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51 신입 아닌 신입 공격대
“그런데 말이야.”
오크 장군 크락스를 물리치고, 네 번째 보스 몬스터를 상대하러 가는 와중에 민국이 팀원들을 향해 물었다. 크락스 전투가 있을 때부터 들던 의문이었다.
“크락스한테 당하던 워킹 걸 말이야…. 왜 그렇게 냉정하게 대한 거야?”
엄밀히 따지고 보면 인류를 위해 몬스터와 싸움을 벌이다가 마력이 오염된 것이 아닌가? 전 주인의 기억을 더듬어봤지만 민국은 워킹 걸에게 그렇게까지 냉정하게 대할 이유는 찾지 못했다.
단지 몬스터에게 당한 게 더럽게 느껴지기 때문이라는 이유라면 납득이야 하겠다만, 그런 대우를 하면서도 이 세계는 워킹 걸에게도 어둠의 괴물과 싸워야 한다는 희생을 요구하고 있었다.
“으음….”
그리고 서로를 바라보며 난감한 표정을 하던 팀원 중 소정이 입을 열었다.
“워킹 걸이 불쌍한 것은 사실이에요. 하지만 저희도 그럴 수밖에 없는 사정들이 있어요. 남자 영웅들은 잘 모르겠지만….”
“사정?”
“네. 워킹 걸에게 친근하게 대했다가는 우리가 워킹 걸이 될 수도 있거든요.”
“…그게 무슨 소리야?”
뭔가 일이 있었던 모양이었다. 김소정의 설명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그리고 그녀의 입에서 나온 이야기들은 조금 충격적이었다.
모든 워킹 걸들이 그러한 행동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가끔 욕망에 못 이겨 인류를 배신하는 워킹 걸들이 활동을 한다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의 성욕을 풀기 위해 혹은 마음이 비뚤어져 버린 탓에 같은 영웅을 몬스터에게 바친다고 했다.
“달콤한 말로 동료 영웅을 꼬드긴 후 던전으로 데리고 가는 거죠. 그리고 자신을 범했던 몬스터에게 영웅을 바치면 끝. 탱커나 힐러가 이상한 마음을 가지면 공격대 하나 전멸시키는 것은 일도 아니니까요.”
“그, 그런 사람들이 있다고? 그게 말이 돼?”
“실제로 중국의 유명한 공대장이 그렇게 워킹 걸이 된 후 자살하는 사고가 벌어진 적이 있어요.”
제법 오래된 일이라 민국의 전 주인은 몰랐던 모양이지만, 남성 영웅이 아닌 일반 여성 영웅들 사이에서는 널리 퍼진 이야기라고 했다. 신뢰할 수 없는 워킹 걸을 만나면 무조건 의심부터 하고 조심하라는 말이었다.
그리고 그런 워킹 걸들의 존재 때문에 영웅들의 단체인 클랜이 발전하게 되었다고 했다. 신뢰할 수 있는 동료들과 함께 던전을 공략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조금 전의 워킹 걸을 공기처럼 취급한 이유가 이해가 되는 것 같았다.
하지만 문득 또 다른 의문이 들었다. 워킹 걸은 몬스터에게 강제로 당해 마력이 오염된 영웅들을 뜻했다. 그리고 그것으로 인해 강한 성욕에 사로잡혀 절로 몬스터들을 찾는다고 했다.
‘정확히 말하면 자신의 성욕을 만족시켜 줄 대상을 찾는 거지. 그리고 이 세계의 남성은 전부 말라비틀어진 놈들 뿐이니까 강한 힘을 지닌 몬스터를 대상으로 삼은 거고.’
그런데 남자 영웅이라면? 충분히 여성 영웅 여럿을 만족시킬 수 있는 강한 정력의 남성이라면? 그런 민국의 질문이 팀원들에게 향했다.
“글쎄요? 근데 그럴 남자 영웅이 있을까요? 솔직히 말해…….”
정예린이 말끝을 흐렸다. 그러나 그 뒷말은 굳이 듣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심리적인 저항감 때문이겠지. 민국의 시선이 이번에는 김소정에게 향했다. 경험이 많은 그녀라면 왠지 다른 답이 나올까 싶어서였다.
“취향이 특이한 사람이 있을 수 있기는 하겠네요.”
“그러게. 하지만 애당초 남자들은 성욕이 그리 대단한 편이 아니잖아? 하물며 워킹 걸이라니…. 다음 날, 미라가 되어서 나타날지도 몰라.”
“아무리 생각해도 워킹 걸들을 품으려는 남자 영웅은 없을 것 같아요.”
대화는 거기서 끝났다. 뭐, 워킹 걸들에 대해 어느 정도 알게 된 시간이었던 것 같았다.
오크 장군 크락스를 물리친 일행들은 두 시간에 걸쳐 네 번째와 다섯 번째 보스 몬스터도 처리할 수 있었다.
그러나 다섯 번째 녀석을 상대하면서 팀원들의 마음에 긴장이 풀리기 시작한 것일까? 어처구니없는 실수로 전투가 끝나기 직전 김소정과 오현아가 죽는 사고가 터졌다.
다행히 남은 사람들끼리 보스 몬스터를 쓰러뜨렸고, 전투가 종료된 이후 부활석이 사용되면서 둘은 다시 되살아날 수 있었다.
“죄송합니다, 공대장님….”
“김소정 씨가 실수를 하는 모습은 굉장히 드무네요. 어쨌든 원트(One Try)로 잡기는 했으니, 실수는 묻고 넘어가겠습니다. 다만 김소정 씨의 순번은 일주일 정도 뒤로 밀어야겠네요.”
“아…. 알겠습니다.”
민국의 말에 소정은 안타까운 얼굴로 민국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푹 숙였다. 조금 황당하기는 하지만 이 방법이 팀원들의 정신을 바짝 들게 하는데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었다.
그리고 두 시간 뒤.
‘검은 오크의 요새’에 등장하는 마지막 보스답게 ‘오크 로드 – 쿠람’은 민국이 지휘하는 공격대를 세 번이나 전멸시켰다. 다행히 팀원들 중 쿠람에게 붙잡혀 워킹 걸이 되는 사고는 일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GGW 의 팀원들은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멍청한 짓은 저지르지 않았고, 민국 역시 정확한 리딩으로 팀원들을 이끌어 나갔다. 그리고 결국 최유나의 활이 쿠람의 심장을 꿰뚫었다.
삐익!
▶ “검은 오크의 요새”의 토벌을 완료했습니다.
▶ 영웅 패드에 업적 포인트가 2 주어집니다.
▶ 영웅 도감의 횟수가 갱신되었습니다.
오크 로드 – 쿠람이 쓰러지는 것과 동시에 영웅 패드(Hero Pad)에 알람이 울렸다. 【B – 6】 난이도의 던전의 토벌에 성공했기 때문일까? 업적 포인트가 2 가 주어졌다.
민국은 자신의 업적 포인트를 확인했다. 31. 1 년차 신입 영웅이라는 조건을 감안한다면 엄청나게 높은 수치였다.
“티켓! 티켓, 티켓!!!”
이번 전리품 상자는 순번에 따라 정예린이 열었다. 그리고 주문을 외우듯 골드 티켓을 이름을 부르짖던 그녀는 잠시 후, 좌절한 표정으로 바닥에 머리를 박았다.
야심차게 【B – 6】 난이도의 던전의 공략을 시도했고, 또한 성공했지만 팀원들의 스펙 상승에 도움이 되었던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다만, 부활석 두 개를 얻은 게 수확이라면 수확이었다. 물론, 네 개를 써버렸지만.
“그래도 얻은 전리품들을 전부 팔고 나면 돈 좀 만질 수 있겠네요.”
여섯 개체의 몬스터를 쓰러뜨리며 장비 아이템을 무려 13 개나 얻을 수 있었다. 소정의 말에 휘황찬란하게 빛나는 영웅 아이템들을 보던 민국이 허탈한 목소리로 말했다.
“어떻게 이 중에서 팀원들이 사용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지?”
“경매장 때문이지 뭐…. 너무 일찍 장비를 구입했나 봐.”
하필이면 이 중에서 탱커만 사용할 수 있는 장비가 무려 일곱 개나 되었다. 그리고 현아는 팀 내에서 유일하게 장비를 풀 세팅한 영웅이었다. 그만큼 경매장에 많은 돈을 뿌렸다는 말이었다.
“그냥 운이 안 좋았어요. 우리에게 필요 없는 것들만 쏙쏙 나오는 바람에…….”
막내인 유나가 탱커를 감싸려는 듯 입을 열었다.
하지만 정확히 말해야겠다. 필요한 것들도 나오긴 했지만, 동일 수준의 장비가 있는 바람에 쓸모가 없어진 거다.
어쨌든 【B – 6】 난이도의 던전, 검은 오크의 요새 공략은 성공으로 끝이 났다. 그리고 던전 밖으로 나온 민국과 일행들에게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 * *
“정말 공략에 성공할까요? 다들 신입이라고 들었는데….”
성북구에 있는 【B – 6】 던전, ‘검은 오크의 요새’를 지키는 병사가 자신의 상관을 향해 물었다. 방탄복과 K42 소총으로 무장한 그녀의 군모에는 노란색 작대기가 세 개 그려져 있었다. 그러자 담배를 물고 있던 그녀의 상관이 어깨를 으쓱였다.
“글쎄다? 솔직히 R’s 클랜에서 무리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는 한데….”
이곳을 지키는 책임자이기도 한 여 중사는 부하의 질문에 던전에 진입하던 한 남성 영웅의 얼굴을 떠올렸다. 던전에 들어서는 그의 얼굴은 너무나도 자신만만했다.
그리고 세 번인가? 네 번 가량 부활석이 깨지는 광경을 목격하기는 했었다. 하지만 R’s 클랜의 팀이 ‘검은 오크의 요새’ 던전에 들어간 지 제법 오래되었다는 것을 감안하면 그 정도는 부활석이 깨지는 것은 얼마 되지도 않는 숫자였다.
3 년가량 이 곳에서 근무하면서 별의별 모습을 다 목격했던 그녀는 심한 경우 하루 만에 수십 개가 넘는 부활석을 이 던전에서 깨뜨리는 공격대도 보았을 정도였다.
‘천천히 공략을 하려는 건가?’
그렇다하기엔 던전에 진입한 공격대가 들고 들어간 물품들이 변변치 않았다. 침낭은커녕 먹을 것도 별로 없었던 것 같았다. 그런 여 중사의 시선이 방어 진지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위치한 대기실로 향했다.
그 안에서는 R’s 클랜에서 나온 사람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저런 모습을 보면 아침 나절에 던전에 진입했던 신입 공격대는 R’s 클랜에서도 신경을 쓰는 유망주들인 모양이었다. 하기야 남자 영웅이 있으니….
“주, 중사님.”
“음, 어엉? 왜?”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여 중사가 고개를 갸웃했다. 그리고는 자신을 부른 병사를 확인했다. 상병 나부랭이 년이 건방지게 자신을 불러놓고는 쳐다보지도 않고 있었다.
그런데 이상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상병 나부랭이만이 아니었다. 던전을 지키는 임무를 맡은 있는 열댓 명의 병사 모두가 정면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여 중사는 최대한 아무렇지도 않은 척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는 눈을 휘둥그레 뜬 채로 멍하니 있다가 재빠르게 무전기를 찾았다.
“여기는 성북구 【B – 6】 던전 검은 오크의 요새! 여기는 성북구 【B – 6】 던전 검은 오크의 요새! Hq 나와라 오바!”
- 여기는 Hq. 무슨 일이지?
“더, 던전! 던전의 마력이 흩어지고 있다!”
- 포, 폭발인가?
“아, 아니다! 다시 말한다. 던전이 무너지고 있다. 폭발이 아니다.”
폭발이 아니다. 무너지는 것이다. 거기서 거기처럼 들리겠지만 이 차이는 굉장히 컸다.
이 세계에서 던전을 없애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었다. 첫 번째는 던전 타이머의 시간이 다할 때까지 던전을 그냥 둔 후, 폭발시키는 방법.
그러나 던전이 폭발하게 되면 그 주위는 생물체가 살 수 없는 땅으로 변해버릴 뿐 더러, 수많은 몬스터들이 뛰쳐나오게 되면서 천재지변이나 다름없는 불가항력적인 재앙이 벌어졌기에, 인류는 어떤 상황에서든지 던전이 폭발하지 않도록 던전들을 철저하게 관리했다.
두 번째는 던전의 폭발이 아닌 던전의 마력이 흩어지면서 자연적으로 던전이 사라지는 경우였다.
사람들은 이러한 현상을 가리켜 던전이 무너진다고 표현했는데, 이는 일정한 수준 이상으로 던전의 공략을 성공했을 때 지극히 낮은 확률로 던전이 사라지는 현상이었다.
당연히 어둠의 괴물과 전쟁을 치르고 있는 인류가 원하는 궁극적인 목적이 바로 던전을 무너뜨리는 것이었다. 던전이 무너지게 되면 그 주변의 땅을 안정적으로 재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 #[email protected]#!$
여 중사의 보고가 끝나자마자 Hq 에서도 여러 소리들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주변에 휘몰아치는 마력의 폭풍 때문에 무전의 소리가 제대로 들려오지 않고 있었다. 그리고 던전의 안에서 다섯 명의 영웅들이 튀어나왔다.
민국을 위시한 R’s 클랜의 GGW 팀이었다.
“꺄아아악! 바람 뭐야?!”
“오늘 일기예보에는 날씨가 맑다고 했는데요?”
“기상청 년들이 하는 게 다 그렇지 뭐.”
“갑자기 비바람이라도 오려는 모양이지?”
던전에서 나오자마자 자신들을 반기는 거센 바람에 민국이 손을 들어 얼굴을 가리고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굉장히 맑은데? 여긴 왜이래?”
그리고는 어처구니가 없는 표정을 지었다. 오늘 서울의 하늘은 굉장히 쾌청했다.
“하, 한민국 공대장님! 맞으십니까?! R’s 클랜의 신입 4 팀?”
그런 민국을 향해 군복을 입은 군인들이 우르르 몰려오기 시작했다. 던전을 진입했을 때 잠깐이지만 인사를 나눴던 군인들이었다. 이상하게도 하나같이 놀란 아니 그 보다 더한 표정을 하고 있기에 뭔가 일이 생겼나 하고 민국이 고개를 갸웃할 때였다.
“…더, 던전이!”
잠시 뒤를 돌아봤던 현아가 소스라치게 놀라며 소리를 내질렀다. 다른 차원으로 향하는 포탈과도 생긴 던전의 입구가 스르르 모래성처럼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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