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영웅 소녀 전쟁-129화 (129/486)

EP.129 타임 어택

남자 영웅의 반드러운 피부가 눈에 들어오자 몇몇의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 민국에게는 별 의미가 없는 행동이겠지만, 남자 특히 잘생긴 남자를 접하기 힘든 그녀들에게 이러한 민국의 행동은 일종의 포상이나 다름없었다.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침을 꿀꺽이던 이들 중 본능에 충실하다 못해 정도가 지나친 편인 지젤이 못 참겠다는 듯 번쩍 손을 들어 올렸다.

“공대장님의 보상을 원합니다! 이번 트라이에 저 녀석들을 잡으면, 기여도가 가장 높은 공대원에게….”

“보상…이요?”

속이 뻔히 보이는 지젤의 제안에 민국은 속으로 웃음을 지었다. 그건 자신도 바라는 바였다. 마력을 각성한 영웅들 중에는 미녀가 아닌 이들이 없었다.

다만, 모든 영웅들이 자신의 카르텔에 소속되어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어느 정도 수위 조절은 해야 했다. 잠시 고민을 하던 민국이 영웅들에게 물어보듯 말했다.

“데이트 1 회권 지급. 어떻습니까?”

“찬성! 찬성입니다! 빨리 진행하도록 하죠!”

“일일 데이트인거죠? 당연히 24 시간?”

민국의 카르텔에 속한 여성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이는 민국도 충분히 예상하고 있던 바였지만 의외로 타냐와 신나연도 제법 관심을 보이는 모습이었다. 아무래도 하노이의 생활에 너무 지루하기 때문으로 보였다.

‘그래도 나연이는….’

성인이 아닌지라 건전한 시간을 보내야만 할 것 같았다. 아무리 욕망에 찬 세계라 해도 미성년자는 조금 그랬다. 주위에 여자가 없는 것도 아니고….

그렇게 단단히 전의를 다지면서 열네 번째 가루다의 분신 레이드가 시작되었다.

“1 번! 9 시 방향!”

“체크!!!”

가루다의 분신 레이드에서 가장 조심해야 하는 패턴인 떨어지는 깃털을 발견한 유나가 민국의 지시에 따라 빠르게 내달리며 활에 화살을 걸었다.

명중률이 조금 떨어지더라도 이동하면서 사격을 하다가 거리가 가까워질 때 쯤 샤프모드를 사용할 생각이었다.

“돌개 바람 등장하기 시작합니다!”

레이드의 처음은 언제나 그렇듯 평범했다. 마치 서로의 실력을 간보는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그러나 전력을 드러내듯 조금씩 복잡한 패턴들이 등장하기 시작하면서 전장은 서서히 난잡해지기 시작했다. 돌개바람과 함께 꽁지의 깃털세례 등 팀원들에게 피해를 주는 공격들을 일일이 신경 써야 했기 때문이었다.

거기에 덩치의 강타와 대머리의 박치기 등 탱커들에게 위협이 되는 기술도 조심을 해야 했다.

“신나연! 9 시 방향!”

“켄달! 뒤로 물러서! 깃털에 맞고 죽으려고 그래?!”

“대머리 어그로 조심! 탱커가 기절 상태에 있을 때는 눈치껏 딜링 조절해!!!”

“본진 이동!!! 7 시 돌개바람!”

덕분에 민국의 눈과 귀, 입은 조금도 쉴 틈이 없었다.

속사포 같은 공대장의 리딩에 따라 팀원들도 집중을 놓치지 않게 계속해서 전투를 이어나갔다.

적들의 공격에 따라 바쁘게 이리저리 움직여야 했지만, 자신들의 본분이라 할 수 있는 탱킹과 딜링 그리고 공대의 생명력을 유지하는 것은 잊지 않고 있었다.

그래도 몇 번 패턴을 경험해봤다고 민국의 리딩이 있기 전에 한 발 앞서 무빙을 하는 영웅들도 있었다.

“타겟 변경! 꽁지 공격! 김소정은 덩치한테 붙어!”

대머리의 생명력이 60 % 이하로 떨어지자 딜러들은 공격 대상을 바꿔서 마력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적을 광폭시키지 않으려면 세 마리의 생명력을 비슷하게 깎아내려야 했다. 특히 레이드의 마지막에는 세 마리를 동시에 죽이지 않으면 남은 녀석이 광폭하며 공대를 위기에 빠뜨리기도 했다.

“하아아압!”

김소정의 대검이 덩치의 다리를 강타했다. 하지만 묵직한 반탄력에 느껴질 뿐, 덩치는 아무렇지도 않은 모습으로 계속해서 탱커인 타냐를 공격했다.

하지만 소정은 쉴 새 없이 대검을 휘둘렀다. 어디서 그런 힘이 나오나 싶을 정도의 맹렬한 공격이었다. 민국의 보상을 받기 위한 유부녀의 집념에 찬 공격은 곧 영웅 패드의 기록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순식간에 김소정의 딜링 능력은 다른 이들을 뛰어넘고 1 위에 올랐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다른 이들도 만만치 않았다.

콰앙! 쾅!!!

방어 태세에 들어간 타냐는 덩치와 꽁지의 공격을 동시에 받아내면서도 거북이처럼 단단하게 버텨내고 있었다. 어그로도 꽉 잡고 있었다.

‘충분히 안정적이야. 사고만 터지지 않으면 돼.’

타냐의 몸에 걸린 보호막이 희미한 빛을 유지하다가 깨져나가는 것을 확인한 민국이 빠르게 재차 보호막을 타냐에게 걸어주었다.

이번 레이드에서는 본진을 엉망으로 만드는 돌개바람, 하늘에서 떨어지는 깃털. 그리고 탱커의 급사 이 세 가지만 주의를 하면 되었다. 그 이후는 팀원들의 기량에 기대는 것뿐이었다.

그런 생각과 함께 민국은 방패로 적들의 공격을 막아내고 있는 타냐를 바라보았다. 확실히 메인 탱커가 든든하니 레이드가 편했다.

“닭대가리 새끼들아! 덤벼!”

타냐가 커다란 방패를 쾅쾅 내리찍으며 외치자 덩치와 꽁지가 분노한 듯 소리를 내질렀다. 이어서 묵직한 충격음이 연달아 울려 퍼졌다.

탱커에게 어그로가 잔뜩 끌린 두 마리의 붉은 새는 다른 영웅들의 모습은 눈에도 들어오지 않는 듯 타냐를 쓰러뜨리기 위해 공격적으로 움직였다. 눈이 핏빛처럼 붉게 물든 것이 본능만 남은 모습이었다.

덕분에 딜러들은 편안하게 자신들의 능력을 사용할 수 있었다.

“시라누이! 돌개 조심!”

“아, 앗?!”

간혹 자신의 딜링에 심취한 까닭에 주위를 보지 못한 영웅들의 실수가 나오기는 했지만, 큰 문제는 아니었다. 일단 죽지만 않으면 회복 능력으로 살릴 수 있었다.

전투 시간이 점점 길어질수록 전장은 아수라장으로 변해 갔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깃털은 두 개나 눈에 들어오고 있었고, 그것을 처리하기 위해 최유나와 신나연이 바쁘게 뛰어다니고 있었다.

그 뿐인가? 5 층 건물 높이의 돌개바람은 네 개가 휘돌고 있었다. 한 번 생긴 돌개바람은 전투가 끝날 때까지 없어지지 않기에 돌개바람이 전장을 가득 채울 때까지 가루다의 분신 녀석들을 쓰러뜨려야만 했다.

그리고 많은 돌개바람은 아군의 이동 또한 크게 제한하고 있었다.

“크으으윽!”

타이밍 나쁘게 두 개의 돌개바람이 연달아 자신 방향으로 날아오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몸이 스쳐버린 민국이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돌개바람 안쪽으로 잠깐 왼 팔이 들어갔다 나왔는데, 수십 마리의 짐승들에게 긁힌 것 마냥 넝마가 되어 있었다.

다행히 지젤의 회복 능력이 몸을 감싸면서 고통은 빠르게 사그라졌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민국의 고개가 본진 쪽으로 향했다.

“돌개바람 옵니다! 다들 뒤로! 꼬마! 너는 열 시 방향으로 빠져!”

민국이 돌개바람을 피하는 동안 본진도 돌개바람으로 인해 진영이 흩어졌던 모양인지 이리저리 퍼져 있던 딜러들이 다시 자리를 잡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보아하니 탱킹을 하고 있던 타냐가 임기응변식으로 팀원들을 리딩했던 모양이었다.

‘그래, 저 정도는 해줘야지.’

영볼루션에서 언급한 세계 유망주 영웅 랭킹 11위다운 뛰어난 판단력이었다. 하기야 레이드에 제대로 기여를 하려면 본인의 기량은 당연한데다가 전장의 흐름도 빨리 파악할 수 있어야 했다.

‘가루다의 분신’ 레이드의 공략은 간단했다.

세 마리 몬스터의 공격을 두 명의 탱커가 나눠서 버틸 수 있을 것. 떨어지는 날개 처리가 완벽하게 될 것, 돌개바람에 휩쓸리지 않을 것.

마지막으로 힐러들이 리타이어하기 전에 세 마리의 보스 몬스터를 동시에 처리할 수 있도록 딜러들의 실력이 뒷받침 될 것이었다. 그리고 민국의 공격대인 GGW 는 이 모든 것을 다 갖춘 공격대였다.

“꽁지 딜 금지! 덩치 딜!”

“대머리는 마이만 딜!”

조금씩 레이드가 마무리되어 갈수록 민국의 지시도 점차 많아지기 시작했다.

동시에 녀석들을 죽여야만 레이드를 성공적으로 끝낼 수 있기 때문에 딜 관리를 정확하게 해야 했다. 이미 꽁지의 생명력은 3 % 이하로 떨어졌고, 나머지 녀석들도 10 % 아래였다.

조금씩 영웅들의 마음에 레이드의 성공이 자리 잡기 시작했다.

‘이번에 끝낸다.’

민국도 마찬가지였다. 저 빌어먹을 치킨 녀석들을 드디어 튀겨버릴 수 있는 것이다. 그렇게 각오를 굳히며 민국은 정신을 집중했다. 온 몸의 감각이 주변의 전투 상황에 집중하고 있었다.

콰앙! 쾅!!!

“키이익! 킥!”

거친 공방이 계속해서 반복되었다. 이제 돌개바람은 무려 여섯 개가 전장을 휘돌고 있었다. 랜덤하게 전장을 휘도는 돌개바람 때문에 영웅들은 제 자리에서 무기를 휘두르는 것 자체가 힘겨울 정도였다.

하지만 민국은 이럴 때일수록 더욱 정신을 집중해야 한다는 사실을 경험으로 잘 알고 있었다. 마지막의 방심으로 인해 레이드를 망쳤던 경험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팀원들도 마지막까지 집중력을 놓치지 않고 있었다. 다들 이번 레이드를 성공시키겠다는 마음으로 기를 쓰고 무기를 휘두르고 있었다.

“마무리! 다 죽여!!! 극딜!!!”

그리고 세 마리 새들의 생명력이 2 % 아래인 것을 확인한 순간 민국이 마지막 명령을 내렸다.

* * *

삐익!

▶ “로트크리온 요새”의 토벌을 완료했습니다.

▶ 영웅 패드에 업적 포인트가 5 주어집니다.

▶ 영웅 도감의 횟수가 갱신되었습니다.

“14 트라…. 생각보다 쉬웠네. 그리고 패턴은 오로지 무빙만 신경써야 되는 거라 조금 단순했나?”

영웅 패드에 나타나는 메시지들을 확인하며 민국이 고개를 주억이며 중얼거렸다.

패턴을 알아내느라 조금 고생을 하고, 돌개바람을 피하느라 바쁘긴 했지만 솔직히 난이도 자체는 어려운 편은 아니었다. 돌개바람도 지금이야 여섯 개나 봤지만, 팀원들의 스펙이 올라가고 나면 그 전에 녀석들을 쓰러뜨릴 수도 있었다.

“…네?”

“응? 뭐라고요?”

우연히 민국의 옆에 있던 까닭에 민국의 중얼거림을 들을 수 있게 된 타냐와 소정이 말도 안 된다는 듯 얼굴을 구겼다. 그녀들에게는 굉장히 위험천만하고 힘들었던 레이드였는데, 자신들의 천재 공격대장은 그렇지가 않았던 모양이었다.

뭔가 굉장히 억울한 느낌이었다.

“오현아, 이번 레이드는 녹화 제대로 했지? 공략법을 적어야 되니까 나중에 영상 보내줘.”

“아? 응! 확인해보고 보내줄게. 잘 되었을 거야.”

‘가루다의 분신’ 레이드와 관련된 정보는 아직 영웅 패드에 나와 있는 게 없었다.

베트남에서 확산 현상을 막아내고 있는 공격대들 중 일부만이 상대했던 몬스터인 까닭에 다른 공격대들에게는 정보가 없기 때문으로 보였다.

그래서 민국은 자신의 이름으로 ‘가루다의 분신’ 레이드의 공격법을 영웅 커뮤니티에 업로드 할 생각이었다.

그게 영웅들에게 그리고 어둠의 괴물을 몰아내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영웅들이 자신의 공략법을 다운받을 때 마다 조금이지만 용돈 수준의 돈도 벌 수 있었다.

그리고 억울한 듯 눈을 부릅뜨고 죽은 새들의 시체가 사라지면서 커다란 상자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보상 상자다!”

“뭐가 나올까? 그래도 ‘가루다’라는 이름이 들어가는 녀석들이니까 제법 괜찮은 것을 주지 않을까?”

“티켓? 클래스 스톤? 십이 재앙의 힘이 담긴 강력한 무기?”

상대가 상대였던 만큼 영웅들은 이번 보상 상자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었다. 그런 영웅들을 향해 민국이 진정하라는 듯 손을 들었다.

눈앞의 보상 상자에는 【클래스 스톤(A) - 레전더리 등급】이 확정적으로 들어가 있었다. 저번 상자에서 빛의 기둥이 떴던 것을 생각하면 이번 상자에서도 분명 빛의 기둥이 나올 게 틀림없었다.

“오현아.”

민국이 현아에게 눈빛을 주었다. 보상 상자를 열어보라는 의미였다.

자칭 럭키 걸이라고 하지만 현아는 나름 대박 수준의 아이템을 몇 번이나 뽑아낸 전적이 있었다. 그렇기에 민국은 현아를 자칭 럭키 걸이 아닌, 자신의 손으로 키워낸 럭키 걸로 만들어 낼 생각이었다.

이유는 별 거 없었다. 왠지 그 편이 재미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퀘스트의 힘을 이용한다면 불가능한 것도 아니었다.

“그러면 이 천호동 럭키 걸이 상자를 열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말과 함께 현아는 거침없이 상자를 번쩍 열었다.

의외로 보상 상자의 내용물에 대해 별 기대를 하지 않았는지 뜸을 들이는 행동 따위는 전혀 없었다. 그리고 민국이 예상했던 대로 하지만 다른 영웅들에게는 눈이 휘둥그레질 만한 놀라운 일이 펼쳐졌다.

“어, 어어어?! 비, 빛의 기둥?!”

“우와아아아! 언니! 언니! 사랑해요! 사랑해!”

“오현아! 오현아! 오현아!!!”

빛의 기둥이 등장하면서 사방에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하지만 막상 상자를 연 현아는 어안이 벙벙한 모습이었다.

“어, 어어? 아니, 내가 이 정도라고!”

정말로 자신의 운에 대해 생각을 하는 모양인지 손과 상자를 번갈아 바라보던 현아는 시끄러울 정도의 환호성에 곧 뻔뻔한 표정을 지으며 팀원들의 환호를 즐기기 시작했다.

그렇게 상자 안에는 부활석과 가루다의 깃털처럼 생긴 아이템 그리고 푸르스름하게 반짝이는 티켓이 한 장 들어 있었다.

【클래스 스톤(A) 티켓 - 레전더리 등급.】

수많은 영웅들을 웃고 울리게 만들었던 랜덤 티켓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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