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영웅 소녀 전쟁-67화 (67/486)

EP.67 이상한 내기

“시간의 왜곡 아이템을 구해놨으니 두 공격대가 동시에 출발하는 게 어떨까요?”

주인공들이 전부 모이자 메모리아 클랜의 단장이 모래시계와 비슷하게 생긴 아이템을 꺼내 보이며 말했다.

시간의 왜곡. 동일한 던전의 문을 동시에 열게 해주는 특수한 아이템으로 【A】 난이도의 던전에서 얻을 수 있는 아이템이었다. 주로 폭발이 얼마 남지 않은 던전을 여러 공격대가 동시에 공략할 때 사용하는 아이템이었다. 이어서 현정도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먼저 공략을 끝내고 나오는 공격대가 이기는 걸로 정하면 되겠군요.”

“네, 아주 직관적이고, 이의도 제기할 수 없는 간단한 방법이죠. 호호.”

“호호.”

그렇게 말한 두 여인이 서로를 바라보며 동시에 웃었다. 하지만 분위기는 살벌함 그 자체였다.

여기서 지게 되는 클랜은 엄청난 망신을 당하는 것은 물론이고, 클랜의 주축이 뿌리 채 뽑혀나가야 할지도 몰랐다. 하필이면 클랜의 모기업과 구단주들이 라이벌 기업 그것도 대한민국의 재계순위 1 위와 2 위라는 게 문제였다.

“준비 됐지? 무조건 이겨야 해. 특히 현아, 너는 절대 실수하지 말고.”

“응? 하하하.”

언니의 말에 현아가 멋쩍게 웃었다. 그녀도 이 장소에 흐르던 공기가 조금 전부터 확연하게 달라지고 있다는 것을 느끼던 참이었다. 정말로 지는 순간 자신의 영웅 인생은 여기서 끝이 날지도 몰랐다. R’s 클랜을 떠나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중견 아니 중소 클랜으로 쫓겨날지도 몰랐다.

다른 이들도 현실을 마주하면서 몸들이 딱딱하게 굳기 시작했다. 자연스레 현아의 시선이 민국에게 향했다.

“……쟤는 진짜 강심장이네. 하기야 그러니까 선배에게 이런 내기를 제안했겠지.”

그에 반해 팀 GGW 의 공대장이자 이번 논란의 중심 그리고 메모리아 2 군 공대장이 이끄는 대한민국 최고의 딜러진을 상대로 둔 우리의 1 년차 영웅께서는 휘파람을 불며 영웅 패드를 확인하고 있었다.

* * *

양쪽 클랜의 팀들이 동시에 던전으로 진입했다. 그 모습을 확인한 두 단장은 바로 자신들의 자리에서 던전의 모니터링을 시작했다.

초반은 무난했다. 메모리아의 팀은 말할 것도 없었다. 에이스로만 구성한 메모리아는 공대장의 리딩이 있기도 전에, 탱커와 딜러진이 나서서 척척 적들을 쓸어버렸다.

R’s 클랜의 신입 4 팀, GGW 공격대도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다. 메모리아 공격대보다는 속도가 느리긴 했지만 차근차근 【B – 5】 던전에서 등장하는 몬스터를 물리치며 앞으로 전진해나갔다. 그들이 신입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충분히 칭찬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침착한 모습들이었다.

그리고 첫 번째 보스 몬스터 레이드가 시작되었다.

“최유나 왼쪽으로!”

“광역 패턴 준비! 현아, 지금 생존기!”

민국의 꼼꼼한 리딩과 그것을 믿고 따르는 GGW 팀원들의 호흡은 이제 만들어진지 한 달이 조금 넘는 공격대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끈끈한 호흡을 자랑했다.

신입 영웅들로만 이루어진 팀인데도 불구하고, 그들은 【B – 5】에서 등장하는 4 등급 보스 몬스터를 무난하게 상대하고 있었다.

“제법이잖아?”

심지어 상대를 모니터링을 하고 있던 메모리아 클랜의 단장이 자신도 모르게 탄성을 터뜨렸을 정도였다.

모두가 올해 입단한 자신들의 신입 영웅들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기량들이 뛰어났다. 분명 입단 전의 랭킹은 메모리아의 신입 영웅들이 훨씬 높았는데 참으로 신기한 일이었다. 거기에 한민국의 리딩 능력 역시 굉장했다.

GGW 가 보여주는 의외의 선전에도 불구하고 메모리아 클랜의 단장은 이번 내기에서 자신들이 이길 것이라는 것에 대해서는 별달리 걱정을 하지 않았다. R’s 의 GGW 가 첫 번째 보스 몬스터를 쓰러뜨릴 때, 메모리아 클랜의 공격대는 두 번째 보스 몬스터를 상대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딜러진의 경험차이란 이런 것이지.”

거기에 탱커 영웅 또한 2 군의 메인 탱커를 맡고 있었다. ‘얼음 협곡’의 공략법 정도는 충분히 알고 있는 것이다.

여유로운 모습을 보이는 메모리아 클랜과는 달리 현정은 굳은 얼굴로 모니터를 주시하고 있었다. 아직 초반임에도 불구하고 벌써부터 제법 차이가 벌어지고 있었다. 확실히 딜러진의 역량 차이가 상당했다.

“첫 번째 레이드의 영웅 기록은?”

“지금 막 공유가 되었습니다.”

말과 함께 비서가 곧 여러 장으로 이루어진 보고서를 건넸다. ‘얼음 협곡’의 첫 번째 보스 몬스터를 상대로 기록한 영웅 기록들이었다.

역시나 메모리아 클랜의 딜러진들이 둘 다 기여도 A+ 와 A를 기록한 것에 반해 GGW 의 딜러진은 B+ 와 B를 기록했다. 똑같은 장비 스코어인데도 불구하고 이런 차이가 나는 것은 역시나 그만큼 경험이 차이가 난다는 말이었다.

그에 반해 탱커는 둘 다 기여도 B+ 로 동일했다. 현아의 기여도가 생각보다 높기 때문일까? 현정의 입가에 절로 미소가 걸렸다. 그만큼 동생의 자질이 뛰어나다는 것을 의미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힐러진은….

“어라? 이거 진짜 맞는 거지?”

“네, 아시다시피 영웅 패드의 기록은 거짓말은 하지 않습니다. 누가 조작을 할 리도 없고요.”

김성철의 기여도는 B-. 평범한 수준이었다. 같은 팀원들이 맹활약했던 것을 생각하면 힐러의 기여도가 그만큼 떨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할 수 있었다. 그런데 한민국의 기여도는 A+ 였다. 메모리아의 간판인 강채영과 기여도가 동일한 것이다.

‘대체 뭐하는 녀석이야? 그리고 이 딜량은…?’

GGW 의 레이드는 현정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봤었다. 공대장의 정확한 리딩에 따른 무난했던 레이드였다. 위기 상황이 없지는 않았지만, 재능 넘치는 유망주답게 민국은 팀원들의 생명력을 안정적으로 유지해냈다.

그런데…. 그렇게 회복 능력을 사용하면서 민국은 어느 새인가 보스급 몬스터에게 데미지를 넣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도 3 순위 딜러인 최유나의 30 % 나 되는 딜량이었다. 힐러라는 것을 감안하면 결코 낮지 않은 수준이었다.

현정이 바로 비서에게 말했다.

“한민국이 착용한 스킬 스톤 확인해봐.”

“아? 네. 알겠습니다.”

갑작스런 지시에 당황한 비서가 빠르게 영웅 패드로 연락을 취했다. 그리고 결과물을 받아 현정에게 건넸다.

아니나 다를까 민국은 자신이 착용할 수 있는 세 개의 스킬 중에 한 개를 공격 스킬로 장착하고 있었다. 자신이 주는 데미지의 일정량을 생명력이 가장 낮은 대상에게 회복시켜주는 B 등급의 스킬이었다. 스킬 명은 ‘뱀파이어의 손길’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사실은 메모리아 측도 곧바로 파악할 수 있었다. 그들 역시 첫 번째 레이드의 기록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대단하네.”

조금 전의 레이드 기록과 함께 한민국의 전투 장면을 다시 돌려보던 메모리아 클랜의 단장이 감탄과 함께 입맛을 다셨다.

한민국은 ‘뱀파이어의 손길’을 마냥 아무 생각 없이 사용을 한 게 아니었다. 이미 그는 팀 내 딜러진들의 기량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던 모양이었다. 그렇기에 보스 몬스터의 위험한 패턴을 넘기려고 본인의 마력을 쏟아내며 딜링을 한 것이다.

이건 유망주라 부를 수 있는 레벨이 결코 아니었다. 이미 한 명의 완성된 영웅이었다. 더욱 신기한 것은 두 개의 스킬만을 가지고 파티원들의 생명력을 유지시키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만큼 상황 판단 능력도 대단하다는 이야기였다.

심지어 리딩까지 하면서 보여주는 능력이었다.

“최선경이나 김수아 말고 차라리 한민국을 달라고 했어야 됐나?”

수십 년에 가까운 세월동안 언론에서 천재라고 떠들었다가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진 영웅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메모리아 클랜의 단장은 한민국도 그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할 거라고 여겼었다.

아무리 대단하다고 떠들어대도 지금 당장은 그래봤자 유망주 수준의 레벨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만큼 상위 레이드는 결코 만만하게 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의 모습만 보면 성급과 장비만 갖춰진다면 충분히 상위 레이드에서도 제 활약을 할 수 있을 것처럼 보였다. 괜히 R’s 의 클랜이 애지중지하는 기대주가 아니었다. 그리고 두 번째 보스 몬스터의 레이드가 시작되었다.

“탱커 제외 모두 왼쪽으로. 현아는 반대쪽으로 자리를 잡아.”

“휘두르기 조심! 머리를 돌려! 김소정 뒤로 빠져!!! 회복이 되면 진입합니다!”

한민국이 지휘하는 GGW 팀은 두 번째 보스 몬스터를 상대로도 무난하게 승리를 거뒀다. 위기 상황이 있었지만, 정확한 리딩으로 한 명의 아군도 죽이지 않았다. 메모리아 클랜의 공격대도 마찬가지였다.

세 번째 레이드에서도 김성철이 소속된 메모리아 공대는 별 문제없이 보스 몬스터를 쓰러뜨리고 지나갔다.

하지만 GGW 는 최유나가 실수로 사망하면서 부활석이 깨져버렸다. 다행히 최유나가 사망한 상태에서도 보스 몬스터는 쓰러뜨릴 수 있었지만, 팀을 재정비하고 다시 부활석을 설정하면서 제법 많은 시간을 소모해야 했다.

“으으음….”

그렇게 조금씩 차이가 벌어지다보니 메모리아 클랜의 공격대가 ‘얼음 협곡’의 최종 보스 몬스터인 아이스 드레이크를 앞두는 동안 민국의 공격대는 다섯 번째 보스 몬스터를 앞에 두고 있었다. 보스 몬스터 한 마리의 차이가 벌어진 것이다.

그래서였을까? R’s 클랜이 모니터링을 하는 장소는 쥐죽은 듯 조용해져 있었다. 그에 반해 메모리아 쪽은 당연하게 자신들의 승리를 확신하고 있었다.

오히려 이만큼 선방을 한 한민국의 공격대에도 대단하다며 칭찬을 보내고 있었다. 졌지만 잘 싸웠다와 같은 내용들이었다. 그리고 사고가 벌어졌다.

* * *

콰우우우우!!!

포효와 함께 전장에 있던 영웅들이 아이스 드레이크의 입 바로 앞까지 끌려갔다. 얼음 포획이라는 스킬이었다. 그렇게 자신의 먹잇감들을 끌어온 드레이크는 곧바로 자신의 마나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냉혹한 한파로 날붙이를 들고 있는 녀석들을 모두 얼려버려 숨통을 끊어놓을 생각이었다.

“모두 피해! 바깥으로 흩어져!”

아이스 드레이크의 패턴에 대해 잘 알고 있는 메모리아의 2 군 공대장 빠르게 오더를 내렸다. 그리고는 영웅 패드를 확인했다. 파티원들의 생명력이 큰 폭으로 출렁거리고 있었다.

혹한의 한파라는 패시브 능력 때문에 계속해서 생명력이 줄어들고 있었지만, 팀의 생명력을 책임지는 힐러는 도망을 치느라 정신이 없었다.

“김성철! 생명력 관리해!!!”

“네, 네!”

까닥하다간 딜러들이 죽게 생겼기에, 공대장이 성철을 향해 크게 호통을 쳤다. 그리고 영웅 패드를 확인한 성철이 눈을 부릅뜨고는 생명력이 가장 낮은 딜러를 향해 수인을 맺었다. 그 때였다.

콰아아아아!!!

아이스 드레이크를 중심으로 원형의 링이 30 m 가량 퍼져나가며 그 주위의 마력이 폭발하듯 들끓었다. 탱커가 아니라면 버티기 힘들 정도의 강력한 공격이었다. 문제는 회복 능력을 사용하려면 성철이 냉혹한 한파의 사정거리 내에 있었다는 점이었다.

“끄아아아아아악!”

비명과 함께 힐러가 그 자리에서 바로 산화했다. 그리고 힐러를 잃은 것을 확인한 공대장이 재빨리 전멸 싸인을 내렸다.

푹! 푸욱!

전멸 싸인이 내려지자 딜러들이 거침없이 자신들의 가슴에 무기를 박아 넣었다. 그렇게 메모리아 팀이 아이스 드레이크를 맞아 처음으로 전멸을 했다.

그리고 부활석을 통해 다시 아이스 드레이크의 앞까지 도착한 영웅들이 바로 피드백을 시작했다. 다들 이런 일에는 이골이 난 이들이었다.

“힐러의 부담이 생각 이상으로 높습니다.”

2 군 팀의 공대장이 강채영을 향해 말했다. 채영 역시 공대장의 말에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장비 때문인가? 생명력이 줄어드는 게 확연하게 느껴질 정도야. 바로바로 회복은 불가능하겠지?”

“아무래도….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힐러의 기량문제도 있었지만 【Gear Score】 역시 무시할 수 없었다. 힐량을 폭발시켜 아군의 생명력을 유지한다 해도 힐러의 마력이 말라붙어 레이드가 끝날 때까지 팀원들의 생명력을 책임지기가 힘들었다.

수많은 레이드 경험을 통해 어렵지 않게 문제의 이유를 찾아낸 두 영웅들은 서로를 향해 고개를 저었다.

“어쩔 수 없지. 마력에 여유가 있을 때 마다 회피 기동을 해야겠어. 딜량은 조금 떨어져도 일단은 생존이 중요하니까.”

“죄송하지만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렇게 다시 아이스 드레이크가 레이드가 시작되었다. 좀 전과는 달리 생존에 중심을 둔 움직임에 메모리아 클랜의 영웅들은 얼음 포획이라는 위기 상황도 어렵지 않게 극복해내며 공격을 개시했다. 하지만….

“공대장님! 마, 마력이 부족합니다!”

“뭐라고요?!”

흥분한 공대장의 목소리가 김성철에게 향했다. 아이스 드레이크의 생명력은 아직 40 % 가량이나 남아 있었다. 하지만 힐러가 회복 능력을 사용할 마나가 남아 있지 않았다. 그리고 그 결과는 불을 보듯 뻔했다.

콰아아아아!!!

“아아아악!”

아이스 드레이크의 앞발 공격을 막아내던 탱커가 사망했다. 메모리아의 6 성 탱커답게 아이스 드레이크를 상대로 제법 오랫동안 버티기는 했지만, 결국 피해를 입은 생명력을 회복시키지 못하고 목숨을 잃은 것이다.

이어서 어그로가 풀린 아이스 드레이크가 입을 쫙 벌리고 1 군 딜러를 깨물었다. 대한민국 딜러 랭킹 9 위답게 8 성 영웅인 여인이었다. 그러나 날카로운 보스 몬스터의 이빨을 탱커가 아닌 딜러가 버텨낼 리 없었다.

와드드득!

끔찍한 소리와 함께 딜러가 사망했다. 그렇게 메모리아 클랜의 공격대가 두 번 연속으로 아이스 드레이크를 물리치지 못하고 전멸을 했다. 그리고 그 동안 다섯 번째 보스 몬스터를 물리친 민국의 GGW 도 어느새 아이스 드레이크를 앞에 두고 있었다.

이제는 서로가 같은 출발선에서 출발을 하게 된 것이었다. 때마침 조수영과 김태연도 ‘얼음 협곡’ 던전에 도착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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