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03 각자의 사정
- 베트남의 던전 브레이크로 인해 전 세계의 공격대가 하노이로 몰려들고 있습니다. 화이트 하우스의 공대장인 라비아 맥퀸이 하노이 행을 결정한 데 이어 중국의 텐센스 또한 1 군 팀을 하노이로 보내기로 조금 전 발표를 했습니다.
- 대한민국에서도 강채영이 소속된 메모리아 1 군이 세계 영웅 협회의 요청을 받아 하노이 행을 결정한데 이어….
Tv 와 인터넷에서는 연신 하노이의 던전 브레이크에 대해 떠들고 있었다. 덕분에 클랜 하우스의 분위기도 어수선했다. 하노이에서 터진 던전 브레이크는 마지막 던전 브레이크가 있던 지 8 년만의 일이라고 했다.
하물며 이번에 폭발한 던전은 난이도가 높은 【A – 1】. 확산 현상으로 생겨난 던전도 엄청나게 많은 까닭에 Tv에서 열심히 떠들고 있는 앵커는 속히 조기 진압을 해야 한다고 소리를 높이고 있었다.
워낙 여러 곳에서 떠드는 터라 원 주인의 기억을 제외하고는 별다른 지식이 없는 민국도 지금의 상황이 굉장히 심각하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런데 조금 전부터 앵커들의 입에서 R’s 의 이름이 오르락내리락 하고 있었다.
그 여파인지 회의실의 분위기 또한 조금 전부터 굉장히 뒤숭숭하게 변해가고 있었다. 오현아와 최유나는 Tv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고 있었고, 다른 이들도 인터넷으로 열심히 무언가를 검색하느라 바쁜 모습들이었다.
‘그래봤자….’
민국은 남 일이라는 생각이었다. 이제 【B – 1】 난이도의 던전을 공략하는 마당에 몬스터들이 득실거리는 베트남으로 위험한 원정을 떠나고 싶은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설령 R’s 공격대가 베트남으로 원정을 떠나는 사태가 벌어진다 하더라도 그런 임무는 선배 영웅들에게 맡기면 될 것 같았다. 아직 자신이 나서기에는 조금 더 아니, 많이 성장이 필요했다.
그렇게 마음을 먹은 순간 민국의 눈앞으로 불청객이 나타났다.
《이머전시! 이머전시! 긴급사태! 긴급사태!
이세계의 안전을 심각하게 위협하는 재난이 터졌습니다. 카오스님의 영웅이자 이 세계의 희망인 민국님이 나설 때입니다. 어둠의 괴물에게서 이 세계를 지켜주세요! 카오스님이 창조하신 이 뿌우가 민국님을 서포트 하겠습니다!
이 퀘스트는 추가 성과가 있는 퀘스트입니다.
[목표] - 다른 영웅들의 공격대와 협력해 던전 브레이크로 생겨난 하노이의 ‘임시 던전’을 모두 무너뜨려라!
[기간] - (아주 위험)열두 번째 재앙이 깨어나기 전까지!
[보상] - 「던전 10 개 파괴 – 옐로우급 결정 다섯 개.
던전 20 개 파괴 – 플래티넘 티켓 3 장, 【클래스 스톤(A) - 유니크 등급】 두 개.
던전 50 개 파괴 - 【클래스 스톤(A) - 레전더리 등급】 한 개.」
이 퀘스트는 실패할 경우 패널티가 있습니다. 이세계인들에게는 네임드라 불리는 열두 번째 재앙이 깨어날지도 모른다는 점이죠. 만약 그 녀석이 깨어난다면…. 동남아는 쑥대밭이 될 수도 있어요. 민국님이 계신 한국도 크게 영향을 받을 겁니다.》
“이런 씨발….”
갑작스런 민국의 욕설에 주위에 있던 영웅들이 흠칫 몸을 떨었다. 그녀들도 눈치라는 게 있었기에, Tv에서 오르락내리락하는 R’s 클랜의 이름에 공격대장인 민국의 심경이 날카로워졌다고 여겼다.
그리고 그녀들의 짐작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고 할 수 있었다. Tv에서 오르락내리락하는 R’s 의 이름은 아무래도 상관없었지만, 심경이 날카로워진 것은 사실이기 때문이었다. 다만, 그 이유는 뿌우라는 놈의 퀘스트 때문이었다.
‘한국도 영향을 받는다는 게 무엇이지?’
《열두 번째 재앙이 깨어나 동남아시아를 덮칠 겁니다. 그리고는 모든 인간들을 잡아먹고, 다른 대륙으로 행선지를 돌릴 겁니다. 인구수가 많은 동아시아가 목적지가 되겠죠.》
민국의 질문에 퀘스트 창이 젤리처럼 꿈틀거렸다가 형태를 갖췄다.
‘열두 번째 재앙이 정확히 뭐지?’
《어둠의 괴물 중에서도 강대한 마력을 지닌 지휘관급의 개체를 의미합니다. 인간들 사이에서는 네임드라는 이름이 붙은 개체입니다.》
‘네임드, 네임드.’
민국은 속으로 그렇게 웅얼거리며 네임드라 불리는 어둠의 괴물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정보를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그들과 오랫동안 전쟁을 치르면서 인류가 축적한 정보들은 굉장히 많았다.
어둠의 괴물 중에서도 유독 강력한 개체에만 붙는 호칭인 네임드. 인류는 총 열 두 개체의 괴물에게 네임드라는 명칭을 붙였다.
그리고 그 중 열두 번째의 이름은 새의 왕이라 불리는 가루다였다. 캄보디아 태국 서부, 라오스, 미얀마를 쑥대밭으로 만들며 2천만 이상의 희생자를 낸 가루다는 현재 베트남과 태국의 국경에 위치한 추정 등급 【S】 난이도의 던전인 새의 탑에 잠들어 있다고 했다.
‘퀘스트를 클리어하지 못하면 이런 괴물이 깨어나는 거라고?!’
민국은 몇 번이나 가루다에 대한 정보를 검색했다.
지금 자신의 능력으로는 죽었다 깨어나도 잡을 수 없는 녀석이었다. 부활석? 많아봤자 의미가 없었다. 저 녀석의 날갯짓 한방이면 저승으로 가는 직행열차를 탈 수 있을 것 같았다.
게다가 한국도 크게 영향을 받을 거라고 했으니 재수 없으면 저놈의 네임드가 한국을 공격할지도 몰랐다.
“우리 클랜에서 베트남 원정을 떠난다면 아무래도 1 군이 가겠지?”
민국의 표정이 점점 굳어지는 모습에 현아가 유나에게 힐끔 곁눈질을 하며 입을 열었다.
“그렇겠죠? 그럴 만한 실력이 되는 팀은 1 군밖에 없잖아요.”
그리고 눈치가 빠른 유나는 현아의 의도를 파악하고는 민국에게 들으라는 듯 입을 열었다. 다른 이들도 크게 티를 내며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민국은 그런 현아와 유나의 대화에 귀를 기울일 정신이 없었다. 뿌우의 퀘스트가 나타난 지 몇 분이나 되었다고, 새로운 퀘스트가 또 다시 날아들었기 때문이었다. 이번에도 추가 성과가 있는 퀘스트였다.
《특별♥ 퀘스트! 하나뿐인 밤! 민국님의 능력을 카오스님이 큐우♡가 응원합니다!
하노이를 구하기 위한 베트남 원정! 필연적으로 많은 여성 영웅들과 마주할 수 있겠죠? 그녀들과의 뜨거운 하룻밤! 벌써부터 기대되지 않으시나요?
[목표] - 최대한 많은 영웅들과 관계를 맺어보세요! 단, 민국님의 공격대 소속 영웅은 횟수에서 제외합니다.
[기간] - 하노이의 ‘임시 던전’을 모두 무너뜨릴 때까지!
[보상] - 「3 명 - Sex 코인 10 개.
5 명 – Sex 코인 50 개.
10 명 – 카오스 상점의 등급 업!」
엄청난 보상이죠? 선택은 오로지 민국님의 것! 이 기회를 놓치지 마세요! 그리고 혹시 모르는 일이잖아요? 이번 기회에 좋은 인연을 만들게 될지?》
퀘스트 창을 닫으며 민국은 천천히 눈을 감았다. 분노로 인해 눈꺼풀이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이 녀석들이 아주 쌍으로 베트남으로 가라고 등을 떠밀고 있었다. 이게 민국이 현아와 함께 클랜의 단장실을 찾은 이유였다.
“베, 베트남에 가시겠다고요? 그곳이 얼마나 위험한지 알고 계시는 겁니까?”
“……네.”
자신의 질문에 민국이 고개를 끄덕이자 현정은 황당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남들은 일주일에 한 번 정도 클리어 하는 던전을 하루에도 몇 번이나 뺑뺑이를 도는 모습에 조금 독특하다는 생각을 하고는 있었지만, 이건 바보 같은 짓이나 다름없었다.
“공대장님. 혹시 가족 중에서 몬스터에게 화를 입으신 분이 계세요?”
“…아니요.”
현정의 질문에 민국은 고개를 저었다. 이세계로 넘어온 이후 원 주인의 가족과는 만나본 적이 없지만, 기억을 더듬어보니 그런 사람은 없었다. 6 촌쯤 되는 사람이 화를 입기는 했지만, 왠지 남과 같이 느껴졌다.
“그러면 인류를 위해 자신을 희생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박애주의자세요?”
“……아니요.”
“남들은 다 안가려고 하는 베트남을 왜 굳이 자진해서….”
표정만큼이나 황당함이 가득 담겨 있는 현정의 어투에 민국은 대답과 함께 입을 꾹 다물었다. 퀘스트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가야 하니, 아무것도 묻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심정이었다. 지금도 정말로 가기 싫었다.
그런 민국의 대답에 현정의 시선이 이번에는 현아에게로 향했다. 하지만 그녀의 동생은 빠르게 고개를 젓고는 어깨를 으쓱이고 있었다. 공격대장인 민국에 왜 베트남으로 가겠다는 지 그녀도 모르는 모양이었다.
“일단 알겠어요. 아, 팀원들하고는 전부 이야기가 끝난 건가요? 혹시나 가기 싫어하는 팀원을 억지로 보내는 일은 있어서는 안 됩니다.”
“2 군에서 지원 나온 딜러 분은 빠지겠다고 했습니다. 대신 시라누이 마이를 합류시킬 예정입니다. 이미 이야기도 끝냈고요.”
“뭐, 그러시다면….”
민국의 대답에 현정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손가락으로 입술을 지그시 눌렀다가 떼었다.
“일단 이에 관해서는 나중에 연락을 드리겠습니다. 다른 클랜들도 이야기를 나눠봐야 하니까요. 다만, 나중에 다른 공격대나 언론에서 베트남 원정에 대한 이야기를 꺼낸다면 억지로 가는 것 같은 뉘앙스를 취해주시기 바랍니다.”
“알겠습니다.”
민국은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클랜의 단장인 현정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를 정도로 멍청하지는 않았다. 아마 그녀는 1 년차 공격대에 불과한 GGW를 베트남으로 보내는 대가로 많은 것을 받아낼 생각으로 보였다.
‘어휴…. 씨발.’
어쨌든 퀘스트. 그 새끼들이 문제였다.
* * *
“나 왔어.”
피곤한 기색이 얼굴에 가득한 여성이 신발과 함께 양말을 벗어서 세탁 바구니에 그대로 집어 던졌다.
개 중 하나가 밖으로 튕겨져 나왔지만, 여성이 가볍게 손짓을 하자 튕겨져 나온 양말이 염력에 조종되는 것처럼 절로 움직여서 바구니 안으로 들어갔다.
메모리아 클랜 1군의 딜러장을 맡고 있는 그녀에게 저 정도의 마력 운용쯤은 아주 간단한 일이었다. 그렇게 집 안에 들어선 강채영은 자연스럽게 집의 구석에 위치한 방으로 향했다.
그 안에는 속옷만 걸친 잘생긴 남자가 게임에 열중하고 있었다. 결혼을 약속한 강채영의 예비 신랑이었다. 게임 폐인과도 같은 모습이었지만, 마력 아이템과 관련된 자기 사업체까지 운용하고 있는 건실한 재력가였다.
“또 이 게임이네. 에테리얼? 재미있어?”
“왔어? 아니, 그냥저냥. 할 거 없을 때나 하면 재미있는 정도야.”
남자는 그렇게 말하고는 채영의 목을 끌어안고는 가볍게 키스를 했다. 그리고는 진행 중인 게임을 그대로 꺼버렸다. 남들과 같이 하는 게임이지만, 남자는 자신의 이탈에 대해 전혀 신경을 쓰는 모습이 아니었다.
“어떻게 됐어? 정말로 베트남으로 가는 거야?”
“아무래도 그렇게 될 것 같아. 남들 다 가는데 딜러장인 내가 빠질 수도 없고….”
“그러면 우리 결혼식은? 사람들에게 다들 날짜도 알리고 그랬잖아.”
머리를 긁적이는 채영의 모습에 남자가 화난 것 같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니, 실제로 화가 나고 있었다. 일생에 한 번뿐인 결혼식이 메모리아 클랜의 베트남 원정으로 엉망이 되기 일보직전이기 때문이었다.
“어쩔 수 없잖아? 미뤄야지. 내가 가고 싶어서 가는 것도 아니고. 던전 브레이크가 터져 버린 걸 어떻게 해.”
“그게 말이 돼?!”
짜증을 내는 남자의 모습에 채영은 더욱 피곤이 몰려오는 느낌이었다. 가뜩이나 오늘 레이드도 힘들었는데, 예비 신랑이랑 괜한 입씨름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응, 말 돼. 나는 영웅이잖아.”
얼굴을 찌푸리며 말하는 강채영의 모습에 남자는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대한민국 딜러 랭킹 1위이자 국가를 대표하는 영웅의 포스는 일반 남성이 감당해낼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결혼식 따위는 나중으로 미뤄도 아무도 욕할 사람 없어. 아니, 욕하는 놈이 있으면 내가 죽여 버릴게. 하지만 던전 브레이크의 확산 현상은 당장이라도 막아야 돼. 그렇지 않으면 수많은 사람이 죽어 나갈 거야.”
“……알았어. 사람들한테는 다시 연락하도록 할게.”
“그건 알아서 하고, 일단은 나 빨리 씻고 올게. 내일 오전 11 시 비행기야.”
“…응? 자기, 그게 무슨 말이야? 씻다니? 왜? 지, 짐 챙겨야지.”
겁먹은 것 같은 남자의 말에 채영은 손을 까닥이고는 빠르게 욕실로 향했다. 【A – 1】 난이도가 터지는 바람에 확산현상으로 생겨난 던전이 셀 수도 없을 정도로 많다고 했다.
결국 언제 돌아올지 모른다는 이야기였다. 재수 없으면 몇 개월이 지나서 한국에 돌아올 수 있었다. 그런 까닭에 강채영은 오늘밤 예비 신랑의 사랑을 듬뿍 받을 생각이었다.
“야, 야. 이게 끝이야? 안 일어나? 야, 잠깐만! 너만 찍싸고 끝내면 다야?!”
하지만 여성 영웅의 성욕을 감당하기에는 일반인 남성은 너무나도 연약한 존재였다. 그렇게 채영은 자신의 성욕을 제대로 풀지 못한 채 베트남 원정을 준비해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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