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영웅 소녀 전쟁-131화 (131/486)

EP.131 타임 어택

“……조금 복장이 이상하지는 않습니까? 김소정 영웅과 오현아 영웅이 무조건 이렇게 입고 나가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하는 바람에 입기는 했는데, 옷이 너무 트인 느낌입니다.”

“그래? 내 눈에는 예쁜데?”

만약 한국이었다면 민소매 티가 조금 춥게 보였을 것 같았다. 하지만 여기는 한국보다 따뜻한 기후인 베트남이었다.

“그러면 다행입니다. 제가 이런 스타일의 옷은 처음이라 조금 어색합니다.”

타냐가 그렇게 말하기는 했지만, 민국은 캐쥬얼하게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굳이 안 어울리는 점을 찾자면 역시 본인의 옷이 아니라는 점인데….

‘생각보다 크네. 현아와 소정이 누나가 작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

문제가 될 것은 아니었다. 가슴 사이즈는 역시 동양이 서양을 따라갈 수 없는 게 진리인 모양이었다.

“혹시 생각해 둔 곳이라도 있어?”

“물론입니다. 데이트 때 남자를 리드해야 하는 것은 여성의 매너 아니겠습니까? 미리 검색을 하고 왔습니다. 다른 분들의 추천도 있었고요.”

“여성의 매너? 아아….”

타냐의 말에 민국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 세계로 넘어온 지 반 년, 이제는 그러려니 하는 생각이었다. 이 세계의 상식에 대해서도 조금씩 익숙해지고 있는 것이다.

“생각보다 돌아다니는 사람들이 많네.”

“사람들의 불안감을 안심시키기 위해 베트남 정부에서도 여러모로 노력을 기울이는 모양입니다.”

던전 브레이크가 터지고, 어둠의 괴물과 전쟁 중임에도 불구하고 하노이 시내의 중심부는 제법 활기 넘치는 모습이었다. 아마 전 세계 각국에서 파견 온 공격대들이 자신들을 지켜주고 있다는 것에 안심을 하는 것 같았다.

“그랬으면 좋겠는데…. 가루다 녀석들이 문제란 말이야.”

“그렇지 않아도 그것 때문에 말이 많은 모양입니다. 세계 영웅 협회도 각 국에 추가적인 공격대 파견을 요청했다고 합니다. 제가 전에 소속되어 있던 클랜에서도 이번에 2 군을 베트남으로 보낸다고 들었습니다.”

“아무래도 【B】 난이도 던전의 처리 때문이겠지?”

“그렇습니다. 타이머가 임박해온 던전들이 조금씩 생겨나고 있는 상황이니 베트남 정부도 세계 영웅 협회도 제법 신경이 쓰일 겁니다.”

세계 영웅 협회는 던전 브레이크로 생겨난 【B】 난이도 던전의 처리는 어렵지 않을 거라 여기고 있었다.

민국도 그들과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이 세계 공격대들의 수준이 대단치 않다 하더라도 스펙으로 찍어 누르는 것은 전략도 리딩 능력도 전혀 필요가 없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가루다의 분신이라는 특수한 괴물들이 나타나면서 모든 게 꼬여 버렸다. 동급 난이도의 보스급 몬스터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의 강력한 공격력과 팀원들 개개인의 판단력과 무빙 능력을 크게 요구했기 때문이었다.

“아, 혹시 이렇게 다녀도 되겠습니까?”

그렇게 대화를 나누며 길을 걷던 도중 잠시 민국의 눈치를 보던 타냐가 민국의 손을 잡으며 자신의 어깨에 걸쳤다. 민국의 키가 큰 편이었기에 가능한 스킨십이었다.

“조금 부끄러워 보이실 수도 있겠지만….”

“아, 나는 괜찮아.”

이 세계의 남자들은 스킨십을 꺼려한다지만, 민국은 그 반대의 남자였다. 그리고 이편이 더욱 데이트 같았다. 카르텔의 여자가 아니라 타냐와 이렇게 걷는다는 것이 조금 어색하기는 했지만, 마음을 달리 먹으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렇게 호텔을 나선 타냐가 안내한 장소는 고급스러운 레스토랑이었다. 민국의 시선이 빠르게 간판을 훑었다.

“제법 비싸 보이는데?”

이 세계의 상식에는 어느 정도 적응을 했다지만, 아직 소시민의 근성은 버리지 못한 모양이었다. 레이드를 하느라 바빴던 데다가 벌었던 돈은 클래스 스톤과 아이템 구입으로 탕진한 까닭에 어쩔 수가 없었다.

“이 정도는 전혀 문제없습니다. 그리고 공대장님에게는 언제 이런 식사를 한 번 대접해 드리고 싶었습니다. 하노이 파병으로 인해 얻은 분배금도 굉장히 많습니다.”

“그렇다면야….”

미리 예약을 한 모양인지 들어서자마자 바로 빈자리로 안내가 되었다.

타냐는 들뜬 얼굴로 주문을 받으러 온 매니저에게 여러 음식들을 주문하기 시작했다. 음식 가격이 만만치 않은 것 같았지만, 조금도 머뭇거림이 없는 모습이었다.

하기야 영웅 그것도 GGW처럼 【B】 난이도를 아우르는 수준의 영웅이라면, 이 정도의 가격은 별 문제도 되지 않을 터였다. 그리고 타냐의 마지막 주문은 셰프의 추천 와인이었다.

“…와인?”

“네, 싫으십니까?”

“아니. 딱히 그렇지는 않은데 술 괜찮겠어?”

“하하하! 와인이 어떻게 술이 됩니까? 술이란 자고로….”

길어지는 타냐의 말을 들으며 민국은 멋쩍게 머리를 긁었다. 생각해보니 타냐의 국적은 러시아. 보드카를 물처럼 마신다는 어메이징한 국가였다.

400km 가 아니면 먼 거리가 아니며, 영하 40 도 밑이 아니면 추운 날씨가 아니며, 알콜 도수 40 아래는 술이 아니다 라는 말처럼 극단적인 환경에서 자란 알콜 파이터들의 나라.

한국의 주당들이 아무리 소주로 자신들의 주량을 자랑해도 그들의 앞에서는 ‘주스 좋아하는 어린애’가 된다는 형님들이 모인 나라. 그곳이 바로 타냐의 고향인 러시아였다.

당연히 와인은 그녀 앞에서는 단지 목을 축이는 수준의 주스에 불과했다. 그렇게 주문을 하고 음식이 나오는 동안 가벼운 수다가 이어졌다.

“뭐, 데이트가 처음이라고?”

의외의 사실에 민국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영웅으로 각성한 타냐는 세계적인 모델이라고 말해도 충분할 정도의 예쁜 여성이었다.

“그렇습니다. 러시아의 남자들은 한국보다도 숫자가 적습니다. 아마 전 세계에서 가장 적을 겁니다. 그만큼 러시아의 혹독한 겨울은 약해빠진 남자들이 살아가기에는 힘든 환경입니다. 그래서 오늘의 데이트가 정말 기대가 됩니다.”

“어, 으음….”

타냐의 설명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남자의 수가 얼마나 적은가 하니 마력을 각성한 타냐가 영웅 학교를 다니기 위해 수도인 모스크바로 왔을 때야 남자의 존재를 처음으로 봤다고 했다.

그녀의 고향이 러시아 내에서도 촌 동네라 하더라도 심할 정도로 남녀 성비가 깨진 모습이었다.

이렇게나 남자의 수가 부족한 데 나라들이 망하지 않는 게 더욱 신기했다.

‘나도 노력을 해야 하나….’

아니, 망해가고 있는 심각한 상황인데 자신이 모르는 것 일수도 있었다. 그러고 보니 Tv 에서 종종 인류의 생존을 위해 남자들이 분발해야 한다는 광고 혹은 토론들을 제법 볼 수 있었던 것 같았다.

고급 레스토랑답게 음식은 굉장히 맛있었다.

재벌 3 세인 김태연이나 조수영과 함께 먹었던 음식들 못지않을 정도였다. 민국이 맛있게 음식을 먹는 모습을 보며 타냐가 빙긋 미소를 지었다.

“입에 맞으십니까?”

“응, 괜찮은데? 어디서 이런 장소를 찾은 거야?”

“사실 공격대의 다른 영웅 분들에게서 추천을 받았습니다. 다들 시간적인 여유가 될 때 여기서 밥을 먹을 생각이었다고 합니다.”

“다들 피곤하다하면서도 이런 곳에는 오고 싶었나 보네.”

“그런 시간을 보내는 게 영웅들의 낙 아니겠습니까?”

말을 하면서도 타냐는 잔에 담긴 와인을 계속해서 음미했다. 아니, 물처럼 마시고 있었다. 그에 반해 민국의 잔에 담긴 와인은 조금도 줄어들어 있지 않았다.

원래 음식을 먹을 때 물은 입에 안대는 스타일이었지만, 와인을 주문했던 타냐의 입장에서는 제법 신경이 쓰이는 모양이었다.

“와인이 입맛에 맞지 않으십니까? 그렇다면 탄산으로 따로 주문하시겠습니까?”

“아니, 괜찮아. 내가 술을 잘 안 마셔서 그렇지 원래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묻는 타냐의 행동에 민국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러시아 인들의 주량이 아무리 대단하다 하더라도 자신을 애 취급 하는 것은 사양하고 싶었다. 자신도 나름 대학교에서는 사이다 섞은 막걸리를 통으로 마시며 주당으로 이름을 날렸던 몸이었다.

“무, 무리는 안하셔도 됩니다.”

갑자기 와인을 입에 대는 민국의 행동에 타냐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만류하듯 말했다. 하지만 그런 타냐의 행동이 민국의 자존심을 더욱 건드리고 있었다. 와인 따위에 무리라니?!

“괜찮아. 나도 술은 잘 마시거든. 아마 티티, 너 못지않을 걸?”

“하하하! 공대장님. 농담도 잘하십니다. 러시아의 남자들도 보드카 한 잔이면 정신도 못 차리고 뻗습니다.”

아무렇지도 않게 주량에 대한 자신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소리에 민국이 입술을 가늘게 떨었다. 아무래도 오늘의 데이트는 술로 시작을 해야 할 것 같았다.

“하물며….”

“그러면 다음 코스는 술 어때?”

민국의 도발에 타냐가 흐음 하는 소리를 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굳이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원래는 식사, 영화, 커피와 같은 데이트의 정석적인 코스를 밟으려고 했는데 술도 나쁘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녀도 독한 것들이 당기던 참이었다.

식사를 마치고 둘이 향한 곳은 평범한 술집이 아니었다. 보드카와 같은 양주를 파는 바였다.

“제가 쏘겠습니다, 공대장님! 어떤 술이든 마음대로 마시지요!”

타냐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렇게 두 남녀의 주량 대결이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민국도 영웅의 체력과 자신의 과거 경험을 떠올리며 의욕적으로 나섰다. 하지만 불곰국 그것도 영웅인 타냐의 주량을 당해낼 수는 없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불콰해지며 정신이 알딸딸해지는 민국과는 다르게 타냐는 얼굴만 불그스름하게 달아올랐을 뿐 아무렇지도 않은 모습이었다.

“역시 러시아는 당해낼 수 없는 것인가….”

민국이 소파에 몸을 기대며 편한 자세를 취했다. 룸식으로 분리 된 공간이라 밖의 시선은 의식할 필요가 없었다.

“하하하! 공대장님께서도 남자답지 않게 제법 마십니다? 적어도 지젤보다는 잘 마시는 것 같습니다.”

“지젤과 함께 술을 마신 적이 있어?”

“물론입니다. GGW로 이적한 외국인 용병 아니겠습니까? 용병들끼리 친분을 다질까 싶어서 자리를 만들었지요.”

공격대장이라 그런가? 타냐의 대답에 민국은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 없이도 서로 친분을 다지는 행동들이 보기 좋게 느껴졌다.

그리고 다시 칵테일을 마시려는 찰나 어느새 옆으로 다가온 타냐가 민국을 와락 끌어안았다. 봉긋한 가슴이 민국의 팔뚝을 꾸욱 눌렀다.

“역시 술은 남자랑 마셔야 분위기가 사는 것 같습니다.”

“데이트가 식사로 시작해서 술로 끝나는 분위기 같은데 괜찮아? 더 하고 싶을 것들이 있었을 텐데?”

“괜찮습니다. 공대장님 포상이 이번 한 번으로 끝날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당연하다는 듯 말하는 타냐의 모습에 민국은 입만 뻐끔거렸다. 그 때였다. 타냐의 엄지손가락이 민국의 입 안으로 쑤욱 들어왔다.

“그리고 저에 대한 공대장님의 포상은 이제부터가 시작입니다. 이런 곳에 오시자고 했으면서 이 정도 상황을 예상하지 못한 것은 아니시겠죠?”

그렇게 말을 한 타냐가 탁자 위에 놓인 술병을 병째로 마시기 시작했다.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상 여자가 따로 없었다. 그리고는 민국의 입에 그대로 키스를 했다.

알코올 향이 진하게 느껴지는 독한 키스였다.

“으음…. 음.”

남자와의 데이트는 처음이라는데, 스킨십에는 전혀 거리낌이 없는 모습이었다.

민국은 쑤욱 들어오는 타냐의 혀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술 때문에 정신이 알딸딸했기도 했고, 자신에게 오는 여자는 거부하지 않는 주의이기 때문이었다.

서로의 타액을 나누는 격렬했던 키스를 마치고 타냐는 회심에 찬 눈빛으로 민국을 바라보았다. 이미 흐트러질 때로 흐트러진 공대장의 모습은 자신이 무엇을 해도 거부하지 못할 것 같았다.

“몸이 달아오르는 것 같습니다. 공대장님도 괜찮았습니까?”

“뭐…. 좋네.”

“그러면 좀 더 좋은 것 하지 않겠습니까?”

정신이 어지러운 상황에서도 그것이 무엇인지는 자세히 듣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민국의 위에 올라탄 타냐는 다시 술병을 입에 물었다. 그리고는 재차 독한 키스를 했다. 서로의 몸에 알코올이 흡수될 정도로 길고 끈적끈적한 키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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