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영웅 소녀 전쟁-35화 (35/486)

EP.35 낭중지추

콰지직!

얼음으로 만들어진 눈사람 몬스터가 현아의 방패에 의해 으깨졌다. 크게 휘둘러진 대검에 달려드는 몬스터들이 단숨에 두 동강이 나 죽었다. 전부 【B – 9】 난이도의 특수 던전인 환영의 던전에 등장하는 일반 몬스터들이었다.

보스급 몬스터가 아닌 일반 몬스터들에 불과한 녀석들이라 신입 영웅이라도 어렵지 않게 혼자서 처리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마력을 사용하지 못하는 일반인들은 상대가 어렵겠지만 영웅 학교에 갓 입학한 예비 영웅들도 두려움만 이겨낼 수 있으면 충분히 물리칠 수 있는 수준이었다.

파아아앗!

민국의 회복 능력이 생명력이 조금 줄어든 탱커, 현아를 향해 사용되었다. 몬스터에게 입은 피해가 굉장히 미미한 편이었기에 굳이 마력까지 소모해가며 능력을 사용할 필요는 없었다.

하지만 새롭게 착용한 스킬의 연습을 위해 민국은 팀원들의 생명력이 줄어들 때 마다 수인을 맺는 연습을 했다. 던전에 진입하기 전에도 연습이야 계속했다지만, 실전에서 몸을 움직이면서 사용해 보는게 역시 제일이었다.

어차피 마력이야 시간이 지나면 회복되니 별 문제는 없었다. 그렇게 눈사람 몬스터들을 쓰러뜨리며 던전의 안으로 나아갈 때였다.

“공대장님! 찾았어요!”

파티 진영의 우측에 자리하고 있던 유나가 푸른색으로 반짝이는 작은 조각을 들어 올렸다. 환영의 던전에 존재하는 유일한 보스급 몬스터이자 특수 개체인 ‘얼음 여왕 – 아니사’를 만날 수 있게 해주는 환영의 조각이었다.

곧 모두가 유나의 곁으로 모여들었다.

“이걸 열 개나 모아야 되는 거죠?”

소정이 유나의 손에 들린 환영의 조각을 바라보며 말했다. 커다란 열쇠에서 깨져나간 것 같은 조각이 유나의 손에서 빛나고 있었다.

민국이 공대장으로 있는 GGW 공격대가 서울 보라매공원 근처에 있는 ‘환영의 던전’에 진입한 것은 대충 십분 전. 그리고 그 동안 쓰러뜨린 눈사람들은 스무 개체가 조금 넘은 것 같았다. 결국….

“각자가 사십 마리 정도를 잡아야 그럭저럭 열쇠 하나를 완성시킬 수 있겠네요?”

“힐러인 공대장님은 제외해야지요. 그러니까 다들 오십 마리씩?”

뒤에서 얼음 이빨을 드러내며 달려들던 눈사람 하나가 김소정의 거검에 의해 그대로 반으로 갈라졌다.

대체 저 조그마한 몸에서 어떻게 저런 힘이 나는지 궁금할 정도였다. 역시 마나 혹은 마력이라 불리는 힘을 사용할 수 있는 영웅은 정말 상식 이상의 존재였다.

“그러면 누가 환영의 조각의 가장 많이 모으나 내기나 할까요? 아, 공대장님은 힐러시니까 당연히 제외하고요.”

김소정이 환영의 조각을 찾기 위해 얼음 가루로 변한 눈사람의 시체를 휘적거리더니 모두들 돌아보며 말했다.

“좋아요! 내기라면 이 천호동 럭키 걸인 제가 빠질 수 없죠!”

다들 흥미를 보이는 와중에 현아가 가장 신이 난 목소리로 외쳤다.

뭐, 단순한 노가다에 불과한 반복 작업에 재미를 붙일 수 있다면 나쁠 것은 없었다. 그렇게 팀원들은 신나게 눈사람들을 쓰러뜨리기 시작했고 그 동안 민국은 열심히 새로운 수인을 연습했다.

결과적으로 내기의 승자는 정예린이었다. 현아와 유나 그리고 김소정이 환영의 조각을 두 개씩 모은 것에 반해 정예린은 무려 그 배나 되는 네 개의 조각을 손에 넣었다.

“이러면 제가 이긴 거죠? 보상은 뭐예요?”

자신이 이긴 사실이 꽤나 기뻤던 모양인지 정예린이 기대에 찬 눈빛으로 내기의 패자들을 바라보았다.

“으음.”

“…그러니까 생각해 놓은 게 없는데.”

그리고 아무 생각 없이 말을 꺼냈고, 그것을 받아들였던 신입 영웅들은 저들끼리 불안한 눈빛을 교환하다가 결국 슬그머니 민국을 바라보았다.

“공대장님께서 주실 거예요. 내기의 보상.”

“……응?”

갑자기 자신을 가리키는 팀원들의 행동에 민국이 눈을 휘둥그레 떴다. 그런 민국의 눈동자가 정예린과 마주쳤다.

‘이런….’

정예린의 기대에 찬 눈빛을 보아하니 일단 아무 보상이라도 줘야 할 것 같았다. 그러던 도중 김소정이 자신을 입술을 쭉 내미는 게 눈에 들어왔다. 키스를 부르는 것 같은 행동이었다.

“아!”

민국의 입에서 탄성이 터졌다. 마침 생각나는 게 있었다. ‘화염 다리 – 이프리트’ 레이드를 할 때 주지 못했던 보상이기도 했다.

“우리 저번 레이드 때 뽀뽀 안했죠? 그거랑 이거 묻고 이번에도 원 트(One Try) 가면 키스. 어때요?”

“좋아요!!!”

“아, 이럴 줄 알면 미친 듯이 잡아보는 건데….”

“그래도 우리는 민국이 오빠 카르텔이잖아요? 전 별로 부…부럽지 않아요.”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정예린의 목소리가 환영 던전에 울려 퍼졌다. 예상은 했지만, 이 세계의 남성은 정말 축복받은 존재가 틀림없었다. 물론, 어둠의 괴물들과 목숨을 걸고 싸웠던 전 세대와 전전 세대의 큰 희생이 있기는 했지만….

어쨌든 서로가 서로에게 포상이 되는 훈훈한 결말이었다. 그리고 환영 던전의 중앙에 ‘얼음 여왕 – 아니사’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 * *

“제일 중요한 것은 무빙입니다. 자신의 위치가 전장 어디에 있는지 그리고 어느 방향에 얼음 구슬이 생겨나는지를 정확히 파악하셔야 됩니다.”

민국이 다시 한 번 팀원들에게 움직임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정확한 움직임 그러니까 무빙이라 능력이 이번 레이드 공략의 핵심이기 때문이었다.

멀리 환영 던전의 보스 ‘얼음 여왕 – 아니사’가 모두의 눈에 들어오고 있었다. 그녀를 중심으로 무릎 높이의 얼음벽이 넓은 범위를 둘러싸고 있었는데, 공략 영상에 따르면 영웅들이 전장에 진입하면 얼음벽들은 영웅들이 도망가지 못하도록 만드는 결계로 변했다.

결국 전투가 시작되면 결과는 둘 중 하나였다. ‘얼음 여왕 – 아니사’가 쓰러지거나 영웅들의 모두 죽거나. 정말 데스 매치가 따로 없었다.

‘진짜 부활석이라는 게 발견된 게 신의 한 수네.’

마나를 다룰 수 있는 영웅들의 목숨을 살려주는 부활석의 존재는 어둠의 괴물들이 나타나자마자 발견이 된 게 아니라고 했다. 그런 만큼 그 전까지는 몬스터들을 쓰러뜨리기 위해 얼마나 많은 영웅들이 목숨을 잃었는지 상상조차 되지 않았다.

어쨌든 지금은 던전에 진입하기 전, 부활석 하나를 사용한 상태였다. 부활석의 가격을 생각해 봤을 때 손익 계산을 따지면 신입 영웅들이 던전에 진입한다는 것 자체가 엄청난 손해였다. 하지만 그 손해는 클랜과 국가 그리고 영웅 협회가 충당하고 있었다.

인류의 생존을 위해서는 어둠의 괴물을 물리쳐야 하는 경험 많은 영웅들이 필요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부활석은 그런 영웅을 키워내기 위한 안전장치라 할 수 있었다.

게다가 이익단체라 할 수 있는 클랜도 신입 영웅들에게 아무 생각 없이 투자를 하는 게 아니었다. 높은 성급의 영웅들이 활약하는 고 등급의 던전은 엄청난 가치의 전리품들을 획득할 수 있었다.

“전투가 시작되면 진동과 함께 얼음벽들이 결계처럼 우리를 둘러쌀 겁니다. 그 변화에 당황하지 마시고, 탱커는 곧바로 보스 몬스터의 어그로를 그리고 나머지 팀원들은 S 형 포메이션으로 자리를 잡고 대기를 합니다. 그리고 오현아.”

“으, 응? 아니, 네?!”

아니사의 공격 패턴을 상상하며 몸을 움직이고 있던 현아가 민국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전투가 시작되자마자 바로 빙결 창이 날아올 거야. 그러면 헤비 디펜스(B 등급 탱커 스킬 – 착용한 아이템의 방어 능력을 높여줌) 사용하고 방어 태세에 들어가. 그 전에 어그로는 필히 잡아주고.”

“네.”

“그리고 아니사가 빙결 창을 날릴 때 마다 헤비 디펜스와 라이프 업(B 등급 탱커 스킬 - 최대 생명력을 늘려줌)을 번갈아 사용해. 혹시라도 타이밍이 꼬이게 되면 이후로는 내가 알아서 지시를 내릴 게.”

“알겠습니다!”

돌발 상황에서는 언제든지 민국이 오더를 내려주겠다는 말에 현아가 속으로 가슴을 쓸어내리며 외치듯 대답했다. 그렇다면 자신은 몬스터의 어그로를 잡고, 전투에 집중만 하면 되는 일이었다. 한 마디로 탱커의 본분에 충실하면 되었다.

“이제까지 이야기 했던 대로 전장을 크게 써서 10 시 방향은 김소정, 2 시 방향은 정예린, 5 시부터 9 시까지는 최유나가 얼음 구슬을 커버합니다.”

이번 레이드에서 가장 위험한 패턴인 얼음 구슬을 처리하기 위해 민국은 딜러 세 명에게 본인들의 커버 범위를 정해 주었다. 그래야만 헷갈리지 않고 자신이 맡은 구역의 구슬을 정확히 처리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또한 이렇게 구역을 나눈 이유는 혹시나 얼음 구슬 처리를 서로에게 떠넘기는 일이 발생하는 것을 예방하기 위해서였다.

“혹시나 한 명이라도 얼음 감옥에 갇혔을 경우에는 그 때부터는 제가 움직이거나 타이밍을 봐서 다른 분들에게 지시를 내리겠습니다. 하지만….”

민국의 눈동자가 김소정, 최유나, 정예린의 얼굴에 한 번씩 머물렀다.

“우리 팀원들이 얼음 감옥에 갇힌다면 공대장인 저는 크게 실망을 할 것 같습니다.”

민국의 협박 아닌 협박에 세 명의 딜러가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 레이드에 앞서 민국은 딜러의 본분인 데미지를 못 넣는 한이 있더라도 얼음 감옥 만큼은 무조건적으로 피해야 한다고 몇 번이나 강조를 했었다. 무려 30 초나 아무 행동도 할 수 없게 만드는 아니사의 공격 패턴이었다.

잠시 후, 민국을 포함한 팀원들이 무릎 높이의 얼음벽을 넘어 안으로 들어섰다. 그러자 시퍼런 냉기가 벽 위를 휘감기 시작했다. 이어서 쩌적거리는 소리와 함께 투명한 얼음벽들이 엄청난 높이로 치솟아 오르며 사방을 감쌌다.

“얼음의 결투장에 온 것 같은 느낌이네.”

“절대 점프로는 벗어나지 못할 것 같아요.”

민첩성이 높은 딜러 영웅인 유나가 얼음벽을 향해 마력까지 동원해서 몸을 날려 봤다. 하지만 솟아오른 벽 높이의 반의반도 닿지 못하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무조건 쟤를 잡거나 아니면 우리가 죽거나. 둘 중 하나겠네요….”

전의를 끌어 올리려는지 소정에 양 손으로 대검을 꽉 쥐며 말했다. 그리고 무대가 펼쳐졌으면 이제는 전투를 시작할 때였다.

“탱커! 어그로!!!”

민국의 오더와 함께 현아가 거침없이 앞으로 달려 나가기 시작했다. 함께 이동을 하는 다른 딜러들은 잠시 공격대기.

전투 시작부터 아니사가 사용하는 빙결 창은 무조건 탱커가 맞아야만 했다. 게다가 아니사의 어그로(적대감)를 탱커가 잡을 여유 시간도 필요했다.

그리고 자신에게로 달려오는 영웅을 보며 아니사가 차가운 시선으로 현아를 바라보다가 오른 손을 뻗어 올렸다. 그 위로 냉기가 휘몰아치더니 커다란 고드름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빙결 창이었다.

“흐아아아압! 헤비 디펜스!”

스킬의 발동과 함께 현아가 착용하고 있는 방어구들이 번쩍이며 빛을 내뿜기 시작했다.

잠시간 무기, 반지 그리고 귀걸이를 제외한 다섯 부위의 착용 장비의 방어 능력을 상승시키는 스킬이었다. 당연히 그만큼 현아의 탱킹력도 크게 상승했다. 이어서 빙결 창이 현아를 강타했다.

“꺄아아악! 히, 힐러어!!!”

곧바로 현아의 찢어지는 비명이 전장에 울려 퍼졌다.

굉장히 강력한 공격이라는 사실을 의식해 방어 스킬까지 사용하고 방패를 들어서 막았는데도 불구하고, 몸이 붕 떠서 하늘을 날았다. 게다가 얻어맞은 부위가 커다란 꼬챙이에 꿰뚫린 것처럼 아파오고 있었다.

순식간에 눈물이 핑 돌았다. 절로 힐러를 부르게 되는 공격이었다.

하지만 그런 아픔도 잠시. 곧바로 민국의 회복 능력이 현아의 생명력을 회복시켰고, 그녀의 고통 또한 사라지게 만들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스킬을 사용해 현아의 상태를 완벽하게 되돌린 민국은 방금 전 현아가 입었던 피해량을 속으로 떠올렸다.

‘40%.’

방어 스킬을 사용하고 맞았는데도 불구하고 피해량이 상당했다. 까닥 집중을 놓았다가는 탱커를 눕히는 힐러라는 오명을 쓸 지도 몰랐다. 하지만 이번 공격은 빙결 창의 위력을 확인하기 위한 시험이었을 뿐이었다.

‘미안, 현아야….’

민국은 보호막은 물론이고, 피해를 받자마자 회복을 시키는 힐러의 시간 차 노하우도 사용하지 않았다. 전부 빙결 창의 데미지를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현아가 입은 피해를 바탕으로 민국은 어느 정도 상대의 공겨에 대한 피해량을 예상할 수 있었다.

“무조건 탱커만 맞아야 겠네.”

적어도 탱커가 아닌 다른 팀원들이 맞으면 최소한 빈사 혹은 즉사였다. 그만큼 어그로 관리를 철저히 해야 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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