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영웅 소녀 전쟁-65화 (65/486)

EP.65 이상한 내기

숨이 막힐 것 같은 분위기에 태연을 모시는 가정부들이 얼른 눈치껏 자리를 피했다.

그에 반해 조수영은 여유만만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매끄러운 다리를 자랑하듯 교차로 꼬면서 차를 음미하고 있었다. 여전히 시선은 태연을 향한 채였다.

“…….”

라온 그룹의 3세, 김태연의 머릿속으로 여러 생각들이 복잡하게 교차했다. 하지만 결론은 하나로 귀결되고 있었다. 자신의 앞에서 재수 없는 태도로 미소를 보이고 있는 악우의 얼굴을 일그러뜨려야 한다는 것.

그리고 라온이 로즈에게 지는 일은 결코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입가에 미소를 띠고 있는 수영을 향해 태연이 입을 열었다.

“패기가 넘친다기보다는 세상 물정 모르는 친구네. 실력은 있어 보이는데, 배경이 부실해서 그런가? 주위에 제대로 된 충고를 건네주는 사람 하나 없나봐?”

“압도적인 실력 앞에서 배경 따위는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말 못 들어 봤어?”

“하! 고작 일 년차 애송이를 믿고 그런 말을 하기에는…. 말이 좀 이상하지 않아?”

“신입도 신입 나름이지. 랭킹만 높으면 뭐해? 말했잖아, 실속이 있어야지. 그래도 메모리아가 영입한 신입들 뭐하고 있어? 우리 신입은 【B – 6】 던전도 무너뜨렸는데.”

자신의 말에 질 새라 대꾸를 하는 수영의 행동에 태연은 짜증이 솟구쳤다. 깔보는 듯 비웃는 것 같은 묘한 웃음이 연신 그녀의 감정을 자극했다. 그래서일까?

“좋아. 어디 한 번 어떤 클랜이 레이드를 잘 하나 겨뤄보자. 메모리아의 단장에게는 내가 직접 이야기를 하겠어.”

언제나 냉철하다고 평가를 받는 그녀의 차가운 이성이 악우의 앞에서 무너지고 있었다. 하지만 수영은 고작 이 이야기만을 듣기 위해 김태연의 펜트 하우스를 방문한 게 아니었다.

“흐응. 단지 그것뿐이야? 이거 천하의 라온이 너무 점잖은 거 아니야?”

“그렇게 자신 있어? 그래, 좋아. 이참에 R’s 라는 이름이 사라지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다.”

김태연의 눈매가 날카롭게 휘었다.

예전에야 잘 나가던 클랜이었지 박다영 공대장의 은퇴 이후 하락세에 접어들고 있는 R’s 는 반등의 여지가 보이지 않는 클랜이었다. 유능한 단장인 오현정이 아니었다면 망해도 진즉에 망했을 클랜이었다.

그리고 수영이 기다렸다는 듯 입을 열었다.

“어디 할 수 있다면 해보던가. 좋아! 신나연 걸어. 우리가 이기면 신나연 우리 쪽으로 보내주는 걸로. 가격은 적당히 쳐줄게.”

“뭐, 뭐어?! 미친 거 아니야?”

그런 수영의 말에 태연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3 년차이자 5 성 영웅인 신나연. 그녀는 메모리아 클랜에서 가장 촉망받고 있는 딜러 유망주였다. 동급 년차의 딜러 중에서는 압도적인 실력으로 랭킹 1 위를 달리고 있었다. 협회에서 평가하는 포텐은 9 정도로 지금까지는 포텐에 걸맞은 성장세를 보이고 있었다.

더불어 클랜 수뇌부는 앞으로 1, 2 년 내에 그녀를 1 군으로 올려 A 난이도의 레이드를 경험시킬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그만큼 일찌감치 차기 1 군 딜러 중 한 명으로 낙점해 놓은 메모리아의 미래나 다름없는 영웅이었다.

특히나 메모리아를 대표하는 영웅이자 대한민국 딜러 랭킹 1 위인 강채영과 함께 제대로 성장한 신나연이 1 군에서 활약하게 된다면 메모리아는 대한민국 최고의 딜러진을 갖추게 되는 셈이었다.

“대신 우리가 지면 오현정과 최선경, 김수아 줄게.”

“어…?”

그러나 뒤이어 나온 조수영의 말에 태연은 귀가 솔깃할 수밖에 없었다. 무너져가고 있는 R’s 클랜을 어찌어찌 꾸려내고 있는 오현정 단장의 능력은 업계에 속한 이들이라면 누구나 다 인정하는 바였다.

거기에 최선경은 R’s 의 1 군 힐러장이었고, 김수아는 대한민국 딜러 랭커 4 위이자 1 군 팀의 공대장을 역임하고 있는 베테랑 영웅이었다.

만약에 저 셋을 R’s 에서 빼오게 된다면? 진짜로 R’s 는 클랜의 간판을 떼어야 할 수도 있었다. 박다영이 은퇴한 마당에 1 군 팀의 공대장까지 떠난다면 클랜이 무너지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메모리아의 미래라 불리는 유망주를 내주고 저 셋을 데려올 수 있으면 응당 받아들여야 하는 조건이었다. 그러나 내기라는 것은 둘 중 한 명만 이기는 승부였다. 이긴 사람만 모든 것을 차지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게 태연의 생각이 깊어질 때였다. 수영이 히죽 웃으며 입을 열었다.

“와아…. 라온의 김태연이 왜 이리 생각이 많으실까? 후달려?”

“뭐? 뭐라고?! 하! 그래. 걸어. 네가 이기면 신나연? 공짜로 보내준다. 대신 우리가 이기면 오현정, 최선경, 김수아 셋 다 내놔. 10 억 달러줄게.”

“와아? 5 분의 1 로 후려치네? 뭐, 알았어. 어차피 우리가 이길 테니까 상관없겠다. 그러면 계약서 쓸까?”

“좋아. 어디 누가 후회하나 보자고.”

결국 수영의 이죽거림에 넘어간 태연은 단숨에 그녀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어차피 거부할 수 없는 내기였다. 그룹의 자존심이 걸린 싸움이었다. 그렇게 커다란 고래들이 싸움을 시작했고, 이제는 새우들의 등이 터질 때였다.

* * *

“메모리아가 제안을 받아들였어요.”

아침부터 클랜의 단장실로 불려간 민국과 현아를 향해 현정이 한 말이었다.

“네, 네에? 뭐라고요?!”

반사적으로 현아의 눈동자가 민국에게 향했다. 당황한 것은 민국도 마찬가지였다. 이제껏 침묵했던 그리고 얻을 것 하나 없는 메모리아가 자신의 제안을 받아들이다니? 클랜 단장이 갑자기 교체되기라도 한 것인가?

그리고 현정이 천천히 입을 열기 시작했다.

“구단주들끼리 내기가 있었던 모양이에요.”

“구단주들이라뇨?”

“우리 클랜의 구단주가 로즈 그룹의 3 세, 조수영인 것은 다 아는 사실일거예요. 메모리아도 마찬가지예요. 크게 언론에 오르락내리락하지는 않지만 라온 그룹의 3세, 김태연이 메모리아의 구단주로 있다는 것은 업계 사람들이라면 다 아는 사실이에요. 그리고 이번 논란이 벌어지면서 우리 구단주님께서 메모리아 구단주의 신경을 제대로 긁은 모양이에요.”

“으, 으음.”

민국이 낮게 신음했다. 이거 좋다고 해야 할지 아니면 나쁘다고 해야 할지….

어쨌든 요약하자면 구단주들끼리의 자존심 싸움으로 인해 자신이 한 제안이 받아들여진 모양이었다. 하지만 현정의 말은 이게 끝이 아니었다.

“한민국 공대장님께서도 당연히 자신이 있으니 이런 논란을 만드셨겠지만, 일단 제안에 성사된 이상 무조건 이겨야 합니다.”

“아무래도 클랜의 이름이 걸려 있으니….”

민국이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 정도는 자신도 알고 있었다.

“그것뿐만이 아니에요. 어휴.”

이미 구단주에게 들은 이야기가 있는 현정이 큰 한숨과 함께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생각 이상으로 격한 반응을 보이는 현정의 모습에 민국과 현아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한참 후에야 현정이 다시 입을 열었다.

“만약 우리가 지게 되면 저를 포함해 1 군 팀의 공대장과 힐러장이 메모리아로 이적하게 돼요.”

“네에?! 그게 무슨!”

둘의 눈동자가 동그랗게 떠졌다. 그것도 모자라서 현아는 입까지 쩍 벌리고 있었다.

“그리고 우리가 이기게 되면 신나연이 저희 쪽으로 오게 됩니다. 메모리아가 심혈을 들여 키우고 있는 딜러 유망주죠.”

“그, 그런가요?”

뭔가 일이 엄청나게 커진 모양이었다. 더불어 자신들이 지면 정말로 큰 일이 벌어지는 셈이었다.

● 비상! 비상! 메모리아 클랜이 한민국의 제안을 받아들였음! 한 판 붙는다!

● 와씨! 새해부터 이런 핫 이슈라니?! 멤버는?! 공격대 멤버는 어떻게 되는 것이냐?!

● R’s 는 GGW 보내겠고, 메모리아는 김성철을 포함해서 2 군 보내지 않을까?

└ 클랜의 이름이 걸렸는데 2 군을 보낸다고? 1 군이 나설 것 같은데?

└ 솔직히 그건 너무 양심 없지 않냐?

└ 이건 무조건 이기고 봐야지 그건 뭔 상관이야?

메모리아와 R’s 가 결국 클랜의 자존심을 걸고 한 판 붙는다는 말에 영웅 커뮤니티는 또 한 번 폭발했다. 당연히 수많은 방송국들도 중계에 관심을 가졌다.

그러나 양 클랜은 이번 레이드의 결과와 관련된 정보는 언론에 내보내지 않기로 최종적으로 결정했다. 패배한 측의 리스크가 너무나도 크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서로의 대결에 대해 큰 관심을 보였다.

그리고 며칠 뒤, 메모리아 클랜의 멤버구성이 R’s 에게 전해졌다. 당연히 논란의 중심이었던 김성철은 포함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나머지 넷은….

“제대로 베스트로만 꾸렸네.”

메모리아에서 보내온 이름들을 확인하던 현정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2 군 팀의 공대장은 어찌 넘어갈 수 있었다. 그런데 메모리아 1 군의 딜러장이자 대한민국 딜러 랭킹 1 위에 빛나는 강채영이 이름이 들어가 있었다. 나머지 한 명의 딜러도 1 군 소속으로 딜러 랭킹 9 위에 이름을 올리고 있는 영웅이었다.

그나마 탱커의 스펙이 낮은 편이긴 했는데, 그래도 2 군 팀의 메인 탱커였다. 적어도 오현아보다는 경험치가 월등히 앞서는 것이다.

“와, 진짜 양심도 없다.”

논란의 발단은 한민국과 김성철이 시작이었는데, 나서는 것은 1 군 팀의 멤버들이었다. 이건 아이 싸움에 어른이 나선 격이었다. 아무리 동일 장비 스코어로 나선다고 해도 레이드의 경험이 너무나도 크게 차이가 났다.

“이건 진짜…. 뭐라고 항의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요?”

현아가 어두운 표정으로 말했다. 올스타처럼 느껴지는 메모리아 멤버들에 반해 팀 GGW 는 1 년차 신입 영웅들로만 구성된 팀이었다.

“맞아요. 이건 국가 대표와 프로에 갓 입단한 연습생이 축구 대결을 펼치는 것과 똑같은 상황이라고요.”

자리에 함께한 정예린도 덧붙였다. 김소정과 최유나도 표정이 좋지 못했다. 유일하게 민국만 유유자적한 모습이었다. 그리고 민국이 팀원들을 향해 말했다.

“내가 메시이자 김현준이니까, 괜찮을 거야. 아! 그리고 메모리아 측에서 이렇게 멤버를 구성할 거면 대결 장소로 펼칠 【B – 5】 던전은 우리 쪽에서 정한다고 말씀해 주세요. 그 정도는 양보 받을 수 있겠죠?”

“그 이상도 가능할거야. 이건 진짜….”

민국의 말에 현정에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메모리아에게 부담을 주기 위해서라도 이 내용은 당장이라도 언론에 내보낼 생각이었다.

하지만 민국은 이미 상대가 누구냐에 대해서는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다. 혹시 메모리아가 이번 대결을 받아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자신들에게 유리한 던전을 찾아본 적이 있었다. 그리고 이번 대결을 위해 마음속으로 생각한 던전이 한 곳 있었다.

《얼음 협곡 – 아이스 드레이크

▷ 아이스 드레이크는 혹한의 한파라는 패시브 능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10 초 마다 아군의 생명력에 300 씩 피해를 입히므로 힐러는 광역 힐에 집중해야 합니다.

▷ 아이스 드레이크의 공격은 물기와 앞발 그리고 꼬리를 이용한 휘두르기입니다. 물기와 앞발 공격은 탱커만 주의하면 되지만 꼬리를 이용한 휘두르기는 반원형으로 움직이는 데, 범위가 상당하므로 원거리 딜러와 힐러들도 점프로 피해야 합니다.

▷ 아이스 드레이크는 뒤틀린 저주라는 마법을 사용합니다. 이는 캐스터들에게만 효과를 주는데, 캐스터들은 주문을 시전 할 때 마다 뒤틀린 마력의 저주라는 디버프가 걸리게 됩니다.

이 디버프는 주문을 시전 할 때 마다 계속해서 중첩되며 5 초 동안 주문을 멈추게 되면 뒤틀린 마력이 폭발하며 대상자에게 피해를 주게 됩니다. 중첩에 따라 데미지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게 됩니다.

▷ 아이스 드레이크는 얼음 포획이라는 스킬을 사용합니다. 전장의 모든 영웅을 자신에게로 끌어오며, 그 이후 냉혹한 한파를 사용해 주변 30 m 내의 대상에게 커다란 피해를 줍니다.

▷ 아이스 드레이크는 자신의 생명력이 일정 이하로 떨어지면 날개를 펼치고 하늘로 날아오릅니다. 그리고는 얼음 돌덩이를 전장에 떨어뜨립니다. 맞게 되면 보호막이 있다 해도 즉사 수준의 피해를 입을 수 있으니 반드시 피해야 합니다.》

바로 4 등급 특수 개체인 ‘아이스 드레이크’가 등장하는 얼음 협곡이라는 이름의 던전이었다.

그리고 이 몬스터는 디버프의 관리와 힐러의 능력이 온전히 발휘되어야만 잡을 수 있는 녀석이었다. 더욱이 【B – 5】 던전은 【Gear Score – 200】 정도가 되어야만 공략을 시작할 수 있다고 알려진 던전이었다.

이번 내기에서처럼 장비 스코어 185 로 도전을 하려면 그만큼의 실력이 받쳐줘야 한다는 말이었다. 특히 팀원들의 생명력을 책임져야할 힐러가 제 역할을 해줘야만 했다.

그 뿐인가? 공대장의 칼 같은 리딩 능력이 뒷받침 되어야만 힐러의 부담을 줄일 수 있었다. 딜러의 실력만 뛰어나다고 해서 잡을 수 있는 몬스터가 절대 아니었다.

‘결국 나와 김성철의 싸움이라는 말이지.’

그리고 힐러의 역량 대결이라면 민국은 그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가상현실 모바일 레이드게임 GGW 의 힐러 순위 세계랭킹 1 위는 날로 먹은 게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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