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영웅 소녀 전쟁-127화 (127/486)

EP.127 타임 어택

키이익! 킥!

민국이 전투와 후퇴의 선택지에서 갈등을 할 때였다. 갑자기 민국의 귀로 붉은 새들의 독특한 괴성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괴물들이 있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자 가루다의 분신 중 머리에 털이 없는 녀석이 자신을 바라보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뭐지? 남자라고 관심을 갖는 건가?’

이상행동을 보이는 것은 그 녀석만이 아니었다. 특이하게도 세 마리의 분신들은 전부 민국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 때였다.

킥! 키킥! 킥!

녀석들이 입술을 비쭉거리며 웃기 시작했다. 민국을 바라보는 세 마리 괴물의 눈들이 길게 호선을 그리고 있었다.

“…….”

그건 확실한 비웃음이었다.

“잡아야겠네. 병아리 새끼들이 한 번 튀겨져 봐야 정신을 차리지.”

헛웃음 절로 흘러 나왔다. 저런 도발을 보고도 그냥 물러선다면 월퍼킬(World First Kill)을 달성한 공대장이 아니었다. 어차피 레전더리 등급의 클래스 스톤이 보상으로 걸려 있던 참이었다.

이를 아득 문 민국이 소정을 향해 물었다. 괴물들을 바라보는 민국의 눈동자가 이글이글 타오르고 있었다.

“여유 부활석이 몇 개나 있죠?”

“네? 저 녀석들을 공략하시려고요?”

“여기 까지 와서 그냥 물러날 수는 없잖아요? 던전 보상은 물론이고, 이제까지 투자한 시간이 있는데 말이죠.”

거기에 자신이 얼마나 무서운 영웅인지 본 떼도 보여줘야 했다.

“그렇겠네요. 부활석 수량은 충분히 많이 있어요. 세계 영웅 협회에서 제공받은 것과 베트남 정부에서 제공한 것도 그대로 남아 있으니까요. 당장은 칠십 번 정도의 트라이를 할 수 있겠네요.”

“그 정도면 문제없습니다.”

“공략 법이 없는데 괜찮을까요?”

민국이 굳게 고개를 끄덕였다. 여전히 시선은 가루다의 분신들을 노려본 채였다.

저런 녀석들 정도면 20트 아니 15트면 공략 법을 만들어 낼 수 있었다. 아무리 날고 기어봤자 【B – 1】 수준의 녀석이었다.

“마지막 보스 녀석인데 공략법이 없다고 그냥 물러설 수는 없죠. 게다가 상대는 그 가루다의 분신인데요.”

“아아. 네…, 네?!”

별 생각 없이 고개를 끄덕이던 소정이 놀라서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빠르게 침착함을 되찾고는 팀원들을 불러 모았다.

“브리핑은…. 정보가 없으니 딱히 할 게 없네요. 일단 상대의 공격 패턴부터 파악하는 것에 의의를 둘 겁니다. 공략 정보가 없는 녀석인 만큼 지금까지의 레이드와는 다르게 여러 번 죽어나갈지도 모릅니다. 다들 각오하세요.”

“시간만 끌면 되는 거죠?”

“이, 타냐! 죽는 게 무서웠다면 영웅이 되지도 않았을 겁니다. 아무 문제없습니다!”

“어쩐지 그럴 줄 알았어요. 영웅 패드에도 검색되지 않는 새로운 보스 몬스터면 가루다의 분신 녀석밖에 없었는데…. 왜 몰랐지?”

다행이라면 다행일지 GGW 의 팀원들은 상대가 가루다의 분신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공략에 거리낌이 없는 모습이었다. 전부 민국에 대한 신뢰가 깊게 박혀 있는 까닭이었다.

“일단 가루다의 분신들은….”

모두의 시선이 전장으로 향했다.

넓은 공간에 세 마리의 붉은 새가 제 맘대로 돌아다니고 있었다.

셋 다 민국을 비롯한 GGW의 팀원들에게 별 관심이 없는 것 같은 심드렁한 모습이었지만, 자신들의 영역에 발을 딛는 순간 눈을 붉게 물들이며 맹렬하게 공격을 해올 게 틀림없었다.

“비슷한 생김새지만 특징이 조금씩 있습니다. 덩치가 제일 큰 놈. 머리의 깃이 하늘위로 솟구친 놈. 그리고…. 머리에 털이 없는 놈, 간단하게 덩치, 꽁지, 대머리로 하겠습니다.”

“괜찮네요. 덩치, 꽁지, 대머리.”

소정이 고개를 주억이며 말했다. 단순하지만 기억하기는 쉬운 이름들이었다. 그렇게 적들의 생김새를 눈여겨보던 도중 유나가 궁금한 듯 물었다.

“그런데 새도 머리털이 빠져요?”

“당연히 빠지지. 대머리 독수리 몰라?”

“맞아. 그리고 조심해야 돼. 보통 머리가 없는 녀석들은 엄청나게 강한 설정을 지녔다고 들었어. 저 놈도 뭔가 특이한 능력이 있을지 몰라.”

유나의 질문에 지젤과 신나연이 진지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대머리 붉은 새를 바라보는 그녀들의 얼굴에는 경계심이 잔뜩 담겨 있었다.

덩달아 유나도 침을 꿀꺽 삼키고 있었다.

“……보스급 괴수들은 다 특수 패턴을 지니고 있다. 이, 바보들아.”

세 여자의 바보 같은 대화에 민국은 못 말리겠다는 듯 고개를 흔들고는 탱커들을 바라보았다.

만약 딜러 중에서 탱킹이 가능한 영웅이 있다면 세 마리를 하나씩 붙잡고 천천히 상대를 했을 터였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포지션 변경이 가능한 영웅이 없었다.

결국 가장 강해 보이는 덩치를 타냐가 붙잡기로 했고, 꽁지와 대머리를 현아가 맡기로 했다.

“일단 원거리 딜러들은 꽁지부터 공격하겠습니다. 그리고 김소정 영웅은 대기입니다. 근접 딜러니 만큼 적들의 공격 패턴을 보고 자율적으로 딜링을 넣으시면 될 것 같습니다. 일단 안전을 최우선을 두세요.”

포지션도 대충 잡았다.

보스 몬스터에 대해 정보가 아예 전무한 터라 어떤 식으로 공략을 해야 할지 감이 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보스 몬스터들을 붙여 놓아 광역 데미지를 넣기에는 탱커들의 부담이 엄청나게 클 테니, 두 탱커들 사이의 간격은 조금 벌려서 자리를 잡기로 했다.

곧 가루다의 분신을 상대하는 첫 레이드가 시작되었다.

키익! 킥!!!

민국을 비롯한 GGW 의 영웅들이 자신들의 영역에 적들이 들어온 순간 세 마리의 새들이 눈을 붉게 빛냈다. 이어서 알 수 없는 괴성과 함께 괴물들이 일행들을 향해 요란하게 달려오기 시작했다.

“자! 불곰 나가신다!!!”

일행들의 선두에서 방패를 든 타냐의 주위로 마력이 휘몰아쳤다. 탱커의 도발적인 마력에 반응한 덩치가 고개를 크게 뒤로 젖혔다가 앞으로 찍었다.

콰아앙!!!

굉음과 함께 커다란 방패로 자신의 몸을 가린 타냐의 몸이 주르륵 뒤로 물러났다. 동시에 그녀의 생명력 중 30% 가량이 단번에 날아가 버렸다.

‘스킬인가?’

타냐의 생명력을 회복시키면서 민국은 방금 전에 있었던 덩치의 공격을 머릿속으로 되새겼다. 탱커가 아닌 다른 클래스는 한 방에 즉사했을 정도로 엄청난 위력이었다.

방금 전의 공격이 덩치의 평타 수준인 공격이라면 이번 레이드는 굉장히 힘들어질지 몰랐다. 하지만 다행히도 특수한 패턴의 공격이었다. 그래도 사용 빈도가 낮지는 않았다.

“계속 해 봐라!”

“러시아의 뜨거운 맛을 보여주지!!!”

커다란 방패를 휘두르며 타냐는 연신 덩치의 시선을 붙잡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가 아무 생각 없이 적의 공격을 받아내기만 하는 것은 아니었다.

영볼루션에도 언급될 정도로 실력 있는 탱커답게 타냐는 덩치의 움직임 하나하나를 머릿속에 집어넣고 있었다. 빠르게 적의 공격패턴을 파악하는 작업이었다.

그에 반해 현아는 조금 고전을 하고 있었다. 민국이 꽁지와 대머리라고 명명한 두 녀석의 합공 플레이가 예상 이상으로 강력했기 때문이었다.

파앗!

꽁지가 던진 날개깃이 현아의 뺨을 스치고 지나갔다. 간발의 차이로 피하기는 했지만,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던 공격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위험은 이게 끝이 아니었다.

“조심!”

누군가의 경고음과 함께 현아는 반사적으로 마력을 끌어 올리며 방패를 앞으로 내밀었다. 그와 동시에 대머리의 박치기가 날아들었다.

대애앵!!!

“캬흑?!”

몸을 관통하는 엄청난 충격에 귀의 반고리관이 손상되었는지 현아는 귀가 멍멍해진 것과 동시에 어질어질한 현기증을 느껴야만 했다. 마음대로 몸이 움직이지가 않았다.

그나마 포근한 회복의 마나가 자신의 몸을 감싸고 나서야 제대로 몸을 움직일 수가 있었다.

“이 자식들 생각 외로 아프잖아?!”

현아가 발버둥을 치듯 방패를 휘두르며 외쳤다.

그래도 원거리에서 날려대는 꽁지의 깃털 공격은 상대할 만 했다. 집중만 하면 피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대머리의 박치기가 문제였다.

방패로 막아낸다 하더라도 몸에 충격이 강하게 남는 터라 몇 초씩이나 마비가 되어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꽁지의 공격을 얻어맞으면 빈사 상태에 가까워질 정도의 위기를 겪어야만 했다.

“헤비 디펜스(B)! 히, 힐 좀 줘!!!”

만약 풍부한 상위 난이도의 레이드 경험과 실력 있는 힐러진의 절묘한 서포팅이 아니었다면, 아무리 현아라도 제대로 버티지 못하고 사망했을 상황이었다.

‘생각보다….’

그렇게 팀원들이 억지로 가루다의 분신들을 상대하는 동안 민국은 머릿속으로 열심히 괴물들을 상대할 전술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일단 탱커들을 다시 설정해야겠네.”

탱커의 움직임을 마비시킬 정도의 강력한 공격을 하는 대머리를 따로 놓고, 꽁지와 덩치를 타냐 혼자서 맡는 게 조금 더 나을 것 같았다.

덩치의 강력한 공격이 위협적이기는 했지만, 공격 횟수가 많지 않은데다가 그것을 제외하면 위협적인 공격이 이제까지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덩치의 강력한 공격에 위기의 순간이 오면 수호기사 클래스를 지니고 있는 현아가 희망의 방패로 타냐를 지원해 줄 수도 있었다.

하지만 대머리와 다른 녀석을 동시에 붙잡고 있으면, 박치기 공격에 탱커가 순식간에 위험에 처해질 가능성이 높았다. 그리고 생각이 정해졌으면 바로 행동으로 옮겨야 했다.

이번 트라이에 녀석들의 전력을 최대한 많이 알아내야만 했다.

“타냐! 꽁지의 어그로를 잡아!”

“네! 알겠습니다!!!”

공격대장인 민국의 지시에 타냐는 조금의 머뭇거림도 없이 현아를 공격하는 꽁지를 향해 마력의 구체를 집어던졌다.

그녀의 의지에 따라 날아간 구체는 정확하게 꽁지의 머리를 뒤흔들었고, 신나게 현아를 공격하던 꽁지가 자신의 머리를 세차게 흔들더니만 타냐를 향해 커다란 적대감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켄달은 타냐 전담으로 붙어.”

“네!”

공격력만큼은 【B – 1】 난이도에서 만난 몬스터 중에서도 가장 강력하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였다.

그러나 탱커에게 가해지는 부담이 굉장히 클 뿐, 딜러들을 향한 위협은 아직까지 없었다. 그렇기에 소정을 비롯한 딜러들은 신나게 꽁지를 공격하고 있었다. 특히 원거리 딜러들은 물 만난 물고기처럼 자신들의 딜링을 뽐내고 있었다.

“90 프로!!!”

“85 프로 깎았어요! 이제 80!”

꽁지의 생명력이 순조롭게 줄어들고 있었다.

하지만 그럴수록 민국은 더욱 신중히 주위를 훑어보았다. 데미지가 조금 센 것을 제외하면 아직까지는 별 볼일 없는 수준의 보스급 몬스터였다.

물론, 그 데미지가 생각 이상으로 강력한 까닭에 힐러들의 기량이 뛰어나야만 버틸 수 있을 것만 같지만….

‘고작 이 정도 녀석을 상대로 강채영이 나한테 경고를 했을 리가 없잖아?’

그렇게 꽁지의 생명력이 70 % 이하로 떨어질 때였다.

타냐가 꽁지를 데려가는 바람에 탱킹에 여유가 생긴 현아는 마력이 실린 방패로 대머리의 박치기를 막아내고는 검을 찔러 넣었다. 조금씩 대머리의 패턴이 익숙해지고 있는터라 검을 휘두를 여유가 생겨나고 있었다.

‘저게 뭐지’

그런데 그런 대머리의 뒤쪽으로 허공에서 붉은 색의 깃털이 한 가닥이 살랑살랑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이 녀석들의 깃털인가?”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기에는 깃털의 크기가 너무나도 컸다. 깃털이 떨어지는 장소의 위쪽으로 잠깐 시선을 돌려봤지만, 눈에 보이는 거라곤 아무것도 없었다.

그리고 영웅 학교에서는 공략 패턴이 파악되지 않은 보스급 몬스터를 상대할 때는 조금의 변화도 놓치지 말아야 한다고 가르치곤 했다.

“공대장님. 저기 깃털이 떨어지고 있어요!”

현아의 목소리에 민국도 대머리의 뒤쪽으로 붉은색의 깃털이 떨어지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커다란 크기의 깃털 한 가닥이 좌우로 흔들리면서 지면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얼핏 봐도 굉장히 부자연스러운 모습이었다.

‘느낌이….’

동시에 민국의 손이 일정한 패턴을 그리기 시작했다. 본능적으로 몸이 위험을 느끼면서 팀원들에게 보호막을 걸어겠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생겨나고 있었다.

“지젤! 광역 보호막!”

“네? 자, 잠깐!”

갑작스러운 민국의 지시에 현아에게 회복 능력을 사용하던 지젤이 캐스팅을 끊고는 바로 광역 보호막의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하지만 지젤의 주문이 끝나기도 전에, 땅바닥으로 깃털이 떨어지고야 말았다.

다음화 보기―――――――――――――――――――――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