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50 신입 아닌 신입 공격대
《검은 오크의 요새 – 오크 장군 크락스
▷ 오크 장군 크락스는 일정 시간마다 자신의 대검을 휘둘러 출혈 공격을 사용합니다. 데미지가 상당한데다가 탱커의 방어력을 감소시키는 디버프를 걸기 때문에, 탱커는 출혈 이후의 일반 공격을 잘 막아내야 합니다. 힐러 또한 출혈에 걸린 탱커에게 회복 능력을 집중해야 합니다.
탱커와 힐러에게 가하는 부담이 상상 이상으로 크기 때문에 근접 딜러는 크락스의 휘두르기 공격을 피해 출혈 디버프를 맞지 않아야 합니다.
▷ 오크 장군 크락스가 거친 포효와 함께 자신의 부하들을 불러냅니다. 크락스의 부하들은 일반 몬스터보다 강한 능력을 지닌 몬스터로 반드시 힐러를 향해 달려듭니다. 어그로가 잡히지 않으므로 딜러들은 크락스의 부하들이 나타나면 크락스의 공격을 멈추고, 재빠르게 그들을 공격해 쓰러뜨려 힐러를 보호해야 합니다.
당연히 힐러는 자신을 노리는 크락스의 부하들을 피해 다녀야 합니다. 하지만 크락스의 부하를 피하려다가 탱커에게 회복 능력 사용하지 못해 탱커가 죽는다거나 대지의 검 스킬 범위에 자신도 모르게 들어가 공격에 당하는 것은 주의해야 합니다.
어떤 상황에서든지 탱커나 힐러가 쓰러지면 레이드는 실패한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 오크 장군 크락스는 자신의 대검을 높게 치켜 올리며 포효와 함께 강하게 내리치는 대지의 검 스킬을 사용합니다. 전장의 4 분의 1 이 스킬의 범위에 들어갈 정도이므로 어그로를 잡고 있는 탱커는 크락스의 공격을 본진의 반대 방향으로 유도해야 합니다.
행여나 그것이 실패할 경우 대지의 검 데미지를 버티기 위해 힐러는 빠르게 아군의 생명력을 최대치까지 높여야 합니다. 장비가 좋지 않은 힐러는 대지의 검 공격 한 방에 사망할 수 있습니다.
▷ 성벽 위에 있는 오크 장군 크락스의 부하들이 화살의 장전이 완료될 때 마다 화살 공격을 합니다. 대상자가 누가 될지 모르기 때문에 장전이 완료되는 모습이 보이면 영웅들은 항시 화살 공격에 대비해야 합니다. 또한 힐러는 생명력이 낮은 대상을 특별히 신경을 써야 합니다.》
그러니까 크락스 전투의 흐름은 출혈과 대지의 검을 탱커가 잘 유도해내고, 딜러들은 크락스의 부하들을 빠르게 처리하는 한 편, 힐러는 안정적으로 팀원들의 생명력을 유지시키며 자신에게 가해지는 부담을 잘 버텨내면 되었다.
물론, 말처럼 쉬운 전투는 아니었다. 어려운 게 아니라면 크락스가 걸몽거라는 별명이 붙었을 리 없었다. 그만큼 많은 영웅들의 마력을 타락시킨 놈. 탱커, 딜러, 힐러 모두가 자신의 역할에 충실해야만 레이드를 성공할 수 있었다.
“…긴장되네.”
크락스를 앞에 두고 현아가 고개를 좌우로 털었다. 눈앞의 녀석은 검은 오크의 요새에 등장하는 보스 몬스터들 중에서 현아가 가장 열심히 대비를 했던 녀석이었다. 걸몽거를 주의하라는 선배 영웅들의 진심 어린 충고 때문이었다.
“좋아. 난 잘할 수 있어. 민국이가 지시한 대로만 움직이면 돼.”
그러나 막상 크락스가 눈앞에 보이니 긴장이 절로 되었다. 하지만 머뭇거림도 잠시. 민국의 지시가 떨어지자마자 그녀는 자신의 검과 방패를 들고 반사적으로 달려 나가고 있었다. 크락스에 대한 두려움을 공대장인 민국의 리딩에 대한 그녀의 신뢰가 찌그러뜨리듯 눌러버린 것이다.
- 취이에에에엑!
적의 등장에 크락스도 포효와 함께 자신의 대검을 들고 나섰다. 그리고는 현아와 함께 서로 뒤엉켜 부딪치기 시작했다.
“현아, 머리 돌려!!!”
크락스 전투의 기본은 아군의 본진이 크락스의 등 뒤에 위치해야 한다는 점이었다. 전장 4 분의 1을 공격범위에 두는 크락스의 특수 스킬, 대지의 검을 대비하기 위해서였다.
카캉! 쾅!
마구잡이로 휘두르는 크락스의 커다란 대검이 흙바닥을 두부처럼 헤집었다. 그 사이로 현아가 다람쥐처럼 날래게 몸을 움직였다. 무시무시한 공격이었지만, 현아는 날렵한 움직임과 정확한 방어로 크락스의 공격을 큰 피해 없이 흘려내고 있었다.
- 취이익!!!
뛰어난 현아의 전투 능력이 크락스의 화를 치밀어 오르게 한 모양이었다. 거친 콧바람과 함께 크락스가 양 손으로 자신의 대검을 위로 들어 올렸다. 이어서 순간적으로 대검이 커진 것 같은 착각과 함께 크락스의 무기가 현아가 있던 자리로 내리 떨어졌다.
“조심!”
콰아아앙!!!
민국의 경고성과 함께 지면이 들썩이더니 먼지가 전장을 집어 삼켰다. 하지만 공격의 대상이 된 현아는 이미 크락스가 검을 들어 올리는 모습을 보자마자 본진 쪽으로 몸을 빼내고 있었다. 덕분에 먼지가 걷힌 곳에는 아무것도 남아 있는 게 없었다.
- 취이이이익!
자신의 공격을 피한 대상을 향해 분노에 찬 크락스의 공격이 다시 쏟아졌다. 덕분에 어그로는 굉장히 빨리 잡히고 있었다. 크락스의 눈동자에 비친 것은 오직 탱커뿐이었다.
그리고 현아는 그런 크락스의 공격을 막거나 튕겨내면서 다시 크락스의 시선을 본진의 반대쪽으로 유도하기 시작했다.
“좋아! 오현아, 잘하고 있어!!”
현아의 생명력을 회복시키면서, 그녀의 자신감도 북돋아 줄 겸 민국이 크게 소리를 질렀다.
레이드를 하는 탱커의 기본적인 움직임이지만, 어찌되었든 현아는 자신의 임무를 제대로 수행 해내고 있었다. 공략 영상을 보아하니 저 간단한 것도 제대로 해내지 못해 공격대를 전멸시키는 탱커가 부지기수였다.
“그러면 이제 슬슬 오겠네.”
힐끗 시선을 돌려 영웅 패드(Hero Pad)로 크락스의 생명력을 확인하던 민국이 본인의 키와 비교될 정도로 커다란 대검을 휘두르는 김소정을 보며 중얼거렸다.
“출혈 조심!!!”
민국의 리딩에 알았다는 듯 현아와 소정이 고개를 짧게 끄덕였다.
잠시 후, 크락스가 자신의 대검을 옆으로 눕혀 몸을 빙글 돌려 휘둘렀다. 바바리안의 휠 윈드를 떠올리게 만드는 공격이었다.
카카카캉!
그런 크락스의 연속 공격을 현아는 방패를 들어서 막아내었다. 그리고 김소정은 재빠르게 몸을 뒤로 빼내어 공격을 피했다. 제대로 된 완벽한 대처에 민국이 바로 엄지손가락을 치켜 올렸다.
“구웃! 앞으로 이렇게만 피합시다! 어렵지 않죠?!”
확실히 다들 국내 신입 영웅 랭킹에 이름을 올리고 있을 정도로 재능이 뛰어난 영웅들이었다. 제대로 된 타이밍에 정확한 움직임. 훈련의 영향도 있겠지만, 아직까지는 아주 만족스러웠다.
현아에게 가해진 크락스의 출혈 공격도 생각보다 위협적이지 않았다. 현아의 장비가 좋은 편인 게 가장 큰 이유이기는 했지만 민국이 수인을 맺는 속도 역시 다른 힐러들과 비교해 굉장히 정확하고 빨랐다. 출혈로 인해 생명력이 60 % 이하로 떨어지기가 무섭게 민국의 회복 능력이 현아를 치유했다.
이어서 크락스가 대지의 검을 다시 사용했지만, 현아는 좀 전과 같은 방식으로 어렵지 않게 크락스의 공격을 무효화 시켰다. 그 사이에 성벽 위의 오크들이 민국을 노리고 두 발의 화살을 발사했지만 민국은 보호막을 이용해 오크들의 화살 공격을 가볍게 무마시켰다.
“집중! 잘하고 있습니다!!!”
크락스의 특수 공격 패턴이 몇 번이나 이어졌지만, 전투는 굉장히 안정적으로 진행되고 있었다. 딜러들의 폭발적인 공격에 크락스의 생명력도 빠르게 줄어들고 있었다.
그렇게 전투를 이어나가던 도중 민국의 시선에 검은 피부의 오크 두 마리가 들어왔다. 크락스가 불러낸 오크들인 모양이었다.
“오른쪽! 2 시 방향 부하 나타났습니다! 딜러들 타겟 변경하세요!”
그렇게 딜러들에게 지시를 내린 민국이 새롭게 나타난 오크들의 모습을 보며 중얼거렸다.
“무섭게도 생겼네.”
크락스도 살벌하게 생기기는 했지만, 어째 생긴 것은 부하들이 더 무서운 것 같았다.
코끼리의 상아처럼 생긴 어금니가 입을 뚫고 양쪽으로 튀어나왔고, 귀에는 괴상하게 생긴 장식들이 주렁주렁하게 달려 있었다. 얼굴에도 흉터가 가득했다. 하지만 가장 끔찍한 것은…. 크락스의 부하들이 아무런 장비도 착용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었다.
그 때문에 오크들이 달려올 때 마다 커다란 성기가 덜렁거리고 있었다.
“……씨발.”
크락스의 부하들은 무조건 힐러만을 노렸다. 그렇기에 민국은 아군 딜러들이 크락스의 부하들을 쓰러뜨릴 때 까지 그들의 공격을 피해 도망 다녀야 했다. 그게 어려운 것은 아니었지만, 성기를 덜렁거리며 오크들이 달려올 때마다 왠지 성적으로 자신을 노리는 것 같아 기분이 매우 더러웠다.
“최유나! 정예린!!!”
이런 상황에서 민국이 도움을 요청할 이들은 딜러들밖에 없었다. 그녀들도 커다란 성기를 덜렁거리며 민국에게 달려드는 오크들의 모습에 묘한 위기감을 느꼈는지, 자신들의 마력을 강하게 끌어올리며 오크들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네엡!! 빨리 처리할게요!”
최유나의 활에 걸린 화살이 빨랫줄처럼 날아가 오크의 가슴을 꿰뚫었다. 하지만 크락스의 부하는 화살 하나에 숨이 멎을 정도로 허약한 놈들이 아니었다. 그리고 민국은 부하가 멈칫하는 틈을 타 재빠르게 수인을 맺어 현아에게 보호막을 걸었다.
“꺼져 버려!!!”
이어서 정예린이 ‘얼음 여왕 – 아니사’의 빙결 창을 연상케 할 정도의 커다란 고드름을 만들어내었다. 그리고는 방금 전, 유나가 공격을 했던 오크의 머리를 향해 그대로 내리 박았다. 콰직하는 소리와 함께 정예린의 공격이 오크의 두개골을 박살냈다.
“한 마리 컷!”
“나이스, 언니! 좋아!!! 이거나 받아라!”
그런 정예린의 활약에 자극을 받은 것일까?
갑자기 왼쪽 다리를 앞으로 쭈욱 뻗은 유나가 스탠스를 과할 정도로 길게 잡고는 자신의 몸 전체를 이용해 활시위를 당기기 시작했다. 이어서 활대와 활시위에 걸린 화살에 핑그르르 유나의 마력이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콰아아앙!
“꺄악?!”
집중해서 크락스의 공격을 막아내고 있던 현아가 깜짝 놀랄 정도의 커다란 포격소리와 함께 마력이 실린 화살이 그대로 오크의 가슴을 꿰뚫었다. 그리고 가슴 부위의 장기가 통째로 날아간 크락스의 부하가 그 자리에 풀썩 쓰러졌다.
“오호라?”
단숨에 크락스의 부하를 처리하는 유나의 활약에 민국도 제법 놀랐다.
장비? 아니면 실력의 차이? 공략 영상에서 등장했던 선배 영웅들이 크락스의 부하들을 처리하는 속도보다 훨씬 빠른 속도였다. 그 증거로 크락스의 부하들은 자신에게 가까이 오기도 전에 죽어 버렸다.
솔직히 딜러로써의 정예린의 실력은 꽤나 괜찮은 편이었기에 어렵지 않게 크락스의 부하를 처리할 거라고는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다. 그러나 최유나는 의외였다.
특히 방금 전, 크락스의 부하를 처리할 때 사용한 스킬은 전의 레이드에서는 한 번도 보지 못했던 기술이었다. 아마 이번 레이드를 대비해 몰래 연습을 했던 모양이었다.
“제법이잖아?”
처음에는 귀찮은 임무를 수행시킬 겸 짬 처리를 위해 데리고 왔는데, 이런 성장세라면 충분히 칭찬해줄 만했다. 생각해보니 오늘 밤은 유나의 순번이었다.
“그나저나 이 레이드, 생각했던 것 보다 더 쉽네.”
크락스의 공격을 잘 버텨내는 탱커, 그리고 부하들을 잘 처리하는 딜러. 이 조건만 갖춰지면 크락스 전투는 승리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힐러인 자신이 이런 레이드에서 실수를 할 일은 없었다.
그 증거로 십여 분 정도의 전투 이후, 크락스는 외마디 비명과 함께 온 몸이 상처투성이가 되어 전리품 상자만 남기고 쓰러졌다. 걸몽거라는 별명이 이상하게 느껴질 정도로 쉬운 레이드였다.
“예에!!!”
그리고 가위 바위 보의 승리로 전리품 상자를 열게 된 현아가 번쩍 만세를 들어 올렸다. 곧 그녀의 손에 들린 전리품을 확인한 민국이 어처구니없는 소리를 내었다.
“뭐지? 이게 말이 돼?”
“내가! 바로! 천호동 럭키걸이다!!!”
현아의 손에는 부활석과 골드 티켓이 들려 있었다. 바로 던전을 나가서 복권을 사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의 대단한 운이었다. 다들 몸으로 기뻐하는 동안 예린만큼은 그런 현아를 향해 승리자와도 같은 태도를 보이고 있었다.
저번 레이드에서 자신은 무려 골드 티켓을 두 장이나 뽑았기 때문이었다. 물론, 본인의 운 때문은 아니었지만 예린이 정확한 사실을 알 리 없었다.
그리고 현아가 티켓을 양 손으로 잡아 들었다.
"그러면 찢겠습니다! 나와라 얍!!!"
찌익.
티켓을 찢자 펑하는 효과와 함께 굴림판이 나타났다. 테두리가 금색의 마나로 일렁거리는 굴림판이었다. 골드 티켓 답게 실버 티켓과는 다른 효과였다. 빠르게 세 개의 굴림판이 연달아 돌아갔다.
그리고 나타난 것은….
“…….”
“경매장에 내놓을게요.”
【Gear Score – 230】의 철퇴였다. 주로 탱커를 맡는 성기사들이 사용하는데, 현아는 성기사가 아닐뿐더러 장검을 사용했다. 게다가 장비 스코어 230 은 2 성 영웅이 착용할 수조차 없었다. 운이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뭔가 애매한 기분이었다.
다음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