번의 레이드에서 한 번도 죽지 않았다. 물론, 어리바리를 많이 타기는 했지만 자신의 오더에 정확히 움직이며 위기를 해결해 나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현아 다음으로는 김소정이 높았다. 현아와 마찬가지로 B+ 였지만 세부적인 사항에서 조금 밀려 3 위가 되었다. 대검을 무기로 쓰는 근접 딜러라 그런지, 딜링 능력이 발군이었다. 그 다음으로는 예린과 유나 순서였다. 둘 다 B 등급, 평균은 했다는 이야기였다.
그렇게 모든 공략이 끝나고 민국과 김소정은 클랜 하우스로 향했다.
나머지 인원들은 그 자리에서 곧장 집으로 가기로 했다. 하지만 민국은 공대장의 의무 중 하나인 ‘오늘 공략에 대한 보고서’와 ‘전리품을 클랜에 제출’해야 했다. 그리고 소정은 클랜 하우스에 머무르고 있었다.
* * *
다섯 명이나 되었던 공격대가 두 명으로 줄어들었고, 거기에 성별이 다른 이들이 함께 하는 바람에 클랜 하우스로 향하는 차 안은 굉장히 조용했다.
“…….”
그리고 영웅 패드를 만지면서 클랜에 제출할 보고서를 작성하던 민국이 힐끔 김소정을 바라봤다. 오늘의 전투가 힘들었는지, 그녀의 얼굴에는 피곤이 가득해보였다.
“레이드가 조금 빡빡했나요?”
“아……? 네? 아, 저는 괜찮습….”
갑작스러운 민국의 말에 잠깐 정신을 놓고 있던 소정이 화들짝 놀라며 몸을 일으켰다. 비록 나이는 어렸지만 민국은 자신이 속한 팀의 공대장이었다. 그리고 잠시 머뭇거리던 소정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솔직히 조금 힘들긴 했어요. 그리고 뺑뺑이라고 했던가요? 반복적으로 던전을 도는 행위는 처음 들어봤고요. 보통 같은 던전이라도 4, 5 일에 한 번씩 도는 편인데….”
아무래도 영웅 학교에서는 반복 작업의 참 맛은 가르치지 않는 모양이었다.
“나이가 나이인지라 체력이 부족한 모양이에요.”
“풉. 그래봤자 이십대시잖아요? 년차가 있는 영웅들이 그 말을 들으면 굉장히 화를 낼 것 같은데요?”
“하지만 여기에는 그분들이 없으시잖아요?”
어깨를 으쓱이며 너스레를 떠는 소정의 모습에 민국이 눈을 깜빡였다. 성숙한 분위기에 말 수도 별로 없는 진중한 이미지였기에, 이렇게 농담을 던지는 모습이 의외로 다가왔다. 역시 사람은 여러 번 대화를 해봐야 성격을 알 수 있는 모양이었다.
“힘들기는 했지만 그래도 오늘 레이드는 정말 대단했어요. 그 이프리트를 네 번이나 잡을 줄이야….”
“전리품 상자는 조금 아쉬웠죠?”
“저는 만족해요. 마력의 결정을 두 개나 뽑아냈잖아요? 그렇게 생각하면 오현아 영웅의 운이 나쁜 편은 아닌 것 같아요. 거기에 이프리트의 토벌 기록까지 얻었고요. 영웅으로 얻은 게 굉장히 많은 날이었어요.”
활짝 미소를 지어보인 소정이 땀에 젖은 자신의 머리카락을 뒤로 쓸어 넘겼다.
“…….”
그런 소정의 행동이 민국에게는 굉장히 섹시하게 다가왔다. 성숙한 여인의 향기가 묘한 욕망을 자극하고 있었다. 순간 이프리트 레이드에서 봤던 소정의 가슴과 분홍빛 유두가 머릿속으로 떠올랐다.
자신도 모르게 침을 삼킨 민국이 부끄러운 생각을 들킬세라 바로 화제를 돌렸다.
“그런데 김소정 씨는 클랜 하우스에서 거주하시나 봐요?”
“아? 네.”
“왜요? R’s 에 입단하셨을 정도의 전도유망한 영웅이시라면 좋은 집도 구할 수 있으실 텐데….”
“후후. 제가 세계 랭킹 순위에 들어가는 것도 아니고 그 정도 급은 아니에요. 게다가 서울의 집값이 좀 비싸야죠. 그리고 R’s 클랜은 자체적으로 어린이집을 운영하고 있어요. 보육 교사 분들도 훌륭하다고 소문이 나 있고요.”
“아, 딸 때문에요?”
민국이 눈을 껌벅이며 물었다. 김소정에게 딸이 있다는 사실은 프로필을 통해서 이미 알고 있었다. 하지만 클랜에서 자체적으로 어린이집을 운영한다는 내용은 전혀 몰랐던 이야기였다.
클랜에 입단한지 얼마 되지도 않은데다가 그런 사항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아무래도 어둠의 괴물을 물리치는 영웅들이 전부 여성들이다 보니 그쪽에 대한 편의를 많이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네. 제가 싸우는 동안 누군가는 제 딸을 보살펴줘야 하고, 저도 어차피 혼자인지라…. 그래서 그냥 클랜 하우스에 머무르고 있어요.”
“불편하지는 않으세요?”
“전혀요.”
어깨를 으쓱이는 소정의 모습에 민국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클랜에서 하는 일이 생각보다 굉장히 많은 모양이었다. 하기야 14 층 빌딩을 통째로 쓰는 곳이었다. 왠지 할 말이 사라진 민국이 다시 영웅 패드에 시선을 돌리려고 했다.
“그런데 저도 뭐 하나 물어봐도 될까요?”
이번에는 소정이 민국에게 말을 건넸다.
“네? 뭐요?”
“힘의 결정. 왜 저에게 분배하신 거예요? 오현아 영웅과 아시는 사이 아니었나요?”
“그렇기는 한데…. 아까도 말했다시피 힘 능력은 근접 무기를 사용하는 소정씨의 코어 능력 아닌가요? 공격대의 전력 상승에는 그게 훨씬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는데요?”
“그렇게 이성적으로 전리품을 배분하는 공대장은 잘 없다고 들어서요. 특히나 마력의 결정과 같은 진귀한 아이템은 쉽게 구할 수도 없으니까요. 전리품 분배 때문에 해체되는 공격대가 어디 한 둘인가요?”
민국이 고개를 갸웃했다. 다른 건 이해가 되었지만, 마력의 결정을 쉽게 구할 수 없다는 말에는 조금 공감하기 힘들었다.
“그래봤자 계속해서 이프리트를 잡다 보면 마력의 결정도 계속 나올 텐데요, 뭐.”
“……아, 그렇긴 하겠네요.”
소정이 피식 웃었다. 다른 사람들이 들었다면 눈이 휘둥그레지다 못해 어이가 없을 대답이었다.
하지만 눈앞의 남자는 충분히 그럴 말을 할 수 있는 자격이 있는 영웅이었다. 같은 1 성 영웅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 기량에 팀을 완벽히 이끄는 리딩 능력까지. 벌써부터 세계에 이름을 날릴 법한 떡잎이 보이는 공대장이었다.
오래 지나지 않아 전 세계의 관심이 눈앞의 영웅에게 집중될 날이 올 것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거기에 남자 영웅….’
소정의 눈동자에 민국의 외모가 아로새겨졌다. 마력을 각성하며 환골탈태한 민국의 외모는 뭇사람의 마음을 크게 흔드는 엄청난 미남이었다. 외모가 무기라는 말이 딱 맞아떨어졌다.
“…….”
소정은 갑자기 민국의 잘생김이 의식되면서 심장이 흥분으로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거기에 좀 전에 있었던 전투의 흥분까지 덮어지면서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뜨거운 숨결을 내뱉었다.
마력을 각성한 남자 영웅이기 때문일까? 이상하게도 다른 남자를 만났을 때보다 훨씬 더 달아오르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바로 옆에 앉은 민국이 그런 소정의 모습을 눈치 채지 못할 리 없었다.
‘아, 조금 아쉽네….’
클랜에 소속된 영웅들의 전용 운송수단은 격렬한 전투로 지친 영웅들의 휴식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운전석과 완벽히 차단이 되어 있었다. 그렇기에 만약 현아와 둘이 있었더라면 조심스럽게 물고 빨고 할 수 있었을 지도 몰랐다. 하지만 이 자리에 현아는 없었다.
그리고 소정은 이제 만난 지 일주일도 안 된 여성이었다. 그것도 회사 동료나 다름없는 사이였다. 당연히 건드릴 수 없었다.
‘아?!’
생각해 보니 정예린하고 진한 키스를 나누는 것도 까먹었었다. 갑자기 드는 아쉬움에 머리를 긁적이던 민국이 영웅 패드로 인터넷에 접속했다.
○ 나 남자인데, 여성 영웅이 옆에서 흥분한 것 같음. 어떻게 해야 함?
● 무서운 소리를 하시네. 바로 도망쳐야지 밤새도록 짜일 일 있음?
● 요즘은 일반 여자도 무서운데, 여성 영웅이라니! 살려면 자리에서 벗어나라.
● 윗님 남자? 저랑 만나쉴?
○ 딸아이도 있으신 분인데 정말 그럴까요?
● ? 성욕에 애가 무슨 상관임? 아무나 박아주면 소원이 없겠다.
● 남편이 있으면 남편까지 불러서 하는 게 어떰? 남2 여1. 완전 소설에나 나올 법한 로망인데?
● 좋다! 완전 좋아! 바로 진행 해!
“어, 음…….”
바로바로 올라오는 채팅 내용을 확인하던 민국은 말문이 막혔다.
여기는 그런 곳이었다. 어둠의 힘을 지닌 괴물들과 전쟁을 벌이면서 살아나가고 있는 세상. 남녀의 비율의 완전히 깨져버린 세계. 인류의 미래를 위해서 어떻게든 출산율을 높이고 새롭게 태어나는 여성들이 마력을 각성하기를 바라는 곳이었다.
민국은 영웅 패드에 머리를 고정한 채 눈동자만 슬쩍 옆으로 굴렸다. 회색의 단발 미녀는 자신의 배에 손을 올리고는 조용히 눈을 감고 의자에 몸을 기대고 있었다. 브라 톱(브래지어 모양을 간편한 상의로 만든 것)처럼 가슴의 윗부분을 드러낸 파격적인 노출이 오늘 따라 더욱 유혹적으로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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