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영웅 소녀 전쟁-77화 (77/486)

EP.77 의심

“…….”

클랜의 대소사를 처리하는 클랜 단장이 소속 영웅을 앞에 두고 안절부절 하는 일은 거의 없다. 서로의 간극이 그만큼 크기 때문이었다. 단장과 마주하는 영웅이 클랜의 간판이나 에이스급 공격 대장이 아닌 고작 1 년차 영웅이라면 더더욱 말이다.

하지만 R’s 클랜의 단장인 오현정은 민국이 자신을 찾아올 때 마다 불안한 감정을 느껴야만 했다. 오늘은 또 어떤 폭탄과도 같은 말을 꺼낼지 알 수가 없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민국이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니, 통보했다.

“【B – 2】 난이도의 던전인 ‘밤의 성채’를 공략하려고 합니다.”

민국의 말에 현정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그를 바라보았다. 일반적인 영웅들과는 궤를 달리하는 공략 속도였다.

GGW를 포함해서 총 여섯 팀이 R’s 의 신규 공격대로 활동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다른 팀들은 이제야 【B – 9】 던전 공략에서 호흡을 맞추고, 【B – 8】 공략을 시도하는 중이었다. 신규 공격대의 정석 코스를 밟고 있는 것이다.

그에 반해 민국이 공략하기를 원하는 【B – 2】 난이도의 던전은 클랜의 2, 3 군에 속한 영웅들이 공략하는 던전 중 한 곳이었다. 대부분이 5 년차 많으면 10 년차 영웅도 속해 있는 곳이었다.

“으음…. 아이스 드레이크와 같은 4 등급 특수 개체들이 모여 있는 던전이라 쉽지 않을 텐데요?”

던전을 공략하겠다는 공대장을 앞에 두고 직접적으로 하지 말라고는 할 수 없었다. 게다가 GGW를 이끌고 있는 한민국은 이미 엄청난 성과를 보인 공대장이었다.

그래도 【B – 5】에서 세 단계나 앞선 【B – 2】 는 조금 무리인 듯싶었다.

“똑같은 등급의 특수 개체라도 더 어려운 녀석이 있고, 상대하기 쉬운 놈이 있기 마련입니다. 그리고 ‘밤의 성채’는….”

“그래봤자 아이스 드레이크와 비슷한 수준에 불과합니다. 공격 패턴을 버티기 위해 개인 기량에 의존해야 하는 면이 없잖아 있지만, 팀원들의 실력으로 충분히 공략이 가능할 거라 생각합니다.”

“…세계 영웅 협회에서 파견한 사람이 곧 한국에 도착할 겁니다.”

“뭐…. 【B – 2】를 공략하는 모습을 한 번 보여주고, 정 안되면 아이스 드레이크나 잡도록 하죠. ‘얼음 협곡’ 정도는 햄버거를 들고 먹으면서도 잡을 수 있는 수준이거든요.”

그 말에 현정은 피식 웃었다.

하기야 매일 올라오는 GGW 의 보고서에는 하루에도 몇 번이나 얼음 협곡을 성공적으로 공략했다고 적혀 있었다. 전부 오렌지급 결정을 얻기 위한 공략이었다. 아마도 그는 일찌감치 지금의 상황을 예견하고 준비했는지도 몰랐다.

그래서일까? 현정의 눈에는 이런 민국의 모습이 신비하게 보였다. 적어도 1 년차 영웅은 아닌 것 같았다.

“혹시 회귀 같은 거 하셨어요? 아니면 전생자?”

“……네?”

“아, 아뇨. 그냥 헛소리라고 넘겨주세요. 한민국 공대장님의 행보가 너무 말이 안 되는 것 같아서 별 생각이 다 드네요, 정말. 어휴. 나도 참 주책이야.”

자신도 모르게 마음속에 품고 있던 말을 내뱉은 현정이 더운지 손으로 부채질을 했다.

“큼큼.”

옆에 시립해 있던 비서도 그런 현정을 향해 이상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리고 한참 부채질을 한 현정이 다시 민국을 향해 물었다.

“그러면 언제부터 공략에 들어갈 생각이시죠?”

‘밤의 성채’는 4 등급 특수 개체가 여섯 마리나 나오는 던전이었다. 한 마리, 한 마리가 아이스 드레이크와 맞먹는 녀석들인 만큼 철저하게 준비를 해야 했다. 또한 공략에 필요한 평균 【Gear Score】 가 360 이나 되는 곳이었다.

‘잠깐…. GGW 의 평균 【Gear Score】 는 360 에 턱없이 부족할 텐데?’

공대장인 한민국만 하더라도 【Gear Score】 가 290 에 불과했다. 다른 딜러들도 마찬가지였다. 장비 스코어에 따라 아이템의 가격이 기하급수적으로 비싸지는 시기가 바로 이쯤인 만큼 쉽게 장비를 맞추는 게 불가능했다.

“모레입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민국의 대답에 현정과 그녀의 비서는 경악에 찰 수밖에 없었다. 여유로운 표정을 짓고 있는 신입 영웅을 향해 어떻게 그게 가능하냐고 외치고 싶은 심정이었다.

* * *

어둠에 타락한 콜리보르.

‘밤의 성채’에 진입하면 가장 처음으로 만날 수 있는 보스급 몬스터였다.

덩치는 초대형 트럭에 버금갈 정도로 컸지만, 생긴 것은 영락없는 개로 노란색 털을 지니고 있는 까닭에 콜리보르의 공략이 가능한 영웅들 사이에서는 ‘누렁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놈이기도 했다.

또한 그런 콜리보르의 별명에는 아무거나 잘 주어먹는다는 뜻도 내포되어 있었다. 앞발 공격으로 탱커를 압박하는 것을 제외하면 전장에 떨어지는 썩은 고깃덩이를 주워 먹고 브레스를 뱉는 게 콜리보르의 주 공격 패턴이기 때문이었다.

《밤의 성채 - 어둠에 타락한 콜리보르

▷ 콜리보르는 전투를 시작한 이후, 10 분 안에 처리하지 못하면 자신의 마력을 폭발시켜 광폭 상태에 빠지는 타임 어택형 보스 몬스터입니다. 콜리보르가 광폭하게 되면 8 성 이상에 【Gear Score】 가 700 이 넘는 탱커 영웅이 있어야만 공략이 가능해집니다.

▷ 콜리보르 공략에서 탱커의 역할은 간단합니다. 앞발 공격을 막고, 브레스를 피하며 콜리보르를 유도하면 됩니다.

▷ 콜리보르의 공격 중 산성 침 흩뿌리기는 피하는 게 불가능합니다. 힐러는 콜리보르가 산성 침 흩뿌리기를 사용하기 전, 파티원들의 생명력을 미리 회복시켜놔야 합니다.

▷ 콜리보르는 일정 시간마다 허기를 채우기 위해 가장 가까이에 있는 고깃덩이를 주워 먹습니다. 그리고는 정면 180 의 넓은 범위로 브레스를 내뿜습니다. 탱커는 콜리보르가 브레스를 내뿜기 전 타이밍에 맞춰서 브레스를 피해야 합니다.

만약 브레스를 일찍 피할 경우 콜리보르가 본진 쪽으로 고개를 돌려 파티를 전멸시키는 상황이 나올 수 있습니다.

▷ 전장에 있는 썩은 고깃덩이 중에는 독성이 담겨 있는 것들이 있습니다. 콜리보르가 그것을 먹게 되면 콜리보르는 영웅들의 공격에 더욱 많은 데미지를 입게 됩니다. 또한 독성은 계속해서 중첩이 되므로, 공대장은 썩은 고깃덩이의 위치를 빠르게 파악해 진영을 그리로 이동해야 합니다.

▷ 콜리보르 공략에서 딜러가 할 일은 오로지 딜링 뿐입니다. 콜리보르를 유도하고 파티의 생명력을 책임지는 것은 탱커와 힐러의 역할입니다. 만약 그 둘이 임무를 다했음에도 불구하고 콜리보르가 광폭 상태에 빠진다면 딜러의 기량 부족입니다.》

“공략은 간단합니다. 콜리보르에게 썩은 고기를 먹이며 딜링을 하면 끝입니다.”

민국의 브리핑이 끝나자 모두들 침묵에 빠졌다. 언제나 그랬듯이 말은 참 쉬웠다. 그래도 콜리보르는 ‘밤의 성채’에서 가장 공략하기가 쉬운 4 등급 특수 개체였다.

“어, 음…. 다른 녀석은요?”

콜리보르의 공략 영상을 보던 유나가 조심스레 물었다. 회의실의 디스플레이에서는 괴상하게 생긴 커다란 개를 대상으로 무시무시할 정도로 화력을 쏟아 붓는 딜러들의 모습이 나오고 있었다.

“아! ‘밤의 성채’ 공략은 콜리보르를 쓰러뜨리고 난 후 끝낼 겁니다.”

“네? 왜요?”

“아이템의 파밍 때문입니다. 우리들의 현재 스펙으로는 콜리보르를 제외한 다른 보스급 몬스터를 쓰러뜨리는 게 굉장히 힘들 겁니다. 하지만 콜리보르에게는 【Gear Score】 350에서 380 사이의 장비 아이템을 얻을 수 있죠.”

콜리보르 공략의 핵심은 바로 썩은 고기 먹이기. 썩은 고기만 계속해서 먹일 수 있다면 스펙이 떨어지는 딜러들로도 충분히 콜리보르를 쓰러뜨릴 수 있었다.

콜리보르의 공격을 탱커인 현아가 버틸 수 있느냐가 관건이겠지만, A 등급 클래스 스톤을 사용해 수호 기사로 전직한 현아와 자신의 실력이라면 충분히 해볼 만 할 것 같았다. 몇 번이나 공략 영상을 돌려봐도 버틸 수 있을 것 같다는 결론이 나왔다.

“부활석이 엄청나게 필요할 텐데요?”

이번에는 김소정이 물었다.

“그건 상관없습니다.”

아직 수십 여 개의 부활석이 남아 있었고, 세계 영웅 협회와 일본 친구들이 오면 대량의 부활석을 또 한 번 제공받을 수 있었다.

콜리보르를 트라이 할 때 마다 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해 하나씩 부활석을 사용해야 하지만 장비 스코어 350 짜리의 아이템만 얻을 수 있어도 엄청난 이득이었다.

10 만 달러 수준인 부활석의 가격에 비해 350 짜리 장비는 약 520 만 달러에 시세가 형성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특히 콜리보르에서만 얻을 수 있는 황금 송곳니는 근접 딜러들의 필수품이나 다름없는 악세사리 BIS(Best In Slot – 일명 졸업템)템이기도 했다. 적어도 【Gear Score】 450 짜리 아이템이 아닌 이상 아이템을 바꿀 필요가 없었다.

‘그렇게 콜리보르를 상대로 부활석을 쏟아가며 파밍 하다가 팀원들의 스펙이 어느 정도 높아졌다 싶을 때 쯤, 본격적으로 ’밤의 성채‘를 공략하는 거지.’

더불어 세계 영웅 협회에서 지원되는 아이템이 도착하면 파밍 시간은 좀 더 짧아지리라는 게 민국의 생각이었다. 그리고 이런 패턴의 레이드는 영상을 보며 훈련을 하는 것보다 일단 몸으로 익숙해지는 게 더 빨리 적응할 수 있었다.

민국도 영상을 통해서는 썩은 고깃덩이와 독성이 있는 썩은 고깃덩이를 구별할 수가 없었다.

팀 GGW 는 곧바로 ‘밤의 성채’로 이동했다. 높은 난이도로 인해 영웅들이 찾지 않는 던전답게 서울에 존재하는 유일한 【B – 2】 등급의 던전임에도 불구하고 다른 영웅들의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고 있었다.

그런 이유 때문인지 성채를 대상으로 총구를 세운 여군들이 오랜만에 찾아온 손님을 바라보며 반가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쉽지 않은 녀석인 만큼 트라이가 오래 반복될 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잡을 수 있다는 생각과 함께 집중해서 공략합시다.”

민국이 팀원들을 앞에 두고 그렇게 말했다. 던전의 난이도를 단숨에 세 단계나 뛰어 넘었다. 그것도 적정 스펙을 완벽하게 무시한 트라이였다.

“진입하겠습니다.”

“네.”

민국을 따라 팀원들도 포탈로 진입했다. 불길하게 회오리치는 포탈의 마나가 영웅들의 몸을 감쌌고, 그것을 벗어나는 순간 음습한 기분이 모두의 몸을 짓눌렀다.

“바로 앞에 있네요. 잡몹들을 처리할 필요가 없으니 바로바로 공략하기에는 편하겠네.”

민국은 우선 주변을 둘러보았다. 혹시 모를 몬스터의 등장을 대비하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몬스터들이 나타날 만한 기미는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그리고 정면에 보이는 커다란 정원에는 거대한 누런 개 한 마리가 거친 콧김을 내뿜으며 엎드려 있었다.

“꿀꺽….”

【B – 2】 의 던전에서 등장하는 4 등급 특수 개체. 이루 표현 할 수 없는 중압감이 팀원들의 온 몸을 짓눌렀다. 아이스 드레이크와 똑같은 등급이라 해도 콜리보르의 스펙은 아이스 드레이크와는 차원이 달랐다.

팀원들의 시선이 콜리보르에 집중된 사이 민국은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전장의 지형을 살폈다. 단순히 넓게 빠진 전장이 아니었다. 정원이라는 말처럼 분수, 울타리, 수로 등 쉽게 오가기 힘든 지형들이 제법 보였다.

‘커다란 분수 같은 거야 콜리보르를 유도하면서 부수면 되겠지만…. 수로 같은 것은 주의를 해야겠네.’

일단 민국은 정원의 지형을 한 눈에 담으며, 전장을 오가는 최단 거리를 파악하기 시작했다. 콜리보르 레이드의 핵심인 독성 있는 썩은 고깃덩이를 먹이기를 위해서는 조금이라도 빨리 독성 있는 고기로 콜리보르를 유도해야 했다.

“그러면 다시 브리핑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팀원들을 앞에 두고 민국은 콜리보르 레이드의 진행 방법을 다시 한 번 차근차근 설명하기 시작했다. 지루한 설명이었지만, 조금이라도 빨리 콜리보르를 쓰러뜨리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다.

“좋아, 현아. 그러면 바로 어그로 잡고 고개부터 돌려.”

“네! 공대장님!”

레이드가 시작되었다. 우두둑하고 몸의 관절을 푼 현아가 자신의 마력을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앞으로 내달렸다.

커엉!

자신의 영역에 적이 들어온 것을 확인한 콜리보르가 번쩍 눈을 뜨더니만 포효를 지르며 맹수처럼 달려들었다. 그리고는 현아를 향해 앞발을 휘둘렀다.

콰아아앙!!!

괴물의 앞 발과 방패가 정면으로 부딪치면서 귀를 찢을 것 같은 큰 소리가 터져 나왔다. 역시 【B – 2】 난이도의 던전에 등장하는 괴물인 것일까? 제대로 방어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탱커의 생명력이 15 % 가 날아갈 정도로 엄청난 공격력이었다.

곧바로 민국의 회복 능력이 현아의 몸을 감쌌고, 이어서 보호막까지 뒤덮여졌다. 다른 공격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일단 앞발 공격은 현아가 충분히 버티는 모습이었다. 예상대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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