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영웅 소녀 전쟁-121화 (121/486)

EP.121 상위 레이드

상위 난이도의 던전에서 레이드를 하는 영웅들은 엄청난 고소득자였다. ‘인류를 수호한다’는 명분으로 인해 세금도 적게 내는 편이었다.

‘돈이야 또 벌면 되는 거잖아?’

그렇기에 민국은 거리낌 없이 클랜에 부활석을 판매한 대금을 포함해 이제까지 모은 돈들을 클래스 스톤 구입에 쓸 수 있었다. 그곳도 모자라서 정예린처럼 대출을 받아야했지만, 후회는 들지 않았다.

출혈이 상당했지만, 그 결과 【클래스 스톤(A) - 악의 칼날】은 민국의 것이 되었다. 그리고 민국은 클래스 스톤을 구입하자마자 바로 각인을 시작했다.

우웅! 우우우웅!!!

회색빛을 띄는 신비로운 돌멩이의 위에 피를 한 방울 떨어뜨리고 마력을 불어넣자 클래스 스톤이 잘게 진동을 시작하더니 번쩍 빛을 내뿜었다. 각인에 성공했다는 현상이었다.

성공적으로 【클래스 스톤(A) - 악의 칼날】 각인한 민국은 【집중 치료술사】를 제외하고 악의 칼날로 클래스를 변경해봤다.

클래스를 변경하자마자 다른 이들에게 포근함을 느끼게 해주었던 생명력이 가득한 마력이 거칠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덩달아 풍기는 분위기도 확연하게 달라지고 있었다.

“읏…!”

불쾌하거나 고통스러운 것은 아니었지만, 오랜만에 느끼는 묘한 감각에 민국은 자신도 모르게 신음과 비슷한 소리를 내었다. 잠시 후, 클래스를 변경한 민국이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힐러였던 전에는 녹색과 같은 온화한 느낌이었다면, 지금은 자줏빛의 옴 파탈적인 거칠고 위험한 느낌이 들었다.

“그러면 오랜만에 몸 좀 풀러 가볼까?”

침대 옆의 서랍장을 연 민국이 날카로운 단검 두 자루를 꺼내들었다. 【클래스 스톤(A) - 악의 칼날】을 확인하자마자 경매장을 통해 구입한 싸구려 연습용 단검이었다.

그렇게 민국은 휘파람과 함께 손가락으로 단검을 돌리면서 호텔 중층에 위치한 훈련장으로 향했다.

휘익-! 휙!

날카로운 단검에 의해 바람이 갈라지는 소리가 매섭게 들려왔다.

빠른 찌르기 이후 양 손을 움직여 단번에 상대를 격살하는 십자 베기, 단검을 던졌다가 마력을 이용해 회수하기 등. 훈련에 들어가자 민국은 단검을 사용하는 게이머라면 기본적으로 쓸 수 있는 기본적인 기술의 감각을 찾기 시작했다.

처음은 조금 어설픈 느낌이었지만, 그래도 몇 번 단검을 휘두르자 감각이 살아나는 모양인지 단검을 휘두르는 움직임에 점점 위력이 실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민국이 한참 땀을 흘리던 도중, 훈련실 안으로 누군가가 들어섰다.

“어, 어어?”

훈련장에 들어선 여인이 한쪽에서 단검을 휘두르는 민국을 발견하고는 놀란 목소리를 내었다. 민국이 양 허리춤에 단검을 갈무리하고는 땀을 훔치며 소리를 낸 당사자인 현아를 바라보았다.

“어…, 응. 뭐야, 뭐야? 한민국?! 단검은 언제부터 사용한 거야? 꽤나 그럴 듯 하잖아?!”

현아가 호들갑을 떨며 물었다. 잠깐 본 것에 불과하지만 단검을 다루는 민국의 움직임은 심상치 않았다. 충분히 딜러로 활동해도 괜찮아 보일 정도로 말이다.

“영웅 학교 시절부터 종종 보조용으로 연습을 하기는 했었지.”

“그, 그래?”

민국의 말에 현아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영웅 학교시절 민국이 단검을 드는 모습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현아는 그 시절과 비교해 괄목상대라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로 크게 달라진 민국의 모습을 떠올리며 쉽사리 수긍을 했다.

“훈련하러 온 거야?”

“응, 응. 내가 바로 세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유망주 공격대인 GGW 의 메인탱커잖아? 적어도 타냐보다는 탱킹을 잘 해야지.”

민국의 질문에 현아가 고개를 끄덕이며 너스레를 떨었다. 타냐 루스라는 러시아의 세계적인 유망주와 함께 GGW 의 탱커 라인을 맡고 있는 그녀는 최근 들어 조급함을 느끼고 있었다.

보스 몬스터의 공격을 막아내고, 동료를 지키는 탱커로써의 재능만큼은 그 누구에게도 밀리지 않는다고 자신했었다. 하지만 역시 세계는 넓었다. 최근 들어 본인 대신 타냐가 메인 탱킹을 하는 경우가 잦아졌기 때문이었다.

커다란 방패를 사용하는 타냐의 태세를 한껏 활용하기 위한 전술적인 결정이었지만, 그래도 마음이 심란한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고민이 많나보네.’

그런 현아의 태도에 민국은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었다. 공격 대장으로 활동한 짬밥이 있는 터라 그녀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정도는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하압! 합!”

그리고 민국과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자리를 잡은 현아는 기합과 함께 검과 방패를 휘두르기 시작했다. 가상으로 적의 움직임을 상정하고, 움직이는 쉐도우 훈련이었다.

“확실히 움직임은 좋단 말이야.”

민국은 그런 현아의 훈련을 조용히 바라보았다. 충분히 재능이 넘치는 영웅이었다. 검을 다루는 능력도 방패를 다루는 능력도 둘 다 뛰어났다. 하지만 둘 중 하나를 굳이 꼽으라고 한다면….

‘검이 더 낫겠네.’

공격적인 면에서 좀 더 높은 점수를 쳐줄 수 있을 것 같았다.

만약 장검을 사용하는 딜러형 클래스 스톤을 얻게 된다면…. 고민을 조금 해봐야 할 것 같았다. 상위 레이드에서 탱커의 딜러 스왑은 빈번히 일어나는 포지션 변화이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현아는 딜러로써도 충분히 제 역할을 해줄 것 같았다.

* * *

두 번째 빛의 기둥을 발견하고 나흘이 지나 다시 GGW 의 일정이 재개되었다.

여전히 【B】 난이도의 중상위 던전을 공략하는 일정이었다. 그러나 이번 일정을 맞이하는 GGW 단원들은 다들 고민이 가득한 모습이었다. 특히 딜러들의 표정은 그 어느 때보다도 심각했다.

중국군의 호위를 받으며 던전으로 이동하는 가운데 영웅들이 탑승한 호위 버스 내부는 조용히 침묵에 빠져 있었다. 그리고 지루함을 참지 못한 나연의 눈동자가 힐끔 영웅 패드를 확인하고 있는 민국에게로 향했다.

‘공대장님은 정말 딜러로…. 가시려는 건가?’

그녀의 동그란 눈동자가 민국의 허리춤으로 향했다. 원래는 아무것도 없어야 할 민국의 허리춤에는 예전에는 볼 수 없었던 적갈색으로 빛나는 멋진 외형의 단검이 매어져 있었다.

【Gear Score – 420】 짜리의 단검으로 ‘메모리아’ 클랜의 딜러에게 잠시 빌린 장비였다. 경매장을 통해 단검 구입을 고민하던 민국의 사정을 알게 된 강채영이 단검을 사용하는 클랜 동료에게 다리를 놓아준 것이다.

- 크게 대단한 물건은 아니니까 대충 쓰다가 돌려주세요. 아, 그리고 나중에 채영 언니랑 식사 한 번 같이해요.

어차피 메모리아의 1 군 정도나 되는 영웅에게 【Gear Score – 420】 정도의 장비는 그냥 수집용 장난감에 불과했던 터라 민국의 부탁을 받은 딜러는 서슴없이 단검을 빌려주었다.

그렇게 이번 원정은 딜러로 참여하겠다는 민국의 충격적인 발표로 인해 매번 호텔에서만 쉬었던 뷘드셴 자매 중 언니인 켄달이 원정에 합류하게 되었다. 민국 대신 힐러 포지션을 담당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면 이번 던전 공략 멤버를 발표하겠습니다.”

무전을 통해 목표했던 던전에 도착해간다는 보고가 들려오자 민국이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했다.

“메인 탱커는 오현아, 딜러는 정예린, 신나연, 한민국 그리고 힐러 켄달 뷘드셴입니다.”

민국의 지목을 받은 영웅들은 모두들 자신의 장비를 챙기기 시작했다. 이번에 공략할 던전은 【B - 3】 난이도의 던전이었다. GGW 의 전력상 위험한 난이도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쉬운 수준도 아니었다.

“으으음….”

공대장의 지시에 따라 자신의 영웅 장비를 챙기면서도 나연은 영 떨떠름한 기분이었다.

충분히 공략 가능한 수준의 던전이지만 【B – 3】 난이도는 엄밀히 따지면 상위 난이도에 속하는 던전이었다. 그렇기에 【B – 3】 던전에서 딜러로 데뷔하려는 민국의 행동이 꽤나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욱이 딜러 중 한 명의 실력이 떨어지게 되면 나머지 두 명의 부담감이 굉장히 커지기 마련이었다. 그렇게 머릿속으로 여러 고민을 하는 신나연을 향해 누군가가 팔을 쭉 뻗으며 그녀의 목을 감싸 안았다.

딜러로 함께 전투를 치를 예정인 정예린이었다.

“공대장님은 보너스라고 생각해. 나연이는 이 언니만 믿으렴.”

유니크 등급의 클래스 - 혹한의 마녀로 전직한 예린은 자신감으로 가득 찬 모습이었다. 기세만 보면 혼자서도 【B – 3】 던전을 때려잡을 것 같은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런 예린의 팔을 낑낑거리며 떼어낸 나연이 엄숙한 표정으로 말했다.

“정예린 영웅. 제가 선배입니다.”

“……네.”

나이 차이는 다섯 살이나 어렸지만, 1 년차 영웅인 정예린에 비해 신나연은 3 년차의 영웅이었다.

【B - 3】 던전에 진입한 GGW 공격대를 맞이한 것은 가운데에 조그마한 탑 기둥이 세워져 있는 드넓은 벌판이었다. 그리고 기둥을 바라보던 나연이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전에 경험해 본 적이 있는 던전입니다. ‘증명의 전장’으로 디펜스 형태의 던전입니다.”

‘메모리아’에서 활동하던 도중 이와 동일한 모습의 던전을 몇 번이나 경험해 본 적이 있었다.

“디펜스?”

“디펜스 전장은 처음인데…. 어떤 방식이었지?”

그런 나연의 말에 현아를 비롯한 다른 영웅들은 영웅 학교 시절에 배웠던 내용들을 떠올렸다.

민국도 마찬가지였다. 다행히 수많은 게임들을 접했던 터라 어떤 방식으로 공략을 해야 할지 쉽게 감을 잡을 수 있었다. 게다가 신나연은 던전의 이름을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그리고 영웅 패드로 빠르게 던전의 공략법을 훑어본 민국이 브리핑을 시작했다.

《증명의 전장

▷ 디펜스 형 던전으로 증명의 전장은 오브젝트를 지키는 것이 공략의 처음이자 끝입니다. 그렇기에 영웅들은 긴밀하게 서로 협력하여 각 단계마다 오브젝트를 파괴하기 위해 나타나는 적들을 막아내야 합니다.

▷ 총 7 번의 라운드 동안 몬스터가 등장하며, 오브젝트가 깨지면 목숨을 잃게 됩니다. 또한 전투 중 사망한 영웅은 라운드가 끝나도 부활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힐러는 동료들의 생명력 유지에 집중해야 합니다.

▷ 1 단계에 등장하는 몬스터는 소형 몬스터인 홉 고블린들입니다. 총 다섯 종류의 홉 고블린들이 모습을 드러내며, 대략 이백 마리의 홉 고블린들이 전투 시작 후, 시간의 흐름에 따라 차례차례 등장하게 됩니다.

▷ 홉 고블린들은 전부 무리를 이루고 있습니다. 방패를 든 보호병, 철퇴를 든 부대장, 긴 지팡이를 든 법사, 완드를 든 회복병 그리고 단검을 든 정찰병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영웅들은 본인들의 실력에 따라 먼저 쓰러뜨릴 대상을 정하는 것이 제압에 수활할 수 있습니다.

▷ 디펜스 형 던전은 딜러들의 기량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딜러 개개인이 탱킹과 딜링을 전부 해야 하는 일이 많기 때문입니다. 탱커는 전투 대신 힐러를 지키는 데 주력을 하며, 힐러는 필연적으로 몬스터에게 포위를 당하는 딜러들을 위주로 회복 능력을 사용해야 합니다.

▷▷ 2 단계에 등장하는 몬스터는 블랙 오크입니다. 고블린처럼 다수가 무리를 이루며 등장하며…….》

“둘 다 원거리라 다행인 것 같습니다.”

나연이 민국의 브리핑을 들으면서 중얼거렸다. 사방이 뻥 뚫려 있는 형태의 전장이었다. 그만큼 동서남북에서 몬스터가 몰려왔고, 분명 방어가 취약한 곳이 생겨나기 마련이었다.

근접 딜러였다면 곤란했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래도 사정거리가 긴 원거리 딜러가 둘이라면 어느 정도 커버가 가능할 것 같았다. 다만, 세 명의 딜러 중 한 명이 초보나 다름없는 민국이라는 게 조금 걱정이기는 했다.

심지어 민국은 공대장으로서 리딩도 해야만 했다.

“제가 두 시, 정예린 영웅이 열 시, 신나연 영웅이 여섯 시 방향을 커버합니다. 현아 너는 켄달의 보호에 신경쓰면서 몬스터들이 몰리기 시작하는 장소를 지원하면 될 거야.”

“으? 응. 알았어.”

그런 신나연의 걱정에도 불구하고 민국은 태연하게 브리핑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탑 기둥에 뭉툭 튀어나온 돌덩이를 누르는 것을 시작으로 레이드가 진행되었다.

대앵!

다들 무기를 들고 경계를 하던 도중 몬스터의 등장을 알려주듯 어디선가 종소리가 들려왔다. 이어서 키킥거리는 고블린 특유의 괴상한 울음소리와 함께 붉은 피부의 고블린들이 무리를 이뤄 달려오기 시작했다.

고블린 중에서도 상위 종에 속한다는 홉 고블린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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