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영웅 소녀 전쟁-39화 (39/486)

EP.39 라이벌?

“네, 말씀하세요.”

혜정이 기다렸다는 듯 민국에게 마이크를 대었다. 인터뷰를 가지기 전, 그녀가 조사했던 정보가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한민국의 서울 영웅 학교 졸업 성적은 하위권에 불과했어. 성별을 제외하면 특별한 무언가도 전혀 없었지.’

그러나 영웅 학교를 졸업하고 레이드 시험을 준비하면서 딜러였던 클래스를 갑자기 힐러로 변경했다. 그러고 나서 랭커 클랜인 장미 기사단에 입단. 일이 진행된 순서를 보면 전형적인 남데렐라 스토리에 불과했다.

하지만 홍보팀장과 오현아의 반응을 보아하니 R’s 클랜에서 한민국을 얼굴 마담으로 영입을 한 것은 아닌 게 분명해 보였다. 의외로 한민국에 대한 R’s 클랜의 기대가 내부적으로 제법 큰 모양이었다.

‘정말로 리딩 능력이 대단한 걸까? 그렇게 생각하기에는 영웅 학교 성적이 너무 나빠. 갑자기 사람이 변한 것도 아니고….’

이유는 알 수 없었다. 그러나 혜정의 날카로운 기자 감각은 한민국에게 무언가가 있다고 말하고 있었다.

“먼저 제 얼굴에 금칠을 해주신 오현아 영웅에게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네요. 사실 박다영 공대장이면 R’s 클랜의 레전드 공대장 아니겠습니까?”

마이크를 잡은 민국이 여유로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남성 영웅답게 뭇 여자들의 가슴을 흔드는 듣기 좋은 미성이었다.

“그렇죠.”

혜정도 공감했다. R’s (장미 방패단) 클랜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클랜으로 거듭날 수 있었던 것은 전부 박다영이라는 영웅 때문이었다. 그만큼 그녀의 리딩 능력과 공대 관리능력은 대한민국을 넘어 세계에서도 통하는 수준이었다.

그렇기에 R’s 클랜은 박다영의 은퇴 이후 그녀의 부재를 감당하지 못했고 그 결과 바닥을 계속해서 찍고 있으며 랭킹이 급 하락하고 있었다. 현재는 5 위지만, 올해가 지나면 10 위권 수준으로 밀려날 거라는 게 거의 확정적이었다.

“하지만 갓 클랜에 입단한 제가 박다영 공대장과 비교되는 것은 시기상조라고 생각합니다. 뛰어난 실력의 선배 영웅들도 많은데다가 저는 5 인 공격대를 관리한지 이제 일주일 정도가 지난 신출내기에 불과합니다. 사람들에게 제 능력에 대해 증명한 것이 전혀 없죠.”

“증명한 것이 없다? 그렇다면 증명이 가능하다는 이야기인가요? 아니면 나중에?”

혜정이 방긋 웃으며 되물었다.

겸손한 이미지를 가지려는 생각이면 나쁘지 않은 판단이었다. 외모가 가장 중요하기는 하겠지만 착하고 선량한 이미지는 연상의 여성에게 잘 먹히는 대표적인 매력 요소였다.

“최선을 다해 사람들에게 제 능력을 보여줄 생각입니다. 그러기 위해 공대장을 맡았고, 팀원들과 함께 호흡을 맞추고 있습니다.”

“오현아 영웅께서는 한민국 영웅님의 리딩 능력이 대단하다고 했는데요. 혹시 이 방송을 보실 국민들에게 혹은 1 년차 영웅 동기들에게 공대장으로서 자랑할 만한 업적은 없을까요?”

“업적이라….”

민국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히 있었다. ‘화염 다리 – 이프리트’와 ‘얼음 여왕 – 아니사’. 3 등급 특수 개체인 이 두 몬스터를 상대로 민국은 원트(One Try)에 공략에 성공한 기록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이 내용을 말하기에는….

민국의 눈에 홍보 팀장이 다급한 얼굴로 고개를 빠르게 젓는 모습이 들어왔다.

‘남자 영웅이라 그런가? 클랜 사람들의 걱정도 참 크다니까.’

홍보 팀장이 어떤 의도로 저런 신호를 보내는지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자신이 이 사실을 밝히는 순간, 모든 언론과 사람들의 관심이 자신에게로 향할 터였다. 현아가 가벼운 생각으로 인터넷에 올렸던 글의 결과만 봐도 그랬다.

그리고 R’s 클랜은 그러한 미래를 경계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앞으로의 성장을 위해 언론의 달콤함에 그리고 사람들의 관심에 자신이 빠지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게 어떤 느낌인지는 충분히 알 것 같았다. 민국 역시 자신이 좋아하는 축구 클럽의 대표적인 유망주가 사람들의 관심으로 제대로 성장하지 못하고 무너진 것을 보며 아쉬움을 토해냈었기 때문이었다.

‘축구를 배우라고 튜더까지 붙여줬는데, 축구 기술은 안 배우고 좆 놀림만 배워왔었지.’

거기에 스페인의 대표적인 축구 클럽에서 성장하며 언론과 국민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던 모 선수 역시 겉멋, 돈, 가슴 큰 여친이라는 삼단 콤보를 맞고 추락해 버렸다.

물론, 민국은 자신이 언론의 관심에 넘어가지 않고 제대로 성장할 수 있다고 충분히 자신할 수 있었다. 그래도 클랜에 계약을 맺고, 몸을 담고 있는 상황인 만큼 서로의 장단에는 맞춰줘야 할 것 같았다.

그리고 고민하던 민국이 입을 열었다.

“3 등급 던전을 원트(One Try) 로 공략에 성공했습니다. 이 정도면 초보 공대장 치고는 괜찮은 성적이라고 생각하는데요?”

“네, 네?”

잠시 당황한 표정을 하는 혜정에게 민국이 영웅 패드(Hero Pad)를 꺼내 영웅 도감을 열었다.

그리고는 자신이 원트로 던전을 클리어 했던 기록을 혜정에게 공유했다. 던전 명은 ‘거인의 소형 전장’으로 민국이 R’s 의 이름을 달고 처음으로 클리어 한 던전이었다.

당연히 특수 던전 두 곳의 기록은 공유하지 않았다. 그건 지금이 아니라 나중에 이야기 할 내용이었다. 대신 던전 기여도는 공개했다. 힐러 클래스 A 였다.

그 때문에 혜정은 민국이 거인의 소형 전장을 클리어 한 기록만을 볼 수 있었다.

“……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놀란 듯, 혜정이 말없이 눈꺼풀을 끔뻑거렸다.

초보 공대장이 원트(One Try)로 던전을 클리어 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재능과 센스가 그리고 뛰어난 능력이라는 삼박자가 모두 갖춰져야지만 가능한 일이었다. 거기에 팀원들을 아우를 수 있는 카리스마도 있어야 했다.

그리고 민국은 추측이지만 이 셋을 모두 갖춘 떡잎부터 남다른 영웅으로 보였다. 특히 혜정의 시선을 빼앗는 것은 힐러 클래스 A 라는 민국의 기여도였다.

“대, 대단하시네요.”

혜정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카메라도 민국의 영웅 패드에 나온 내용을 클로즈업 했다. 아마 이 사실이 방송에 나간다면 꽤나 큰 반향을 불러올 것 같았다.

인터뷰는 꽤 오랫동안 진행이 되었다. 얼굴 마담이라고 생각했던 한민국의 능력이 뛰어나다는 것이 밝혀진 터라 혜정은 민국에 대한 사소한 것 하나도 더 알아내기 위해 계속해서 두 영웅에게 질문을 던졌다.

“던전을 클리어 한 기록은 ‘거인의 전장’ 한 곳 뿐인데, 업적 포인트가 상당히 높으세요. 아마 모든 정보를 공개하시지 않은 것 같은데…. 혹시 밝혀주실 수 있으신가요?”

“영웅 도감의 완전한 개방은 힘들 것 같습니다. 저희 R’s 클랜은 신입 영웅들이 다른 클랜의 영웅들과 비교되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영웅 도감 개방은 분명 이런저런 논란거리를 불러올 테니까요.”

그리고 민감한 질문이 나올 때면 바로 홍보 팀장이 나서서 질문을 차단했다. 물론, 민국도 영웅 도감 전체를 개방할 생각은 없었다. 그렇게 인터뷰가 종료되었다.

“수고하셨습니다, 영웅님들. 방송은 편집을 거쳐서 내일 모레쯤 나갈 거예요.”

“대한일보 분들도 고생하셨습니다. 그리고 오현아 영웅님은 잠시 단장실로….”

“아우우우…….”

인터뷰가 끝나기가 무섭게 현아는 단장실로 끌려가듯 불려갔다. 아무래도 단장인 오현정이 단장실에서 모니터링을 하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같이 인터뷰를 했던 민국과 홍보팀장도 함께했다.

“오! 현! 아!!!”

그리고 현아가 단장실에 들어서자마자 현정의 목소리가 사자후처럼 터져 나왔다.

“자, 잘못 했어요, 언니!”

“클랜에서는 단장님이라고 했지! 그제도 인터넷에 쓸데없는 글을 올려서 한바탕 신경을 쓰게 만들더니, 오늘은 또 왜 그랬어?”

“나는 그냥….”

단장이자 언니인 현정의 꾸중에 현아는 고개를 푹 숙였다. 실수는 실수였기에 뭐라 할 말이 없었다. 그게 의도가 어떻든 말이다.

그런 현아를 앞에 두고 현정이 크게 한숨을 내쉬더니 입을 열었다.

“언론의 관심이라는 게 얼마나 무서운 줄 알아? 듣기 좋은 말로 마음을 흔들어 놓은 다음에, 단물이 빠지면 그대로 뱉는 놈들이라고. 그놈들은 신입 영웅이라고 봐주는 게 하나도 없어. 조금만 잘못해도, 공략에 한 번만 실패해도, 죽일 듯이 물고 뜯으며 너희들을 무능한 영웅으로 만드는 게 그네들의 관심이야!”

R’s 클랜의 단장으로 있으면서 현정은 언론과 사람들의 관심에 흔들렸던 많은 유망주들을 보았었다. 그리고 그 중 대부분은 자신의 잠재력을 제대로 피지 못하고 날개가 꺾이며 사라지고야 말았다. 민국도 그리고 현아도 그와 같은 길을 가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었다.

“저는 괜찮습니다. 이미 언론의 관심은 마력을 각성하면서 지겹도록 받아본 경험이 있고, 크게 신경을 쓰는 성격도 아닙니다.”

그리고 둘 사이에 민국이 끼어들었다. 사실 크게 잘못한 것도 아닌 데 현아가 혼나는 게 조금 안쓰럽게 느껴졌다. 그래도 자신의 카르텔에 속한 여자인데….

클랜의 사정도 이해는 할 수는 있었다.

‘하지만 나만 잘하면 되는 거잖아?’

결과적으로 언론이 뭐라고 떠들던 사람들이 뭐라고 하던 영웅의 본분이라 할 수 있는 어둠의 괴물들만 잘 때려잡으면 되는 일이었다. 그리고 그게 신입 영웅의 껍데기를 쓴 고인물인 민국이 가장 잘하는 일이었다.

“한민국 공대장님.”

현정의 시선이 민국에게 향했다. 그리고 민국이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저에 대한 클랜의 걱정은 충분히 이해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어떠한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을 자신이 있습니다.”

겉멋? 마력을 각성한 원주인의 이 몸이라면 겉멋이 들 필요가 하나도 없었다. 생긴 것 자체가 신화 속 모델이었다.

돈? 근본이 소시민이었던 자신이 써봤자 얼마나 쓰겠는가? 나중이라면 모를까 지금은 레이드를 돌기에도 바빴다. 굳이 사치를 부리자면 영웅 장비 구입? 하지만 비싼 장비도 성급이 낮아서 쓰지를 못했다.

여자? 오현아와 카르텔 멤버들이 있었다. 뭐, 거기에 몇 명 더 추가될 수도 있기야 하겠지만, 지금은 그것만으로도 만족했다.

마지막으로 이 세계에는 자신에게 레이드를 가르쳐 줄만 한 영웅이 한 명도 없었다. 미국의 1 티어 공격대라는 델타 포스의 움직임조차도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 판국에….

“…….”

그런 민국의 단호한 대답에 현정은 자신이 하려던 말을 멈춰야만 했다.

이제 갓 1 년차 영웅이었다. 당연히 성장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물론, 스펙 면에서는 고 난이도의 던전에서 활약하는 영웅들에 비교할 바가 아니었다.

‘하지만 정신적인 면에서 만큼은….’

민국은 어엿한 인류의 수호자다운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앞으로의 일이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영웅이 이렇게 나온다면 단장으로써 그의 뜻을 존중해 줄 필요가 있었다.

“알겠습니다. 다만 과한 외부활동은 자제해 주셨으면 합니다.”

“딱히 레이드를 제외한 외부 활동은 저도 할 생각이 없습니다. 그리고 현아의 실수도 너그럽게 넘어가셨으면 합니다. 사실, 저도 사람들의 관심은 즐기는 편이거든요. 아, 관심만요.”

“…알겠습니다.”

민국의 너스레에 현정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은근히 현아는 배려하는 민국의 모습에서 묘한 무언가를 느꼈기 때문이었다. 굳이 그 분위기에 끼어들 필요는 없어 보였다. 당연하지만 그런 민국의 말에 현아는 진심으로 감동받은 얼굴이 되었다.

* * *

● 나, 남자 공대장이라니! 실화임?

● 대한일보 대체 어떻게 인터뷰 했냐?! 보아하니 R’s 에서 꽁꽁 감추려고 했던 것 같은데?

● 외모는 물론이고 뛰어난 능력. 거기에 말실수를 한 팀원까지도 챙겨주는 마음이 아름답네요. 저런 남자가 우리나라에 있었다니…. 세상 아직 살만 합니다.

└ 그래봤자 니껀 아님. 내꺼임.

└ 미친년들아. 저런 애가 너희들에게 관심이나 주겠냐? 6, 7 성 영웅은 되어야 박아줄까 말까 하겠다.

● R’s 의 신입 4 팀이라고 하네요. 팀명은 GGW 랍니다.

● 드디어 내리막길을 걷는 R’s 가 부활을 하는 것인가?!

● R’s 아직도 서울 랭커 클랜이었음? 그러면 관리 던전도 따로있나? 실력도 없는데 왜 철수 안함?

└ R’s 보다 레이드를 못 하는 팀이 수두룩한데 무슨 철수임?

└ 철수는 영희한테 가서 찾아 ㅂㅅ야.

인터뷰의 내용이 방송되자마자 민국은 물론이고 R’s 클랜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들도 엄청나게 늘어나기 시작했다.

“진짜 난리도 아니네.”

덕분에 R’s 클랜 사무실은 여기저기서 걸려오는 전화들로 인해 시장 통이나 다름없는 상황이었다. 개 중에는 다른 클랜에서의 문의도 있었다. 당연히 현정은 그런 클랜들의 관심을 칼같이 차단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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