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영웅 소녀 전쟁-66화 (66/486)

EP.66 이상한 내기

● 메모리아 진심 양심 어디? 강채영 카드 꺼내야 될 정도로 R’s 의 신입이 무서웠던 거야?

└ 쫄모리아 인정 각.

└ 쫄!!!!!

● 민국이네 애들 던전 공략횟수 다 더해도 강채영 하나 안 되겠다. 쟤는 16 살 때부터 던전을 돈 영웅이라고.

● 아무리 한민국이라도 이건…. 솔직히 너무 시시해서 흥미가 떨어졌다. 주인공은 어디로 가고, 조연이 다 해먹게 생겼네.

멤버 리스트가 유출되자 사람들은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단순히 남자 영웅들끼리의 기 싸움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일이 점점 커지면서 어느새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랭커까지 나서게 되었던 것이다.

R’s 클랜의 단장인 현정은 메모리아의 리스트를 일부러 유출시키면서 사람들이 메모리아를 압박하기를 바랐다.

● 와, 메모리아 칼 갈았네.

└ 솔직히 저건 너무한 거 아니냐? 1 년차 유망주 상대로 강채영이 웬 말이냐?

└ 승부의 세계는 원래 냉정한 거야.

└ 승부? 이벤트 매치가 아니라?

● 솔직히 이건 메모리아 대 R’s가 아님. 로즈 대 라온이지. 그룹의 이름을 걸린 싸움이면 최선의 카드를 꺼내야 하는 게 맞음. 그게 맞는 건데……. 그래도 강채영은 너무 한 거 아니냐?

하지만 메모리아의 단장도 여간내기가 아니었다. 이미 R’s 가 그렇게 나올 것이라고 생각했던 그녀는 라온이라는 이름을 끌어들였다. 그룹을 이름을 더럽힐 수 없는, 결코 질 수 없는 내기이기에 강채영까지 출진시켜야 했다는 정당성을 확보한 것이다.

물론, 말이 전혀 안 나오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무시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공략할 던전은 민국이 원했던 대로 ‘얼음 협곡’으로 정해졌다. 강채영까지 나서게 한 마당에 그 정도는 양보하겠다는 것 같았다. 그리고 메모리아 클랜이 ‘얼음 협곡’을 전장으로 받아들였다는 이야기를 들은 민국이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잘됐네요. 한 97 % 의 확률로 저희가 이길 겁니다.”

그리고는 팀원들에게 개인적인 훈련 지침을 지시하고는 신입 4 팀의 회의실로 향했다. ‘얼음 협곡’과 관련해 세부적인 전술을 짜기 위해서였다.

미리 경험해 본 녀석이라면 상관이 없겠다만, 얼음 협곡의 몬스터들은 그렇지 않은 놈들. 어떻게 리딩을 해야 할지 머릿속으로 그려볼 필요가 있었다. 가장 주의해야 할 녀석은 아이스 드레이크였지만, 다른 놈들 또한 무조건 들이댄다고 해서 잡을 수 있는 놈들은 아니었다.

- 홀로그램 훈련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4 등급 특수 개체 아이스 드레이크를 생성합니다. 탱 1, 딜러 3, 힐러 1 의 구성입니다.

그렇게 전술을 완벽히 짠 이후에는 공략에 필요한 최적의 스킬 구성을 찾기 위해 몇 번이나 아이스 드레이크를 상대로 홀로그램 훈련을 벌였다. 확실히 혹한의 한파를 비롯해 광역 힐링이 많이 필요한 녀석인지라 전투가 길어질수록 마나가 간당간당했다.

“이건 나 혼자서로는 버티는 게 힘들겠는데…? 다른 팀원들의 도움도 받아야겠어.”

그렇게 생각을 한 민국은 각 클래스들이 사용할 수 있는 스킬 스톤들의 효과를 자세히 살피기 시작했다. 클래스에 따른 고유 능력을 비롯해 등급을 가리지 않고, 영웅들이 사용이 가능한 스킬 스톤은 수백 여개나 존재했다.

그리고 민국은 최유나의 클래스 ‘얼음 궁수’가 사용할 수 있는 스킬 중 정신 자극이라는 보조 스킬을 찾을 수 있었다. 스킬 대상자의 마나 회복력을 무려 다섯 배나 상승시켜 주는 스킬이었다.

스킬 스톤을 세 개 밖에 착용할 수 없는데다가 딜러에게는 완전히 쓸모가 없는 스킬인지라 거의 사장되다시피 한 스킬이었지만, 민국은 이번 던전 공략의 핵심으로 ‘정신 자극’ 스킬을 꼽았다.

“정신 자극이요? 아, 그거 저 하나 가지고 있어요. 기념으로 스킬 스톤을 하나씩 모으고 있거든요.”

다행히 최유나도 스킬 스톤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리고 스킬 스톤을 챙기라는 민국의 지시에 아무런 의문도 없이 알았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민국이 얼음 협곡의 공략이 모든 정신을 집중하던 그 시각, 메모리아 클랜의 단장실에서는 고성이 터져 나오고 있었다.

“그게 말이 돼?! 신나연을 R’s 로 보낸다니?!”

“이번 내기에서 이기면 문제없는 일이야.”

단장의 말에 강채영은 끓어오르는 속을 꾸욱 누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아아, 그래서 나보고 【B – 5】 따위의 던전을 공략하라고 말을 했던 거구나? 아니, 무슨 내가 어린애야? 그런 던전을 다 공략하게?!”

강채영은 이번 논란에 자신이 끼어들게 된 사실이 정말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자그마치 딜러 랭킹 1 위의 영웅이었다. A 난이도 그것도 상급의 던전에서 활동하는 자신이 후줄근한 장비로 갈아 끼고 【B – 5】 의 던전에서 햇병아리들을 상대로 공략 속도를 체크한다? 자존심이 상하다 못해 마구잡이로 짓밟힌 느낌이었다.

‘게다가 무슨 영웅이 물건도 아니고!’

하물며 이번 내기에는 자신이 심혈을 들어 키운 후배인 신나연이 걸려 있다고 했다. 강채영의 눈이 돌아가지 않을 리 없었다.

“윗선에서 내려온 지시야. 라온의 황태손이 직접 말을 한 거라고.”

“아니, 상대는 1 년차 햇병아리잖아?! 아무리 잘났다 해도 다년차로 활동한 애들이 이번 영웅 자격시험에 통과한 녀석들에게 진다? 그러면 욕먹을 각오는 충분히 해야지! 씨발! 영웅 자격증에 잉크도 안 말랐겠다!”

강채영의 고성에 김성철은 고개를 푹 숙이고는 눈을 내리깔았다.

남성 영웅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많은 이들에게 떠받들어지는 그였지만, 강채영은 쉽게 대해서는 안 될 영웅이었다. 랭커 그것도 대한민국 최고의 딜러 영웅이 바로 그녀였다.

“후…. 채영아, 만약을 위해서야. 이길 확률이 99 % 라고 해도 안 돼. 무조건 라온이 이겨야 한다고. 그래서 너를 내보내는 거야.”

“아아, 알았어. 그래. 광대짓이든 뭐든 해줄게. 그래서 내 계약이 몇 년이나 남았지?”

“아이 참. 왜 그래?”

단장이 재빨리 자리에서 일어나 채영의 어깨를 주물렀다. 메모리아에서 강채영이 빠진다는 것은 상상하기도 싫은 일이었다. 그만큼 그녀는 메모리아의 간판이자 얼굴이었다. 가만히 입을 다물고 있던 김성철도 재빨리 나섰다.

“강채영 영웅님, 화 푸세요. 제가 좋은 곳에서 거하게 식사 한 번 대접하겠습니다. 그러니 제 체면도 좀….”

“너는 좀 빠져! 5 년차 영웅 주제에 1 년차 상대로 시비나 걸리고. 나 참, 어이가 없어서. 쪽팔린 줄 알아라, 병신아. 그거는 달았다 뭐해? 쓸 줄은 아냐? 오크만도 못한 새끼가 어디서 감히 입을 열어?!”

그러나 매섭게 날아오는 강채영의 모욕적인 말에 김성철은 입술을 깨물었다. 하지만 뭐라 할 말이 없었다. 그럴 만한 자신도 없었다. 한 마디를 더 했다가는 강채영의 손바닥이 자신의 뺨으로 날아올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결국 메모리아 단장의 필사적인 설득으로 인해 채영은 어쩔 수 없이 이번 논란의 중심으로 끼어들어야만 했다. 김성철의 자존심 때문은 결코 아니었다. 행여나 메모리아가 패배할 경우 자신의 제자나 마찬가지인 신나연이 R’s 로 가야한다는 조건 때문이었다.

그리고 내기를 벌일 정확한 날짜가 정해졌다. 일주일 뒤였다.

* * *

멤버 리스트는 유출되었지만, 양 클랜이 어느 던전을 그리고 어디를 공략할지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비밀로 감춰졌다. 그룹의 자존심이 걸린 일이니 만큼 당연한 일이었다.

“우리가 이길 수 있을까요? 공대장님?”

“당연하지.”

유나의 말에 영웅 패드(Hero Pad) 의 화면을 보며 다시 한 번 공략 방법을 복습하던 민국이 차분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리고는 말을 꺼낸 유나를 바라보았다. 일주일간의 고된 훈련 때문인지 조금이지만 살이 빠진 것처럼 보였다.

아무래도 이번 던전 공략이 끝나면 멤버들과 함께 회식이라도 해야 할 것 같았다. 내기에서 이기고 난 후에 조수영을 찾아가서 고기를 사달라고 하면 왠지 끝내주는 곳으로 안내를 해 줄 것 같았다.

“걱정 마. 민국이 오더대로만 움직이면 무조건 이길 수 있어. 어차피 메모리아에서는 2 군 공대장이 나선다며? 그 사람보다는 민국이가 훨씬 리딩을 잘할 걸?”

“하지만 상대는 강채영이….”

“에헤이! 레이드는 혼자 하나? 강채영 혼자서 보스 몬스터를 때려잡을 수 있을 것 같아? 장비도 좋지 않은데? 우리가 충분히 이겨. 삼십분 쯤 낮잠을 자고 출발해도 이길 수 있겠다.”

광적으로 자신을 찬양하는 현아의 모습에 민국은 어깨를 으쓱였다. 앞으로 삼심 분 후면, 약속 장소에 도착할 터였다. 찰거머리 같은 기자들의 관심을 피하기 위해 메모리아 클랜의 인원들은 이미 ‘얼음 협곡’에 도착해 있는 모양이었다.

그렇게 동료들의 이야기를 한 귀로 흘리며 머릿속으로 한 번 리딩 연습을 하자 마침 R’s 클랜의 차량도 ‘얼음 협곡’ 던전에 도착하고 있었다. 이번 논란으로 인해 ‘얼음 협곡’은 메모리아 클랜에서 파견 나온 인원들로 철저하게 출입을 통제하고 있었다.

‘사람 많네? 던전에 진입하는 이들만 나올 줄 알았는데.’

차량 문을 열자마자 수많은 시선들이 민국을 주시했다. 호의적인 눈동자는 결코 아니었다. 그래서일까? 뭔가 느낌이 이상했다. 이세계로 넘어온 이후 저런 눈빛은 처음 받아봤기 때문이었다.

천천히 차량에서 내린 민국은 자신과 함께 이번 논란의 중심이었던 김성철을 비롯해 메모리아 클랜의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남자 영웅답게 김성철은 확실히 연예인처럼 잘생긴 남자였다. 자신을 바라보는 표정은 거의 원수를 보는 것 같았지만.

“잘 부탁해요.”

“잘 부탁드립니다, 선배님.”

그에 반해 메모리아 클랜의 2 군 공대장은 여유가 있는 모습이었다. 다른 탱커와 딜러 영웅도 마찬가지였다. 민국의 리딩 능력에 대해서는 괜찮다고 생각하지만 자신들이 질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하기야 팀 GGW 는 【B – 5】 던전 자체를 처음으로 공략하는 신입 영웅들로 구성된 팀에 불과했다. 공략에 성공한다는 것 하나 만으로도 세계인들의 주목을 받을 수 있을 정도였다.

그에 반해 메모리아 클랜의 영웅들은 각 년차의 랭커들로만 구성이 되어 있었다. 특히 딜러인 강채영은….

“두 배. 우리 팀이 공략하는 시간의 두 배 안으로만 공략에 성공해도 선배에 대한 버릇없는 행동은 그냥 넘어가주마.”

옆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민국이 고개를 돌려 말을 한 이가 누구인지 확인했다. 머리를 붉게 물들인 여인이 팔짱을 끼며 자신을 노려보고 있었다. 검은색 코트를 걸친 그녀의 주위로 커다란 구체들이 마력에 영향을 받아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저건….’

민국의 눈동자가 반짝였다. 들어본 적은 있었지만, 막상 다루는 모습은 직접 본적이 없는 마력구라는 희귀한 무기였다. 그리고 마력구는 대한민국 딜러 랭킹 1 위 강채영의 주 무기였다.

“처음 뵙겠습니다, 강채영 영웅님.”

“안녕하세요! 전설적인 선배님을 만나게 되다니! 가문의 영광입니다!”

멀리서 봐도 확연히 눈에 띄는 강채영의 모습에 팀 GGW 의 멤버들이 쪼르르 달려와 허리를 꾸벅 숙였다. 차량 안에서 메모리아 영웅들은 아무것도 아니라며 신나게 떠들던 현아도 같은 모습이었다.

마치 팬을 만난 것 마냥 꺅꺅거리는 현아의 달라진 행동에 민국이 황당해하며 머리를 긁적였다. 그리고는 강채영을 향해 입을 열었다.

“선배님의 너그러운 제안은 감사드립니다만….”

민국의 눈동자가 잠시 팀원들을 스치고 지나갔다.

아무래도 강채영은 아니 그녀뿐 아니라 메모리아 클랜의 모든 이들은 얼음 협곡의 무서움에 대해 모르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얼음 협곡은 만만하게 생각하고 덤벼들 던전이 아니었다.

힐러가 한계까지 자신의 능력을 끌어내야만 잡을 수 있는 게 아이스 드레이크였다. 물론, 장비 빨로 공략을 했다면 모를 법한 사실이었다.

하지만 이번 내기에 나서는 모든 영웅들의 【Gear Score】 는 200 에 맞춰진 상황. 넉넉한 수치가 결코 아니었다. 딱 최소한의 조건을 만족시킨 것에 불과했다. 그렇게 생각을 한 민국이 강채영을 향해 말했다.

“이번 내기는 저희가 이길 겁니다. 질 것을 생각하고 이런 자리에 나온 것은 아니거든요.”

“…….”

민국의 도발적인 말에 채영이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하지만 자신의 앞에서도 주눅 들지 않는 민국의 행동이 용기 있게 느껴지기는 했다. 그리고 강채영이 피식 웃으며 중얼거리듯 말했다.

“불가능하겠지만 만약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내가 들어줄 수 있는 것으로 소원 하나 들어주마.”

그런 채영의 말에 민국이 순간 멈칫했다가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입 꼬리를 살짝 들어 올렸다.

좋아, 소원 하나 획득. 벌써부터 이걸 어떻게 써먹어야 하나 고민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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