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01 운이 좋네요?
“언니가 영웅 협회에 갔다고요? 무슨 일이라도 생긴 모양인가 보죠?”
클랜 하우스 도착한 현아가 전리품과의 직원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손에는 ‘공허의 탑’을 공략하고 본인의 힘으로 뽑아낸 【클래스 스톤(A) - 집중 치료술사】 가 들려 있었다. 언니에게 자랑을 하려고 들고 온 아이템이었다.
천진난만하게 묻는 현아의 모습에 전리품과의 직원이 쉬쉬하며 어두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정확한 사실은 확인되지 않았는데, 아무래도 다른 나라에서 던전 브레이크가 일어난 것 같아요.”
“……네? 던전이 터졌다고요?”
현아의 눈동자가 크게 떠졌다. 영웅으로 활동하고 있는 만큼 그녀는 그게 얼마나 끔찍하고 무시무시한 사고인지 잘 알고 있었다.
지진, 태풍, 화산 폭발과 같은 자연 재난과는 피해의 정도 면에서 비교가 되지를 않았다. 한국도 던전 폭발로 인해 대구와 함께 충청 남북부 지방이 쑥대밭이 되지 않았던가?
“그, 그게 정말인가요?!”
“주위 직원들이 그렇게 말하는 걸 들었어요. 아는 기자에게 들었다고 하니 신빙성이 낮지는 않은 것 같아요.”
현아는 절로 침이 꿀꺽 넘어갔다. 어쩐지 클랜 하우스의 분위기가 조용히 가라앉아 있더니만. GGW 가 던전을 공략하는 동안 그런 사고가 터졌던 모양이었다.
그리고 이 소식은 곧바로 GGW 의 회의실에서 보고서를 작성하고 있던 민국의 귀에도 들어갔다.
“던전 브레이크?”
다급한 현아의 목소리에 민국은 천천히 기억을 떠올렸다. 원 주인의 기억에 불과했지만, 던전 브레이크가 어떤 현상인지 떠올리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잠시 후, 민국도 눈을 크게 떠야만 했다.
‘뭐야? 이거 진짜야?’
던전 브레이크에 대해 듣는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그러나 영웅 학교에서 배웠던 기억들까지 선명하게 떠오른 순간 민국은 빠르게 영웅 패드를 켜야 했다. 자신의 기억이 맞는지 인터넷으로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이 세계의 대한민국은 던전 브레이크를 경험한 나라. 자료를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미친.”
영웅 패드에 나타난 정보는 끔찍하고 참혹했다. 전쟁이 따로 없었다.
아니, 어둠의 괴물들과 치르는 전쟁이 맞았다. 지금이야 잠잠한 상황이라지만 불과 십여 년 전만 하더라도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갔다고 했다. 그리고 마력을 각성하지 못한 일반인들은 부활석으로도 살아날 수 없었다.
‘이래서 재난이라고 한 건가….’
숫자가 많지 않은 영웅들만으로는 셀 수도 없을 정도로 몰려오는 어둠의 괴물들을 막아낼 수 없었다. 부활석이 있다 해도 한계가 있었다. 하물며 각 국의 정부가 보유한 부활석이 떨어지기라도 하면 영웅들도 되살아 날 수 없는 것이다.
그렇기에 영웅들의 주 임무는 던전 타이머를 초기화 시켜 던전 폭발을 막아내는 것이었다. 그러나 각국의 영웅 수준은 천차만별이었고, 영웅의 수준이 떨어지는 곳이라 해서 꼭 위험도가 낮은 던전 만이 생겨나는 것은 아니었다.
결국 이렇게 던전 브레이크와 같은 재난이 터지게 되는 것이다.
“그렇대. 동남아 지방이라고 하는 것 같은데…. 조만간 공격대들이 소집되겠지?”
던전 브레이크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곤경에 처했을 것에 대한 걱정 때문인지, 현아의 목소리는 떨고 있었다.
“공격대? 아, 확산 현상 때문에?”
직접 배운 것은 아니었지만, 던전 브레이크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자 자연스럽게 기억이 연관되었다. 그래도 원 주인 녀석이 영웅 학교에서 이론 수업은 제대로 들었던 모양이었다.
“응. 우리도 가야할까?”
“글쎄다.”
민국이 턱에 손을 괴며 말했다.
인터넷에는 대단치 않은 전력이라고 분통을 내는 이들이 많았지만 그래도 대한민국의 레이드 전력은 세계 20 위에 속해 있었다.
당연히 팀 GGW 보다 전적이 좋은 공격대도 제법 많았다. 적어도 30 위권 내에 속하는 클랜의 1 군이라면 GGW 보다 강력한 전력을 보유했다고 할 수 있었다.
그런 공격대들이 있는데, 1 군도 아닌 신입 공격대가 확산 현상을 저지하기 위해 그것도 타국으로 향한다? 가능성이 높아 보이지는 않았다. 팀 GGW 를 애지중지하는 오현정 단장의 성향을 생각해 보면 더욱 회의적이었다.
게다가 한국에도 던전들은 굉장히 많았다. R‘s 가 관리하는 던전만 해도 열 개가 넘었다.
“대한민국에 실력이 좋은 공격대들이 얼마나 많은데. 우리가 해외로 나가기야 하겠어?”
민국은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아무리 팀 GGW 가 잘 나간다고 하지만 어디까지나 그건 성장 가능성을 생각하고 하는 말이었다. 아직 민국은 【A】 난이도의 던전은커녕 【B – 1】 도 ‘공허의 탑’ 한 곳만 공략에 성공했을 뿐이었다.
* * *
한국 영웅 협회의 브리핑 룸에는 협회장인 이시연이 소집한 클랜들의 단장들이 모여 있었다. 베트남의 이야기를 들은 모양인지 다들 안색이 좋지 않았다.
특히 메모리아 클랜의 단장은 대놓고 얼굴이 일그러져 있었다. 세계 영웅 협회에서 콕 찍어서 메모리아의 1 군을 보내달라는 말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빼도 박도 못하고 클랜의 정예 전력을 고스란히 베트남으로 보내야 할 상황이었다.
“공군의 보호 아래에 항공기를 통해 하노이에 착륙할 예정입니다.”
“공중 공격이 가능하다는 몬스터가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건 베트남군과 중국군이 처리할 예정입니다. 이미 태국과 중국의 공격대가 하노이에 무사히 착륙했다고 하니, 수송 경로는 안전할 겁니다.”
한 단장의 질문에 대답을 한 시연이 스크린에 뜬 화면을 확대시켰다.
하노이 주변으로 군인들이 진출하는 모습과 함께 오성홍기와 트라이롱(태국 국기)가 그려진 항공기에서 영웅들이 내리는 사진이 단장들의 눈에 들어왔다. 본인의 말이 거짓이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는 사진이었다.
“영웅 협회에서는 한국에서 최소 다섯 개 이상의 공격대가 확산 현상에 나서주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A】 난이도의 공략이 가능한 공격대 세 개와 【B】 난이도 중후반의 공략이 가능한 공격대 두 개입니다.”
“상세하게도 요구하네. 보나마나 공격대를 내보내지 않으면 불이익이 엄청 쎄게 돌아올 테고…. 언제까지 보내야 하는 겁니까? 확산 현상을 해결하기까지 걸리는 기간은 어느 정도죠?”
여성 단장 한 명이 거칠게 투덜거리며 말했다. 랭커 클랜인 ‘강한 여자들’의 단장이었다. 그런 질문을 예상했다는 듯 시연이 곧바로 입을 열었다.
“사흘 안에 비행기가 떠야 합니다. 그리고 여섯 시간의 비행을 거쳐 하노이에 착륙, 곧바로 군대와 함께 확산 현상 해결에 나설 겁니다. 이번에 터진 던전은 【A – 1】 난이도의 던전으로 현재 집계되고 있는 임시 던전의 숫자는….”
말을 이어나가던 시연은 조용히 숨을 돌렸다. 그녀의 손에 들린 종이에는 상상 이상의 숫자가 적혀 있었다.
“이 천개가 조금 넘는다고 합니다.”
“씨발….”
“이천 개? 그게 정말입니까?”
여기저기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생각보다 끔찍한 결과에 불안함으로 가득한 소리들이었다.
여기서 확산 현상을 제지하지 못하고 임시 던전이 터져 버린다면? 그 이후는 상상도하기 싫었다. 베트남은 물론이고, 동남아가 어둠 폐허로 잠식되어 괴물들이 소굴이 될 가능성이 높았다. 아프리카 북부 지방처럼 말이다.
게다가 클랜의 주력이 빠진다면 그만큼 국내의 던전 또한 공략을 할 수가 없었다. 그에 대한 경제적인 손해도 만만치 않았다. 그 때 한 단장이 손을 들었다. 얼굴에 불만이 가득한 메모리아의 단장이었다.
“세계 영웅 협회에서 콕 찍어서 보내라고 하니, 우리 1 군은 간다는 셈 치고. 나머지는 랭커 클랜 1 군으로 소집하는 겁니까?”
“메모리아가 가는데, 굳이 다른 랭커 클랜이 나설 필요가 있을까요? 대한민국에도 타이머가 위험한 던전은 적지 않게 있습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투덜거리던 ‘강한 여자들’의 단장이 질세라 대답했다. 메모리아가 가는 마당에 어떤 위험이 있을지 모르는 타국 원정으로 자신들이 나서고 싶지는 않았다. 영웅시대의 단장도 이어서 말했다.
“두 팀은 【B】 난이도 중, 후반의 공략만 가능해도 되지 않나요? 그렇다면 1 군이 나설 필요가 없는 것 아닌가요?”
세계 영웅 협회가 요구한 공격대는 다섯 팀. 하지만 이 자리에 모인 단장들의 숫자는 스무 명이나 되었고, 각 클랜마다 여러 개의 공격대를 다수 운영하고 있었다. 결국 모든 클랜이 베트남으로 떠날 필요는 없는 것이다.
“세계 영웅 협회에서는 이번 사태의 해결을 위해 무제한적으로 부활석을 지원하겠다고 했습니다. 게다가 확산 현상에 참여하는 공격대에게….”
아이템도 지원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하지만 클랜 단장들의 마음을 흔들 정도는 되지 못했다. 부활석과 아이템이 아무리 비싸다 해도 1 군에 속하는 영웅들의 몸값은 상상을 초월했다.
게다가 몬스터들의 정리도 아직 끝나지 않은 땅이었다. 어떤 사고가 벌어질 지 알 수가 없는 것이다.
“후…. 클랜의 영웅들을 생각하는 단장님의 마음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누군가는 꼭 가야만 하는 상황입니다.”
결국 시연이 각 클랜의 단장들을 향해 경고하듯 말했다. 그녀의 말에는 자신이 임의적으로 클랜을 찍어서 보내겠다는 뜻이 내포되어 있었다.
그런 시연의 말에 서로를 바라보며 머뭇거리던 단장들이 조금씩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일단 메모리아 클랜은 빠졌다. 랭킹 1 위라는 이유만으로도 꼼짝없이 1 군을 베트남으로 보내야 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이야기를 하던 도중이었다. 가만히 있던 현정에게 느닷없이 화살이 날아들었다.
“【B】 난이도를 공략하는 팀은 R’s 에서 보내는 게 어떨까요? 최근 유명세를 떨치는 공격대가 있지 않습니까?”
화살을 날린 이는 ‘강한 여자들’ 클랜의 단장이었다. 최근 들어 세계 유망주들을 다수 영입한 R’s를 견제하기 위해 날린 잽이었다. 이어서 강한 여자들과 친하게 지내는 다른 단장이 곧바로 말을 받았다.
“아! 세계 유망주 랭커들이 다수 포진되어 있는 GGW 라면 【B】 난이도의 던전 쯤은 충분히 공략할 수 있겠군요.”
“그렇군요. 그 ‘공허의 탑’도 한 번의 공략으로 성공시킨 공격대가 아닙니까?”
“임시 던전인 만큼 빠른 공략이 중요한 상황 아니겠습니까?”
순식간에 몰아가는 단장들의 행태에 현정은 잠시 입을 다물었다. 그 사이 클랜 단장들은 GGW 의 원정을 기정사실로 확정하는 분위기였다. 잠시 후, 현정이 처음으로 말을 꺼냈던 강한 여자들의 단장을 향해 입을 열었다.
“저희 공격대를 높게 평가해주시는 단장님에게는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뭐, 좋습니다. 몬스터를 쓰러뜨리는 것을 자신의 사명으로 여기고 있는 한민국 공대장이라면 베트남 원정도 충분히 받아들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오호!”
“역시 남자 영웅은 다르네.”
순순히 공격대를 베트남으로 보내겠다는 현정의 말에 모두들 박수를 쳤다. 그러나 현정의 말은 아직 끝나지 않았고, 그녀는 여전히 강한 여자들의 단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다만…. GGW 는 3 년차 이하의 영웅들로 구성된 신입 공격대입니다. 그런 공격대를 굳이 베트남으로 보낼 생각이라면 GGW를 지원해 줄 경력 있는 공격대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마침 랭킹 1 위의 메모리아도 1 군을 보내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랭킹 2위인 강한 여자들 쪽에서도 1 군을 보내는 게 어떨까 싶은데요? 아니, 적어도 【A】 난이도의 공략은 랭커 클랜에서 맡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현정은 대놓고 물귀신 작전을 쓰고 있었다. 만약 R’s 클랜을 베트남으로 보낼 생각이라면 메모리아를 제외한 나머지 네 곳의 랭커 클랜 중 두 곳을 데려가겠다고 말하는 것이다.
“으음….”
그런 현정의 모습에 말을 꺼냈던 ‘강한 여자들’의 단장이 당혹스러운 얼굴로 신음했다. 가볍게 견제나 할 겸 한 이야기였는데, 상대의 반응이 너무나도 날카로웠다. 게다가 랭커 클랜이 아닌 다른 클랜들은 현정의 말에 마음이 기우는 모습이었다.
이러다가는 빼도 박도 못하고 자신들 또한 메모리아처럼 베트남으로 공격대를 보내게 생겼다. 그렇다고 자존심이 있지, 신입 공격대를 보내는데 자신들의 1 군이 빠지겠다고 말을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강한 여자들’ 클랜 단장의 얼굴이 울상으로 변해가기 시작했다. 물론, 속이 타는 것은 R’s 클랜의 단장인 현정 또한 마찬가지였다.
‘미친년들! 아무리 본인들의 클랜이 손해를 보기 싫다고 해도 그렇지! 어떻게 1 년차 영웅이 공대장으로 있는 신입 공격대를 해외로 보낼 생각을 하는 거지?!’
랭커 클랜에서 반발을 하지 않는 이상 정말로 팀 GGW 를 베트남으로 보내게 생겼기 때문이었다. 운이 나쁘게도 제대로 유명세를 치르게 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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