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48 신입 아닌 신입 공격대
정예린이 얻은 아니, 정확히 말해 민국의 퀘스트 보상으로 획득한 골드 티켓 두 장에서는 장비 스코어 210 짜리의 활과 230 짜리 대검이 나왔다.
“예에!!!”
“와, 대박! 어떻게 이렇게 쏙 필요한 것들만 나올 수 있지?”
둘 다 팀원들이 사용할 수 있는 무기인지라 완전히 땡잡은 것이나 다름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장비를 사용할 수 있던 건 활의 주인이 된 유나뿐이었다.
“아으으으….”
대검을 바라보는 소정의 눈동자가 하염없이 떨리고 있었다. 【Gear Score – 230】 의 대검은 3 등급 영웅부터 사용할 수 있었다. 딱 장비 스코어 230 부터가 3 등급에 걸렸다. 그리고 대검을 무기로 쓰는 영웅인 소정은 이제 갓 2 등급의 반열에 오른 영웅이었다.
“이 검은 그냥 경매장에 파는 게 나을 것 같아요. 3 등급이 될 때까지 돈을 모아서 그 때는 더 좋은 무기를 구입해야죠.”
말은 그렇게 했지만 미련이 남는 모양인지 소정은 아쉬운 얼굴로 몇 번이나 대검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3 성 영웅이 아닌 그녀에게 장비 스코어 230 의 대검은 마력을 폭발시키지 못하는 고철일 뿐이었다.
“알겠습니다.”
결국 그녀의 의견을 받아들여 민국은 대검을 경매장에 내놓기로 했다. 이틀 뒤, 대검은 29 만 달러라는 가격에 팔리며 새로운 주인을 찾았다. 대검을 사용하는 영웅이 몇 없어서인지 조금 싸게 팔린 감이 없잖아 있었다.
그리고 민국은 클랜과 정산을 하고 남은 대검의 판매 대금을 팀원들과 정확히 5 등분으로 나눠가지겠다고 말했다.
“이 돈 전부 우리가 받아도 될까요?”
“고생은 공대장님이 더 많이 하셨는데….”
“아니, 괜찮아요. 내가 돈이 없는 것도 아니고.”
그런 민국의 결정에 현아를 비롯한 팀원들은 공대장인 민국이 분배를 더 많이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금을 정산할 때 두, 세 명분의 분배를 받아가는 공대장들도 더러 있는 만큼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민국은 돈이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차라리 나중에 10 인 공격대를 구성할 때를 대비해 이들의 호감을 사는 게 훨씬 나은 선택이었다. 어차피 네 명의 여인들 모두가 자신의 카르텔에 속한 여인들. 챙겨주고 싶은 마음도 어느 정도 있었다.
게다가 소속 클랜에 부활석을 판 거금이 곧 통장에 입금될 예정이었다. 그렇게 모든 사항들이 정리가 되며, 다음 공략에 대한 이야기가 슬슬 나오기 시작했다.
“그러면 다음은 어느 던전을 공략할 예정이신가요? 공대장님.”
예린이 민국에게 가까이 다가와 물었다.
오늘 그녀의 복장은 짙은 남색의 로브. 마법사라는 예린의 클래스와 잘 어울리는 의상이었다. 다만, 로브가 좀 타이트한 까닭에 그녀의 몸매가 제대로 드러나고 있었다. 원래부터 그런 의도로 만든 로브로 보였다. 당연하지만 아이템은 아니었다.
그리고 민국이 잠시 고민을 하다가 팀원들을 바라보았다. 오늘은 조금 충격적인 이야기를 꺼낼 생각이었다. 아니, 충격이라 할 것도 없었다. GGW 의 실력이라면 그리고 자신의 리딩이라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원래는 【B – 8】 던전을 공략할 생각이었습니다.”
“생각이었습니다?”
회의실에 있는 모두의 눈동자가 공대장인 민국에게 향했다.
“그렇습니다. 하지만 생각을 바꿨죠. 현재 우리 팀의 평균 【Gear Score】는 158입니다. 【B – 7】은 물론이고 【B – 6】 까지 도전해 볼 수 있는 점수죠.”
평균을 확 끌어올린 장본인은 다름 아닌 현아였다. 그녀는 장비 스코어 200 의 탱커. 이론적으로 【B – 5】 의 던전까지 충분히 탱킹이 가능했다.
그에 반해 소정과 유나의 장비 점수는 조금 낮은 편이었다. 둘 다 몇 부위는 괜찮은 걸로 구매를 했다지만, 이 정도 수준에서도 영웅 장비는 한 부위마다 수천만에서 억 단위의 돈이 깨졌다.
그렇기에 부자가 아니면 던전의 공략으로 장비를 획득하는 수밖에 없었다. 혹은 정산금을 모아 부족한 부위를 교체하거나 말이다.
“이런 상황에서 저희들이 굳이 【B – 8】을 공략할 필요가 있을까요?”
“어어…. 그, 그렇긴 한데…. 보통 【B – 6】을 도전할 때는 2 성과 3 성 영웅들이 함께 공략을 진행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그건 장비가 부족한 혹은 실력이 떨어지는 영웅들끼리 팀을 이뤄서 공략하는 것에 불과했다.
“막 던전을 공략하는 데 하루가 넘게 걸리기도 하고….”
그 정도의 시간이 걸리는 것 자체가 공략을 제대로 진행하지 못한다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민국의 말에 팀원들은 불안한 표정이었다. 그럴만한 게 【B – 8】의 공략에 성공한 것이 불과 닷새 전의 일이었다. 물론, 쉽게 공략을 끝마치기는 했지만 아직까지는 미지의 난이도라는 두려움이 남아 있었다.
그러나 다른 이들과 판이한 반응을 보이는 영웅이 있었다.
“와…! 그러면 저희는 신입 공격대인데 【B – 6】을 공략하는 거예요?!”
팀원들 중 가장 막내인 스무 살의 유나는 흥미 가득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다른 사람도 아닌 한민국이 공대장으로 있는데 대체 무엇이 걱정이냐는 태도였다.
“일단 그럴 생각입니다. 보스 몬스터의 숫자만 많아졌을 뿐. 개개인의 난이도는 【B – 6】이나 【B – 8】이나 큰 차이가 없더군요.”
숫자가 크게 늘어나긴 한다.
【B – 6】 던전에서는 평균적으로 4 등급 보스 몬스터들이 대여섯 개체 정도가 등장했다. 던전을 공략하는 데 하루가 넘을지도 모른다는 말이 거짓이 아니었다. 당연히 개개인이 모포와 식량을 챙겨서 던전에 들어가는 경우도 잦았다.
하지만 민국은 던전의 공략에 그렇게까지 오랜 시간을 쏟을 생각이 없었다. 기껏해야 4 등급 몬스터에 불과한 놈들이었다.
“그래. 까짓 거 한 번 해보지. 나는 뭐 튼튼하니까 괜찮을 거야.”
유나의 태도에 자극을 받은 것일까? 현아가 자신의 가슴을 탁 두드리며 말했다. 보유 장비가 좋은 그녀는 【B – 6】의 던전에서도 충분히 탱킹이 가능했다. 실력도 어느 정도 자신이 있었다.
그렇게 유나와 현아가 흥미를 보이자 예린 역시 한숨과 함께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저도 공대장님과 함께라면 상위 난이도의 던전을 공략하는 데는 찬성이에요.”
다만, 예린이 이런 결정을 내린 것에는 또 다른 이유도 있었다.
신입 영웅들로 구성된 공격대가 【B – 7】 혹은 【B – 6】을 공략하는 일은 거의 없는 일이었다. 클랜에서 허락을 하지 않을뿐더러 성공 자체가 희박했기에 도전도 하지 않는 편이었다. 괜히 값비싼 부활석을 허무하게 날릴 필요는 없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만약 팀 GGW 가 【B – 6】 난이도의 던전 공략에 성공한다면?
GGW 의 이름이 치솟는 것은 물론이고, 팀의 딜러인 자신 또한 단숨에 유능한 딜러로 전국에 이름을 떨칠 수 있었다. 앞으로의 계약에도 크게 반영할 수 있었다.
그리고 예린이 아는 한민국은 평범한 공대장이 아니었다. 이렇게 말을 꺼내는 것을 보면 분명 자신이 있기 때문이 틀림없었다.
“아…. 그러면 저도 어쩔 수 없겠네요. 까짓 몇 번 죽다보면 공략할 수 있겠죠.”
모두가 찬성을 하는 모습에 근접 딜러인 소정도 머리를 몇 번 긁적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팀 GGW 의 상위 난이도 레이드가 결정되었다. 목표도 순식간에 정해졌다. 검은 오크의 요새. 성북구에 있는 【B – 6】 난이도의 던전이었다.
* * *
“잠깐만요. 뭐라고요? 【B – 6】을 공략한다고요?!”
“네.”
민국의 말에 현정이 경악했다. 그가 R’s 클랜의 신입 4 팀으로 GGW 공격대를 구성한 게 고작 한 달 전의 일이었다.
GGW 는 올해 레이드 자격시험에 합격한 햇병아리들만 모아놓은 공격대였다. 신입 랭커들이 끼어있다고는 하지만 당연히 2 년차 혹은 그 위의 기수에는 비할 바가 아니었다. 레이드 경험은 곧 영웅의 실력이나 다름없었다.
그런데 며칠 전, 1 년차 영웅이라면 기본적인 성장을 보였다고 평가할 수 있는 【B – 8】 난이도의 던전을 어렵지 않게 공략에 성공하더니만 이제는 【B – 7】을 뛰어넘어 【B – 6】을 공략하겠다고 말하고 있었다.
참고로 【B – 6】 던전이면 2, 3 년차의 영웅들이 공략에 도전하는 던전이었다. 그리고 4 등급 특수 개체가 나오는 【B – 5】 부터는 웬만한 클랜의 로스터에 들어갈 수 있는 실력을 지닌 영웅들이 공략하는 곳이었다.
“너, 너무 이른 것 아닐까요? 이제 【B – 8】의 공략에 한 번 성공했잖아요?”
“어차피 둘 다 똑같은 4 등급 몬스터입니다. 보스 몬스터에 따라 패턴의 차이가 있기야 하겠지만, 충분히 적응할 수 있는 수준입니다. 그리고 아실지 모르겠지만 GGW 의 팀원들은 【B – 8】 의 던전에서 얻을 게 없습니다.”
“으음….”
어찌 보면 경매장의 폐해나 다름없었다. 2 성 영웅이 되자마자 돈을 주고 좋은 아이템으로 싹 장비를 해버리는 바람에 장비 스코어 120 짜리가 전리품 상자에서 나오는 【B – 8】 에서는 얻을 만한 게 거의 없다시피 했다.
그나마 레이드 경험이라는 무형의 자산을 얻을 수 있었지만, 민국에게는 경험도 필요 없었다.
‘어떻게 해야 하지?’
너무나도 충격적인 말에 현정은 잠시 머리가 굳을 수밖에 없었다. GGW 의 잠재력이 대단하다는 것은 익히 알고 있었다. 3 등급 특수 개체를 원트(One Try)에 공략 성공했을 때부터 충분히 짐작했던 사실이었다.
그런데 【B – 6】 이라니? R’s 클랜의 3 년차 영웅들이 도전하는 던전이었다. 그것도 성공률이 70 % 가 조금 넘었다. 그리고 거기서 두각을 드러낸 유망주들이 클랜의 2, 3 군으로 편입되었다. 보통 공대장으로 활동하는 영웅들이었다.
“몇 번의 실패는 있기야 하겠지만, 공략의 성공은 어렵지 않을 겁니다.”
현정이 말없이 고민을 하는 모습이자, 민국이 슬며시 말을 덧붙였다. 팀의 레이드 결정은 공대장인 민국의 결정이 절대적이었지만, 그렇다 해서 소속 클랜과 마찰을 빚을 필요는 없었다. 사회생활 혼자 하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
잠시 후, 현정이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혹시 이번 【B – 6】 던전 레이드. 공략에 성공하면 언론에 내보내도 되겠습니까?”
“언론에요?”
민국이 의아한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유망주 영웅들의 무탈한 성장을 위해 팀 GGW 의 정체가 언론에 밝혀지는 것을 극히 꺼려하던 그녀와의 모습과는 상반된 말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현정이 가라앉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어느 정도 짐작하실지 모르겠지만, 클랜의 상황이 그리 좋지가 못해요. 내년의 클랜 평가에서 랭킹이 하락하는 것은 물론이고, 랭커 클랜이라는 타이틀도 떼야 할 상황이죠.”
요즘 클랜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분위기가 뒤숭숭한 까닭에 뭔가 일이 생겼다고는 눈치를 채고 있었다. 1 군의 계속된 레이드 실패가 그 원인인 줄 알았는데, 문제는 다른 곳에서 있었던 모양이었다.
“그것과 저희 팀에 대한 언론 발표가 무슨 관계인가요?”
“사실 공대장님께서도 공대장님의 리딩 능력이 남들과는 다르다는 것은 알고 계시죠?”
“어느 정도는요.”
민국은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이세계에서 활동하는 공대장들의 리딩 능력은 수준이 낮은 편이었다. 수십 년이 넘게 어둠의 괴물들과 싸워왔다는 사실이 이해가 되지 않을 정도로 말이었다.
“보통 클랜에서는 신입 영웅이라면 【B – 8】 던전을 클리어 한 것만으로도 충분한 성장을 했다고 여깁니다. 신입 영웅에게 중요한 것은 상위 레이드로 향하는 경험이니까요. 그리고 【B – 8】 던전에서 나오는 4 등급의 몬스터는 【B – 1】 던전까지도 나오게 됩니다. 이론적으로는 【B – 8】을 공략할 수 있으면 【B – 1】 도 공략할 수 있다는 이야기죠.”
어디까지나 장비의 차이와 특수 개체를 고려하지 않은 이론에 불과한 이야기였다. 그래도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었다. 일단 공격 패턴의 차이가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어느 클랜이던지 1 년차 영웅이 【B – 8】 보다 어려운 난이도를 공략하는 것을 기대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가능한 영웅이라면 1 년 차라고 할 수 없거든요.”
“아예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그렇죠. 하지만 그것을 증명한 신입 영웅들은 세계가 주목받은 랭커 유망주들뿐이었습니다. 그리고 하나같이 정상급의 영웅으로 성장했죠.”
현정의 눈동자가 민국에게 향했다. 노려본다는 착각이 들 정도로 민국을 주시하는 현정의 강한 시선은 네가 세계가 주목하는 랭커 급의 영웅인지를 물어보는 것 같았다.
그리고 민국이 피식 웃고서 현정에게 되물었다.
“혹시 세계적으로 주목받은 유망주가 클랜에 있으면 어떻게 됩니까?”
“당연히 클랜 평가에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있겠죠? 랭킹 순위의 하락폭도 크지 않을 테고요.”
“클랜 평가는 언제 있습니까?”
“앞으로 두 달 뒤에요.”
넉넉하다 못해 차고 넘치는 시간이었다. 그리고 민국이 의자에서 몸을 일으키며 클랜을 운영하는 단장을 향해 말했다.
“혹시 고인물 아니 고이다 못해 증발한 수증기라고 들어 보셨습니까? 제가 바로 그 수증기입니다.”
“네, 네? 뭐라고요?”
하지만 현정은 그런 민국의 말을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어찌되었든 GGW 의 【B – 6】 공략이 확실하게 결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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