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36 코 앞에 닥친 위기
“아, 아니?! 레이드를 대체 왜 간다는 거야? 진짜 당장이라도 튀어야 되는 심각한 상황 아니야? 부활석이 있다고 목숨이 몇 개라도 된다고 생각하는 거야?”
방으로 돌아온 지젤이 화가 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던 도중 자신을 쳐다보는 켄달을 향해 불만을 토해냈다.
“아니, 언니도 그렇지 않아?”
“…나는 괜찮아. 어차피 어머….”
“Cala a boca. 그 등신 이야기는 꺼내지 마. 가뜩이나 열 받아 죽겠는데, 짜증이 더 나려고 하니까.”
욕설과 함께 지젤이 눈을 부릅떴다.
격한 지젤의 반응에 켄달은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지젤이 저렇게 화를 내는 이유를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그녀였다. 그녀들의 어머니는 분명 훌륭한 위인이다. 하지만 지젤에게는 그렇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잠시 후, 지젤이 멀뚱멀뚱 눈만 뜨고 있는 켄달을 힐끗 보다가 어색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하아. 욕한 것 미안해, 언니. 내 마음 다 알지? 일부러 그런 건 아니었어.”
“괜찮아. 이해할 수 있어.”
“그럼 다행이고. 어쨌든 어떻게 할 거야? 우리라도 도망쳐야 되지 않겠어?”
GGW 공격대는 분명 좋은 공격대였다. 팀원들도 좋았고, 천재나 다름없는 남자 공대장은 더욱 좋았다. 하지만 지젤에게는 그 무엇보다도 자신들의 안전이 우선이었다.
베트남 사람들의 죽음? 그것이 자기랑 무슨 상관이던가?
지젤에게 가장 소중한 이는 쌍둥이 언니인 켄달이 전부였다. 우리 둘만 살아갈 수 있다면 다른 이들에게 비겁하다는 소리를 들어도 상관없었다.
‘숭고한 희생정신? 그딴 것은 개나 줘버려.’
어차피 사람들은 자신들의 위해 희생한 영웅 따위는 일 년 아니 한 달만 지나도 잊어버린다. 영웅들에게 도움을 받았던 그 때만 영웅의 안타까운 비극에 슬퍼할 뿐이었다.
당연히 남은 가족들에 대한 일들 역시 모조리 기억 속에서 지워버린다. 그들이 어떤 대우를 받고, 어떻게 살아가던 남의 일이었다. 결국 죽은 년만 병신이 되는 것이다.
“안 되겠어. 내가 직접 공대장과 담판을 지어야겠어. 지금 돌아가지 않으면 우리라도 내보내달라고 할 거야.”
마음을 정한 지젤이 몸을 일으켰다. 그러면서 자신의 언니를 바라보았다. 켄달는 여전히 침대에 앉아 있는 채였다.
“뭐해? 언니도 같이 가야지. 나 혼자만 베트남에서 도망치라고?”
“어? 으, 응.”
지젤의 보챔에 켄달이 엉거주춤 몸을 일으켰다.
* * *
민국은 자신을 찾아온 브라질의 야생 변태 재규어를 바라보았다. 분노와 불안이 한데 섞여 있는 얼굴이었다. 그리고 그녀와 똑같이 생긴 언니는 자신이 왜 여기에 있는지 영문을 모르는 것처럼 멀뚱멀뚱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대충 예상은 했다만….’
십이 재앙의 등장이 코앞으로 다가온 위험한 시국에 공격대 내에서도 후퇴를 해야 한다고 불만을 나타내는 이가 있으리라고는 충분히 짐작했던 내용이었다.
특히 이러한 지젤의 모습은 민국의 예상 범주 내에 있었다. 다만, 그녀를 설득할 방법을 아직 찾지 못했을 뿐이었다.
“그래서 당장 GGW가 철수를 해야 한다는 말인가요?”
“네. 그게 아니라면 저희 둘만이라도 한국으로 돌아가도록 하겠어요. 아, 물론 패널티는 저희들끼리 감당하겠어요.”
“패널티를 감당한다?”
“그래요. 위약금도 제대로 물테고, 원한다면 클랜 내 다른 공격대로 가도록 할게요. 다른 클랜으로 이적시킨다면 그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감당하겠어요.”
지젤의 말에 민국은 나지막한 신음을 내었다.
생각보다 반응이 제법 완강했다. 민국은 힐끗 지젤의 옆에 있는 켄달에게 시선을 돌렸다.
민국과 눈이 마주친 켄달은 잠시 대답을 머뭇거리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지젤이 옆에서 쿡 찌르자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여보였다.
‘이러면 조금 곤란한데.’
다른 포지션이라면 모를까, 이 둘은 팀의 메인 힐러들이었다. 한 명만 빠져도 타격이 엄청나게 컸다. 더욱이 지젤과 켄달은 ‘가루다의 분신’ 녀석들을 공략한 경험도 있는 영웅들이었다.
다시 생각해보면 이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그 원흉을 없애면 베트남을 빠져나가겠다는 의견을 설득할 수 있을 지도 몰랐다. 그리고 십이 재앙인 가루다는 ‘가루다의 분신’들을 없애면 나타나지 않았다.
‘문제는….’
그 내용을 어떻게 설명할 방법이 없었다. ‘가루다의 분신’을 없애면 가루다 역시 새의 탑에서 빠져나오지 못한다는 이야기는 민국도 뿌우를 통해서 알게 된 이야기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뿌우에 대해 알려줄 수도 없었다.
아무리 남자 영웅에 대해 콩깍지가 잔뜩 들어간 세계라도 해도 그 정도의 이야기면 미친놈 취급받기에 딱 좋았다. 그렇다고 브라질의 두 힐러를 그냥 보내게 되면 레이드 일정은 그대로 스톱이었다. 당장 대체 인력도 구할 수가 없었다.
민국이 지젤을 붙잡을 이유를 고민할 때였다.
삐이익. 삐이익.
영웅 패드에서 들려오는 비상 알림에 모두의 눈동자가 영웅 패드로 향했다. 곧 누가 먼저라 할 것도 없이 각자 자신들의 영웅패드를 확인했다.
“씨발. 가, 가루다가 나타난 거 아니야?”
말까지 더듬는 지젤에 반해 켄달은 역시 언니라는 것인가? 별다른 표정 변화 없이 침착한 모습이었다.
‘중국 영웅 협회?’
영웅 패드로 비상 문자를 보낸 단체는 의외의 곳이었다. 그리고 그 내용을 보던 민국은 속으로 웃음을 터뜨렸다. 타이밍이 참 공교롭다는 생각이 들었다.
- 새의 탑을 둘러싼 마력과 ‘가루다의 분신’에 대한 연관성.
민국이 뿌우에게 들었던 내용이 그대로 담겨져 있었다. 중국의 영웅들과 전문가들이 대거 투입되어 알아낸 사실이라고 했다.
“이게 무슨….”
“이러면 한국으로 돌아가지 않아도 괜찮을 것 같은데요. 이 내용이 사실이라면 당장이라도 가루다의 분신들을 때려잡으려 다녀야 하는 게 더 안전할 테니까요.”
그 말에 지젤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민국과의 대화를 마치면 당장 한국으로 돌아가기 위해 짐을 쌀 생각이었다.
“잠깐만요! 이 내용이 사실이라는 증거도 없잖아요? 만약 거짓이면요? 차라리 안전하게 베트남을 뜨는 게….”
“상황의 심각성을 놓고 중국 영웅 협회가 이런 거짓말을 할 필요가 있을까요?”
“자국의 안전 때문에…?”
“그 말이 정말 말도 안 된다는 건 본인이 더 잘 아실 텐데요.”
아무리 중국이 막장 국가라고 하지만 그건 아주 오래 전의 일이었다.
어둠 괴물과의 전쟁 초창기 자신들의 집권을 위해 언론을 통제하고 병력을 집중시키던 정신 나간 정치인들은 옛날 옛적에 죽어버렸기 때문이었다.
더욱이 이런 사안을 놓고 거짓말을 한다?
중국 혼자 어둠 괴물과 전쟁을 치를 게 아니라면 그런 짓은 할 수가 없었다. 중국이 아무리 레이드 강국이라 해도 국내에 던전 브레이크가 한 번 터지기라도 하면 세계 영웅 협회의 도움이 필수였다.
그 뿐인가? 베트남의 가루다처럼 중국에도 십이 재앙이 한 놈 잠들어 있었다.
“그러면 이렇게 하겠습니다. 한 달. 한 달 이내에 새의 탑이 정말로 움직일 기미가 보인다면 GGW도 바로 철수하도록 하겠습니다.”
민국이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중국 영웅 협회에서 보내온 문자로 인해 생각이 흔들리는 지금 지젤을 설득해야 했다. 켄달은 지젤이 설득되면 알아서 따라올 것 같았다.
그리고 잠시 고민을 하던 지젤이 느릿하게 말을 꺼냈다.
“한 달은 너무 길어요. 보름. 보름 내에 새의 탑이 아무런 움직임도 보이지 않는다면 공격대의 일정을 계속 따를게요. 하지만 새의 탑이 움직인다면.”
“그 때는 제가 대체 인력을 구하도록 하지요.”
민국의 말에 지젤은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철수가 아니라 대체 인력을 구하겠다는 말이 조금 이상하게 들리기는 했지만, 그것을 지적할 수는 없었다. 어차피 팀을 떠나겠다고 말한 건 본인이기 때문이었다.
* * *
다음 날, 민국은 바로 레이드 일정을 진행했다.
새의 탑에서 가루다가 움직이지 못하게 하려면 하루라도 빨리 그 녀석의 분신들을 모조리 처리해야만 했다. 다른 공격대들도 아침부터 분주했다. 열심히 영웅 패드로 ‘가루다의 분신’ 공략을 외우는 영웅들도 더러 눈에 들어왔다.
“중국 영웅 협회에서 보낸 정보는 모두 알고 있을 겁니다. 지금부터 우리는 【B - 1】 난이도의 던전을 빠르게 공략하면서 가루다의 분신을 찾을 겁니다.”
민국의 말에 버스 안에 있는 영웅들은 각자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현아와 같은 경우는 응당 그래야 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지만, 지젤은 듣는 둥 마는 둥 흥미가 없는 모습이었다. 그래도 영웅인 만큼 레이드에서 태업을 한다거나 하지는 않을 것 같았다.
그렇게 다들 각자의 생각들을 지닌 채 던전의 공략이 시작되었다.
“다크 타운 홀입니다.”
【B – 1】 던전에 들어서자마자 타냐가 말했다.
공략 법은 간단했다. 꼭대기 층에 있는 최종 보스 몬스터를 쓰러뜨리면 되는 던전으로 층을 오르기 위해서는 함정을 해제하고 층별 마다 있는 보스 몬스터를 쓰러뜨려 상층으로 향하는 계단이 있는 장소를 찾아야만 했다.
“5인 팀의 구성은 오현아, 정예린, 시라누이 마이, 신나연 그리고 저입니다.”
팀원들의 체력과 컨디션이 쌩쌩한 만큼 민국은 실력이 가장 뛰어난 영웅들로 파티를 구성했다. 최종 몬스터만 5 등급인 까닭에 나머지 녀석들은 5인 파티로 공략을 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어차피 다 같이 던전에 진입하는 만큼 상황에 따라 파티원 교체를 해도 되었다.
“아시다시피 시간이 많지 않습니다. 빠르게 뚫겠습니다.”
민국이 거침없이 말했다.
다크 타운 홀은 영웅 패드에 공략법이 나와 있는 던전이었다.
그리고 4 등급 몬스터는 【B - 1】 난이도의 던전이라 해도 GGW 의 스펙으로 어렵지 않게 때려잡을 수 있는 녀석들이었다.
- &@[email protected]#@#$
- @^@#@#
중간에 함정을 밟는 실수로 전멸을 경험하기는 했지만, 민국은 자신이 말했던 대로 빠르게 최상층까지 길을 뚫었고, 던전에 진입한 지 네 시간이 채 되지 않아 최종 보스 몬스터를 눈앞에 들 수 있었다.
“이걸 럭키라고 해야 되나요?”
그리고 보스 몬스터를 눈앞에 둔 유나가 고개를 갸웃하며 중얼거렸다.
“키익? 키이익?”
GGW의 앞에 나타난 5 등급 몬스터는 다크 타운 홀의 최종 보스가 아닌 ‘가루다의 분신’ 이었다. 그리고 가루다의 분신을 확인한 민국이 빠르게 뿌우를 불렀다.
‘그러니까 저 녀석들을 쓰러뜨리면 가루다의 힘이 줄어든다는 거지?’
《그렇습니다.》
‘오케이. 바로 잡아야겠네.’
십이 재앙이라는 항거할 수 없는 적을 불러내지 않으려면 저 녀석들이 나오는 선에서 모든 걸 처리해야 했다. 어차피 한 번 공략에 성공했던 녀석. 실수만 하지 않으면 어렵지 않게 때려잡을 수 있었다.
특히나 대머리의 공격을 막아내는 현아의 탱킹 능력이 크게 좋아진 터라 박치기의 마비에 의해 실수로라도 사망하는 일은 거의 일어나지 않을 터였다.
행여나 죽는다 하더라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두 번의 날갯짓이 다시 그녀의 목숨을 되살려 줄 테니 말이다.
“그러면 브리핑 하겠습니다.”
그래도 혹시 모르는 미연의 사고를 방지해 민국은 가루다의 분신 공략을 다시 한 번 팀원들의 머릿속에 새겨 넣었다.
“키이이익! 키익!”
그렇게 모든 준비가 끝나고, 탱커들이 먼저 안전거리 안으로 들어서자 세 마리의 괴물 새가 눈을 까뒤집으며 부리를 들이밀기 시작했다. 동시에 괴물 새의 부리와 손톱과 탱커들의 방패가 날카롭게 맞부딪쳤다.
“탱커들은 전장 중앙으로 이동! 딜러와 힐러들은 본인들의 위치부터 파악하고, 최유나! 절대로 깃털 놓치지 말고!”
“네!”
민국의 지시에 따라 팀원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미 한 번 잡아본 녀석인지라 다들 자신감이 넘쳤다. 진행도 안정적이었다.
피닉스 나이트로 전직한 현아가 전과는 다르게 박치기를 하는 대머리를 여유 있게 탱킹 하면서 힐러들이 다른 쪽으로 좀 더 신경 쓸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덩달아 두 마리를 동시에 상대하는 타냐도 안정적으로 적들의 어그로를 잡을 수 있었다.
“언니! 제가 2 시 방향으로 갈게요!”
“내가 9 시! 아, 거기 회오리 조심해!!!”
최유나와 신나연으로 구성한 깃털 처리조도 딱히 지적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본인들의 임무를 잘 해내고 있었다.
막바지에 딜러진이 회오리에 휩쓸리면서 본의 아니게 힐러들이 필사적으로 회복 능력을 사용해야 했던 상황을 제외하면 민국과 GGW 는 원 트에 ‘가루다의 분신’ 녀석을 쓰러뜨릴 수 있었다.
그렇게 기뻐하는 동료들 사이로 민국이 역 소환되는 괴물의 시체와 함께 나타나는 전리품 상자를 바라볼 때였다.
- …어. …겠다.
이제껏 듣지 못했던 괴상한 소리가 민국의 귀로 들려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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