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영웅 소녀 전쟁-119화 (119/486)

EP.119 될 놈은 되는 현실

“클랜에 초, 초장기 대출 같은 거 없을까요? 이, 이왕이면 무이자로…. 저, 저리도 좋고요.”

예린의 목소리에는 조급함이 가득 담겨 있었다. 이미 그녀는 【클래스 스톤(A) - 혹한의 마녀】의 노예나 다름없었다. 그녀가 현재 보유한 클래스에 비해 고유 능력의 유용성이 현격하게 차이가 나는 만큼 욕심이 날 수 밖에 없었다.

특히나 유니크로 평가받는 진귀한 클래스 스톤은 인연이 닿지 않으면 구할 수 없는 것들이었다. 그런 예린을 보던 민국이 현아를 향해 물었다. 왠지 언니가 단장이니 그런 것에 대해 잘 알고 있을 것 같은 느낌이었다.

“클랜 대출이 있어?”

“응, 기억으로는 있던 것 같아. 한도도 제법 크고, 그런데 무이자는 아니었던 것 같아.”

아무리 이자가 낮더라도 액수가 액수인 터라 이자 수익만 해도 상당할 것 같았다. 중요한 곳은 【클래스 스톤(A) - 혹한의 마녀】의 가격이었다. 시세는 보통 경매장의 평균 거래 가를 기준으로 했다.

가격이야 어쨌든 민국은 공격대의 전력 상승을 위해 【클래스 스톤(A) - 혹한의 마녀】는 예린에게 주리라고 내심 마음을 먹은 상황이었다.

“이거 시세로 따지면 얼마인가요? 그리고 정예린 영웅이 이걸 가지려면 얼마를 지불해야 되는 겁니까?”

“…최근 거래가가 6300 만 달러였고, 30 % 로 나눈다면 1890 만 달러네요.”

하지만 이어지는 소정의 대답에 민국은 깜짝 놀란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1890 만 달러면 레어급으로 평가받는 본인의 클래스인 ‘집중 치료술사’를 구매할 수 있는 가격이었다.

생각보다 엄청난 가격에 예린의 얼굴도 울상으로 변했다.

영웅의 수입이 아무리 일반인인 보다 높다 하더라도 정예린과 팀 GGW 는 기껏해야 【B】 난이도의 던전을 주로 공략하는 공격대였다. 당연히 이천만 달러에 가까운 그런 큰돈이 있을 리 없었다.

“다른 분들은 입찰하실 생각이 없으신 건가요?”

민국의 말에 예린의 머리가 빠르게 주위를 훑었다. 그리고는 아무도 손을 들지 않는 모습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면 【클래스 스톤(A) - 혹한의 마녀】 는 일단 정예린 영웅에게 낙찰하도록 하겠습니다. 다만, 대출과 관련해서 단장님과 이야기를 나눈 후, 대출이 확정되면 그때 클래스 스톤을 양도하도로 할게요.”

“네, 넵!”

결국 대출의 노예가 확정이었다 하지만 8 성 영웅이 되기 전까지 아니, 그 이후에도 유용하게 쓸 수 있는 클래스를 얻게 된 예린의 얼굴은 세상 모든 것을 다 가진 모습이었다.

공격대가 설립될 때부터 함께했던 현아와 유나 그리고 소정은 그런 예린을 향해 진심으로 축하를 보냈다.

그렇게 【클래스 스톤(A) - 혹한의 마녀】 의 주인이 결정이 되었고, 이제 남은 것은 【클래스 스톤(A) - 악의 칼날】 이었다. 혹한의 마녀와 마찬가지로 영웅들 사이에서 유니크 등급으로 평가받는 진귀한 클래스였다.

“아무래도 이건 팔아야 할 것 같지?”

현아가 회색빛을 띄는 돌멩이를 들어 올리며 말했다. 유니크 등급으로 평가받는 진귀한 클래스인 【악의 칼날】은 탱커, 딜러, 힐러 중 딜러 포지션의 클래스였다.

적의 급소를 공격할 때 마다 자신의 생명력을 일정량 회복하는 희귀한 패시브 능력을 가지고 있었는데, 생명력이 최대치일 경우에는 추가적으로 회복되는 생명력이 보호막으로 전환되기까지 했다.

그만큼 전투 유지력이 굉장히 뛰어난 딜러였다. 거기에 ‘어둠의 끝자락’이라는 고유 능력은 다음 번 가해지는 적의 공격은 그 어떤 것이라도 한 번 무조건적으로 막아낼 수 있었다. 괜히 유니크 등급으로 평가받는 클래스가 아니었다.

“분명 좋기는 한데….”

“확실히 탐은 나네요. 그런데…….”

하지만 【클래스 스톤(A) - 악의 칼날】을 바라보는 딜러 영웅들은 다들 떨떠름한 모습들이었다.

분명 장점이 많은 클래스였다. 하지만 문제는 악의 칼날이 지닌 클래스 고유의 효과를 받으려면 주 무기로 단검을 사용해야 한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GGW 의 딜러 중에서는 단검을 다루는 영웅이 아무도 없었다.

심지어 보조무기로도 사용하는 이가 없었다. 결국 쓸 수 있는 영웅이 아무도 없는 그림의 떡인 다름없는 클래스 스톤이었다.

“그러면 이건 경매장 행인데? 얼마야? 얼마?”

“최근 거래 가격이 7600만 달러…! 이걸 십 등분하면! 우, 우와아아!”

빠르게 영웅 패드로 경매장 시세를 검색해본 유나가 자신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소정이 그런 유나의 말에서 오류를 짚어내며 말했다.

“아니지. 클랜에 떼어줘야 하는 돈을 생각하고 나눠야지. 그래도 엄청 많긴 하네.”

“어, 어엇?! 그러면 그 분배금 받아서 이거 돈 갚으면 되겠네요?!”

“십 등분해야 되니까 다 갚지는 못할 걸?”

“그래도 큼지막하게 갚는 게 어디야?”

클래스 스톤이 당연히 경매장으로 갈 거라 생각한 팀원들은 다들 【클래스 스톤(A) - 악의 칼날】의 가격을 검색하며 호들갑을 떨었다.

자신들의 손에 들어올 막대한 분배금을 생각하는 그녀들의 얼굴은 이미 모든 것을 다 가진 것처럼 행복에 겨워 있었다. 하지만 그녀들의 행복은 불과 십 초도 가지 못했다.

“아, 저거 제가 구입할 겁니다.”

팀원들 사이로 누군가의 담담한 음성이 울려 퍼졌다. 민국이었다.

“…네?”

“으, 응? 구입? 잠깐? 누가 구입한다고?”

“네에에에?!!!”

충격적인 민국의 말에 모두들 벙 찐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몇몇 영웅들은 눈에는 불신을 담은 채 입가를 씰룩거렸다. 공대장인 민국이 자신들을 놀리는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아, 농담이 아니라 진짜로 사용할 겁니다.”

하지만 민국은 그런 팀원들을 향해 다시 한 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일찌감치 【클래스 스톤(A) - 악의 칼날】의 고유 능력을 확인했던 순간부터 구입을 하리라 마음을 먹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상위 레이드를 위한 포지션 변경도 연습해야 되니…. 이왕이면 익숙한 게 낫지.’

그도 그럴게 단검은 가상현실게임에서 민국이 딜러로 플레이하던 시절 가장 잘 다루던 무기 중 하나였다. 두 번째는 양손으로 들어야 하는 배틀 엑스로 나름 상 남자 플레이를 즐겨했었다.

하지만 그 사실을 모르는 영웅들은 몇 번이나 민국의 결정을 반복해서 되물을 뿐이었다.

* * *

“역시 사람은 착한 일은 해야 한다니까. 흥흥흥.”

동료들과 함께 호텔의 휴식 공간에서 실컷 수다를 떨고 돌아오는 채영의 발걸음은 굉장히 가벼웠다.

비록 메모리아의 동료들과 함께 있을 때 터진 것은 아니었지만, 오늘 자신의 손으로 무려 빛의 기둥을 뽑아낼 수 있었다. 15 년 영웅 생에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것도 심지어 클래스 스톤이 두 개나 나오는 초대박 빛의 기둥이었다. 그것들이 메모리아의 것이 아니라는 게 조금 아쉽기는 했지만, 그 점에 대해서는 크게 마음을 두지는 않았다.

“빛의 기둥, 빛의 기둥.”

묘한 리듬을 붙이며 채영이 흥얼거렸다.

전 예비 신랑 그러니까 이제는 남이 되어버린 남자의 기억은 이미 한 곳으로 사라지고 없었다. 어차피 베트남의 던전 브레이크로 인해 몇 달은 못 볼 남자였다. 아니, 이제는 볼 필요조차 없는 남자였다.

“기분이 좋은가 봐요?”

콧노래와 함께 채영이 자신의 방으로 들어서려던 찰나 누군가가 불쑥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옆방의 주인인 민국이었다.

“어, 어어?!”

마치 자신이 오기만을 기다렸다는 듯 타이밍을 맞춰서 문을 열고 나오는 민국의 모습에 채영이 깜짝 놀라며 그를 바라보았다. 순간 며칠 전에 있었던 정열적인 기억과 함께 묘한 생각까지 들며 그녀의 가슴이 절로 두근두근 뛰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건 단순한 착각에 불과했다. 민국의 방에서 GGW 영웅들이 우르르 나오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일정 회의?”

“아뇨. 전리품 분배요.”

“아아….”

대수롭지 않게 말하는 민국의 모습에 채영의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 밀려오는 부끄러움에 바로 방으로 들어가려고 했는데, 자신에게 인사를 건네는 GGW 의 후배 영웅들 때문에 그러지도 못했다.

“만나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러시아의 타냐 루스입니다.”

“Ola.”

GGW 는 1년차의 신입 공격대답지 않게 꽤나 다양한 국적의 영웅들로 멤버가 구성이 되어 있었다.

한민국을 필두로 세계에서 이름을 떨치는 랭커 유망주들을 영입해 대형 공격대를 만들어내겠다는 R’s 클랜과 단장인 오현정의 야심이 가득 담긴 결과물이었다.

러시아의 불곰전차 타냐 루스, 브라질의 뷘드셴 자매, 그리고 우주류 검술을 사용하는 일본의 시라누이 마이까지. 거기에….

“너는 거기 스톱.”

아직 생일이 지나지 않아 미성년자에 불과한 조그마한 소녀가 채영의 말에 그 자리에 우뚝 섰다.

신나연. 한 때는 메모리아의 초특급 유망주였지만, 이제는 GGW 의 막내로 활동하고 있는 채영의 제자였다. 제자라기보다는 채영의 활약에 반한 나연이 그녀와 똑같은 무기를 사용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채영이 그녀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으며 장난기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여전히 작네?”

“괜찮습니다. 의사의 말에 따르면 아직 성장판이 닫히지 않았다고 합니다. 분명히 조금 더 클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래그래.”

나연의 대답에 채영이 피식 웃으며 고개를 주억였다. 그 소리는 오래 전, 본인도 들었던 소리였다. 그리고 그 이후로 채영의 키는 1 cm도 크지 않았다.

“너 임마. 선배들이 보고 싶어 하는 데, 왜 인사 안 와?”

“GGW 의 일정에 충실 하느라 어쩔 수 없었습니다. 개인 여가 시간은 앞으로의 레이드를 대비한 훈련으로…. 아얏!”

자신의 머리를 콩 때리는 채영의 행동에 나연이 머리를 부여잡으며 울상을 지었다.

“군대도 안 갔다 온 게 말투 하고는. 나연이가 레이드 중에 버릇없게 굴거나 데미지 능력이 형편없이 떨어지면 나한테 바로 이야기 해. 한사람 몫 정도는 바로 하게 만들어 줄 테니까.”

“그럴까요? 그렇지 않아도….”

채영의 농담을 민국이 웃으며 받았다.

그런 두 남녀 사이에서 눈치를 보던 나연이 우물쭈물하다가 조심스레 도망을 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GGW 팀원들이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는 모습을 보던 채영이 민국에게 시선을 돌렸다.

“클래스 스톤은 누가 가지기로 했어? 혹한의 마녀는 공격대에 냉기 마법을 쓰는 영웅이 있으니 걔가 사용을 하면 될 테고….”

“네, 정예린 영웅이 사용할 것 같아요. 그리고 악의 칼날은 제가 사용할 예정이예요.”

“어? 잠깐. 악의 칼날은 딜러 클래스 아니야?”

“딩동댕. 사실 비밀인데 이래봬도 제가 한 딜러 하거든요?”

채영이 눈을 끔뻑였다. 저 말이 진심인지 농담인지 분간을 할 수가 없었다.

아니, 설령 저 말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이해가 되지 않는 결정이었다. 채영은 이번에 GGW 버스를 운전하면서 힐러로서의 민국의 재능 아니 실력이 이미 최상위권 영웅들과 비슷한 수준에 올라와 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런 힐러가 딜러는 왜 하는데?’

상위 난이도를 대비하기 위한 포지션 변경이라 해도 말이 안 됐다. 그런 건 본인보다 실력이 떨어지는 영웅에게 시키면 되는 일이었다.

공격대를 구성하는 탱커, 딜러, 힐러 중에서 가장 실력이 좋아야 하는 포지션은 공격대의 어머니나 다름없는 힐러들 이어야 했다. 게다가 한민국은….

“너 영웅학교 시절의 성적이…….”

딜러로서의 재능이 형편없었다. 사생활이라고는 하지만 남자 영웅에 대해 워낙 관심이 컸던 터라 이미 언론에서도 한 번 다룬 내용이었기에 민국의 딜러로써의 성적은 채영도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채영의 말에 민국이 웃으며 말했다.

“하하하! 그 때의 한민국과 지금의 한민국은 다른 사람입니다. 그리고 제가 얼마나 무기를 잘 사용하는데요?”

“네가 무기를 잘 사용한다고? 하아…. 너 말이야, 무기를 다루는 능력은 마력을 움직이는 것과는 다른…?!”

말을 하던 채영이 순간 몸을 흠칫했다. 그리고 그녀의 고개가 천천히 아래로 향하기 시작했다. 길게 빠져나온 커다란 무언가가 그녀의 허벅지를 쿡 찌르고 있었다.

“어때요? 한 번 겨뤄 볼래요?”

“아저씨도 아니고…. 그런 저질 개그는 누구한테서 배운 거야?”

능청스러운 민국의 말에 채영이 피식 웃었다. 재미는 없는데 그냥 웃음이 나왔다. 고작 해야 열 번도 만나지 않은 사이였다. 그런데 자신의 아랫부분은 이미 젖어 버린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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