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영웅 소녀 전쟁-78화 (78/486)

EP.78 의심

크르르륵!

몬스터의 신경을 곤두서게 만드는 탱커 특유의 마력에 현아를 스치고 지나갔던 콜리보르가 기분 나쁜 표정을 지으며 기다란 혀로 자신의 코를 핥았다. 그리고는 눈동자에 붉은 광기를 물들이며 다시 쇄도했다.

이번에는 처음보다 더 빠른 공격이었다. 그것도 양 옆으로 움직이는 페이크까지 주면서 달려들고 있었다.

그러나 현아의 시선은 그런 콜리보르의 움직임을 정확히 따라가고 있었다. 가상현실 모바일 레이드 게임인 GGW에서 수많은 영웅들을 지휘했던 민국조차도 감탄했던 재능이 지금의 상황에서 발휘되고 있는 것이다.

콰아앙!

“크으윽!”

충돌과 함께 방패를 들고 있던 현아의 몸이 뒤로 주르륵 밀려나면서 지면에 깊게 밭고랑이 새겨졌다. 뼈가 부서진 것 같은 고통에 절로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하지만 회복의 마나가 그녀의 몸을 감쌌고, 고통 또한 빠르게 사라져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그로가 잡힌 것을 확인한 민국의 싸인에 딜러들의 공격이 시작되었다.

김소정을 비롯한 딜러 셋은 자신들의 마나를 폭발시키며 콜리보르를 향해 무기를 휘두르거나 주문을 날렸다. 그녀들의 공격이 거대한 덩치의 몬스터에게 명중할 때 마다 하얀색의 기운들이 모락모락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콜리보르의 생명력이 줄어드는 모습이었다.

그렇게 레이드가 시작되면서 민국은 힐러의 본분인 회복 능력을 사용하는 한 편 주변의 변화를 파악하기 시작했다. 영웅 선배들의 공략 영상에 따르면 전투가 시작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썩은 고기들이….

쿵! 쿠우웅!

순간적으로 자신의 머리로 날아드는 고깃덩이의 궤적에 민국은 옆으로 굴러서 자리를 피했다. 하마터면 고기에 맞아 목이 부러지는 불상사를 당할 뻔 했다. 고인물인 자신을 깜짝 놀라게 만드는 예상치 못한 공격이었다.

“대체 누가 던지는 거지?”

하나당 수백 킬로는 되어 보이는 커다란 고깃덩이들은 ‘밤의 성채’의 내성에서 날아오고 있었다. 개수가 세 개 밖에 되지 않았고, 워낙에 큰 덩이들이라 고깃덩이의 위치를 파악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흐음.”

문제는 저기서 독성이 있다는 썩은 고깃덩이를 파악해야 한다는 점이었다. 하지만 민국은 아무리 봐도 뭐가 독성이 있는 고깃덩이인지 잘 구별이 가지 않았다. 생긴 것도 색깔도 똑같았기 때문이었다. 마치 틀에 찍어서 만들어낸 것처럼 전부 동일한 모습이었다.

‘예상이 틀렸던 건가?’

그러고 보니 다른 공격대의 공략 영상에서도 독성이 있는 고깃덩이만을 먹여 콜리보르를 쓰러뜨리는 전술은 사용하지 않았던 것 같았다. 운 좋게 콜리보르가 독성이 있는 고깃덩이를 먹으면 풀 딜을 때려 박아서 생명력을 크게 깎아내는 게 전부였었다.

그런 모습을 보고 단순히 이 세계의 레이드 실력이 떨어지는 것이라 판단했었는데, 아무래도 그게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이거 곤란한데….”

민국이 난감한 표정을 짓는 사이 굶주린 콜리보르가 가장 가까이에 있던 고깃덩이를 향해 달려들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본 민국이 반사적으로 외쳤다.

“브레스 대비! 탱커는 앞! 나머지는 콜리보르의 뒤로!!!”

제대로 된 유도를 하지 못한 채 레이드가 진행되고 있었지만, 일단은 고깃덩이를 구별하는 방법을 찾고 다른 패턴도 보기 위해 민국은 계속해서 레이드를 진행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첩첩 거리는 소리와 함께 콜리보르가 게걸스럽게 고깃덩이를 먹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쿠어억 하는 소리와 함께 커다란 트림이 터져 나왔다. 이어서 콜리보르가 크게 숨을 들이켰다. 거대한 몬스터의 눈동자는 탱커인 오현아를 주시하고 있었다.

“오현아! 지금 피해!!!”

민국의 목소리와 함께 콜리보르를 두고 일행들의 반대편에 서 있던 현아가 안으로 몸을 날렸고, 그녀가 있던 자리로 독성이 담긴 브레스가 내뿜어졌다.

“방금 전 그냥 고깃덩이를 먹은 거죠?!”

“그런 것 같아! 독성이 담긴 거랑 아닌 거랑 구별을 못하겠어!”

“으…. 2 군 선배 영웅님에게 물어봤는데, 그건 알 수가 없다고 했어요. 운이 좋아야 한다고….”

현아의 말에 민국이 놀라서 눈을 깜빡였다. 실수였다. 그게 사실이라면 콜리보르 공략은 망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어디까지나 독성이 있는 고기만을 먹여 콜리보르를 디버프 만으로 잡을 계획이었기 때문이었다.

아니, 공략 법에도 그런 식으로 공략을 하라고 나와 있었는데…. 그게 불가능하다면 지금 멤버들의 스펙으로는 광폭 전에 콜리보르를 잡을 수가 없었다.

그 때였다. 활시위에 두 대의 화살을 동시에 메기고 있던 유나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입을 열었다.

“왼쪽, 가장 왼쪽에 있는 게 독이 있는 고깃덩이였는데요?”

“뭐…?”

모두의 눈동자가 유나에게로 향했다. 다들 독성이 있는 고깃덩이와 그렇지 않은 고깃덩이를 구별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제가 코가 조금 민감한데, 미미하게 냄새가 달랐어요. 그냥 썩은 고깃덩이는 지독한 냄새인데, 독성이 있는 건 코를 찌르는 느낌도 함께 들었거든요.”

“……난 무슨 차이인지 모르겠는데.”

“나도 나도.”

유나와 팀원들의 대화에 민국의 눈빛이 불안해졌다. 마나의 기운도 아니고, 냄새로 그것들을 파악하라니….

하지만 대화는 거기까지였다. 브레스를 가장한 썩은 트림을 내뱉은 콜리보르가 다시 탱커인 현아를 향해 달려들었기 때문이었다. 몸을 뒤로 빼고, 방패로 막고, 옆으로 구르면서 현아가 콜리보르의 공격을 막아내기 시작했다.

크륵! 크륵! 커어엉!

물에 빠진 개가 몸을 털 듯 이리저리 산성 침을 내뱉는 특수 패턴은 민국의 필사적인 힐 업으로 버텨낼 수 있었다. 다른 일반 공격 역시 마찬가지였다. 적절한 힐과 보호막으로도 충분히 현아의 생명력을 풀로 유지할 수 있었다.

적정 스펙에 비해 【Gear Score】 가 조금 떨어지는 터라 조금 빡빡하게 힐을 해야 했지만, 딜러들을 노리는 공격이 산성 침 흩뿌리기 밖에 없었기에 그 타이밍만 조심하면 아무 문제가 없었다.

확실히 생명력만 많을 뿐, 공격 패턴 자체는 단순한 편이었기에 조금 떨어지는 스펙으로도 충분히 감당해 낼 수 있는 녀석이었다. 그리고 성의 안쪽에서 두 번째 고깃덩이들이 던져졌다. 이번에는 좀 전보다 숫자가 늘어난 다섯 개였다.

“코를 찌르는 냄새라고?”

현아를 향해 수인을 맺으며 민국은 가까이 떨어진 고깃덩이를 향해 다가갔다. 잠시 고깃덩이를 바라보던 민국이 어떤 결심이라도 한 듯 눈에 힘을 가득 주고는 그대로 코를 이용해 숨을 들이켰다.

“우웁!”

썩은 음식물 냄새에 민국은 속이 뒤집어질 것 같은 충격과 함께 머리가 어질어질해졌다. 한 달간 밖에 버려져 있는 음식물 쓰레기통 앞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얼마나 충격이었는지 맺고 있던 수인도 틀리는 바람이 주문이 중단되었을 정도였다.

고통스러운 시간이었지만, 코를 찌르는 냄새는 느껴지지 않았다. 아마 이건 독성이 없는 게 분명….

“아! 맞아요. 공대장님! 그게 독성이 있는 고깃덩이예요!”

“……뭐라고?”

뒤에서 들려오는 유나의 외침에 민국이 그녀를 향해 고개를 홱 돌리며 굳은 표정을 지었다. 위기 상황도 이런 위기가 따로 없었다.

* * *

결국 첫 번째 시도는 전멸로 끝이 났다. 보유한 마력을 전부 써가면서 용케 10 분의 시간을 버티기는 했지만, 콜리보르가 자신의 마력을 폭발시키며 광폭했기 때문이었다. 엄청나게 강력해진 누렁이의 공격에 팀원들은 사이좋게 한 방을 버티지 못하고 그대로 저승길로 떠났다.

다만, 민국은 마음을 단단히 먹고 자살을 해야 했었다.

‘이, 이런 미친놈의 개새끼가….’

여성 팀원들을 다 죽여 버린 콜리보르가 마지막까지 살아남았던 자신을 향해 커다란 무언가를 들이대며 다가왔기 때문이었다. 상상만 해도 끔찍한, 다시는 떠올리기가 싫은 무시무시한 상황이었다.

“…괜찮아?”

“아니, 안 괜찮은 것 같아.”

현아의 말에 민국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깨진 멘탈을 회복하려면 조금 더 쉴 시간이 필요할 것 같았다. 마력이 타락한 영웅을 오크가 따먹는 것은 봤어도, 개새끼가 여자도 아닌 자신을 따먹으려 들 줄이야.

10 분간의 전투 끝에 GGW 의 딜러들이 깎아낸 콜리보르의 생명력은 약 65 % 정도. 3 분의 2 밖에 타격을 주지 못한 것이다.

일반적인 상황이었다면 여기서 당장 레이드를 접고, 딜러들의 아이템 파밍에 집중해야했다. 이건 기량으로도 커버가 불가능한 차이였다. 하지만 35 % 정도라면 독성이 섞인 고기를 이용해 충분히 커버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디버프가 중첩되면 중첩될수록 콜리보르가 받는 데미지도 크게 늘어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10 분의 전투 도중 고깃덩이는 4 번 날아왔었다. 처음에는 세 개로 시작해서 두 개씩 늘어났다.

그런 생각을 하던 민국이 시선을 돌려 유나를 바라봤다. 팀원들 중 유일하게 독이 섞인 썩은 고깃덩이를 정확하게 찾아냈기 때문이었다.

“대체 어떻게 구별한 거야? 나는 냄새를 맡아도 거기서 거기던데.”

머리를 휘청거리게 만드는 끔찍한 썩은 내로 인해 회복 능력의 캐스팅을 실패하면서 하마터면 현아를 죽일 뻔도 했었다. 그리고 유나가 난처한 듯 자신의 뺨을 긁적이더니 조그마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어…. 그러니까, 으음. 엄마가 만든 음식과 비슷한 냄새가 났어요.”

“…….”

“아, 아하하하! 그래. 나도 요리 못해. 할 줄 아는 음식이 라면 밖에 없는 걸?”

“나는 그…, 라면도 물을 잘 못 맞춰요. 한 개는 잘 끓이겠는데, 그 이상만 됐다 하면 물이 한강처럼 되더라고요.”

유나의 말에 모두들 위로를 보냈다. 하기야 요리를 못하는 게 죄는 아니었다. 그래도 라면조차 제대로 못 끓이는 건 조금 심하지 않나?

어쨌든 리딩이 불가능하다면 팀원들의 도움을 받아서 공략을 하면 되는 일이었다. 콜리보르 레이드는 한 명이 아닌 다섯이서 하는 공략이었다. 다행이도 유나가 콜리보르의 공략에 큰 도움이 될 것 같았다.

“혹시 썩은 고깃덩이 날아오면 바로 찾아낼 수 있겠어?”

“두 번째까지는 가능할 것 같아요. 그런데 일곱 개 이상 날아올 때부터는….”

머뭇거리는 유나의 모습에 민국이 바로 물었다.

“딜링을 하지 않고, 고깃덩이만 찾는다면?”

“가능 할 것 같기는 한데…. 한 번 해봐야 할 것 같아요.”

민국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정도만 해도 충분했다.

“그러면 일단은 유나를 믿고서 몇 번 더 트라이를 해 보겠습니다. 독성 고기를 계속해서 먹힐 수만 있다면 충분히 잡을 수 있는 녀석이니까요.”

“그러면 유나가 잘해야겠네요. 파이팅.”

예린이 유나의 어깨를 꾹꾹 주무르며 말했다. 공략과 관련된 중요한 임무를 맡았다는 것 때문인지 유나도 좋은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다시 레이드가 시작되었다.

* * *

“여기가 그 대단한 유망주가 있다는 R’s 클랜입니까? 건물은 상당히 좋아 보이네요.”

애쉬 블루 컬러의 머리카락을 길게 늘어뜨린 서양 여성이 커다란 빌딩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영볼루션의 기사로 발생한 논란거리를 해결하기 위해 세계 영웅 협회에서 파견을 나온 7 성 영웅 일레느였다.

세계 영웅 협회라는 커다란 단체가 고작해야 커뮤니티만을 달구고 있는 논란을 확인하기 위해 이 먼 곳까지 7 성 영웅을 파견할 정도로 한가한 곳은 아니었다. 일본 협회의 요청이 있다 해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한국 영웅 협회에 비리가 있다는 제보가 들어온 것이다. 만약 이제까지 알려진 한민국의 능력이 거짓이라면 R’s 클랜의 랭킹 또한 조작되었다는 것으로 연관 지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클랜의 랭킹은 영웅 협회의 부활석 지원과 관계가 있는 만큼 어떻게 보면 협회의 비리로도 판단을 내릴 수 있었다.

“최근 몇 년의 성과는 좋은 편이 아니었지만, 한 때는 세계 순위에도 들었던 클랜입니다.”

그리고 정장을 입은 여성이 담담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불필요한 오해를 막기 위해 한국 영웅 협회장인 이시연이 직접 보낸 사람이었다.

“그건 과거의 이야기죠. 클랜의 가치는 현재와 미래가 중요한 거 아닐까요?”

하지만 기모노를 입은 여성이 바로 그녀의 말을 반박했다. 6 성 영웅인 사카시타 마키였다. 일본 협회에서 나온 그녀는 뜬금없이 세계 유망주 순위에 이름을 올린 민국을 전형적인 남데렐라 띄어주기라고 여겼다.

자신들이 개인적으로 조사했던 사실들이 바로 그 증거였다. 한민국의 영웅 학교 성적은 그야말로 형편이 없는 수준. 일본 남성도 아니고 조그마한 나라인 한국의 영웅 따위가 자국의 그 어떤 유망주보다도 높은 평가를 받을 리 없었다.

하물며 일본에 비해 한국의 레이드 전력은 그 순위가 무려 열 네 단계나 낮았다. 21 위인 한국에 비해 일본은 미국, 중국, 러시아, 브라질, 인도, 영국의 뒤를 이어 한 자릿수인 7 위의 레이드 강국이었다.

다음화 보기―――――――――――――――――――――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