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영웅 소녀 전쟁-54화 (54/486)

EP.54 관계의 복잡함

사람들의 뜨거운 관심 속에 시간은 정말 눈 깜빡할 사이에 지나갔다.

그리고 그 사이 민국은 또 다른 【B – 6】 던전의 공략을 계획했다. 아직 【B – 5】 를 공략하는 것은 무리였다. 4성 특수 개체가 나오기 시작하는 【B – 5】 던전은 적어도 모든 팀원들의 장비 스코어가 190 이상은 되어야만 어느 정도 공략을 시도해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부활석이 많다면 또 모르겠지만, 그런 상황이 아닌 만큼 부활석은 최대한 아끼는 방향으로 활동을 해야 했다.

‘일단 그 전까지는 스펙업과 레이드 경험을 쌓는데 주력해야지.’

게다가 며칠 전, 오랜만에 뿌우에게서 퀘스트도 하나 주어졌다.

《역전의 용사인 민국님에게! 민국님의 수준에 지금의 던전은 시시하시죠? 그렇다고 홀로 상위 레이드를 진행할 수는 없는 노릇! 민국님의 동료가 될 영웅들을 성장시켜 주세요!

[목표] - 팀원 네 명의 평균 장비 점수를 200까지 높여라!

[기간] - 3 개월 내

[보상] - 오렌지급 결정 소환권 다섯 개!(소환권을 사용하고 4 성 특수 개체를 클리어하실 경우 전리품 상자에서는 오렌지급 결정이 무조건 나오게 됩니다.)

천릿길도 한 걸음부터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강력한 어둠의 괴물들을 쓰러뜨리기 위해 지금부터 준비하세요!》

퀘스트의 목표로 나온 평균 【Gear Score】 200 이면 이론상 【B – 6】 의 던전에서도 만족시킬 수 있었다. 물론, 이론상이었다. 전리품 상자에서 나오는 보상으로 팀원들의 장비를 맞추려면 최소 몇 달은 걸릴지 모르는 일이었다.

빌어먹을 중복 템들 때문이었다. 그러나 돌려 생각하면 경매장에서 모자란 부위만 구매를 하면 클리어 할 수 있는 간단한 퀘스트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런 돈이 팀원들에게 있을 리 없었다.

결국 던전을 돌아 자신들이 착용할 수 있는 상위 장비를 획득하거나, 장비를 구입할 수 있는 돈을 전리품으로 벌면서 퀘스트를 클리어 해야 했다.

“다음 던전을 공략하겠다고요?”

“네, 이왕이면 몬스터의 개체수가 대여섯 마리면 좋겠는데요.”

“그런 던전은 널려 있습니다. 곧 적당한 수준의 던전을 찾아서 알려드리겠습니다.”

새롭게 공략할 【B – 6】 의 던전을 찾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서울 시내만 해도 몇 십 개나 되는 【B – 6】 던전이 존재했고, 주변 사람들의 안전을 위협하며 골칫덩이로 작용하고 있었다.

지원팀이 보내준 던전의 목록 중에서 민국은 광진구에 있는 던전을 선택했다. 특별히 이유가 있어서 던전을 고른 것은 아니었다. 이번에 새롭게 공략할 던전은 전에 공략한 경험이 있는 ‘사형자의 무덤’과 얼마 떨어지지 않는 곳에 위치한 던전이었다.

그래서일까? 이번에 공략할 【B – 6】 의 던전 또한 그와 비슷한 컨셉의 보스 몬스터들이 등장했다. 전부 인간형 몬스터들이었다.

부우웅!

거대한 대검이 괴물의 하체를 노리고 휘둘러졌다. 하지만 괴물은 그런 김소정의 공격을 터프하게 몸으로 맞으며 탱커인 오현아를 노리며 달려들었다. 하지만 대검이 타격한 부위를 향해 다시 화살이 깊숙이 틀어박혔다. 그리고….

“하아아아압!!!”

요란한 기합과 함께 정예린의 지팡이에서 마력의 스파크가 튀기더니만 강력한 빙결 마법이 최유나의 화살이 명중한 부분을 그대로 얼려 붙었다가 쪼개버렸다.

- 우워어어어어!!!

“…어?!”

민국의 입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순식간에 괴물의 생명력이 뭉텅이로 사라졌다. 몇 십 프로나 될 정도로 어마어마한 비율은 아니었다. 기껏해야 1 % 남짓한 정도였지만 보스 몬스터의 어마어마한 생명력을 생각하면 그것만 해도 충분히 놀랄 정도였다.

현아도 마찬가지였다. 합을 맞춘 것 같은 딜러들의 연격에 그녀의 눈이 휘둥그레 떠졌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곧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보스 몬스터를 향해 그녀는 생각을 멈추고 검을 휘둘렀다.

‘콤보 같은 건가?’

민국의 눈동자가 딜러들의 얼굴을 빠르게 훑었다. 자신들의 공격을 성공시킨 것 때문인지 그녀들의 얼굴에는 뿌듯함이 나타나 있었다.

‘제법이잖아?’

최근 딜러들 사이에서 묘한 기류가 돌고 있다는 것은 감지하고 있었다. 다들 상위레이드에 대한 욕심 때문에 종종 연습실을 찾는다는 것도 눈치 채고 있었다. 그렇게 실전에서도 이런 모습이라니?

그녀들의 성장한 모습에 민국의 입가에는 어느새 진한 미소가 생겨나고 있었다.

“나이스! 아주 좋아! 이렇게만 플레이 합시다!”

기괴한 목소리로 포효를 하는 보스 몬스터를 뒤로 한 채 민국은 팀원들을 향해 박수를 내보냈다. 딜러들의 딜링 능력이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레이드는 빠르게 끝낼 수 있었다.

삐익!

▶ “썩은 늪”의 토벌을 완료했습니다.

▶ 영웅 패드에 업적 포인트가 2 주어집니다.

▶ 영웅 도감의 횟수가 갱신되었습니다.

민국은 4 등급 몬스터 여섯 개체가 등장하는 ‘썩은 늪’의 공략에 부활석 세 개를 사용했다. 처음 경험하는 녀석이라 아직 움직임이 완벽하지 못했다.

그리고 전리품 상자에서도 부활석을 세 개 획득할 수 있었다. 일단 부활석은 여기서 쌤쌤이 되었고, 획득한 장비들을 경매장에 판다면 더욱 큰 수익을 올릴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도 이번에는 얻은 게 제법 있네요.”

“【Gear Score - 200】 짜리 장비는 꽤 비싼데, 30 % 가격으로 살 수 있어서 다행이에요.”

다행이도 이번 썩은 늪 공략에서는 팀원들이 사용할 수 있는 영웅 장비 세 개나 건질 수 있었다. 하나는 힐러용 장신구였고, 두 개는 딜러용 신발과 장갑이었다. 신발은 유나가 장갑은 소정한테 필요한 장비였다.

“아…. 진짜 경매장을 너무 일찍 간 건가? 역시 이 천호동 럭키 걸의 힘이란….”

“경매장에서 수십억을 들여 장비를 구매했는데, 똑같은 장비가 던전에서 나오는 운이 좋은 탱커가 여기에 있다? 뿌슝뿌슝?”

뒤에서 들려오는 농담에 현아가 찌릿 유나를 노려보았다.

이번 던전을 공략하면서 【Gear Score - 200】 짜리의 탱커용 장비는 무려 세 개나 쏟아져 나왔다. 저번 던전에서 획득한 전리품들까지 더하면 탱커 한 명을 반쯤 풀 무장을 시킬 수 있을 정도의 숫자였다. 심지어 겹치는 부위조차도 없었다.

“……음?”

그렇게 공략을 마치고 던전을 빠져나온 민국은 자신들이 나오는 던전의 입구를 향해 플래쉬를 터뜨리는 기자 무리들을 볼 수 있었다. 최소 열댓 명은 되어 보이는 숫자였다.

“이래서 스타의 숙명이란…. 저희들은 먼저 가서 정리를 하고 있을게요. 천천히 인터뷰하고 오세요.”

뒤따라 나온 예린이 상황을 파악하고는 민국의 어깨를 꾹꾹 주무르더니 슬쩍 앞으로 밀었다. 그리고는 팀원들을 인솔해 클랜 차량으로 향했다. 그녀들도 팀 GGW 의 일원이었지만, 기자들도 그녀들에게는 별 관심이 없는지 민국에게만 카메라를 집중하고 있었다.

“시간이 없으니 짤막하게만 질문을 받도록 하겠습니다. 저도 해야 일이 제법 많아서요.”

민국이 앞으로 나서자 인터뷰 요청이 물밀 듯이 쇄도했다. 기자들의 숫자가 우글우글 할 정도로 많지는 않았지만, 여럿이서 동시에 소리를 지르니 머리가 어지러울 지경이었다.

“아, 잠깐잠깐. 제가 대답할 입이 하나뿐인지라 질문도 하나씩만 받겠습니다. 거기 포니테일의 여성분?”

“해롤드 던전의 유별희입니다. 이번에도 【B – 6】 던전의 공략에 성공하셨는데요. 올해 레이드자격증을 딴 신입 랭커로써는 괄목할 만한 성과라고 알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

질문의 내용은 평범하면서도 국민들의 사기를 고취시키려는 대답을 하게 만들려는 목적이 가득 담겨 있었다. 아무래도 어둠 괴물과의 전쟁이 진행 중인 상황에서 다른 나라도 아닌 대한민국의 공대장이 이러한 활약을 보이고 있다는 사실을 알리려는 것 같았다.

그리고 민국은 그런 기자들의 의도에 맞춰 듣기 좋은 대답만을 입에 올렸다. 굳이 기자들과 이야기를 오래 나누고 싶지도 않았던 데다가 영웅들의 활약에 일희일비라는 사람들에게 조그마한 희망이라도 주고 싶었던 탓이었다.

그러던 도중이었다.

“혹시 메모리아의 김성철 영웅에 대해 알고 계십니까?”

“메모리아요?”

갑작스러운 질문에 민국이 고개를 갸웃했다. 어디선가 들어본 것 같은 이름이었지만, 딱히 기억에 없는 것을 보면 그냥 스치듯 들은 모양이었다.

“아뇨. 그쪽 분들하고는 딱히 친분이 없어서요.”

민국이 짧게 대답했다. 더 이상의 할 말도 없었다. 그리고 민국은 자신에게 질문을 던졌던 기자의 얼굴이 약간이지만 굳어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뭔가가 있다는 느낌에 반사적으로 말이 튀어나왔다.

“혹시 그분과 관련해서 제가 모르는 무슨 일이라도 있는 건가요?”

“아, 음…. 전선에서 활동을 하시는 국내 영웅 중 남자 영웅은 네 명이 있다는 사실은 알고 계시나요?”

“네, 클랜 동료들에게서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 중 김성철 영웅이 한민국 영웅하고 똑같은 힐러 클래스라는 것은요?”

아…. 이제야 기억이 났다. ‘GGW 의 일기장’이라 부르는 자신들의 SNS에 이상한 댓글을 달아놓은 녀석이 바로 김성철이라는 놈이었다. 메모리아가 아닌 R’s 클랜을 선택한 자신의 판단력에 이상하다는 글을 올렸었던가?

그리고 민국은 그런 김성철의 댓글에 자신의 아이디로 답글을 달았었다.

Shining_Kim [남자 영웅 선배로서 위험한 길을 선택한 네가 자랑스럽다. 근데, 공대장이라면서 판단력은 좋지 않아 보이네. R’s 클랜이라니…. 어쨌든 열심히 성장하렴.]

└ R’s Han [네. 저도 조만간 【B – 1】에서 뵙겠습니다.]

얼핏 보면 별 문제가 없어 보이는 댓글이었다. 선배의 충고를 받아들이는 훈훈한 후배의 대답.

그러나 민국이 댓글을 단 속내는 메모리아라는 대형 클랜에서 큰 지원을 받으면서 4 년이나 활동한 주제에 아직까지도 공략한 던전의 최고 난이도가 【B – 1】 밖에 되지 않는 것에 대한 비꼼이 담겨 있었다.

물론, 그 정도의 활약도 이세계의 레이드 수준에서는 상당한 실력이었다. 상위 1 % 는 아니지만 20 % 안 에는 충분히 들어갈 수 있을 정도? 다만 자신의 눈에는 미치지 못할 뿐이었다.

일단 초면에 남을 평가하는 인성부터가 글러먹었다. 여기저기서 떠받들어지는 남자 놈이라 그런 건가?

“김성철 선배님의 명성은 팀원들에게 들어서 알고 있습니다. 아마 【B – 1】 던전까지 공략에 성공하셨죠?”

“네, 그렇습니다. 김성철 영웅과 관련해 최근 한민국 영웅이 SNS 에 올린 글이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김성철 영웅이 주로 활동하고 계시는 【B – 1】에서 조만간 뵙자고 올린 글이었는데요. 그것을 가리켜 김성철 영웅은….”

“어…음.”

민국이 재빨리 말을 끊었다. 괜히 쓸데없는 녀석하고 엮일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그냥 넘어가고 싶은 생각도 없었다. 걸어오는 시비는 받아주는 게 인지상정이자 빌런을 꿈꾸는 엑스트라에 대한 예의였다.

“저는 최대한 빨리 상위 레이드로 향할 생각입니다. 하지만 준비의 시간도 필요합니다. 저희 클랜의 재정이 좋지 못해 전폭적인 지원은커녕 부활석을 사용하는 것도 부담스러울 정도거든요.”

“그래도 R’s 는 랭커 클랜이 아닙니까? 다른 중소 클랜들에 비한다면 제법 많은 숫자의 부활석을 지원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화제가 살짝 돌아가자 다른 기자가 재빨리 끼어들었다. 그리고 민국이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그렇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한 달에 열다섯 개의 부활석을 지원받고 있습니다. 나쁘지 않은 편이지요. 그렇지만 저희 팀은 이번 달에만 서른 번이 넘게 던전을 공략했습니다.”

“부, 부활석을 사용하지 않으시고 던전에 진입하신건가요?”

“설마요. 다음 달 것까지 미리 정산을 받았죠. 정확히 말하면 다다음 달 분량까지 받았습니다. 그래서 지금 제가 들고 있는 부활석이 저희들의 마지막 생명줄이라고 할 수 있죠. 이거 다 쓰면 던전을 돌고 싶어도 못 돌아요.”

사뭇 진지한 민국의 농담에 기자들이 피식 웃었다. 물론, 그렇지 못한 기자들도 있었다. 다른 클랜들과 친분이 있는 기자들이었다.

“장미 기사단의 장비 지원은 어떠한 편인가요?”

“자세한 사항은 밝힐 수는 없습니다만, 현재는 팀원들 개개인의 사비로 장비를 구매하고 있습니다. 저도 계약금을 털어서 구매했고요.”

“R’s 클랜의 지원은 랭커 클랜이라 말하기에는 굉장히 좋지 않은 편인데요. 혹시 이적을 하실 생각은 없으신가요?”

“계약서에 적힌 내용은 신성한 것이라 알고 있습니다. 계약 기간이 끝날 때까지는 R’s 클랜에 남을 예정입니다.”

당연하지만 이러한 민국의 인터뷰는 약간의 편집을 거쳐 그 날 저녁 바로 매스컴을 탔다.

- 장미 기사단의 장비 지원은 어떠한 편인가요?

- R’s 클랜의 지원은 랭커 클랜이라 말하기에는 굉장히 좋지 않은 편인데요. 혹시 이적을 하실 생각은 없으신가요?!

그리고 민국의 인터뷰 내용은 우연히 남자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던 로즈 그룹의 3 세, 조수영의 눈에도 들어왔다.

“저 남자가 우리 클랜의 영웅이라고?”

방송에서 인터뷰를 하는 남자의 얼굴을 확인한 조수영은 정확히 5 초간 입을 열지 못하고 멍하니 있었다. 그리고는 고개를 저으며 자신의 눈을 비비적거렸다.

자신이 지금 작업을 걸고 있는 남성 영웅 못지않을 정도로 빼어난 외모를 자랑하는 남자가 기자들을 향해 미소를 보이고 있었다. 게다가 공대장으로 활약을 하는 영웅이라 그럴까? 인터뷰를 하는 행동 하나하나에 알 수 없는 기품이 담겨 있는 느낌이었다.

재벌 3 세인 자신에게 딱 어울릴 것 같은 인물이었다.

다음화 보기―――――――――――――――――――――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