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영웅 소녀 전쟁-90화 (90/486)

EP.90 시베리아의 불곰 전차

“오셨어요?”

장미 방패단의 단장인 현정이 피곤한 얼굴로 민국을 바라보았다. 시라누이 마이의 일부터 신입 공격대인 GGW 의 확장까지. 거기에 1 군 멤버들의 영입과 이탈도 그녀의 속을 썩이고 있었다.

올해 초만 해도 본인이 이렇게까지 바쁠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는데…. 그래도 한가히 놀던 시절보다는 나았다. 이 모든 것들이 R’s 가 그만큼 다시 궤도에 오르고 있다는 증거였다. 소파에 앉는 민국에게 현정이 살짝 흥분된 목소리로 말했다.

“요즘 GGW 에 대한 영웅들의 관심이 엄청난 것 아시죠? 세계 각국에서 팀 확장과 관련된 문의가 들어오고 있어요.”

“네. 대충은 들어 알고 있습니다.”

모를 리 없었다. 요즘 인터넷에 들어가면 전부 그와 관련된 이야기뿐이었다.

“맞아요. 그래서 말인데 한 가지 여쭙고 싶은 게 있어요. 혹시 현재의 팀원들을 교체 할 생각이신가요?”

“네? 아니요?”

현정의 예상치 못한 질문에 민국은 어깨를 으쓱였다. 함께한 시간은 길지 않았지만, 【B – 9】 난이도의 던전부터 이제까지 자신과 함께했던 팀원들이었다.

성격이나 실력에 문제가 있다면 모를까, 그렇지 않은 이상 민국은 현재의 팀원들과 계속 함께 갈 생각이었다.

그런 민국의 대답에 현정은 남몰래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한민국 공대장의 능력도 대단하지만, 1 년차 신입으로 【B – 2】 난이도의 던전까지 공략에 성공한 GGW 의 팀원들도 많은 클랜들의 관심을 받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상위 레이드의 경험은 돈으로도 살 수 없는 값진 경험인데다가 그녀들의 가능성도 상당하다는 증거이기 때문이었다.

‘만약 팀원의 변경이 없으면….’

계속해서 R’s 클랜의 이름을 달고 GGW 에 남길 수 있었다. 게다가 동생인 현아도 민국의 밑에서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다.

“일단 많은 영웅들의 계속해서 클랜에 문의를 보내고 있어요. 개 중에는 제법 유명한 영웅들도 있고요. 그와 관련해서 공대장님과 이야기를 나누려고 이렇게 자리를 마련했어요.”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을 보니…. 괜찮은 영웅이라도 있나 보네요?”

“네. 우리 클랜의 명성으로는 감당하기 힘든 이들도 공대장님의 팀에는 들어가고 싶어 하더군요. 전부 한민국 공대장님의 능력에 반 한 이들이죠.”

현정이 웃으며 말했다. 그리고는 민국의 앞으로 서류 몇 장을 건네었다. 그녀가 고르고 고른 영웅들의 프로필이었다. 민국이 그것을 들어 올리며 중얼거렸다.

“타냐 루스?”

프로필의 가장 첫 장에는 거칠게 자른 은발에 노란색 눈동자를 한 서양 여성의 사진이 박혀 있었다. 콧등과 뺨에 살짝 상처가 나있는 여성의 모습은 사진으로만 봐도 굉장히 쎈 성격일 것 같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타냐 루스. 러시아의 불곰 전차라 불리는 3 년차 탱커 영웅입니다. 레이더 전력 3 위인 러시아에서도 주목을 받고 있는 특급 영웅 유망주죠. 한민국 공대장님도 알고 계시는 영볼루션의 랭킹 평가에서도 랭킹 11 위를 기록했습니다.”

“높은 건가요?”

“물론이죠. 한민국 공대장님 바로 다음 순번인데요.”

그 말에 민국은 뭔가 기분이 이상했다. 타냐 루스가 자신의 바로 뒷 순위에 있어서 이상한 게 아니라 자신의 앞에 아홉 명이나 있다는 게 기분이 조금 그랬다.

어쨌든 공격대를 확장하게 되면 탱커 한 명과 딜러 한 명 그리고 힐러 두 명을 보충해야 했다. 그리고 오현아 만큼이나 재능 있는 탱커라면 당연히 거부할 이유가 없었다.

“좋네요. 그러면 언제부터 공격대에 합류를 하게 되는 겁니까?”

민국이 기대를 담아 물었다. 하지만 그런 민국을 향해 현정이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일단 그건 조금 지켜봐야 할 것 같아요.”

“네? 어째서요? 외국인 영웅이 우리나라에서 활동을 하려면 워킹 비자 같은 게 나와야 하나요?”

“아, 그런 건 아니에요. 타냐 루스가 우리 클랜에 입단하기를 가장 간절히 원하는 단체는 아마 대한민국 영웅 협회일 테니까요.”

이어서 씁쓸한 표정을 지은 현정이 자조적인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세계 랭킹 11 위의 유망주예요. 아무리 영웅 본인의 의지가 강하고 계약 조건의 양보가 있다 해도 타냐 루스를 데리고 오려면 상당한 돈을 러시아의 클랜에 지불해야 돼요.”

“……클랜에 돈이 없군요.”

“일단 이적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여기저기서 돈을 빌리려고 하고는 있어요. 일본 영웅 협회에서 받은 것들도 있으니, 그것들을 판매하고 나면 어느 정도나마 자금을 마련할 수 있을 것 같고요. 하지만 당장 그녀를 데리고 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해요.”

“뭐, 그렇다면야….”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어차피 당장 【B – 1】 난이도의 던전을 공략할 것도 아니고 말이다.

그렇게 타냐 루스에 대한 정보를 확인한 민국은 프로필의 페이지를 다음 장으로 넘겼다. 그리고는 눈을 휘둥그레 떴다. ‘밤의 성채’에서 서로 신나게 즐겼던 시라누이 마이의 사진이 떡하니 눈에 들어왔다.

의아함을 가득 담은 민국의 눈동자가 현정에게로 향하자 그녀가 떨떠름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시다시피 일본의 초특급 영웅입니다. 워킹 걸이 되기는 했지만 그녀의 재능만큼은 일류니까요. 게다가 공대장님의 생각이 어떨지 몰라 일단 프로필에 넣어놓기는 했습니다. 조만간 히토미 클랜에서도 방출될 예정이기에 이적료도 없고요.”

“레이드 중에 워킹 걸의 마력이 폭주하면 곤란하다고 들었는데요.”

“아무래도…. 만약 한민국 공대장님이 시라누이 마이를 받아들이게 되면 공격대의 일정에 여러 제약이 생길 겁니다. 그녀도 장기간의 원정이 계획되면 알아서 욕구를 풀고 와야 될 테고요. 레이드가 길어지는 상황에서도 위험부담이 크게 늘어날 겁니다.”

“으음….”

민국의 이맛살이 자동적으로 찌푸려졌다. 시라누이 마이가 아무리 포텐 넘치는 딜러라고 해도, 마력 폭주의 위험을 감당하면서도 까지 그녀와 함께하고픈 마음은 없었다. 물론, 출렁거리는 커다란 가슴은 마음에 들었지만….

‘공짜면 나쁘지는 않은 것 같은데.’

그래도 이적료가 한 푼도 들지 않는다는 사실은 제법 마음에 들었다. 클랜이 그렇게까지 찢어질 정도로 가난한 편은 아닌 것 같은데, 아무래도 세계에서 명성을 떨치는 유망주들을 데리고 오기에는 무리가 있는 것처럼 보였다.

게다가 한국은 레이드 전력 20 위권의 나라에 불과했다.

‘그나저나.’

시라누이 마이와 관계를 가지면서 민국은 Sex 코인이라는 새로운 화폐를 획득할 수 있었다. 자신만이 사용할 수 있는 카오스 상점과 관계된 화폐였다.

하지만 그 날 이후, 코인과 관련된 퀘스트는 다시 나타나지 않았고, 다른 여자들과 잠자리를 가져도 새롭게 코인을 획득할 수 없었다. 그러나 만약 시라누이 마이와 가까워지면 그와 관련된 퀘스트가 또 다시 나타날지 몰랐다.

그래도 마력 폭주라는 불확실성을 감내하고 그녀와 함께하고 싶지는 않았다.

“재능이야 넘치는 영웅이니, 본인이 원한다면 받아들여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네요. 아, 제 팀에는 받아들이지 않겠습니다. 굳이 편성하자면 예비 딜러에 넣도록 하죠.”

“알겠습니다. 일단 시라누이 마이에게는 그렇게 전달하도록 할게요.”

그 외에도 쌍둥이 힐러 영웅으로 유명한 브라질의 뷘드셴 자매가 GGW에서 활동하고 싶다는 뜻을 보내왔다. 둘 다 세계 랭킹에 이름을 올리고 있는 이들이었다.

물론, R’s 의 자금으로는 몸 값을 감당하기 힘든 그림의 떡 들이었다. 게다가 둘의 잠재력을 익히 알고 있는 소속 클랜에서도 그녀들의 이적을 완강히 반대하는 모양이었다. 결국 모든 게 돈으로 연결되고 있었다.

* * *

“타냐 루스?”

고기를 썰던 조그마한 손이 멈칫했다. 시간을 내어 데이트를 하는 와중에 본인의 클랜이 아닌 다른 클랜의 이야기를 듣는 것은 별로였지만, 남자의 입에서 나온 말은 메모리아 클랜의 단장인 그녀로써도 허투루 넘길 수 없는 이야기였다.

잠시 고개를 갸웃하던 태연이 민국을 향해 물었다.

“그러면 러시아의 불곰 전차가 당신의 공격대로 합류하는 건가요? R’s 클랜 소속으로?”

“확실한 것은 아니야. 그녀의 이적료를 우리 클랜에서 지불할 수 있어야 가능한 이야기지.”

“흐으응….”

대수롭지 않게 말하는 애인의 대답에 태연은 길게 콧소리를 내었다. 메모리아 클랜이라면 모를까, 로즈 그룹을 배경으로 두고 있는 클랜 답지 않게 R’s 의 자금 동원력은 형편없었다. 결국 타냐 루스의 영입은 실패할 가능성이 높았다.

하지만 타냐 루스와 같은 세계적인 유망주가 한국에서 활동을 하게 되면, 대한민국은 레이드 전력 면에서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있었다. 당연히 그만큼 국가 랭킹도 상승했다.

그렇게 되면 레이드 10 대 강국은 아직 어림도 없겠지만, 한민국의 성장성을 포함한다면 19 위에 랭크되어 있는 멕시코 정도는 넘볼 수 있을지도 몰랐다.

뭐니 해도 에볼루션에서 발표한 최상위 유망주 둘이 대한민국이라는 조그마한 나라에서 활동을 하게 되니 말이다. 그렇게 태연이 생각에 잠긴 사이 민국은 칼로 자른 고기를 포크로 찍어 입에 집어넣었다.

‘와…. 장난 아니네.’

민국의 시선이 잠깐 태연에게 향했다. 역시 입 맛 까다로울 것 같은 재벌 여식이 안내해 준 음식점다웠다. 더욱이 민국은 방금 전 까지 두 시간 가까이 그녀와 함께 데이트 겸 백화점을 돌아야 했었다. 지금은 어떤 음식을 먹어도 맛있는 상태였다.

“타냐 루스까지 관심을 보일 정도면, 당신의 공격대에 들어오고 싶은 영웅들이 굉장히 많은 모양이네요.”

다시 고기를 썰며 태연이 크게 관심이 없다는 척 말을 이었다. 하지만 관심이 없을 리가 없었다. 현재 대한민국 모든 클랜의 눈과 귀는 R’s 의 신입 공격대 GGW 의 확장에 쏠려 있는 상황이었다.

아직 레이드 자격증에 잉크도 마르지 않은 공대장이 평범한 수준의 팀원들을 데리고, 【B – 2】 난이도의 던전까지 공략을 마쳤다. 과연 어디까지 공격대가 성장해 나갈지 짐작조차 할 수 없는 것이다.

많은 클랜의 관계자들은 한민국의 공격대인 GGW 가 최소 박다영 공대장이 레이드를 성공시켰던 【A – 1】 난이도의 던전까지 공략이 가능하지 않겠냐고 입을 모아 말하고 있었다.

한 편으로는 【S】 난이도의 던전 또한 클리어가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섣부른 추측까지도 나오고 있을 정도였다.

“없지는 않지? 시라누이 마이도 그렇고.”

“아아….”

한국의 던전을 공략하려다가 몬스터에 당해 워킹 걸이 되는 비련의 주인공이 되어버린 시라누이 마이는 며칠 전, 많은 일본인들을 놀라게 하는 행보를 선보였다.

- 한국으로 갑니다. 그곳에서 많은 것을 배우고 올 거예요. 한국 제일!

일본 최고의 유망주라는 평가를 받았던 그녀가 레이드 상위 국가인 일본을 떠나 한국의 클랜인 R’s 의 그것도 3 군으로 합류했기 때문이었다. 2 군이 아니라 3 군으로 합류한 것은 언제 마력이 발작할지 모르는 워킹 걸이라는 위험성 때문이었다.

그런 시라누이 마이의 행보에 충격을 받은 일본인들은 아무리 워킹 걸이 되었다 하더라도 자국을 대표하던 유망주를 쓰레기 처분하듯 내보낸 히토미 클랜을 향해 비난의 목소리를 내었다. 하지만 이미 일은 모든 게 끝난 상황이었다.

그렇게 시라누이 마이가 R’s 에 합류하기는 했지만, 그녀는 대기 멤버에 불과했다. 게다가 제대로 된 영입도 아니었다.

“하지만 딱히 변한 것도 없어. 당장 눈에 띌 만한 영입이 있던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공격대의 확장이 시급한 것도 아니니까. 일단은 마력의 결정을 흡수하면서 클랜의 2, 3 군 영웅들과 호흡을 맞출 생각이야.”

“…장미 방패단의 2, 3군이요?”

민국의 대답에 태연은 짙게 한숨을 내뱉었다. 【B – 1】 도 제대로 클리어하지 못하는 R’s 의 2, 3 군은 한민국에게 도움이 되기는커녕, 발목만 붙잡고 늘어질 가능성이 컸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모 기업에 도움을 요청해 무리를 해서라도….

“어라?”

“응?”

뭔가를 깨달은 듯 갑작스럽게 놀란 표정을 짓는 태연의 모습에 민국이 고개를 갸웃했다. 잠시 후, 태연이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타냐 루스. 우리가 영입할 게요. 당신이 그녀가 우리 클랜에 입단하도록 설득을 좀 해주세요.”

“어…? 어? 메모리아가?”

“네. 그리고 우리가 타냐 루스를 영입하면, 바로 R’s 로 임대를 보낼게요. 대신 주급의 반은 R’s에서 감당하는 것으로 하고. 그러면 우리는 뛰어난 유망주를 손에 넣어서 좋고, 당신도 좋은 팀원을 얻어서 좋고. 어때요?”

“어어….”

이걸 좋아해야 하나, 아니면 거절해야 하나….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아니, 타냐 루스의 영입 자금도 한, 두 푼이 아니었다. 대충 생각해도 천문학적인 자금이 들어갔다. 그런 돈을 메모리아가 감당한다고 하니 뭔가 기분이 이상했다.

“보통 남편이 아내를 외조 한다고 하죠? 그 반대라고 생각하세요.”

그런 의문이 담긴 민국의 얼굴을 향해 태연이 웃으며 말했다. 물론 메모리아가 손해를 보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타냐 루스는 한국의 랭커 클랜인 메모리아의 명성으로도 영입 제안서조차 내밀지 못하는 초대형 유망주였다.

그리고 태연은 메모리아를 대한민국 최고의 클랜으로 만들려는 야심을 가진 여인이었다.

다음화 보기―――――――――――――――――――――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