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영웅 소녀 전쟁-69화 (69/486)

EP.69 클랜 평가

“바로 확인하겠습니다.”

태연의 혼잣말에 메모리아 클랜의 단장은 순간적으로 자신이 어떤 대답을 해야 할지 눈치 챌 수 있었다.

다른 이들도 분주히 움직였다. 혹시라도 메모리아 클랜보다 R’s 가 먼저 던전을 클리어 하는 일이 벌어진다면 이 자리에 있는 이들 중 반 이상은 목이 날아갈 가능성이 높았다.

“잠깐, 거기 멈춰 봐. 힐러의 마나가 순간적으로 크게 회복되는 느낌인데?”

“무슨 스킬을 사용하는…. 정신 자극?!”

“정예린이 중첩을 관리 하고 있습니다. 4 중? 5중에서 계속해서 디버프를 터뜨립니다.”

랭커 클랜답게 메모리아의 직원들은 매의 눈으로 민국과 GGW 의 움직임을 파악했다. 그리고는 어떻게 아이스 드레이크를 상대로 지금까지 버틸 수 있는지 그 이유를 알아낼 수 있었다.

“이런…!”

보고서를 받은 메모리아 클랜 단장에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생각보다 별거 아닌 방법이었다. 딜러의 딜량을 포기하면서까지 생존에 힘을 쓰는 것이었다. 심지어 영웅의 마력을 회복시킬 수 있는 정신 자극 스킬까지 사용하고 있었다. 장비 스코어가 낮은 영웅들에게는 굉장히 효율적인 방법이었다.

그에 반해 메모리아 클랜은 아이스 드레이크를 상대로 압도적인 딜을 넣을 수 있었다. 그러나 힐러의 회복 능력이 부족했다. 드레이크가 쓰러지기 전에 힐러가 리타이어 하는 것이다.

게다가 김성철은 한민국보다도 비효율적으로 힐을 하고 있었다. 레이드 경험을 생각하면 믿을 수 없는 결과겠지만, 레이드 기록이 그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던전 공략은 무슨 일이 있어도 라온이 먼저 끝내야 합니다.”

김태연의 서릿발 같은 목소리에 메모리아 클랜 단장이 푹 고개를 숙였다. 영웅들의 본래 능력이라면 충분히 이길 수 있는 대결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느낌이 좋지 않았다.

GGW를 비추는 디스플레이에서는 아이스 드레이크가 하늘을 날고 있었다. 메모리아 클랜의 영웅들은 아직 보지 못했던 두 번째 패턴이었다.

* * *

“왼쪽으로 따라오세요!!!”

“어엇?!”

민국의 리딩에 따라 하늘에서 떨어지는 얼음 돌덩이를 피하던 소정의 얼굴에 새하얗게 변했다. 순간적으로 발밑이 미끄러지면서 몸의 균형이 무너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요란한 소리와 함께 소정이 넘어졌고, 그 뒤를 따르면 정예린도 순간적으로 그 자리에 멈췄다. 하지만 그것은 현명하지 못한 판단이었다.

콰아아앙!

커다란 소리와 함께 드레이크가 떨어뜨린 얼음 돌덩이가 두 영웅을 덮쳤다. 보나마나 사망이었다. 그리고 민국은 바로 전멸 싸인을 내렸다. 딜러 둘이 죽은 상황이었다. 게다가 홀로 살아남은 딜러인 최유나는 공격 스킬이 두 개밖에 없었다.

몇 분 후, 아이스 드레이크의 앞에 다시 선 소정이 고개를 꾸벅 숙였다.

“빙판길에 그렇게 미끄러지리라고는…. 죄송합니다.”

“어쩔 수 없죠. 괜찮습니다. 다음부터는 이런 실수가 없으면 됩니다. 그리고 오현아, 돌덩이를 피하는 상황에서 여유가 생길 때 마다 방패를 날려. 빙판 길을 전부 깨버리는 거야.

“응!”

“최유나도 마찬가지. 물론 빙판길을 깬답시고 뒤처졌다가 돌덩이에 죽으면 알지?”

“넵, 알겠습니다.”

전술적인 움직임의 문제가 아니라 사소한 실수에 불과했다. 그렇기에 민국은 간단히 피드백을 한 후 방금 전의 전투를 복기했다. 전투 시간은 제법 길었지만, 팀원들의 생명력을 회복시키는 것에는 큰 문제가 없었다.

“유나, 전투 들어가면 1 분 정도 후에 바로 정신 자극 사용하는 거 잊지 말고.”

“넵!”

역시 정신 자극은 최고의 선택이었다. 쿨 타임이 돌 때 마다 사용되는 정신 자극으로 인해 전투 유지력이 크게 늘어났기 때문이었다. 거기에 마력을 낭비하지 않고 좀 더 집중해서 회복 능력을 사용하면 좀 더 오랜 시간동안 힐을 할 수 있었다.

“자, 다들 집중합시다!”

민국이 손뼉을 치면서 팀원들을 향해 말했다. 그런 민국을 소정이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그런데 공대장님. 메모리아 클랜은 공략을 이미 끝냈을까요?”

“글쎄요. 잘은 모르겠지만, 아마 못 잡았을 겁니다.”

확신이 담겨 있는 민국의 말에 소정이 의문이 담긴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다른 팀원들도 마찬가지였다.

자신들과 함께 던전의 공략을 시작한 메모리아 클랜의 파티는 성급이 가장 낮은 영웅이 5 성의 김성철일 정도로 다들 빵빵한 영웅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심지어 딜러진은 두 명이 8 성 영웅이었다. 그런데 아이스 드레이크를 못 잡았을 거라니?

하지만 민국에게는 믿는 수가 있었다. 가상현실 모바일 레이드 게임인 GGW 에서 수천, 수 만 번이 넘게 레이드를 했던 그였다. 하루에 수십, 수백 번의 트라이는 기본으로 했었다.

그런 만큼 대충만 훑어봐도 이 정도의 스펙과 스킬로 보스 몬스터를 상대로 한 공략이 성공할지 못할지 어렵지 않게 견적을 낼 수 있었다.

“석유인 제가 이 던전을 선택한 것에는 다 이유가 있기 때문이죠.”

그리고 ‘얼음 협곡’ 던전의 최종 보스 몬스터인 아이스 드레이크는 팀원들의 평균 【Gear Score】 230 이하라면 정신 자극 없이 잡는 것이 불가능에 가까운 녀석이었다. 힐러의 마력이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었다.

물론 성급과 경험으로 어느 정도 커버는 할 수 있을지 몰랐다. 하지만 팀의 생명력을 책임져야 할 김성철은 그 정도의 실력은 되지 못하는 녀석이었다.

그리고 민국은 이번 레이드가 있기 전, 메모리아 2 군의 레이드 기록을 몇 개 구해 대략적이지만 김성철의 능력을 유추해낼 수 있었다. 5 성을 달고 있는 자신의 선배는 아주 평범한 실력의 힐러에 불과했다.

‘딜러들 속이 무지하게 터질 거다.’

돼지 목에 진주 목걸이, 개 발에 편자라고 메모리아의 최상위 딜러진은 평범한 힐러와는 격에 맞지 않았다.

“그러면 이번 트라이에는 실수 없이 잡고 쉬는 겁니다! 던전을 클리어하면 제가 고기 쏩니다!”

다시 레이드가 시작되었다.

콰우우우우우!!!

포효와 함께 아까와 비슷하게 아이스 드레이크가 현아를 향해 달려들었다. 입을 쩍 벌리고 달려드는 몬스터의 공격을 몸의 방향을 급격하게 트는 방법으로 피한 현아가 이번에도 자신의 원형 방패를 집어 던졌다.

터어엉하는 소리와 함께 현아의 방패가 아이스 드레이크의 뺨을 후려치면서 떨어졌다.

“와, 진짜 기분 더럽겠다.”

그 모습을 본 민국이 어이가 없는 표정을 지었다. 하필이면 맞아도 저렇게 맞을까. 아니나 다를까 어그로는 제대로 끌린 모양이었다. 방패를 집어 들고 자세를 잡은 현아를 향해 아이스 드레이크의 맹공이 시작되었다.

“아직 딜 대기!”

대검을 뽑아들고 달려들려던 소정을 향해 그렇게 말을 한 민국이 재빨리 수인을 맺어 ‘생명의 씨앗’을 소정에게 걸었다. 그리고 자신에게 따뜻한 기운이 감도는 것을 느낀 소정이 바로 앞으로 달려 나갔다. 커다란 대검이 그대로 드레이크의 앞발을 내리쳤다.

크르르르르

따끔한 감각에 드레이크의 날카로운 눈동자가 잠시 소정에게로 향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어그로가 제대로 끌린 드레이크의 앞발 공격은 현아를 향해 날아들었다.

“4 중첩! 터뜨릴게요!”

“오케이!”

이미 전투 방식을 한 번 경험한 탓인지 정예린은 자신이 어떻게 싸워야 할지 제대로 감을 잡은 모습이었다. 팀원들이 없는 곳으로 달려 나가는 예린을 향해 민국이 회복 능력을 사용했다.

“끄윽?!”

예린의 몸에 저주처럼 걸려있던 뒤틀린 마력이 폭발하면서 그녀의 생명력을 20 % 가량 소모시켰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민국의 힐이 그녀의 몸을 감싸며 다시 생명력을 가득 채워주었다. 이어서 생명의 씨앗도 그녀의 몸 안으로 파고들었다.

“이제 꼬리 옵니다! 지금!!!”

쿵하는 소리와 함께 이어지는 꼬리 휘두르기. 민국의 신호에 맞춰서 현아를 제외한 모든 영웅들이 하늘 위로 뛰어 올랐고, 아이스 드레이크의 기다랗게 늘어진 꼬리는 전장을 깨끗이 청소하며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갔다.

“유나야!”

“네엡! 정신 자극!”

그리고 이어지는 민국의 리딩에 이미 준비를 하고 있던 유나가 바로 정신 자극을 사용했다.

“크으….”

정신 자극을 받은 민국의 입에서 신음이 흘러 나왔다. 콜라를 단숨에 들이켠 것 마냥 짜릿한 느낌이 찌릿 오더니 마력이 뭉클뭉클 차올랐다. 왠지 모르게 중독될 것 같은 감각이었다.

그렇게 R‘s 클랜의 신입 4 팀 GGW 는 느릿하지만 안전하게 아이스 드레이크를 공략하고 있었다. 그에 반해….

메모리아의 딜러진들은 힐러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 회피 기동까지 해가면서 필사적으로 딜링을 하고 있었다. 강채영을 비롯한 1 군 소속 딜러의 무기가 휘둘러질 때 마다 아이스 드레이크의 생명력이 뭉텅뭉텅 깎여나가고 있었다.

2 군 탱커도 마찬가지였다. 부족한 장비로도 아이스 드레이크의 공격을 단단하게 막아내고 있었다. 공대장의 리딩도 수준급이었다. 하지만 레이드는 한 명의 구멍만 있어도 난이도가 급격하게 늘어나는 전투였다.

“힐! 힐! 힐!!!”

“이 새끼가 대체 뭐하는 거야!!! 그거 하나 못 살려서 뭔 힐러를 하겠다는 거야?! 너 정말 5 성 맞아! 남자 영웅이라고 누구한테 대주고 버스 탄 거 아니야?!”

아이스 드레이크의 얼음 포획을 피하던 도중 딜러 겸 공대장을 맡고 있던 영웅이 사망했다. 이어서 다른 1 군 소속 딜러도 사망한 것을 확인한 강채영이 결국 참지 못하고 욕설을 내뱉었다.

벌써 다섯 번이나 비슷한 상황이 반복되고 있었다. 말은 안하고 있었지만, 다른 이들의 표정도 딱히 좋지 못했다.

“후우….”

팀의 케미스트리를 위해 지금의 상황을 해결해야할 공대장도 뭐라 할 말이 없는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모습이었다.

* * *

“와! 이게 뭐야? 완전히 재미있잖아?!”

수영의 눈동자가 이리 갔다 저리 갔다를 반복했다. 수영만이 아니었다. 옆에 서있는 클랜 단장인 현정 역시 고개가 이리저리 움직이고 있었다.

R’s 클랜의 신입들은 거북이처럼 느릿하지만 단단하게 아이스 드레이크를 공략하고 있었다. 상상 이상으로 아이스 드레이크의 강력한 공격을 잘 버티고 있는 것이다.

그에 반해 메모리아 클랜의 에이스들은 GGW 의 팀원들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몬스터의 생명력을 깎아내고 있었다. 하지만 계속해서 몬스터보다 먼저 죽어나자빠지고 있었다.

“이거 우리가 먼저 잡을 수 있는 거죠?”

수영이 디스플레이를 가리키며 물었다. 화면에서는 민국의 리딩에 따라 영웅들이 한데 뭉쳐 얼음 돌덩이들을 피하고 있었다.

대체 잠깐 고개를 들었다가 내린 것으로 하늘에서 떨어지는 돌덩이의 낙하지점을 어떻게 파악하는 건지 민국은 정확하게 팀원들을 인도하고 있었다.

“가능…할 것 같습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현정이 떨떠름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원래는 불가능한 게 맞는 일이었다. 그녀의 상식으로는 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GGW 는 신입 영웅, 그것도 입단 한지 갓 한 달이 지난 햇병아리들로만 이루어진 공격대였다.

그렇다고 내로라하는 유망주들로만 구성된 팀도 아니었다. 기껏해야 탱커인 오현아의 랭킹이 제일 높았는데, 그녀의 랭킹도 전체 순위 71 위에 불과했다. 심지어 공대장인 민국은 랭킹이 낮은 영웅을 세는 게 훨씬 빨랐다.

그런 공격대가 【B – 5】를 공략한다고? 그것도 두 번째 트라이 만에? 신입들은 【B – 8】 이나 공략에 성공하면 대단하다는 찬사를 들을 수 있었다. 현정은 직접 눈으로 GGW 의 레이드를 보고 있으면서도 머리가 혼란스러워지고 있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언론사 부르는 건데….”

수영이 안타까운 목소리로 말했다. 물론, 실제로 언론 관계자들을 부를 생각은 없었다. 그렇게까지 메모리아 그리고 라온의 이름을 깎아내리면 자신에게도 좋을 것은 없었다.

“GGW 가 【B – 5】 던전을 클리어 하는 데 성공하면 오늘 저녁은 제가 쏘도록 하죠. 너, 지금 바로 호텔에 예약 잡아놔.”

“알겠습니다.”

아직 레이드는 끝나지 않았다. 하지만 수영은 GGW 와 한민국이 메모리아 클랜보다 먼저 아이스 드레이크를 쓰러뜨릴 것이라고 결과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리고 그것이 실제로 일어나버렸다.

“허억…. 허억…. 주, 죽었나?!”

“언니! 그것은 금기어?! 오예!!!”

결코 꺼내서는 안 될 단어를 내뱉으려는 현아를 지적하던 유나가 그대로 만세로 불렀다. 던전의 마력과 연결된 영웅 패드에 메시지들이 도착했기 때문이었다. 전투의 승리를 알리는 메시지였다.

“잡았다! 와아아아!!!”

“오예!!! 진짜 공대장님! 사랑스러워 미칠 것 같아요! 최고예요!!!”

“다들 수고 하셨…. 으읍?!”

자신들이 【B – 5】 난이도의 던전을 성공적으로 공략했다는 사실에 흥분한 예린이 그대로 민국을 향해 거칠게 입술을 내밀었다. 농밀한 키스와 함께 혀와 혀가 부딪치면서 흥분된 숨결이 서로의 뺨을 뜨겁게 데웠다.

“아이씨. 여기서 막 미친 듯이 박히고 싶은데….”

“안타깝지만 나는 노출에는 취미가 없어서 사양할래. 어쨌든 수고했어.”

그렇게 예린의 머리를 헝클어뜨린 민국이 다른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전장의 중앙에서 구리 빛의 상자가 반짝이며 빛을 내고 있었다. 4 등급 특수 개체가 내뱉은 전리품 상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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