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영웅 소녀 전쟁-92화 (92/486)

EP.92 시베리아의 불곰 전차

‘방어 능력에 치중한 탱커인가?’

민국도 타냐의 모습을 훑었다. 방패 중앙의 손잡이를 양 손으로 잡고 있는 것을 보니 딱히 무기를 사용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커다란 방패 하나만으로 공격과 방어를 동시에 하는 모양이었다. 기름을 잘 먹은 갈색의 방패 아이템은 보스급 몬스터의 강력한 일격도 충분히 막아낼 수 있을 것처럼 단단해 보였다.

‘공방 능력이 어떤지 부터 확인해야겠네.’

일단은 기본기부터 확인할 생각이었다. 스킬은 스톤을 통해 유동적으로 사용이 가능하니 나중에 생각해도 되었다.

만약 타냐의 방어력이 현아보다 뛰어나면 메인 탱커와 서브 탱커의 위치를 조정할 필요가 있었다. 아무래도 몬스터의 공격을 집중적으로 받아내야 하는 메인 탱커는 그 무엇보다도 방어 능력이 뛰어나야 했기 때문이었다.

“자, 그러면 어둠에 타락한 콜리보르 레이드 시작하겠습니다. 티티.”

“넵! 제 실력을 보여드리겠습니다.”

처음으로 상대하는 몬스터임에도 불구하고 타냐는 당당하게 외치며 방패를 앞으로 내밀었다. 세계에서 주목하는 유망주답게 굉장히 자신만만한 태도였다.

하지만 타냐의 이런 자신감에는 타당한 이유가 있었다. 그녀는 러시아에서 몇 번이나 【B – 2】 난이도의 레이드를 성공시킨 적이 있었다.

“자아! 불곰 나가신다!!!”

우렁찬 고함과 함께 타냐가 콜리보르를 향해 달려들었다. 아니, 맹렬한 돌진이라고 표현해야 하는 게 맞을 것 같았다. 어째서 사람들이 타냐 루스를 가리켜 ‘시베리아의 불곰 전차’라는 별명으로 부르는지 눈앞의 모습을 보니 절로 이해가 되고 있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전투 장면에 민국을 포함한 모두의 눈이 크게 휘둥그레졌다.

쾅! 콰쾅!!!

콜리보르의 선제공격을 막아낸 타냐가 중앙의 손잡이와 방패의 뒤쪽을 부여잡고는 그대로 몸을 틀어 콜리보르를 찍어 버리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불법 시위를 하는 시위대를 폭력적으로 진압하는 경찰 특공대의 모습이 그녀의 뒤로 투영이 되고 있었다.

“저건 완전히 이 세계를 침략한 몬스터를 진압하는 모습인데? 그런데 봉은 어디로 갔냐?”

원래의 세계에서 의경 출신으로 제대를 했던 민국에게는 급 친근감이 느껴지는 모습이었다.

커다란 방패의 끝에 정통으로 얻어맞은 콜리보르의 턱이 크게 뒤틀렸다. 아랫니가 부러진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의 모습이었다. 이어서 눈동자를 붉게 물들인 콜리보르가 다시 타냐를 노리고 달려들었다.

하지만 타냐는 이번에는 내려찍기로 커다란 멍멍이의 코를 쾅 짓눌렀다.

- 커어엉!

한 치의 물러섬도 없이 덤벼드는 조그마한 인간 영웅을 향해 콜리보르의 분노가 폭발하고 있었다. 그 증거로 타냐에 대한 콜리보르의 어그로 수치가 급격하게 높아지고 있었다.

“그러면 딜링 시작하겠습니다.”

영웅 패드로 어그로를 확인하던 민국의 지시가 떨어지자 딜러들도 공격을 시작했다. 개 중에는 유나도 있었다.

장비의 스펙이 갖춰진 지금이야 중요성이 크게 떨어지기는 하지만, 독성이 있는 썩은 고깃덩이를 발견할 수 있는 유나는 콜리보르 레이드에 상당한 도움이 되는 멤버였다.

그렇게 최유나, 정예린과 함께 새로운 신입 멤버이자 메모리아의 초특급 유망주였던 신나연이 전투에 나섰다. 현아와 대검을 무기로 사용하는 근접 딜러인 김소정은 대기였다.

“[email protected]#[email protected]%$$”

“!%[email protected]#[email protected]#”

팀원들이 전투를 시작하자 멀리서 대기하고 있던 현아와 소정이 밖에서 응원을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몬스터와 영웅의 마력이 충돌하면서 생겨나는 파장 때문에 그녀들이 뭐라고 말하는지는 정확히 들리지가 않았다.

레이드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민국은 타냐의 생명력을 관리하면서 동시에 신나연의 움직임도 관찰했다. 앞으로 함께할 사이인 만큼 그녀가 어떤 스타일의 전투를 선호하는지 그리고 딜링 능력이 어떤지를 파악하는 것이 우선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메모리아의 간판이자 대한민국의 랭킹 1 위인 강채영에게 영향을 받았는지 신나연은 강채영과 똑같은 마력구를 주 무기로 사용했다.

지이잉! 징!

신나연을 중심으로 펼쳐진 세 개의 구체가 삼각형을 이루면서 빙글빙글 돌아가더니 레이저로 보이는 빔을 연달아 쏘아댔다. 자신의 마력으로 만들어낸 공격이겠지만, 외형적으로 보기에는 SF 의 한 장면이 따로 없었다.

‘데미지가 제법….’

신나연의 구체가 공격을 가할 때 마다 콜리보르의 생명력이 큼직큼직하게 깎여나가고 있었다. 메인 딜러인 정예린 보다 1.7 배 아니 그 이상으로 보이는 엄청난 공격력이었다.

하지만 높은 공격력만큼이나 단점도 확연하게 눈에 들어오고 있었다. 세 개의 마력구를 동시에 조종해야 하는 탓에 신나연이 제 화력을 뽑아내려면 제자리에서 가만히 정신을 집중하고 있어야 한다는 점이었다.

“고깃덩이 날아옵니다!”

“아, 넵!”

지금처럼 무빙이 필요한 상황일 때 신나연이 움직일 수 있는 마력구는 세 개 중 한 개. 결국 그녀의 DPS(초당 데미지)가 삼분의 일로 줄어든다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손만 뻗으면 날아가는 마력구는 신나연이 움직이지 않아도 멀리서 원격으로 움직이며 적에게 타격을 입힐 수 있었다. 사정거리도 정예린보다 길었다. 그런 점을 생각하면 충분히 매력적인 능력이었다. 전술적으로도 효용 가치가 높아 보였다.

패턴 자체가 어려운 녀석은 아니었기에, 콜리보르 레이드는 큰 위기 없이 성공적으로 끝이 났다.

그 이후로도 ‘인큐버스 – 라함’을 상대하다가 한 번, ‘서큐버스 퀸 – 루디아’를 상대하다가 두 번을 전멸한 것을 제외하면 초행인 탱커를 데리고 던전을 돌았다는 것을 감안했을 때 제법 성공적이라 할 수 있는 레이드였다.

“좀 더 잘할 수 있었는데, 실수를 범하다니…. 죄송합니다!”

“아니, 충분히 잘했습니다. 마음에 들어요. 신나연 영웅도 괜찮았습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허리를 숙이는 타냐를 향해 민국은 그렇게 말하며 새롭게 합류한 두 영웅의 마음을 안심시켰다.

둘 다 이름값에 걸맞게 뛰어난 실력을 지닌 영웅들이었다. 그리고 탱커진은 이대로 정해도 상관이 없을 것 같았다.

팔방미인처럼 방어력, 유틸성, 공격력 등 다양한 면에서 뛰어난 모습을 보이는 현아와 방패를 든 태세에 따라 퓨어 탱커와 딜탱을 오갈 수 있는 타냐는 메인 탱커와 부 탱커에 딱 들어맞는 조합이었다.

딜러진도 이 정도면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다만 비어있는 한 자리는 균형을 맞추기 위해서라도 근접 딜러를 뽑아야 할 것 같았다.

물론, 시라누이 마이는 예외였다. 그녀의 재능은 인정하지만, 레이드 중 오염된 마력이 폭주하는 것은 감당하기 힘들었다. 마력이 정화되는 일이 일어나지 않는 이상은 말이다.

* * *

메모리아가 세계 유망주 랭킹 11 위의 영웅인 러시아의 불곰 전차, 타냐 루스를 영입한 지 벌써 열흘이나 지났다.

[러시아의 기대주, 타냐 루스 R’s 로 합류!]

[R’s 의 관계자. 타냐 루스는 클랜에서 잘 적응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냐 루스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은 조금도 식지 않고 있었다.

레이드 전력의 차이가 크게 나는 러시아의 특급 유망주가 기껏해야 20위권 언저리인 대한민국에서 활동을 하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사람들은 다들 그녀가 대한민국의 레이드 수준에 대해 어떤 말을 꺼낼지, 또 갑자기 툭 튀어나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유망주로 거듭난 한민국의 리딩 능력에 대해 어떻게 평가할지를 궁금해 했다.

그런 사람들의 궁금증을 풀어주기 위해 레이드 전문 언론인 한국일보가 메모리아의 구단주인 김태연을 설득해 타냐 루스와의 인터뷰를 힘겹게 따낼 수 있었다.

“반가워요, 타냐. 늦었지만 메모리아에 입단하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벌써 한국에서 활동을 시작한 지 열흘이나 지났는데, 한국에 대한 느낌은 어떠신가요?”

마이크는 베테랑 기자인 안혜정이 잡았다. 영볼루션에도 언급되는 초특급 유망주와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사실 때문인지 그녀는 잔뜩 상기된 모습이었다.

“좋습니다. 사람들도 굉장히 친절 합니다. 그리고 날이 따뜻한 게 가장 마음에 듭니다.”

현재 한국은 2 월의 끝자락으로 제법 추운 날이 연달아 이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러시아에 비교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 증거로 인터뷰에 나선 타냐는 한겨울임에도 불구하고 반팔을 걸치고 있었다.

“또한 러시아와 비교될 만큼 대한민국의 레이드 수준도 대단하다는 사실을 새롭게 알 수 있었습니다.”

이어지는 타냐의 말에 안혜정이 눈을 깜박였다. 러시아는 레이드 전력 3 위를 자랑하는 레이드 강국이었다. 한국과 비교하면 하늘과 땅 만큼이나 수준 차이가 났다.

한국 랭킹 1위 클랜인 메모리아보다도 세계 순위가 높은 클랜만 해도 무려 다섯 곳이나 되었고, 러시아의 대표 클랜인 ‘레드 스콰이어’는 세계에서 두 번째로 【S – 9】 난이도의 던전 공략을 성공시킨 클랜이었다.

‘립 서비스가 대단하네.’

혜정은 타냐의 말을 그렇게 받아들였다. 곧이곧대로 믿기에는 무리가 있기 때문이었다. 하기야 이 정도의 급이 되는 영웅들은 자신들이 어떻게 말을 해야 팬들이 좋아하는 지 잘 알고 있을 터였다.

“그렇다 해도 러시아에서의 반대가 대단했을 것 같아요.”

“맞습니다. 소속 클랜과 가족들은 제가 한국으로 이적을 하는 것에 대해 큰 우려를 표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한국의 공대장과 함께 제 능력을 시험해 보고 싶었습니다.”

“그 공대장이라면 한민국 영웅을 말씀하시는 거죠?”

러시아에서 메모리아로 이적한 타냐 루스는 이적과 동시에 R’s 로 임대가 되었다. 계약서에도 적혀 있는 내용이었는데, 그것이 한민국과 관련되었다는 것을 모르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혜정이 이어서 질문을 던졌다.

“열흘 정도 【B – 2】 난이도의 던전인 밤의 성채를 공략하면서 한민국 공대장과 호흡을 맞추셨다고 들었습니다. 어떠셨나요?”

“예상했던 대로 최고였습니다. 한민국 공대장의 리딩 능력은 러시아의 자랑인 하얀 사신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것라는 게 제 생각입니다.”

타냐의 말에 혜정은 순간적으로 크게 소리를 지를 뻔했다. 이미 뒤에서는 사람들이 숨을 들이키는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아무리 한민국의 잠재력이 대단하다 한들 러시아의 하얀 사신 – 나타샤 레니에는 어둠 괴물과의 전쟁이 한창이었던 시절, 유럽과 러시아를 오가며 수많은 괴물들을 쓰러뜨렸던 전쟁 영웅이었다.

그런 역사적인 영웅과 한민국을 비교하다니…. 립 서비스라고 말하기 에는 발언 강도가 굉장히 셌다. 하얀 사신이 러시아에서 차지하는 위상을 생각하면 이대로 기사를 내보내도 되나 하는 우려가 들 정도였다.

하지만 타냐는 눈앞의 이들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그리고 어떤 반응을 보이는 지 별로 관심이 없었다. 그녀는 단지 자신이 받은 느낌을 우직하게 그대로 말할 뿐이었다.

“또한 다른 팀원들도 자신들의 포지션에서 뛰어난 능력을 지니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이러한 팀원들과 함께 GGW에서 활동하게 되었다는 사실이 정말로 기쁩니다.”

타냐의 인터뷰는 길게 진행이 되었다. 한국으로 처음 이적을 한 세계적인 유망주인 까닭에 그녀에게 묻고 싶은 질문들이 산더미처럼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GGW 에서의 당신의 목표는 무엇인가요?”

“일단은 【B – 1】 난이도의 공략입니다. 그리고 빨리 【A】 난이도의 몬스터를 물리치고, 세계적인 공격대라고 불릴 수 있는 【A – 1】 의 던전을 공략하고 싶습니다. 그것을 위해 팀에 많은 도움이 되고 싶습니다.”

러시아의 불곰 전차, 타냐 루스와의 인터뷰는 그렇게 끝이 났다.

한국 일보에서 편집된 기사를 내보나자마자 사람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러시아의 특급 유망주가 저렇게 칭찬을 늘어놓을 정도면 대한민국의 레이드 수준도 높은 것이 아니냐는 말들이 여기저기서 흘러 나왔다.

하지만 던전에서 활동하는 영웅들의 반응은 조금 달랐다. 흥분하기 보다는 침착한 모습들이었다. 특히 상위 난이도에서 활동하는 영웅들이 그러했다.

한민국의 능력은 충분히 인정하지만, 랭커 클랜을 제외하면 각 클랜의 1 군 정도만이 공략이 가능한 【A】 난이도의 던전. 과연 리딩 능력이 탁월하다고 평가를 받는 한민국이 【A】 난이도의 던전에서 어떤 성과를 보일지 지켜봐야 한다는 신중론이었다.

재능 넘치는 수많은 영웅들이 【A】 난이도의 벽에서 주저앉았던 만큼 한민국도 자신의 능력을 상위 난이도에서 증명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외부에서 여러 이야기들이 도는 와중에도 민국은 팀원들과 함께 밤의 성채를 돌며 오렌지 급 결정을 수확에 열중하고 있었다. 그리고 며칠 뒤, 타냐 루스의 이적 소식만큼이나 충격적인 오피셜이 대한민국 영웅계를 강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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