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28 타임 어택
파가각!
“저것 좀 보십시오?!”
“어, 어어?”
둔탁한 소리와 함께 【B – 1】 난이도의 던전 게이트에서 푸른색의 마력이 하늘 위로 솟구쳤다. 이어서 게이트의 앞에서 영롱한 빛을 내뿜던 부활석이 산산조각 나며 떨어져내렸다.
“깨졌네?”
경계 중이지만 한가로이 시간을 보내고 있던 중국 군인들은 부활석이 깨지는 광경을 목격하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 던전을 공략중인 공격대인 팀 GGW 의 부활석이 깨지는 일은 이제껏 거의 없다시피 했기 때문이었다.
“누가 실수라도 했나?”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진다고 하잖아. 당연히 그렇지 않을까?”
먀오먀오 중좌를 포함해 게이트를 지키고 있는 중국군들은 부활석이 깨진 현상을 대수롭지 않게 웃어 넘겼다. 던전을 공략하는 공격대의 전멸로 부활석이 깨지는 일은 흔히 볼 수 있는 있는 현상이기 때문이었다.
다만, 그게 GGW 가 의외였을 뿐.
게다가 GGW가 공략에 들어간 던전은 【B – 1】 난이도의 던전이었다.
“5 등급 몬스터를 상대로 레이드를 하다가 실수를 한 모양이군.”
중국군 중에서 직위가 가장 높은 먀오먀오 중좌는 그렇게 생각했다. 던전 밖으로 나와 부활석을 다시 설치하고 들어간 GGW 영웅들도 별 말이 없던 터라 금방 던전 공략이 끝날 것이라고 여긴 것이다.
그러나….
파가각! 파가각! 파가가각!
“안에서 대체 뭐가 나타난 거지?”
연달아서 네 번의 부활석이 깨지고 나서야 군인들도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 * *
조금 후에 있을 레이드에 앞서 장비를 재정비하는 팀원들의 분위기는 조용하다 못해 경직되어 있었다. 세 마리의 붉은 새 중 한 녀석도 제대로 쓰러뜨리지 못하고 네 번이나 연속으로 전멸을 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아무 성과가 없던 것도 아니었다. 조금씩이지만 적들의 패턴을 점점 파악하고 있었다.
그러나 팀을 이끌어야 할 민국은 눈을 감고는 굳게 입을 다물고 있었다. 얼핏 보기에는 굉장히 화가 난 것 같은 모습인지라 팀원들은 아무도 입을 열 수가 없었다. 절로 눈치가 보이는 것이다.
하지만 이건 그녀들의 잘못된 생각이었다. 민국은 화가 난 게 아니라 조용히 상대의 공격 패턴들을 머릿속으로 되짚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일단 탱커 포지션은 그대로 유지.’
탱커를 마비시키는 대머리의 강력한 한 방은 확실히 조심해야 했다. 만약, 탱커가 움직일 수 없는 상황에서 다른 괴물들의 공격에 치명타를 입는다면 탱커를 회복시키는 게 굉장히 힘들어졌다.
그렇기에 지금처럼 덩치와 꽁지는 타냐와 그리고 대머리는 현아가 맡는 게 가장 나은 선택을 것 같았다.
또 하나의 문제는 바로 하늘에서 떨어지는 깃털이었다. 깃털은 지면에 떨어지는 순간 엄청난 바람을 만들어내며 진영을 잡고 있는 아군 영웅 모두를 랜덤한 장소로 날려버렸다.
‘더럽게도 아팠지.’
조금 전의 느낌을 떠올리며 민국은 미간을 찌푸렸다.
하늘을 날았다가 추락하는 경험은 딱히 좋은 경험은 아니었다. 단단한 땅바닥에 내동댕이치면서 갈비뼈가 부러질 것 같은 충격을 두 번이나 맞봐야 했기 때문이었다.
‘진영이 무너지면 그 순간부터 보스 몬스터를 상대하는 것을 불가능해진다.’
간단히 말하면 드넓은 전장에 아군 영웅들이 각각 떨어지게 된 셈이었다.
결국 어그로를 잡아줄 탱커가 멀리 떨어져 있기에 괴물들의 공격 대상이 된 영웅들은 바로 사망할 수밖에 없었고, 설령 운 좋게 탱커가 어그로를 잡는다 하더라도 힐러와의 거리가 멀리 떨어진 터라 오래 버틸 수가 없었다.
심지어 조류 주제에 인간을 탐하려는 녀석도 있었다. 덩치나 꽁지는 별 반응이 없었지만, 대머리 녀석이 문제였다.
“으, 으아아아악!”
“이런 미친 새가?!”
다행히 목표가 되었던 켄달과 소정이 바로 목숨을 끊는 바람에 문제가 터지지는 않았지만, 위험천만했던 상황이었다.
하지만 떨어지는 깃털에 대한 해결책은 쉽게 만들어낼 수 있었다. 깃털이 떨어지기 전, 무차별적으로 공격을 해 깃털을 보호하는 방어막을 깨뜨리고 찢어버리면 그만이었다.
다행히도 GGW 에는 원거리 공격이 가능한 딜러가 다섯 명 중 네 명이나 되었다.
‘문제는 레이드가 지속될수록 하늘에서 떨어지는 깃털의 숫자가 점점 늘어난다는 점인데….’
거기에 레이드가 계속되면 팀원들이 뭉쳐 있는 장소에 조그마한 돌개바람들이 생겨나면서 진영을 흩트리기까지 했다. 그렇기에 딜러와 힐러들은 돌개바람까지 피하면서 딜링과 힐링을 해야 했다.
그런 경험들을 토대로 삼아 민국은 팀원들의 진영과 이동 경로, 사고가 터졌을 때의 해결책들을 머릿속으로 그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어느 정도 정리를 내리고 나서야 다시 팀원들을 불러 모았다.
“탱커의 포지션은 그대로 유지하겠습니다. 다만, 탱킹 거리의 변화가 있을 겁니다. 그거는 이따가 다시 말하기로 하고 최유나.”
“네?”
민국에게 지목을 받은 유나가 흠칫 몸을 떨었다. 눈을 크게 굴리는 것이 자신이 레이드에서 무슨 실수를 했는지 곰곰이 생각을 하는 모습이었다.
“혼자서 떨어지는 깃털의 파괴가 가능할까?”
“으음. 샤프 모드라면 가능할 것 같은데, 일찍 자리를 잡고 있어야 하는 단점이 있어서….”
“오케이. 그건 나랑 다른 팀원들이 체크하면 되는 거고. 그러면 최유나가 첫 번째 깃털 파괴를 담당합니다. 번호는 1 번입니다.”
“네, 넵.”
특수 임무를 맡은 유나가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마음이 긴장으로 콩닥콩닥 뛰고 있었다. 이제까지의 경험을 통해 깃털이 땅바닥에 떨어지면 무조건 전멸이었기 때문에 책임이 막중했다.
“그리고 두 번째 깃털 담당은 신나연입니다. 번호는 2 번입니다.”
“알겠습니다.”
마력구를 사용하는 그녀는 다른 딜러들에 비해 타켓의 변경이 굉장히 자유로웠다. 제대로 된 화력을 뿜어내기까지는 시간이 조금 필요하기는 했지만, 신나연의 능력과 그녀의 마력량을 생각하면 충분히 깃털이 지면에 떨어지기 전에 처리가 가능할 것이라는 게 민국의 판단이었다.
“첫 타겟도 변경하겠습니다. 대머리를 먼저 처리합니다.”
세 마리의 녀석들 중 가장 위협적인 놈이 바로 대머리였다. 온 몸을 마비시키는 특수한 박치기 공격은 탱커에게 급사의 위험으로 다가오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세세한 브리핑이 이어졌고, 잠시 후 다시 레이드가 시작되었다.
“하아아압!!!”
자신의 몸 만큼이나 큰 활대를 땅바닥에 고정시킨 유나가 반투명한 화살을 속사포처럼 쏘아대기 시작했다.
샤프 모드가 발동하면서 그녀의 마력이 빠른 속도로 고갈되었지만, 화살을 날리는 속도에는 변함이 없었다. 마력의 소모보다도 떨어지는 깃털의 파괴가 훨씬 중요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유나의 화살은 정확하게 커다란 깃털을 향해 날아들었다.
퍼어엉!
계속되는 화살 공격에 깃털을 감싸고 있던 보호막이 깨져나가며 순식간에 넝마가 되어버렸다. 걸레가 되어 툭 떨어진 깃털은 전투를 벌이고 있는 GGW 의 팀원들에게 아무런 영향도 주지 못했다.
“처리했어요!”
힘찬 목소리와 함께 다시 대머리를 공격하는 유나를 보며 민국은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하지만 표정은 그리 좋지 않았다.
‘조금 빡빡하겠는데….’
깃털을 발견하자마자 공격을 시작했지만, 지면에 도착하기 십 미터 정도를 남겨두고 처리를 할 수 있었다. 만약 깃털의 발견이 늦으면 유나 혼자서는 처리가 불가능할 것 같았다.
“일제 사격!”
신나연은 안심이었다. 붉은색으로 물든 마력구들이 깃털을 향해 날아가며 레이저 빔을 쏘아대었고, 어렵지 않게 보호막을 파괴하고 깃털까지 증발시켜 버린 것이다.
‘일단 깃털 처리는 유나에게 맡기고, 위험할 때 신나연이 돕는 방법으로 가면 되겠군.’
그렇게 생각을 정리한 민국은 탱커들을 공격하는 세 마리의 붉은 새들을 바라보았다.
타냐와 켄달이 붙잡고 있는 덩치와 꽁지는 거의 멀쩡하다시피 한 모습이었지만, 딜러들의 공격을 한 몸에 받는 대머리는 이제 곧 생명력이 60 퍼센트 이하로 떨어지고 있었다.
대애애앵!!!
대머리가 고개를 뒤로 빼는 것과 동시에 커다란 종소리가 울려 퍼졌다. 진동하듯 온 몸을 파르르 떨고 있는 현아를 향해 민국이 재빠르게 보호막을 걸었다. 대머리의 공격이 이어지면 무방비 상태고 얻어맞아야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현아는 민국의 생각보다 쉽게 대머리의 공격을 버텨내고 있었다.
‘제법이네.’
그리고 민국은 금방 그 이유를 깨달을 수 있었다.
대머리의 공격이 있기 전, 바로 강화 스킬을 사용한 것이었다. 레이드를 하다 보니 어떻게 대머리를 상대해야 되는지 슬슬 감을 잡은 것 같았다.
“이 정도면….”
전투가 시작된 지 6 분 남짓 시간이 흐르고 있었다. 아직까지 흐름은 굉장히 순조로웠다. 어그로도 안정적이었고, 팀원 전체의 생명력에도 큰 문제가 없었다.
“1번 2시 방향, 2번 9시 체크!”
“네, 넵!”
떨어지는 깃털 처리도 완벽했다. 하지만 대머리의 생명력이 50 % 아래로 떨어지면서 또 다른 문제가 터져 나왔다.
“케엑! 켁!!!”
“키이이이익!”
괴성과 함께 덩치와 꽁지의 몸에 붉은 빛의 아우라가 감돌기 시작했다. 크기도 조금씩 커지기 시작하더니, 원래 있던 모습의 배 이상으로 커지고 있었다.
“과, 광폭?!”
특이한 현상이었지만, 민국과 일행들은 괴물들의 변화를 금방 알아차릴 수 있었다. 레이드를 하면서 몇 번이나 경험한 적이 있는 현상이기 때문이었다.
이어서 덩치의 부리에 무시무시한 마력이 붉게 응집되더니, 곧바로 타냐가 들고 있는 방패를 내리찍었다.
“아, 안 돼!!!”
켄달이 빠르게 보호막과 함께 회복 능력을 사용했지만, 광폭한 덩치의 공격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타냐의 커다란 방패가 순식간에 뚫려 버리며 러시아의 파괴 전차를 그대로 짓눌러 버렸다.
타냐의 사망과 동시에 어그로가 풀린 꽁지가 자신의 날개를 활짝 펼치며 딜러들에게 깃털 세례를 던지기 시작했고, 강력한 위력이 담긴 깃털 공격에 여기저기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전멸이었다.
“한 녀석만 먼저 쓰러뜨릴 게 아니라 골고루 공격을 했어야 했네.”
그래도 새롭게 알아낸 사실이 아예 없지는 않았다.
이런 경험들이 조금씩 쌓이기 시작하면 저 녀석들을 물리칠 수 있는 전술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하지만 레이드는 지금부터가 시작이었다.
* * *
여섯 번째 레이드 - 꽁지의 깃털 세례에 딜러들이 휩쓸리면서 실패.
여덟 번째 레이드 - 처음으로 대머리를 먼저 쓰러뜨리는 데 성공. 하지만 대머리가 쓰러지자마자 살아남은 두 녀석이 광폭화. 결국 세 마리를 동시에 쓰러뜨려야 한 다는 사실을 알 수 있게 됨.
열한 번째 레이드 - 돌개바람에 지젤이 휩쓸리면서 허무하게 레이드 종료.
열세 번째 레이드 - 덩치의 강타 공격에 지쳐있던 타냐가 즉사. 레이드 종료.
패턴을 파악하는 일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그러나 레이드가 점점 길어지기 시작하면서 팀원들의 어이없는 실수로 인해 트라이가 허무하게 끝나고 있었다. 집중력 부족이었다.
그리고 민국은 이럴 때 일수록 자신이 짜증내지 않고 침착해야 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남들이 보기에는 실력만 있는 초보 공대장처럼 보이겠지만, 민국은 이런 상황에서 팀원들에게 어떻게 의욕을 불어넣어야 하는지 잘 알고 있는 베테랑 중의 베테랑이었다.
먼저 휴식의 시간을 길게 가졌다. 바로 레이드를 해봤자 실수만 나올 뿐이니 몸을 쉬게 하면서 자신들의 실수를 체크할 시간을 줘야했다. 그렇게 한참을 쉬고 나서야 민국은 팀원들을 불러보았다.
“자, 모여 봅시다.”
각자 자신들의 장비를 점검하고 있던 영웅들이 한 자리에 모여들었다. 계속된 트라이의 실패로 다들 표정들이 좋지가 않았다.
하지만 민국은 실수를 저지른 개개인의 행동을 지적하는 대신 몬스터를 쓰러뜨릴 수 있다는 의욕부터 불어넣기 시작했다.
“저 괴물들이 사용하는 능력은 여러 번의 고생 끝에 전부 알아낼 수 있었습니다. 깃털의 처리도 완벽하고, 탱커들의 탱킹도 단단합니다. 그리고 딜러 분들도 마음만 먹으면 저런 놈 따위는 금방 튀겨버릴 수 있잖아요?”
“어, 그렇게 말하니까 갑자기 치킨 먹고 싶다.”
“그러게. 갑자기 먹고 싶네. 시원한 맥주까지 곁들이면…. 캬!”
뜬금없이 흘러나오기는 했지만, 현아의 말에 다들 공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마침 허기도 지고 있었다.
레이드 관련 문제가 아니더라도 팀원들끼리의 계속된 소통은 아주 중요했다. 서로가 호흡을 맞추는 시도이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지금의 대화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며 민국은 자신의 목을 조르고 있던 영웅 장비 상의의 단추를 툭하고 풀었다. 레이드가 계속되면서 조금씩 답답함을 느끼고 있던 참이었다.
“…….”
별거 아닌 행동이었다. 하지만 시라누이 마이를 시작으로 대화를 나누던 영웅들의 시선은 자연스레 민국의 목덜미로 집중되고 있었다. 신기하게도 대화는 끊어지지 않은 채 눈동자만 움직이는 모습들이었다.
다음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