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42 라이벌?
“이예!”
‘얼음 여왕 – 아니사’가 쓰러지고 가장 먼저 상자를 확인한 유나가 소리를 크게 질렀다. 전리품 상자에 민첩의 결정이 들어 있던 까닭이었다.
“우와. 자기가 먹을 걸 자기가 뽑네? 저런 걸 자급자족이라고 하는 건가?”
유나의 손에 들린 녹색 빛의 결정을 본 현아가 부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3+ 등급의 보스 몬스터에게서 얻을 수 있는 레드 급 결정으로는 3 성 영웅이 될 수 없었다. 하지만 마력량을 어느 정도는 높일 수 있었다. 수치로 예를 들자면 2 성 경험치 0% 인 상황에서 10 % 정도의 경험치를 획득하게 되는 것이다.
양이 적은 편이기는 해도 계속해서 흡수를 하다보면 빠르게 3 성의 한계에 다다를 수 있었고, 당연히 훈련이나 깨달음을 통해 마력량을 높이는 것보다는 훨씬 빠른 속도로 성급을 높일 수 있었다.
그리고 자신의 대검을 등 뒤에 갈무리하고는 전리품 상자의 다른 아이템들을 확인하던 소정이 공대장인 민국을 바라보았다.
“장비의 차이가 크게 느껴지는 전투였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B – 8】 난이도의 던전을 공략하실 생각인가요?”
“당연하죠.”
민국의 즉답에 소정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3 성 특수 개체를 반복적으로 공략할 때부터 민국이 상위 레이드 공략에 욕심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팀원이라면 누구라도 쉽게 짐작할 수 있는 내용이었다. 다만, 그 속도가 굉장히 빠른 편이기는 했다.
‘올해 레이드 자격증을 따고 입단한 1 년차 신입 영웅이 공대장이 된 지 한 달도 되지 않아 【B – 8】 던전에 도전한다라….’
소정이 눈동자가 민국에게 향했다. 오늘도 역시 자신의 가슴을 설레게 할 정도로 훈훈한 외모를 자랑하고 있었다.
어쨌든 남들이 민국의 포부를 들었다면 당연히 클랜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았다고 생각할 게 틀림없었다. 그 만큼 GGW 의 성장 속도는 비정상적이었다.
하지만 팀 GGW 는 부활석을 제외한 그 어느 것도 클랜의 도움을 받지 않았다. 게다가 베테랑도 없이 1 년차 신입 영웅으로만 이루어진 팀이었다. 그리고 이는 전부 공대장인 민국의 능력이라고 할 수 있었다.
‘정말 대단하신 분이야….’
자신이 성 비서로 모시고 있는 영웅이라 하는 생각이 아니었다. 그만큼 소정에 눈에 비친 민국의 능력은 대단한 수준이었다.
어떻게 민국이 영웅 학교에서는 하위권의 성적을 받았는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을 정도였다. 같은 카르텔이자 민국과 동거중인 현아의 추측에 의하면 영웅 학교가 너무 시시해서 아무렇게나 생활을 했다는 것 같다는 의견이 있었다.
“그래서 말인데…. 오늘은 여기서 일정을 종료할 겁니다.”
“네? 【B – 8】 던전을 도전하거나 얼음 여왕 뺑뺑이를 도는 게 아니라요?”
“그게 문제가 생겨서요.”
의문을 나타내는 팀원들을 보며 민국은 머리를 긁적였다. 민국도 예상치 못한 상황이기는 했다.
던전을 공략하는 데 꼭 필요한 아이템인 부활석. 그게 마침 똑 떨어진 것이다. 심지어 팀 GGW 는 ‘얼음 여왕 – 아니사’의 반복 공략을 위해 이번 달 지급받은 분량에 추가적으로 지원을 받고, 다음 달 지원 분량까지 미리 당겨서 받은 상황이었다.
“클랜에 지원 요청을 하기는 했는데….”
상황이 어떻게 될 지는 민국도 알 수 없었다. 클랜에 무슨 일이라도 생긴 모양인지 그제 자신의 요청을 들었던 행정팀원의 표정이 좋지 않았던 까닭이었다.
* * *
계약서에 따라 다르지만 R’s 클랜의 신규 공격대는 한 달에 10 개에서 15 개 사이의 부활석을 지급받았다. 클랜에서 지원을 하는 이유는 부활석의 가격이 만만치 않기에 신규 공격대가 자체적으로 구하기에는 부담이 굉장히 크기 때문이었다.
클랜의 규모에 따라 개수가 차이나기는 하지만 신입 영웅들을 성장시키려는 다른 클랜들도 R’s 클랜처럼 신규 공격대에 부활석을 지원하고 있었다. 재정적으로 부담이 되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부활석 없이 초짜 영웅들을 던전으로 내보내는 것은 미친 행위나 다름없기 때문이었다.
어차피 정부와 영웅 협회에서의 지원도 있었고, 부활석 없이 신규 공격대를 던전에 내보내는 행위는 법으로도 금지가 되어 있었다. 그만큼 어둠의 괴물은 만만한 놈들이 아니었다. 사소한 실수 한 번에 정말로 인생을 하직하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신입 영웅들에게 사용되는 부활석들은 소속 클랜들이 어느 정도 자체적으로 재정을 부담하고, 나머지는 정부와 협회에서 지원하는 국민들의 세금으로 메꿔졌다. 당연하지만 클랜 랭킹에 따라 지원금도 달라졌다.
그러나 이런 지원들만으로는 대형 클랜에서 사용되는 부활석을 모두 충당할 수 없었다. 그만큼 어둠의 괴물들과 싸우는 영웅들이 사용하는 부활석은 하루에도 엄청나게 많았다.
그렇기에 클랜들은 리바이벌 팀, 속된 말로 광부 팀이라 불리는 공격대를 운영해서 자체적으로 부활석을 생산하고 있었다. 주로 2 3 군의 영웅들이 속해 있었다.
○ 그래서 실력이 좋은 높은 성급의 영웅들에게 낮은 난이도의 던전을 공략하게 하는 겁니다. 횟수를 계약서로 정해놓은 클랜들도 있어요. 당연히 부활석이 자주 나올 정도의 난이도는 있어야하고, 전리품 상자를 많이 얻을 수 있게 보스급 몬스터가 많이 나오는 던전을 선호하지요.
○ 그런 던전을 공략해서 부활석 하나를 사용해 여러 개를 획득하는 거로군요?
○ 딩동댕. 하지만 대형 클랜이 아니면 생각하기 힘든 방법이에요. 낮은 난이도라고 해서 최소 【B – 3】 이상은 되어야 효율이 나오거든요. 효율이 낮다 해도 부활석을 얻으려면 어쩔 수 없이 돌아야 하지만…….
○ 상위 클랜은 복지 어떤가요? 저는 좆소 클랜 다니는데, 매일 광부질만 하고 있습니다. 제대로 된 던전은 한 달에 세 번 정도만 가고 있어요.
└ 아, 그건 좀 심한데? 좆소는 빨리 탈출하는 게 답임.
└ 문제는 탈출해도 갈 곳이 없음. 상위 클랜은 T.O 가 거의 없어요ㅠ
R’s 클랜도 다른 클랜들과 마찬가지로 2 팀과 3 팀 영웅들로 구성된 리바이벌 팀을 운영했다.
이들이 획득해 오는 부활석은 한 달에 약 400 여개 정도. 돈으로 따지자면 4400 만 달러 정도였다. 하지만 결코 많은 개수가 아니었다. 오히려 엄청나게 모자란 수준이었다. 다른 랭커 클랜들이 운영하는 리바이벌 팀과 비교하면 생산량이 3 분의 2 밖에 되지 않는 수준이었다.
“후우….”
클랜 단장인 현정이 힘이 잔뜩 들어간 눈으로 서류를 확인했다. 다음 달에 획득 가능한 부활석의 예상 수량과 사용처 등이 적힌 서류였다.
R’s 클랜에서는 2, 3 군으로 운영하는 리바이벌 팀이 획득하는 부활석을 대략 신규 공격대에 80개. 2, 3 군에 120 개 그리고 1 군에 200 개 정도를 돌리고 있었다. 가끔씩 여유분이 생기는 것을 클랜의 비상금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하지만 최근 얼마 있던 여유분도 모조리 사용해야 할 정도로 상황이 빡빡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내년 1/4 분기에 있을 영웅 협회의 클랜 평가가 이제 두 달도 채 남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GGW 팀의 한민국 공대장께서 다다음 달에 쓸 부활석을 미리 당겨달라고 했단 말이죠?”
“【B – 8】 던전을 공략하겠다고 합니다.”
비서의 보고에 현정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1 성 영웅들끼리 알아서 그네들의 수준에는 강력한 특수 개체들을 때려잡으며 뚝딱뚝딱 2 성 영웅으로 성장하더니 이제는 상위 던전인 【B – 8】을 공략하겠다고 한다. 클랜을 운영하는 단장의 입장에서는 흐뭇하다 못해 일일 상여금이라도 주고 싶은 마음이었다.
더욱이 자신의 동생인 오현아가 GGW 팀의 탱커로 있었다. 팀에 대한 호감이 더욱 넘치고 있는 것이다.
“…….”
하지만 상여금은 줄 수 있어도 부활석은 힘들었다. 현재 클랜이 소유한 부활석의 대부분은 1 군의 레이드에 미친 듯이 사용되고 있기 때문이었다.
현재 R’s 클랜의 사정은 제법 좋지 못했다. 다들 장미 방패단을 가리켜 괜히 ‘추락하는 명가’라고 하는 게 아니었다. 그만큼 R’s 클랜은 올해 최상위 난이도의 던전 공략 성공 횟수가 그리 많지 못했다. 랭커 클랜이라는 명성이 어울리지 않을 정도였다.
덕분에 두 달 뒤에 있을 내년의 클랜 평가에서는 R’s 클랜의 랭킹은 큰 폭으로 떨어지는 것이 거의 확실시되고 있었다. 그 말을 돌려말하면 내년 정부 지원이 크게 줄어든다는 이야기였다. 게다가 랭커 클랜이라는 이름 또한 사라질 가능성이 컸다.
그렇기에 현정은 1 군 팀의 공대장과 오랜 시간 이야기를 나눈 끝에, 무리를 해서라도 남은 기간 동안 최상위 난이도의 레이드를 세 번 이상 성공시키기로 계획을 세웠다. 그래야만 랭커 클랜이라는 타이틀은 빼앗기더라도 10 권 정도는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현재 바람의 첨탑에 들어가 있는 1 군의 상황은 어떤가요? 바로 어제 네 번째 보스 몬스터를 성공적으로 공략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거 같은데?”
“아직 그 이상의 진도는 나가지 못했습니다. 여러 실수들이 겹치는 바람에 공략 상황이 지지부진한 모양입니다.”
“큰일이로군요.”
그런데…. 생각보다 부활석이 굉장히 많이 들어가고 있었다.
야심차게 최초로 8 등급 몬스터가 나오기 시작하는 【A – 4】 던전의 공략에 들어갔지만, 계속해서 공격대가 전멸을 하고 있었다.
다섯 번째 보스급 몬스터를 공략하고 있지만 현재 1 군이 공략중인 바람의 첨탑은 총 11 마리의 몬스터가 등장하는 던전이었다. 게다가 마지막 보스급 몬스터가 8 등급 몬스터라는 것을 감안하면 얼마나 더 많은 부활석이 필요할지 상상조차 되지 않았다.
‘그렇다고 1 군으로 갈 부활석을 GGW 에 돌릴 수도 없고….’
현정은 한민국이 공대장으로 있는 팀 GGW 를 R’s 클랜의 미래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클랜의 1 군은 R’s 의 얼굴이자 대표이며 자존심이었다. 당연히 클랜의 모든 지원은 다른 무엇보다 1 군 팀에 가장 우선시 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몇 년째 내리막길을 걷고 있는 클랜의 형편상 자금사정도 좋은 편이 아니었다. 그래도 다른 신입도 아닌 한민국 공대장의 부탁이니 최대한 구할 수 있으면 어떻게든 구해봐야 했다.
“경매장에서 부활석을 구할 수 있을까요?”
“가능은 하겠습니다만, 클랜의 자금이 부족할 겁니다. 모기업에 도움을 요청하는 게 아닌 이상….”
“읔…….”
비서의 말에 현정의 얼굴이 뻣뻣하게 변했다.
R’s 클랜의 모기업인 로즈 그룹은 세계 랭킹 69 위의 대 재벌그룹이었다. 그런 그룹의 3 세가 R’s 클랜의 소통창구를 맡고 있었다.
‘모든 재벌 3 세가 그렇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만….’
로즈 그룹의 3 세는 전형적인 안하무인에 갑질이 일상인 여자였다.
“모기업의 도움 요청은 잠시 생각해 보도록 하지요.”
“하지만 조만간 본사에서 전략 회의가 있을 겁니다. 내년 상황에 대한 피드백도 있을 테고요.”
“딱 그 날만 휴가를 내고 싶네요. 어떻게 안 될까요?”
“이왕이면 저도 같이 휴가를 내고 싶습니다만….”
비서의 능글맞은 대답에 현정이 깊게 한숨을 내뱉었다.
어쨌든 부활석은 구매자의 대부분이 국가 혹은 대형 클랜인 까닭에 보통 대량으로 한 번에 판매를 하곤 했다. 하지만 거래되는 물량이 많은 편은 아니었다.
상위 던전을 한 번 공략하는 데 사용되는 부활석의 양이 상상을 초월하기 때문에, 주로 클랜 자체적으로 소모를 하기 때문이었다. R’s 클랜의 1 군 팀도 평균적으로 상위 몬스터 하나를 쓰러뜨리는 데 2, 30 개의 부활석을 사용했다.
훗날 어둠의 괴물들이 본격적으로 공세를 취할 때를 대비해 비축 물량을 챙기는 나라들도 많았다. 대표적이 미국이 그랬다.
“최소 천 개 단위로 팔 텐데…. 이번에 1 군이 획득한 전리품 중 괜찮은 게 있던가요?”
“【Gear Score – 625】 의 장갑인 ‘골드리안의 유산’이 있습니다. 가격은 약 1억 2400만 달러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오호?”
시세가 제법 괜찮았다. 경매장에 팔수만 있다면 부활석의 구매 자금 대부분을 충당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몇 가지 난관을 거쳐야만 했다.
“혹시 구매하려는 영웅이 있나요?”
“딜러 넷이 원하고 있기는 합니다만….”
“그러면 우리가 팔기는 곤란하겠네요.”
현정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괜찮은 장갑인 모양인지 몇몇 딜러들이 장비를 원하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되면 클랜은 30 % 의 가격으로 아이템을 영웅들에게 넘겨야만 했다. 설령 경매가 붙는다 하더라도 큰 차이는 없을 터였다.
거기에 공격대에 지불해야 할 돈을 제외하면 결국 클랜에 남는 것은 1500 만 달러 수준에 불과했다. 절로 한숨이 흘러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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