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영웅 소녀 전쟁-55화 (55/486)

EP.55 관계의 복잡함

“야, 얘들 치워.”

그 한 마디에 조금 전까지도 조수영을 만족시키려고 노력하던 남자 두 명이 옷도 제대로 챙겨 입지도 못한 채 밖으로 끌려 나갔다.

“한민국에 대해 알고 있는 것들 말해봐.”

조수영의 끈적끈적한 목소리에 그녀의 비서가 깍듯하게 말했다.

“올해 R’s 클랜에 입단한 신입 4 팀 GGW 의 공대장입니다. 서울 영웅학교 45 기로, 영웅학교의 성적은 그다지 좋은 편이 아니었지만, 힐러로 클래스를 전직한 이후 포텐이 터졌다는 추측입니다.”

“클래스 변경? 그게 쉬운 건 아니라고 들었는데….”

조수영이 고개를 갸웃했다. 클랜의 운영에는 큰 관심이 없었지만, 그래도 귀동냥으로 들은 것들은 굉장히 많았다.

“애당초 적성에 맞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원거리 딜러였을 시절 평균 기여도는 C에서 C+사이에 불과했지만, 힐러로 활동하는 지금은 평균 기여도가 A가 조금 넘는 수준입니다.”

“그게 어느 정도지?”

“국내 순위로만 따지면 힐러 랭킹은 1 위, 신입 전체 랭킹으로는 5 위 안에 드는 수준입니다.”

5위. 힐러 랭킹만 따지면 1 위였지만, 전체 랭킹이 5 위라는 사실이 수영은 조금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런 기색을 눈치 챈 비서가 재빨리 설명을 덧붙였다.

“동일 【Gear Score】로 따지면 압도적인 1 위입니다. 다만, 한민국 공대장의 【Gear Score】가 낮은 편이라 순위가 조금 떨어진 것으로 추측됩니다. 거기에 신입 공대장으로는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B – 6】 던전의 공략에 성공하며 세계적인 공대장이 될 가능성을 밝혔습니다.”

“협회의 랭킹 순위는?”

“아직 갱신된 것은 없지만, 다음 달 초에 갱신이 되면 신입 랭킹 순위에 확실히 이름을 올릴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이렇게 들으니 또 굉장히 마음에 들었다. 여성 영웅도 아닌 남성 영웅이 이런 활약이라니….

“예상 포텐셜은?”

“10 점 만점에 9.5 이상으로 추정 중입니다. 과거 장미 방패단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박다영 공대장 이상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특히 정신적인 면에서 높은 점수를 주고 있습니다.”

비서의 보고를 들으며 수영은 화면에 나오는 잘생긴 남자에게 점점 더 관심이 쏠리고 있었다. 이제 보니 외모만 뛰어난 게 아니라 능력도 대단했다. 자신이 거슬리게 여기는 오현정이 장담을 한 이유가 있었다.

“인터넷에서는 잘만 성장한다면 박다영을 능가하는 공대장이 될 재목이라고 평가하는 모양입니다. 【B – 6】 던전에 대한 여파가 제법 큰 지라 다음 1/4 분기에는 세계 랭킹에도 이름을 올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흐으응….”

조수정이 길게 콧소리를 내었다. 아무래도 조만간 클랜 하우스를 방문할 일이 생길 것 같았다. 오랜만의 나들이였다.

* * *

《$ 423,221 - R’s 클랜》

【B – 6】 던전 두 곳을 클리어하고 획득한 전리품의 정산금이 통장으로 입금이 되었다. 42 만 달러. 【Gear Score – 200】 짜리 아이템을 두 부위를 장만할 수 있는 거금이었다.

“이래서 영웅들이 다들 부자라는 거구나?”

통장에 찍힌 액수를 보며 민국이 말했다. 고작 세 단계의 난이도 차이에 불과한데 【B – 9】 를 클리어 할 때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큰 소득이었다.

“다들 그렇지는 않지. 우리처럼 이렇게 【B – 6】 던전을 클리어 하는 신입들은 국내는커녕 세계에도 존재하지 않을 걸? 대부분의 신입 영웅들은 기껏해야 일주일에 한, 두 번 【B – 9】를 도는 게 정상이라고. 그리고 부활석 가격도 생각해야지.”

“아…….”

생각해 보니 그랬다. 어찌되었든 민국은 이 돈으로 자신의 장비를 업그레이드 할 생각이었다.

모바일 가상현실게임인 GGW 에서도 그랬지만, 보스 몬스터들은 꼭 자신의 원하는 전리품을 뱉지 않았다. 결국 꼬박꼬박 돈을 모아서 장비를 한 부위씩 맞추는 게 스펙 상승이 훨씬 빠를 것 같았다.

【B – 6】 의 상위 던전인 5 난이도를 공략하기 위해서는 장비 스코어가 최소 200 정도는 되어야 했다. 【B – 5】 난이도의 던전에서 기본적으로 떨어지는 장비의 수준이 200 이상이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B – 1】 까지 최종적으로 장비 스코어를 380 까지 맞춰야 했다. 그리고 【B – 1】에서 처음으로 등장하는 10 인 보스 몬스터를 쓰러뜨리고 얻을 수 있는 장비 아이템으로 【Gear Score】를 450 까지 올리고 A 등급의 도전하는 게 영웅들이 밟는 정석적인 코스였다.

민국 역시 이와 비슷한 길을 걸을 생각이었다. 정석 코스라는 길이 있는데, 굳이 모험을 할 생각은 없었다. 아무리 자신의 실력이 뛰어나다 하더라도 영웅의 성급과 장비의 한계는 이겨낼 수 없었다.

모두 자신들의 장비에 욕심을 내는 모양인지 민국이 정산금으로 장비를 구입하러 간다는 말에, 다들 한 명도 빠지지 않고 민국과 합류하기로 했다. 이유는 다들 동일했다. 부족한 부위를 업그레이드 하고 겹치는 장비는 판매를 한다는 것이었다.

“와, 단체 데이트도 좋네요?”

“공대장님! 설마 경매장만 들렸다가 쿨하게 헤어지는 건 아니겠죠?”

“……그러면 밥이라도 먹을까요?”

“커피도요! 제가 살게요!”

그렇게 새로운 장비를 구입하고 남은 시간은 근처의 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커피 한 잔 하면서 수다를 떨기로 했다. 영웅 다섯이 모여서 그런지 주된 화제는 다음번에 공략할 던전에 관한 이야기였다.

“늪의 수호자 켈림? 공허 감옥을 공략하실 생각이세요? 으음….”

민국의 말에 예린이 낮게 신음했다.

늪의 수호자 켈림. 4 등급 보스 몬스터 중에서도 난이도가 상당히 높다고 알려진 녀석이었다. 특히나 전투에 참여하는 영웅을 즉사 시키는 패턴이 있어서 공략이 굉장히 까다롭다고 알려져 있었다.

상위 레이드를 뛰는 영웅들 중에서도 ‘늪의 수호자 켈림’의 공략 업적이 없는 이들이 30 % 가 넘을 정도니 그 만큼 켈림을 공략하려는 팀은 많지가 않았다. 특수 개체보다도 더욱 까다롭다는 평가를 받기 때문이었다.

오렌지급 결정만 떨어뜨렸어도 4 성 특수 개체가 되었을 테지만, 그렇지 않은 까닭에 켈림이 있는 공허 감옥은 【B – 6】 난이도를 받았다. 하지만 【B – 5】 이상의 난이도를 자랑하는 【B – 6】 이었다.

“하필이면….”

“그 켈림이라는 녀석에게서 얻고 싶은 아이템이 생겼거든.”

민국이 예린의 말을 끊었다. 무턱대고 켈림을 공략하려는 것은 아니었다. 아무리 자신이 고인물이라 해도 쉬운 길이 있는데, 굳이 어려운 길로 갈 정도로 멍청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민국이 뜻하는 바를 알아챈 김소정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클래스 스톤을 말하는 건가요? 수호기사?”

“딩동댕.”

‘늪의 수호자 켈림’ 4 등급 보스 몬스터인 주제에 A 등급 클래스 스톤을 전리품 상자에서 드랍하는 녀석이었다. 클래스 명은 ‘수호 기사.’ 이름 그대로 탱커의 클래스 중 하나였다. 특징은 아군 보호 특화였다.

“확실히…….”

아군을 보호할 수 있는 스킬로 인해 수호 기사로 전직을 하는 탱커들은 제법 많았다.

다만, 성급과 장비에 관계없이 영웅을 즉사 시키는 켈림의 특수한 공격 패턴 때문에 웬만큼 레이드에 노하우가 쌓인 영웅들이 아니면 수호 기사의 클래스 스톤을 경매장에서 직접 구하려고 했지, 켈림을 잡으려고는 하지 않았다.

“사실 나중을 대비해서 미리 클래스 스톤을 구매할 생각이었는데….”

탱커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은 클래스라 그런가? 【클래스 스톤(A) - 수호 기사】 의 가격은 최소 금액이 무려 315만 달러로 비싸도 너무 비쌌다. 결국 직접 던전을 뛰어서 얻어야겠다는 생각밖에 할 수가 없었다.

《공허 감옥 - ‘늪의 수호자 – 켈림’의 공략법

▷ 기본적으로 늪의 수호자 켈림은 세 가지의 공격 패턴을 가지고 있습니다. 전방 좌우 휘두르기, 대검 올려치기 그리고 랜덤한 대상을 선택해 기절 상태에 빠뜨리는 뒷목 후리기입니다.

▷ 파티의 탱커는 전방 좌우 휘두르기, 대검 올려치기와 같은 켈림의 공격을 잘 막아낼 수 있어야 합니다. 특히, 올려치기를 맞을 경우 켈림의 공격을 연이어서 허용하게 되므로 힐러의 부담이 크게 가중됩니다. 뒷목 후리기는 켈림이 노려보는 대상을 공격하므로 본인이 노려진다면 바로 자리를 피해야 합니다.

▷ 공허 버프와 저주. 켈림 공략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켈림은 일정 시간마다 공허 버프를 영웅에게 겁니다. 그 대상자는 켈림에게서 가장 멀리 떨어진 영웅입니다. 그리고 버프를 시전하면서 대상자에게 공허 폭탄을 던지게 되는데, 대상자는 공허 버프를 받은 직후 곧바로 폭탄이 떨어지는 자리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 공허 폭탄은 켈림이 공허 버프를 시전 할 때 마다 던지는 횟수가 한 번씩 늘어납니다. 만약 네 번째로 공허 버프를 받았다면 켈림이 폭탄을 던지는 횟수도 네 번이나 됩니다.

▷ 공허 버프를 받은 영웅은 일정 시간 자신의 성급이 늘어나며 더욱 강한 마력을 사용해 전투를 치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공허 버프를 두 번 이상 받으면 즉사하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공허 버프를 받은 영웅은 켈림에게서 가장 멀리 떨어지면 안 됩니다. 특히 뒷목 후리기를 피할 때를 가장 조심해야 합니다.

▷ 켈림 공략의 주의점은 탱커를 제외한 네 명의 영웅이 공허 버프를 한 번씩 돌아가면서 받기 전에 켈림을 쓰러뜨려야 하는 점입니다. 만약 딜러들의 딜링이 부족하다면 누군가가 희생해서 시간을 벌어야 합니다.》

“켈림의 패턴 자체는 간단합니다. 뒷목 후리기는 잘 피하고, 공허 버프는 두 번 먹지 말고. 그리고 탱커는 켈림의 공격을 잘 막아내고.”

민국의 말에 모두들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말은 쉬웠다. 그러나 말로 레이드를 성공시킬 수 있으면 어둠 괴물과의 전쟁은 이미 인류가 승리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누가 가까이 붙고 떨어졌는지는 어떻게 판단해야 되죠?”

“그냥 다음 대상자가 가장 멀리 있으면 됩니다. 거리가 애매하던 제가 리딩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수많은 레이드 경험이 있는 민국에게 팀원들의 거리 조절쯤은 어려운 게 아니었다. 만약 모바일 가상현실게임처럼 스무 명으로 이루어진 공대였다면 조금 빡빡했을지도 몰랐다. 그러나 GGW 는 고작 다섯 명으로 이루어진 팀이었다.

“던전을 공략하기에 앞서 팀 훈련을 진행하실 건가요? 혹시 하시게 된다면 어떠한 방식으로 하실 건가요?”

“어렵지 않을 겁니다. 거리 조절과 함께 제 리딩에 빨리 반응해서 움직이는 게 전부일 테니까요.”

솔직히 말해 딜러들의 딜링은 걱정되지 않았다. 아마 저번 던전에서 딜러들의 합공을 보지 못했더라면 켈림의 공략을 조금 생각해 봤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김소정, 정예린, 최유나로 이루어진 딜러진의 호흡은 제법 괜찮은 편이었다.

“그럼 바로 가서 훈련을 해야겠네요.”

가장 연장자인 소정이 그렇게 말하며 몸을 일으키려고 했다. 공략할 던전이 정해진 까닭에 마음이 살짝 급해진 모습이었다.

“아, 그러면 계산은 제가 할게요.”

이어서 민국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신이 팀원들을 이끄는 공대장이기도 한 까닭에 민국은 그렇게 말하며 본인이 계산하기 위해 카드를 꺼냈다. 하지만 그런 민국의 행동을 소정이 막았다.

“제가 낼게요. 어차피 제 돈이 공대장님 돈이잖아요.”

“네…?”

민국의 고개가 절로 갸웃했다. 네 돈이 내 돈이라니?

“제가 돈을 벌 수 있게 해주는 사람이 공대장님이시니까요. 그냥 공대장님의 돈인데 제 지갑에 잠시 보관해 놓은 거라고 생각하세요.”

“…….”

뭔가 이해하기 힘든 대답이었지만, 소정의 말을 들은 세 명의 여인은 다들 탄성과 함께 고개를 주억이고 있었다. 덕분에 민국은 멋들어지게 꺼낸 카드를 다시 지갑에 넣어야만 했다.

공대장의 재력을 팀원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는데…. 오늘은 날이 아닌 모양이었다.

다음화 보기―――――――――――――――――――――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