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59 관계의 복잡함
“이런 퀘스트를 던져 준 카오스랑 뿌우가 나쁜 놈일까, 아니면 내가 운이 지지리도 없는 걸까….”
아니나 다를까 연속으로 다섯 번. 그 중 공허 버프의 패턴이 꼬이는 바람에 한 번 전멸한 것을 포함해 부활석을 여섯 개나 사용했음에도 불구하고 ‘늪의 수호자- 켈림’은 클래스 스톤은커녕 한 개의 부활석 조차도 뱉지 않았다.
오히려 켈림을 만나기 전에 상대해야 되는 보스급 몬스터 녀석에게서 부활석 두 개를 얻은 게 더 큰 성과였다.
장비도 마찬가지였다. 【B – 6】 에서 등장하는 4 등급 보스 몬스터면 장비 스코어 170에서 200 사이의 아이템을 드랍 하는데, ‘공허 던전’ 에서 얻은 17 개의 장비 아이템 중 최대 스코어인 【Gear Score – 200】 짜리는 꼴랑 두 부위 밖에 되지 않았다.
그것도 팀 GGW 에는 필요가 없는 부위로, 전부 탱커 아이템이었다.
“역시 비싼 가격을 하네. 클래스 스톤이 잘 안 나오긴 해. 그렇지?”
이미 이런 상황을 예상했다는 듯 현아가 씩씩한 목소리로 말했다. 참으로 긍정적인 아이였다. 어쨌든 오늘의 레이드는 이것으로 종료를 해야 할 것 같았다.
하루에 다섯 번이면 충분히 많이 돈 편이었고, 방금 전 레이드에서 실수가 나왔던 것을 생각하면 그만큼 팀원들의 피로도가 높아졌다는 의미하기 때문이었다. 아직 진정한 노가다의 길을 걷지 못한 이들에게 계속된 뺑뺑이는 오히려 비효율만을 낳을 뿐이었다.
물론, 이런 것들을 다 무시하고 계속해서 뺑뺑이를 돌 수도 있었다. 그러나 전멸 한 번에 십만 달러나 하는 부활석이 날아가는 만큼 레이드는 신중하게 결정해야 했다.
“자, 그러면 오늘의 일정은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모두 고생하셨어요.”
“수고하셨습니다!!!”
퀘스트는 총 네 번 성공했다. 마지막 도전은 원트 클리어가 아니었으므로 집계가 되지 않았다. 퀘스트를 클리어 하려면 앞으로 최소 여섯 번 이상은 ‘공허 감옥’을 더 돌아야 했다.
“오늘도 던전을 여러 번 도셨나 봐요? 한민국 공대장님? 이것들은 전부 경매장에 내놓은 물품들인가요?”
클랜 하우스의 전리품과에 도착하자 와인색의 단발머리를 한 직원이 민국을 반겼다.
“네. 전부 판매되는 데 얼마나 걸릴까요?”
“보통 3, 4일 정도 걸리긴 하는데…. 장비 스코어가 높은 아이템들이 아니니 좀 더 빨리 팔릴 수도 있겠네요. 영웅 협회에서도 최근 낮은 스코어의 장비 아이템을 구매하고 있기도 하고요.”
“협회에서요?”
민국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영웅 협회에서 신규 영웅들에게 부활석 뿐 아니라 장비까지도 지원을 하려는 것일까? 그러나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런 게 아니었다.
어둠의 괴물들에게 신음하는 다른 나라, 특히 영웅 전력이 심각하게 부족한 동남아의 국가들에게 따로 장비를 지원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국내의 영웅 전력이 대단치 못한 만큼 미국처럼 직접적으로 공격대를 지원하지는 못하더라도, 장비 정도는 제공하려는 움직임이었는데 세계 영웅 협회에서의 요청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하는 일인 모양이었다.
“동남아에는 이 년 내에 폭발할 것으로 예상되는 A 등급 던전만 해도 열 세 곳이나 된대요. 일단 미국의 공격대가 던전 타이머를 초기화시키기 위해 공략에 들어간다고 하는데…. 그 중에 【A – 1】 이 끼어 있어서 잘 될지 모르겠어요.”
와인 머리색의 직원은 예쁜 미소를 지으며 설명을 이어나갔다. 하지만 민국은 그런 직원과의 대화에 집중을 할 수가 없었다. 갑자기 퀘스트 하나가 또 뜬금없이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오늘만 두 개나 받게 되는 퀘스트였다.
《어둠의 괴물들에게서 신음하는 동남아 국가들을 구원하세요! 던전 난이도가 상당한 만큼 당장은 불가능하겠지만, 한민국 공대장의 능력이라면 충분히 해내리라고 믿습니다. 쉽지 않은 일인 만큼 카오스님이 창조하신 이 뿌우가 화끈한 보상을 준비했습니다!
[목표] - 동남아 국가의 던전 중 【A – 1】 이상 난이도를 지닌 던전을 전부 클리어 하라!(세 곳이 있어요!)
[기간] - 2 년 4 개월 내.
[보상] - 【클래스 스톤(S) - 레전드급】, 부활석 500 개, 마스터 티켓 3 장.
아직 뉴비에 불과하신 한민국 공대장님에게는 보상이 어떤 것이 감이 오지 않으시겠죠? 레전드 등급의 클래스 스톤은 전 세계에서 단 두 개밖에 드랍되지 않은 희귀한 아이템입니다.
마스터 티켓은 【A – 1】 던전을 공략하면 아주아주아주아주 드물게 획득할 수 있어요! 무려 최대 【Gear Score – 1000】 까지의 아이템을 얻을 수 있는 환상의 티켓이죠.
만만치 않을 거예요! 그러니까 길게 보고 아, 기간이 조금 짧네요? 서둘러 준비하세요! 당신을 해낼 수 있을 겁니다! 유 캔 두 잇!》
‘이 녀석 스토커인가?’
분명 자신과 직원과의 대화를 듣고 이런 퀘스트를 내준 것 같은데…. 민국이 주위를 둘러보았으나 보이는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면 이것들은 제가 전부 정리해 놓을게요. 어떻게…, 물건이 팔리면 공대장님에게 따로 연락을 드릴까요?”
“아뇨, 괜찮습니다. 나중에 정산표로 확인해 보겠습니다. 당장 돈이 급한 것도 아니고요.”
“알겠습니다. 그러면 오늘도 좋은 하루 되세요.”
자신에게 호감을 보이는 클랜 직원을 향해 민국도 그녀의 눈을 바라보며 미소와 함께 고개를 꾸벅 숙였다. 일단 전리품은 처리했으니, 다음은 보고서를 쓸 차례였다.
대체 이런 걸 왜 작성하는가에 대한 의문이 들었지만, 이런 보고서 하나하나가 신입 영웅들에게 도움이 된다고 하니 안 쓸 수도 없었다. 그렇게 영웅 도감의 기록을 참조하며 다섯 번의 레이드와 관련된 보고서를 전부 작성한 민국이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클랜 하우스를 나설 때였다.
“한민국 공대장님?”
한 여성이 민국의 이름을 불렀다. 부담스러울 정도로 미소를 환하게 짓고 있는 여성이었다.
“어…?”
얼굴이 익숙한 게 최근에 만난 적이 있었다. 그것도 클랜 하우스에서 말이었다. 로즈 그룹의 3 세, 조수영의 비서였다.
“늦게 퇴근을 하시네요?”
“레이드 보고서를 작성해야 해서요.”
“와아. 대부분의 공대장들은 보통 그런 일을 부공대장에게 시킨다고 하던데…. 공대장님께서는 직접 처리하시나 봐요.”
아, 그런 꿀 팁이…. 하지만 팀 GGW 에는 부공대장을 맡길 만한 인물이 없었다. 다들 각자의 임무는 완벽히 수행할 정도로 개인 능력은 뛰어났지만, 전황을 넓게 보고 정확한 판단으로 오더를 내릴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영웅은 아무도 없었다.
“그런데 비서님께서 여기는 어쩐 일로?”
“공대장님을 만나러 왔어요. 사실, 공대장님에게 부탁을 하나 드리려고요.”
“부탁요?”
사적인 친분도 없는 이가 갑작스럽게 부탁이라니. 민국의 고개가 모로 기울었다.
“네. 구단주님께서 구단의 미래를 책임지실 뛰어난 유망주이신 한민국 공대장님에게 많은 관심을 보이고 계세요.”
뛰어난 유망주라고 관심을 보이는 것일까? 아니면 남자 영웅이라서 관심을 보이는 것일까? 정확한 사실은 알 수 없었다. 어쨌든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 지는 대충 짐작이 갔다. 그리고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요? 함께 식사라도 하자는 건가요?”
“어머, 어떻게 아셨죠?”
민국의 거침없는 말에 비서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놀란 표정을 하는 연기가 굉장히 자연스러웠다. 저런 연기까지도 능해야 재벌의 비서 역을 맡을 수 있는 모양이었다.
“전에 식사 이야기를 꺼냈던 게 기억이 나서요. 뭐, 저는 상관없는데 재벌 3세면 많이 바쁘지 않나요?”
“호호호. 바쁘시더라도 한민국 공대장님이 초대를 받아들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당장이라도 달려오실 분이랍니다. 그만큼 공대장님에 대한 관심이 굉장히 많으세요.”
그게 어떤 의미의 관심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뭐, 재벌의 초대를 받아 목구멍에 기름칠을 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기는 했다. 치킨이나 삼겹살 같은 것을 사지는 않을 테니 말이다.
* * *
식사 장소는 한 번 방문한 적이 있던 곳이었다. 정예린과 함께 영웅 모임에 참석하느라 찾았던 고급 호텔이었다. 식사 음식도 괜찮았고, 호텔방의 침구도 좋았던 기억이 있는 곳이었다.
“초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야 말로요. 이렇게 한민국 공대장과 빨리 만날 수 있을 줄은 몰랐는데, 운이 좋은 걸요?”
비서의 안내를 받아 호텔 중층의 고급 식당에 도착하니 신기하게도 조수영이 먼저 기다리고 있었다. 재벌 3세 라더니 생각 외로 바쁘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음식은 제가 미리 주문했어요. 나쁘지 않은 식당이니 실망하지는 않을 거예요.”
“감사히 먹겠습니다.”
재벌 3세가 장담한 대로 코스로 나오는 음식은 전부 최고였다.
미각이 쓰레기인지라 아무거나 가리지 않고 잘 먹는 민국이었지만 그런 쓰레기 같은 혀도 감동시킬 정도로 음식의 맛은 대단했다. 어째서 호텔 요리가 비싼지 절로 수긍이 갈 정도였다.
그나마 아쉬운 곳은 양이 조금 적다였는데, 막상 코스 전체를 먹고 나니 그것도 단점이 되지를 못했다. 거침없이 접시를 비워나가는 민국을 보며 수영이 의외라는 목소리로 물었다.
“굉장히 잘 먹네요? 보통 남자들은 입맛이 까다로운 편이던데….”
“까다롭다고요? 아아….”
수영과 눈을 마주친 민국이 몇 초 후 피식 웃었다. 이세계의 남자들은 그랬던 모양이지만, 자신은 달랐다. 최고로 사랑했던 음식이 가성비 쩌는 돼지 국밥이었다.
혼자 자취를 하면서 정말 아무 음식도 만들기 싫을 때는 일주일 내내 돼지 국밥으로 버틴 적도 있었다.
“전에도 말씀 드렸지만 저는 입맛이 그리 까다로운 편은 아니어서요. 아무거나 잘 먹습니다.”
“그랬었죠.”
“네. 다른 남자들하고는 좀 다르죠.”
민국이 씨익 웃으며 말했다. 뭔가 의미심장한 말이었다. 그리고 조수영은 민국이 한 말의 의미를 어렵지 않게 알아차렸다.
“그렇다면 내가 당신을 부른 이유도 알겠네? 지금 바로?”
“배도 부르니 운동하기에는 딱 좋은 시간이긴 하네요. 그런데 괜찮으시겠어요?”
“…뭐가?”
민국의 앞에 앉아있는 수영이 능글맞은 얼굴을 하며 물었다. 그녀는 운 좋게 찾아온 지금의 기회를 결코 놓칠 생각이 없었다. 재벌 3 세임에도 불구하고 남자 영웅과의 섹스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제가 조금 거친 편이라서요.”
“좋네. 나도 그런 거 좋아하는데. 의외로 이런 것에서 잘 맞네?”
수영의 대답에 민국이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에게 팔을 건넸다. 그리고는 그녀가 미리 준비한 스위트룸으로 향했다.
‘이렇게 쉽게 풀릴 줄이야!’
민국의 팔을 잡고 함께 이동하면서 수영은 속으로 환호를 질렀다.
운 좋게 클랜에 입단한 남성 영웅을 손에 넣기까지는 제법 시간이 걸릴 줄 알았다. 워낙에 주변에서 띄어주는 만큼 자존심도 그만큼 세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주변에 여성 영웅들이 넘쳐나는 까닭에 미모로는 넘어오지도 않았다.
올해 초만 해도 R’s 클랜의 구단주를 명함을 가지고 남자 영웅 한 명에게 작업을 걸다가 까인 기억이 생생했다. 그런데 이렇게나 금방 남자 영웅을 손에 넣게 되다니….
거기에 수영은 재벌 3 세 특유의 도발적인 말투와 남자를 얕잡아 보는 시선으로 인해 웬만한 남성은 기조차도 못 필 정도의 위압감을 절로 풍기고 있었다. 하지만 민국은 달랐다. 공손하기는 했지만, 다른 남자들하고는 달리 자신에게 주눅이 든 모습은 절대 아니었다.
‘이런 남자와의 섹스는….’
벌써부터 아래가 젖어오고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어제 남자 세 명과 동시에 뒹굴었었는데, 제대로 성욕을 풀지도 못했었다.
이제껏 수많은 남자를 만나고 갈아치워 봤지만 수영은 한민국 만큼은 오랫동안 가지고 놀 예정이었다. 남자 영웅인 까닭에 자신이 곁에 둬도 충분히 어울렸다. 그랬는데….
덜컥.
호텔 방문이 닫히는 순간, 민국이 돌변했다. 커다란 손이 그녀를 덮쳤다.
투두둑!
값비싼 블라우스가 그대로 찢겨지며 거칠게 좌우로 벌려졌다. 사방으로 튀어나가는 단추를 보며 수영이 놀라서 눈을 크게 떴다.
“이게 무…! 으읍!”
하지만 민국의 손길은 거침이 없었다. 순식간에 수영의 상의를 뜯어낸 민국이 그대로 수영을 벽에 밀어붙였다. 그리고는 강하게 입을 맞추며 한 손으로는 그녀의 치마 속으로 불쑥 손을 집어넣었다.
“?!”
순식간에 팬티가 젖혀지면서 민국의 커다란 손가락이 수영의 안으로 불쑥 파고들었다. 진입에 아무런 거리낌이 없을 정도로 축축하게 젖은 상태였지만, 다른 남자와는 전혀 다른 민국의 이러한 모습에 수영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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