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영웅 소녀 전쟁-34화 (34/486)

EP.34 낭중지추

“그러한 사정으로 인해 팀 GGW 는 오늘부터 ‘화염 다리’ 대신 다른 던전을 공략하기로 했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현아가 회의실에 모인 팀원들을 향해 꾸벅 고개를 숙였다. 남들에게 자랑하고 싶었던 마음으로 시작한 사소한 행동이 이런 사단을 만들어 버렸다. 그 때문에 현아는 팀원들을 볼 면목이 없었다.

“허얼?! 나도 오늘 올리려고 어젯밤에 글을 쓰다가 말았는데. 바로 삭제해야겠네요. 와…. 진짜 큰일 날 뻔 했네.”

그렇게 말하며 유나가 허둥지둥 영웅 패드를 꺼내들었다. 현아의 행동이 누구나 할 수 있는 사소한 실수라는 것을 강조하려는 의도가 강하게 느껴졌다. 소정과 예린도 고개를 끄덕거릴 뿐, 별 불만은 없어 보이는 모습이었다.

그런 팀원들의 모습에 민국은 속으로 흐뭇한 마음이 들었다. 공격대가 결성된 지 고작 닷새째에 불과했지만, 여러 번 던전 공략을 함께 했기 때문일까? 벌써부터 동료애가 넘쳐나고 있었다.

“그러면 공대장님. 다음은 어디를 공략하실 계획이신가요? 이번에도 특수 개체?”

소정의 물음이었다. 그리고 공적인 자리인 만큼 민국이 존대어로 대답했다.

“네. 마력의 결정만큼이나 저희들의 스펙 상승에 당장 도움이 되는 것은 없으니까요. 다행이 클랜에서 도움을 받았습니다.”

“클랜에서요? 이 곳 R’s?”

“그렇습니다. 저는 몰랐던 내용인데, R’s 클랜에서 관리를 하는 3+ 등급의 특수 던전이 두 곳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중 환영의 던전을 추천받았습니다.”

특수 개체가 있는 난이도가 높은 던전은 영웅들이 공략하기를 꺼린다. 공략에 실패할 확률이 높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던전을 공략하지 않으면 던전 타이머를 초기화 시킬 수가 없었다. 던전 브레이크가 생겨나는 것이다.

그렇기에 정부와 영웅 협회는 매 년 마다 회의를 통해 랭커 클랜들에게 일정 던전을 직접 관리하며 클리어 하라는 공문을 보내곤 했다. 던전에서 나오는 전리품들은 전부 클랜이 독식하는 조건으로 말이다. 세금도 면제였다.

당연하지만 난이도가 높은 특수 개체가 있는 던전들이 각 클랜들에게 맡겨졌다. 그리고 특수 던전을 관리하게 된 클랜들은 등급이 높은 던전은 1 군이, 낮은 던전은 2, 3 군이 나서서 던전을 초기화 시키곤 했다. 물론, 그 와중에 사용되는 부활석이 한, 두 개가 아니었다.

“환영의 던전은 R’s 클랜의 3 군과 재능이 엿보이는 유망주 영웅을 섞어서 클리어를 할 계획이었다고 하더군요.”

굳이 섞는 이유는 3 성이 되지 못한 유망주 영웅을 성장시키기 위함이었다. 특수 던전에서 획득할 수 있는 가장 가치있는 아이템이 바로 마력의 결정이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번 일로 인해 저희 팀이 넘겨받았습니다.”

덤으로 부활석도 열 개를 받을 수 있었다. 계약에 따라 이번 달에 지원을 받은 부활석 까지 더하면 벌써 25 개를 클랜에서 지원 받은 것이다. 거기에 다섯 개를 사용했으니 이제는 스무 개가 남아 있었다. 물론, 민국이 개인적으로 가지고 있는 부활석은 제외한 숫자였다.

최근 들어 부활석의 가격이 12 만 달러까지 상승한 것을 감안하면 그만큼 R’s 클랜이 팀 GGW 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런 사실을 짐작한 것일까? 모두의 표정이 밝아졌다. 그리고 이번에는 예린이 물었다.

“환영의 던전은 어떤 곳인가요?”

“아! 바로 브리핑 하겠습니다. 제가 먼저 클랜에서 제공한 공략 영상을 잠깐 접했었는데. 뭐, 굉장히 쉬운 던전이더군요.”

“……쉽다고요?”

고개를 끄덕이며 브리핑을 준비하는 민국의 뒷모습을 보며 네 여인은 서로를 돌아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무리 그래도 3+ 등급 평가를 받는 특수 개체가 있는 던전이었다. 보나마나 ‘화염 다리 – 이프리트’ 만큼이나 고생해야 할 건 뻔한 사실이었다.

《환영의 던전 – 얼음 여왕 아니사

▷ 얼음 여왕 아니사를 만나기 위해서는 던전에서 환영의 조각 열 개를 얻어야 합니다. 조각은 던전의 몬스터들을 쓰러뜨리면 획득할 수 있습니다. 조각을 전부 모으게 되면 던전의 중앙에서 얼음 여왕 아니사가 나타납니다.

▷ 아니사는 제 1 어그로 대상자(주로 탱커)에게 빙결 창이라는 기술을 사용합니다. 이 기술은 차단이 불가능하며, 굉장히 강력한 공격이기에 탱커가 아니면 버티기가 힘듭니다. 또한 탱커는 자신의 생존기(피해를 감소시키는 능력)을 사용해서 빙결 창의 데미지를 조금이라도 줄여야 합니다.

또한 빙결 창에 얻어맞은 대상자는 10 초간 움직일 수가 없습니다. 그 상태에서 아니사의 공격을 맞아야 하므로 힐러는 탱커를 위주로 회복 능력을 사용해야 합니다.

▷ 아니사는 빙결 창을 사용하면서 중간 중간 얼음 구슬이라는 스킬을 사용합니다. 얼음 구슬은 전장에 생겨나는데, 영웅이 신체가 닿을 경우 폭발을 일으키며 주위에 데미지를 줍니다.

하지만 30 초간 아무도 건드리지 않는다면 전장 전체에 엄청난 마법 데미지를 입히므로 필히 생명력에 여유가 있는 영웅이 홀로 얼음 구슬을 건드려 주어야 합니다. 만약 얼음 구슬이 처리되지 않고 폭발할 경우 힐러의 스펙이 3 성과 【Gear Score – 160】 이하라면 공격대의 생명력 회복이 불가능할 정도로 전투가 힘들어집니다.

▷ 전투 도중 아니사는 환영 이동을 하며 공대원 중 한 명의 뒤로 나타납니다. 그리고는 얼음 감옥을 사용합니다. 바로 자리에서 벗어나지 않고 얼음 감옥에 갇힐 경우 30 초간 아무것도 할 수가 없으므로 반드시 피해야 합니다.》

간단하게 정리하자면 얼음 감옥은 피하고, 빙결 창은 탱커가 생존기라 불리는 방어 능력을 사용해서 얻어맞고, 탱커를 제외한 다른 이들은 얼음 구슬이 나타나면 30 초 안에 건드려서 강제적으로 폭발 처리를 해주면 끝이었다.

“‘이프리트’에 비하면 난이도가 확실히 낮긴 하네요. 다리에서 떨어져 죽을 염려도 없고요.”

민국은 그렇게 말했지만, 공략 영상을 보는 공대원들은 다들 심각한 표정이었다.

두 달 전에 진행되었다는 R’s 3 군과 2 년차 신입 영웅들의 ‘얼음 여왕 – 아니사’ 공략 영상.

- 얼음 구슬! 왼쪽!

- 밟아!!! 시간 얼마 안 남았어! 저거 터지면 끝장이야!!!

- 씨앙, 터졌다! 일단 힐 빨로 버텨!!!

‘화염 다리 – 이프리트’ 만큼이나 아비규환이 따로 없었다. 아니, 영상으로만 보면 훨씬 더 복잡해 보였다. 정신없는 비명과 함께 여기저기서 얼음 가루들이 반짝이며 펑펑 터지고 있었다.

공략에 성공한 영상 대부분은 결국 3 군에 속한 탱커와 힐러의 스펙 빨로 클리어를 하는 것에 불과했다. 아무리 3 군이라지만 랭커 클랜인 R’s 에 소속된 3 군 힐러면 최소한 4 성과 【Gear Score – 330】 이상의 장비를 갖추고 있었다.

“이번에도 ‘화염 다리 – 이프리트’와 같은 훈련을 할 생각이신가요?”

“물론입니다. 일단은 각자의 스킬부터 다시 세팅하도록 하지요.”

민국이 웃으며 말했다. 실제로도 웃음이 나오고 있었다.

‘이런 패턴 몬스터들은 진짜 완전히 쉽지. 아니, 얘가 왜 특수 개체지? 참 이해가 안 된다니까.’

GGW 에서 활동하면서 공대장에 잔뼈가 굵은 민국은 ‘얼음 여왕 - 아니사’의 레이드 영상을 보자마자 진짜 꿀 같은 보스라는 생각이 머릿속에 가장 먼저 스치고 지나갔었다. 여러 상황들이 벌어지기는 했지만 결국 탱커를 살리며 얼음 구슬만 처리하면 아무런 문제가 될 게 없었다.

얼음 감옥? 그건 당연히 피해야 하는 공격이었다. 감옥에 갇히면 욕을 백 번 먹어도 쌌다. 바닥을 피하는 것. 그건 레이드의 기본 중에서도 기본이었다.

결국 공격대를 전멸로 이끄는 적의 공격은 얼음 구슬 하나 뿐. 그것만 완벽히 처리할 수 있으면 라면을 먹으면서도 공략을 할 수 있는 녀석이 바로 ‘얼음 여왕 – 아니사’였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는….

‘빠른 이동속도가 최고지.’

하물며 아니사의 빙결 창은 차단이 불가능한 기술이었다. 즉, 전투 중 차단기도 넣을 필요가 없었다. 그만큼 각자 착용해야 하는 스킬 스톤에 여유가 생기는 것이다.

빙결 창에 얻어맞고 공격을 버텨야 하는 현아는 탱커의 본질인 방어 능력과 자체 생명력을 뻥튀기 하는 스킬을 착용했다. 거기에 공격 스킬 스톤도 하나 착용했다. 그리고 다른 딜러들은 단일 공격에 특화된 스킬 두 개와 이동 속도와 관련된 스킬 스톤을 착용했다.

유일하게 유나만 이동 속도와 관련된 스킬 스톤을 두 개나 착용했는데, 행여나 문제가 생길 경우 그녀에게 짬 처리를 맡기기 위해서였다. 나름 자신에게 막중한 임무가 부과된다는 생각 때문인지 유나의 얼굴은 평소 때보다도 진지해져 있었다.

그리고 민국은 단일 회복 스킬 두 개와 보호막을 사용했다.

아무래도 탱커인 현아가 받는 부담이 굉장히 크기 때문에, 그녀에게 힐을 집중할 생각이었다. 얼음 구슬 폭발 대상자는 어차피 즉사만 하지 않으면 상황을 보며 힐을 해줄 수 있었다.

“그러면 잠깐 훈련을 하고 아니사 레이드를 진행해보도록 할까요?”

민국이 얼음 구슬 크기의 공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훈련 방법은 간단했다. 전투 중 자신이 던지는 공이 떨어지는 장소를 빠르게 파악해 이동하는 것. 그것이 이번 레이드의 알파이자 오메가였다.

* * *

“대체 그 영상에 나온 영웅의 정체가 누굴까?”

붉은색으로 염색한 단발의 여인이 신경질적으로 중얼거리듯 말했다. 그녀의 이름은 안혜정. 레이드지로 유명한 대한일보 소속의 베테랑 기자였다.

현재 그녀가 가장 관심을 가지고 알아내려는 사안은 최근 사람들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화염 다리 – 이프리트’를 완벽하게 공략한 4 일차 신입 공격대의 정체였다. 특히, 공대장과 힐러의 신상을 파악하는 게 그녀가 원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진짜로 신입 공격대가 3성 특수 개체를 잡았을까요? 아무래도 조작이 섞여 있다거나 그런 것 같은데…. 글도 순식간에 삭제되었잖아요.”

“그 레이드 기록, 내가 가지고 있어. 확실히 거짓은 아니야.”

후배 기자의 말에 혜정은 고개를 저었다.

인터넷에 올라왔던 글은 얼마 지나지 않아 바로 사라졌다. 그 때문에 ‘화염다리 – 이프리트’ 공략 사실을 거짓 혹은 조작이라고 생각하는 이들도 굉장히 많았다.

하지만 혜정은 기자의 본능을 발휘해 글이 사라지기 전 레이드 기록을 캡처할 수 있었고, 그것이 거짓이 아니라는 것 또한 알아낼 수 있었다. 정말로 4 일차 신입 영웅 다섯이서 3+ 등급의 특수 개체를 잡은 게 확실했다.

“그게 진짜면…. 왜 감추려고 하는 거죠? 오히려 자랑스러운 게 아닌가요? 저 같으면 바로 사람들에게 자랑하고 싶을 텐데.”

“언론의 관심이 부담스러웠나 보지.”

“네…?”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눈을 멀뚱멀뚱 뜨고 있는 후배 기자를 뒤로 하며 혜정은 자리에 앉았다. 오랜 기자의 감이 말하고 있었다. 처음 올라왔던 글이 삭제된 것은 글을 올렸던 영웅의 뜻이 아니었다. 그럴 거였으면 애당초 글을 올리지도 않았을 터였다.

‘분명 클랜에 속한 공격대야.’

자신이 이룬 업적이 자랑스러웠던 공격대의 한 영웅이 글을 올렸다. 하지만 사람들의 관심이 과도하게 모였고, ‘영웅 시대’와 같은 초대형 랭커 클랜도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당연히 그것에 부담을 느낀 공격대의 소속 클랜이 글을 올린 영웅에게 삭제를 요청. 그리고 글이 사라진 것이 이번 일의 진행 순서가 분명했다.

사람들의 과도한 관심으로 인해 신규 영웅이 제대로 성장하지 못하거나 혹은 다른 클랜으로 이적하는 경우가 많은 만큼 소속 클랜으로 미리 관리를 한 게 틀림없었다.

‘일단 이슬과 조윤정이 속한 공격대는 아니야.’

1 년차 국내 신입 영웅 랭킹 1, 4 위.

올해 레이드 자격시험에서는 4 위와 11 위를 차지했지만, 앞선 랭커들의 행선지가 다른 나라가 되어버리는 바람에 국내 랭킹 순위가 확 뛰었다. 그런 두 영웅이 속한 클랜은 국내 클랜 중 가장 높은 순위를 자랑하고 있는 ‘영웅 시대’였다.

그리고 혜정은 논란이 되었던 글에 달린 댓글에서 ‘영웅 시대’의 SNS 관리자가 글을 올렸던 영웅과 연락을 취하려고 했던 것을 볼 수 있었다.

“그 외에 신입 랭킹이 높은 영웅이 속한 클랜이라면 강한 여자들, 메모리아, 이화 소속 인데….”

“R’s 도 있지 않아요?”

혜정의 혼잣말을 듣던 후배 기자가 끼어들며 말했다.

“R’s ? 거기는 좀….”

후배의 말에 혜정이 앞에 놓인 쪽지에 R’s 라는 이름을 적으며 탐탁지 않은 움직임으로 동그라미를 여러 번 그렸다.

“옛날이야 잘 나갔지만, 이제는 한 물 갔지. 박다영이 은퇴한 이후 계속해서 내리막길을 걷고 있는 곳인데. 그렇다고 올해 괜찮은 신입이 입단했다는 소식도 없었고. 그런데 R’s를 언급하는 것을 보면 장미 기사단 팬인가 봐?”

“네? 아, 아뇨. 올해 레이드 자격증을 딴 남자 영웅이 R’s 에 입단했잖아요? 개인적으로 그 사람을 좀 취재하고 싶어서요.”

“아하….”

사심이 가득 섞인 후배의 말에 혜정은 고개를 끄덕였다. 취재만 할 수 있다면 남자 영웅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조회수가 높은 기삿거리를 수두룩하게 뽑아낼 수 있었다.

하지만 혜정은 남자에 대한 관심보다는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어둠의 괴물들을 물리치는 진정한 영웅들의 활약을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이 더 보람차다고 느끼고 있었다.

“이왕 조사하는 거, R’s 에 오현아라고 있을 거야. 신입 탱커인데 실력이 괜찮다는 말이 많았어. 걔도 좀 같이 취재해줘.”

혜정은 후배 기자에게 그렇게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부터는 논란의 주인공을 찾기 위해 직접 몸을 움직일 시간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먼저 강한 여자들의 클랜 하우스를 방문할 계획이었다. 바로 앞으로 강한 여자들의 클랜 하우스가 눈에 보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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