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97 운이 좋네요?
“마력 폭발!”
민국의 커다란 목소리가 전장을 울렸다. 딜러들의 집중 공격을 받는 공허 드래곤의 생명력이 곧 70 % 아래로 떨어지려고 하고 있었다. 이제까지의 트라이보다 훨씬 빠르게 레이드가 진행되고 있었다.
‘생각보다 대단한데? 단일 타겟에 대한 공격력만큼은 다른 딜러들을 압도하는 수준이네.’
힐끗 민국이 1 초에 한 번씩 공허 드래곤의 비늘을 가격하고 있는 시라누이를 바라보았다.
영웅 패드에 기록되고 있는 시라누이 마이의 DPS 는 그만큼 압도적이었다. 착용 스킬이 아무리 뛰어나다 해도 그것을 실전에서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은 그녀의 재능이 대단하다는 이야기였다.
역시 일본이 애지중지하며 대우를 한 것에는 이유가 다 있었다. 오히려 이런 딜러를 마력이 오염됐다고 쉽사리 계약을 해지한 히토미 클랜의 결정이 이해가 되지 않을 정도였다.
‘그만큼 레이드에서 워킹 걸의 발작으로 의한 일어나는 변수들이 굉장히 위험하다는 말이겠지만….’
어쨌든 시라누이 마이를 레이드에서 제대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조금 연구가 필요할 것 같았다. 형편없는 방어력은 제외하더라도 그녀의 뛰어난 공격력만큼은 그냥 두기가 아까웠다. 물론, 나중에 생각할 문제였다.
탱커를 향한 공격을 멈춘 공허 드래곤이 서서히 자신의 마력을 모으고 있었다. 그 틈을 타 타냐는 헐레벌떡 아군이 모여 있는 장소로 합류했다. 다른 딜러들도 마찬가지였다. 조금이라도 모이는 게 늦으면 죽은 목숨이었다.
노랗게 물든 거대한 동공에서 빛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거대한 괴물의 입에서 인간의 언어가 나오는 순간 검은 번개들이 전장을 휘몰아 칠 터였다.
“지젤!!!”
“준비 됐어요!”
지젤의 말에 민국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오현아를 향해 수신호를 보냈다. 시라누이 마이에게 희망의 방패를 사용하라는 지시였다.
- 공허에 타 죽어라!!!
검은색의 번개가 전장 곳곳에 떨어졌다. 강력한 위력을 담은 번개는 전장을 파괴하고, 불태우기 시작했다. 개 중에는 공대원들이 뭉쳐 있는 보호막을 향해 떨어지는 것들도 있었다.
“크으으윽…!”
보호막을 유지하는 지젤이 이를 아득 물었다. 자신이 조금이라도 더 보호막을 유지하고 있어야 팀원들이 공허 마력 폭발의 충격에서 버텨낼 수 있었다. 민국과 켄달도 쉴 새 없이 회복 능력을 사용하며 피해를 입는 아군을 치료하고 있었다.
“불곰 나가신다!”
두 번째 공허 마력 폭발 패턴도 부드럽게 넘기자 타냐가 앞으로 튀어나가며, 혹시 모를 브레스를 대비해 본진의 반대쪽에서 공허 드래곤의 어그로를 잡기 시작했다. 이제 한 번만 더 마력 폭발 패턴을 보면 공허 와이번이 등장할 차례였다.
공허 드래곤의 발과 꼬리가 메인 탱커와 근접 딜러들을 노리고 날아들었다. 하지만 이런 싸움에 익숙한 영웅들은 어렵지 않게 공허 드래곤의 공격을 피하며 괴물의 빈틈에 무기를 찔러 넣었다. 조금씩 공허 드래곤의 생명력이 반 이하로 떨어지려고 하고 있었다.
“정예린, 최유나, 신나연 휴식! 스킬 사용 금지 합니다!”
영웅 패드를 확인하던 민국이 땀을 뻘뻘 흘려가며 공허 드래곤을 공격하던 세 딜러를 향해 말했다.
시라누이 마이의 합류로 데미지가 늘어난 탓에 브레스와 공허 마력 폭발의 타이밍에 동시에 올 것 같은 느낌이었다. 게다가 그녀들은 공허 와이번의 처리해 온 힘을 쏟아야 했다.
“네…?”
전투 중에 공격을 중지하라니? 갑작스런 민국의 지시에 마력을 끌어 올리던 예린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고개를 젓는 민국의 행동에 그녀는 자신의 마력을 공기중으로 흘려 보냈다.
최유나는 이미 시위를 풀고 팔을 내리고 있었다. 그리고 신나연도 공허 드래곤을 공격하고 있는 자신의 마력구를 불러 들였다.
이렇게 되니 공허 드래곤을 공격하는 딜러는 근접 딜러인 김소정과 시라누이 마이 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허 드래곤의 생명력은 제법 빠른 속도로 줄어들고 있었다.
“김소정 딜 중지! 티티는 브레스 대비! 이어서 마력 폭발 준비합니다!”
“예썰!!!”
민국의 지시는 계속해서 내려졌다. 마치 상대 몬스터가 어떤 스킬을 사용할지 미리 알고 있는 것 같은 명령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공허 드래곤의 브레스를 버텨낸 지 얼마 되지 않아 괴물의 노란 눈동자가 빛을 내뿜기 시작했다. 공허 마력 폭발이었다.
“이번 공격을 버틴 다음, 김소정을 제외한 모든 딜러들은 공허 와이번을 처리합니다.”
민국의 말에 딜러들은 모두들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들의 장비를 쥔 손에 점점 힘이 들어가고 있었다. 이제까지 이 패턴을 버티지 못해 전멸을 경험했지만, 지금은 느낌이 달랐다.
그리고 공허 드래곤이 만들어내는 검은색 번개의 충격을 견뎌낸 영웅들이 전장의 2 시 방향으로 총알처럼 튀어 나갔다. 키엑거리는 소리와 함께 영웅들을 향해 이빨을 드러내는 공허 와이번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이거나 쳐 먹어!”
공허 와이번을 향해 큰 걸음으로 성큼성큼 달려간 현아가 원반을 던지듯 자신의 방패를 와이번을 향해 집어 던졌다. 현아의 손에서 떠난 방패가 옆으로 크게 포물선을 그리며 공허 와이번의 턱을 가격했다.
- 키에에엑!
분노로 물든 공허 와이번의 눈동자가 자신을 바라보자 현아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와이번에게 탱커의 마력을 흘려보냈다. 어둠 괴물들의 적대감을 크게 증폭시키는 탱커의 마력에 와이번의 머릿속에 현아의 모습만이 각인되기 시작했다.
“어그로 잡았어요!”
“공격 시작!!!”
정예린을 시작으로 먼저 도착한 딜러들부터 자신들의 마력을 폭발시키며 공허 와이번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정예린과 최유나의 번개 화살 콤보가 공허 와이번의 머리를 내리찍었고, 뒤늦게 도착한 신나연의 마력구가 불을 내뿜었다.
그리고 스킬 특성으로 인해 허리춤에 검을 수납한 시라누이 마이가 빠른 속도로 공허 와이번을 향해 달려들고 있었다.
순식간에 공허 와이번과 가까워진 마이가 발검과 동시에 와이번의 다리를 가격했다. 커다란 아픔에 공허 와이번이 움찔하며 눈을 감았다가 떴다. 순간적으로 시라누이 마이에 대한 어그로가 크게 치솟아 오르고 있었다.
“칫!!!”
시라누이 마이의 공격을 시작으로 와이번의 이상을 눈치 챈 현아가 곧바로 마력을 방출했다. 그러자 와이번의 시선이 다시 현아에게로 향했다. 하지만 시라누이 마이의 공격은 지금부터가 시작이었다.
“신속하게!”
공허 와이번을 가격하는 시라누이의 검이 점점 빨라지기 시작했다. 그럴수록 그녀의 검에 실리는 마력 데미지도 조금씩 늘어나고 있었다. 덕분에 현아는 공허 와이번의 시선을 붙잡기 위해 계속해서 자신의 마력을 방출해야 했다.
다른 딜러들도 쉴 새 없이 와이번을 공격했다. 공허 드래곤과 싸웠을 때보다 더욱 필사적인 움직임이었다. 힐러로 합류한 켄달도 쉬지 않고 회복 능력을 사용해 공허 와이번의 공격을 막아내는 현아를 치유했다.
“자, 잡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최유나가 기대감에 찬 목소리로 외쳤다.
예열의 시간이 필요하기는 하지만 공허 드래곤의 경우를 보더라도 시라누이 마이의 단일 타겟에 대한 공격력은 정말 엄청난 수준이었다. 그 덕분에 공허 와이번의 생명력이 평소 때보다도 빠르게 줄어들고 있었다.
“공허 와이번이 쓰러지면 바로 본진으로 합류해야 해!!! 절대 늦지 마!”
정예린도 뒤따라 말했다. 공허 와이번을 잡았는데도 불구하고 본진에 합류하지 못하고 죽는다면, 힘들게 와이번을 쓰러뜨린 이유가 없었다. 어느새 본진에서는 공허 드래곤의 브레스가 메인 탱커인 티티를 향해 내뿜어지고 있었다.
- 키에에에에엑!
단발마의 비명과 함께 최유나의 화살이 목에 꽂힌 공허 와이번이 그 자리에 쿵하고 쓰러졌다. 그와 동시에 여섯 명의 영웅들은 마치 한 몸이 된 것처럼 민국과 지젤이 있는 쪽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단거리 달리기 경주를 하듯 죽을힘을 다한 속도였다.
하지만 공허 드래곤은 모든 영웅들이 본진에 합류하고 공격을 시작했을 때야 자신의 마력을 끌어 모으기 시작했다. 이제까지의 전투와는 확실하게 다른 움직임이었다.
“잡을 수 있겠는데…. 이번 패턴 버티고 좀 더 집중합니다!”
“네!”
“예썰!”
민국의 말에 모두들 소리를 높이며 전의를 불태웠다. 그리고 힐러들의 헌신적인 활약으로 공허 마력 폭발 패턴을 버틴 영웅들의 공격이 공허 드래곤을 향해 쏟아졌다.
전투가 계속되는 동안 공허 드래곤은 점점 더 잦은 빈도로 공허 마력 폭발을 사용했다. 공허 와이번도 한 번 더 소환해냈다.
그러나 머릿속으로 공허 드래곤의 스킬 패턴과 타이밍을 외우고 있는 민국은 공허 드래곤의 강력한 공격이 오기 전에 한발 앞서서 영웅들에게 명령을 내렸고, 위기 상황을 순조롭게 대처해 나갔다.
“5 퍼센트!”
그리고 이제는 전투를 마무리 할 시간이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 이미 전장의 한 구석에서는 두 마리의 와이번 시체가 널브러져 있었고, 공허 드래곤도 온 몸에서 짙은 청록색의 피를 흘리고 있었다. 기세가 등등하던 모습도 온 데 간 데 없었다.
GGW 의 상태도 그리 좋은 것은 아니었다.
지젤과 켄달의 마력은 거의 바닥이었고, 메인 탱커인 타냐의 방패도 고열의 브레스를 계속해서 막아내느라 흉하게 우그러져 있었다. 이번 레이드의 성공 여부와 관계없이 다음 레이드는 장비 아이템을 수리하고 난 이후에나 가능할 것 같았다.
“2 퍼센트! 마력 폭발 옵니다! 이번만 버티면 돼!!!”
영웅 패드를 확인한 민국이 한 번 더 외쳤다. 그리고 한 데 모이는 영웅들의 머리 위로 반투명한 보호막이 두껍게 쌓여졌다. 젖 먹던 힘까지 끌어올린 지젤의 마력 보호막이었다.
콰르르르릉!
마지막 발악이라도 하듯 공허 드래곤의 마력 폭발이 GGW 의 영웅들을 향해 세차게 내리쳤다.
그러나 레이드를 여기까지 끌고 온 GGW 의 힐러들도 쉽게 자신들의 동료들을 버리지 않았다. 민국, 켄달, 지젤. 힐러진 만큼은 세계 유망주 랭킹에 이름을 올리고 있는 초특급 실력자들로만 구성되어 있었다.
“마무리!!!”
결국 공허 드래곤의 마력 폭발이 끝났을 때, GGW 는 열 명 모두가 전장에 두 발을 디디고 있었다. 그리고 민국의 마지막 지시가 떨어졌다.
삐익!
▶ “공허의 탑”의 토벌을 완료했습니다.
▶ 영웅 패드에 업적 포인트가 4 주어집니다.
▶ 영웅 도감의 횟수가 갱신되었습니다.
“이예에에에!!!”
“나이스!”
공허 와이번을 빠르게 처리하면서 다들 혹시나 하는 기대는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이번 트라이에 정말로 공허 드래곤을 쓰러뜨릴 수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그만큼 5 등급 몬스터는 무시무시한 녀석이었다.
하지만 공허 드래곤은 죽었고, 영웅 도감의 횟수는 갱신이 되었다. 모두들 주위에 있는 동료들을 얼싸안고 환호성을 내질렀다.
“와아아아아아악!!!”
지젤도 마찬가지였다. 이렇게 이를 악물고 회복 능력을 사용한 게 얼마만이던가?
그것도 【Gear Score】 가 높은 고 등급의 영웅이 한 명도 끼어 있지 않는 팀으로 공략한 업적이었다. 기껏해야 최소 조건만을 간신히 만족한 영웅들끼리 【B – 1】 난이도의 던전에 등장하는 5 등급 몬스터를 쓰러뜨린 것이다.
“어…?”
이성을 잃을 정도로 열광을 하다가 정신을 차려보니 지젤은 자신의 밑에 누군가가 깔려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곧 아래에 깔린 대상을 확인한 지젤은 상대를 놀리듯 엉덩이를 빙글 돌리며 방아를 한 번 찧었다. 그리고는 요염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한민국 공대장님?”
“네?”
“오늘 진짜 멋있었어요. 그래서 제가 대접을 해드리고 싶은데, 그 기여도가 가장 높은 사람에게 주는 하루 데이트 이용권. 저를 지목해주시면 안 될까요?”
목적이 빤히 보이는 지젤의 말에 민국이 속으로 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민국이 뭐라 말하려는 찰나 그런 뒤에서 누군가가 그런 지젤을 손으로 밀었다.
“지젤. 고, 공대장님이 곤란해 하시잖아. 뭐하는 거야? 빨리 일어나.”
“아이, 언니는 진짜. 분위기 좋은 데 왜 방해하고 그래? 누가 남자 손 한 번 못 잡아 본 처녀 아니랄까봐. 그러니까 남자들이 싫어하는 거야. 최소한의 경험은 있어야지.”
“……시끄러워.”
둘의 대화를 들으며 민국도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공허의 드래곤의 시체가 천천히 사라지면서 황금빛을 띄는 상자가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5 등급 몬스터의 전리품 상자였다. 그것도 퀘스트의 보상이 들어있는 보상 상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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