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영웅 소녀 전쟁-137화 (137/486)

EP.137 코 앞에 닥친 위기

‘뭐야? 누구지?’

귀에 들려온 중성적인 소리는 이제껏 민국이 들어보지 못한 이의 목소리였다.

민국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하지만 눈에 보이는 것이라곤 레이드의 승리를 기뻐하는 동료들뿐이었다.

가루다의 등장에 대해 겁을 먹었던 지젤도 지금만큼은 가루다의 위협을 떠올리지 않는 모양인지 레이드 성공의 기쁨과 함께 혹시 모를 【클래스 스톤(A) 티켓 - 레전더리 등급】을 기대하며 유나와 재잘거리고 있었다.

“기가 허한 것도 아니고, 잘못 들었나?”

민국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무래도 몬스터와의 전투에 신경을 너무 쏟은 모양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며 민국이 보상 상자에 관심을 보일 때였다.

- …가만두지 않겠다!

다시 귓가로 들려오는 원념에 찬 목소리에 민국이 덜컥 몸을 멈칫했다. 절로 등골이 서늘해지고 있었다. 머리카락이 삐죽 솟아오를 정도로 소름이 돋는 목소리에는 자신에 대한 원망이 가득 담겨 있었다.

하지만 주위를 둘러봐도 보이는 거라곤 아무것도 없었다.

‘뿌우!’

1초도 지나지 않아 뿌우의 대답이 들려왔다.

《신경 쓰실 필요 없습니다, 민국님. 이건 가루다 녀석이 민국님에게 단순히 화풀이를 하는 것뿐입니다.》

‘그게 신경 쓸 필요가 없는 일이라고?’

이 새끼. 자기 일 아니라고 막 말하는 거 보소?

민국의 얼굴이 보기 좋게 구겨졌다. 십이 재앙의 무시무시함에 대해서는 민국도 귀가 따갑게 들었었다.

간단히 말해 이 세계에서 인류의 안전을 위협하는 어둠 괴물들의 최종 보스 격인 녀석들이었다. 그런데 다른 녀석 괴물고 그 십이 재앙에 속하는 괴물 녀석이 자신을 콕 찍은 상황이었다.

‘잠깐…?’

던전 밖으로 나가면 가루다라는 괴물이 커다란 부리를 내놓고, 자신들을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아닙니다. 진짜 걱정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이건 민국님의 뛰어난 활약으로 인해 자기의 계획이 먹히지 않는 것에 대한 멍청한 년의 분노일 뿐입니다. 쓸 데 없는 걱정은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지금의 가루다는 움직일 상황이 아니거든요.》

‘그러면 가루다의 분신들을 그냥 두고 한국으로 튀어도 된다는 거지?’

《아니요. 만약 지금의 현상이 계속 유지된다면…. 반 년 이내에 가루다가 민국님을 찾을 수 있을 거라 생각됩니다.》

이어지는 뿌우의 대답에 민국은 욕이 목 끝까지 차오르는 것을 삼켜야 했다.

결국 가루다의 분신은 무조건 때려잡아야 한다는 말이었다. 그 와중에 십이 재앙이라는 무시무시한 괴물이 자신에게 복수심을 불태우는 일은 피할 수 없을 테고 말이다.

“너희들 진짜 나한테 왜 이러냐?”

《저는 민국님의 능력을 믿습니다. 민국님의 능력이라면 가루다 따위는 어렵지 않게 처리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아….”

진짜 뿌우라는 놈이 눈앞에 있다면 주먹으로 한 대 치고 싶은 심정이었다.

따지고 보면 지금도 엄청난 성장 속도였다. 세계 언론들이 떠들고 있는 내용이 그 증거였다.

하지만 가루다와 같은 괴물들을 상대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빨리 【A】 난이도를 열고, 자신을 포함해 팀원들의 스펙과 성급을 높여야 했다.

왜일까? 게임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시간제한이 있는 타임어택 게임을 하고 있는 기분이었다.

“에이잇?!”

민국이 그렇게 생각을 정리하는 사이 상자는 자칭 아니, 이제는 타칭이 되어버린 천호동 럭키 걸 현아가 열었다. 그리고 현아는 상자에서 플래티넘 티켓과 옐로우 급 체력의 결정을 뽑아내었다.

충분히 괜찮은 결과였는데, 【클래스 스톤(A) 티켓 - 레전더리 등급】가 줬던 충격이 너무 컸던 것일까? 보상 상자의 내용을 보며 현아는 떨떠름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와아! 그래도 플래티넘 티켓은 뽑았네? 이게 얼마야.”

“옐로우 결정도 있어!”

그래도 보상 상자의 내용물을 확인한 동료들이 칭찬과 함께 기쁨을 나타내자 곧 풀어진 얼굴로 본인도 기쁨에 동참하기 시작했다.

* * *

“다음 레이드도 【B - 1】난이도의 던전입니다.”

영웅 패드를 확인하며 민국이 짧게 말했다. 잠시 휴식의 시간도 가질 법했지만, 조금 전에 들었던 가루다의 경고 때문인지 마음이 다급했다.

“어디로 가는 건가요?”

“북서쪽 방면에 위치한 【B – 1】 던전입니다.”

누군가의 질문에 민국은 영웅 패드의 화면을 홀로그램으로 크게 확장시켜서 팀원들에게 보여주었다.

주변의 지도와 함께 임시 던전들의 위치가 표시된 GPS 에는 초록색의 점과 함께 붉은색의 점들이 깜빡이고 있었다.

붉은색의 점은 현재 공격대가 공략중인 던전들이었고, 초록색의 점은 아직 공략되지 않은 그리고 던전 타이머에도 여유가 있는 던전들을 나타내는 표시였다.

가루다의 등장과 함께 어제 있었던 중국 영웅 협회의 발표 때문인지 이 주위에만 해도 다섯 개의 던전이 현재 공략 중으로 나타나 있었다. 다들 베트남을 벗어나는 대신 확산 현상에 대한 처리와 ‘가루다의 분신’ 퇴치에 사활을 걸기 시작한 것이다.

“가루다의 분신이 이번에도 나타날까요?”

“그건 나도 잘 모르겠는데….”

유나의 물음에 민국은 어깨를 으쓱였다.

그래도 이왕이면 ‘가루다의 분신’ 녀석이 나타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녀석들을 빨리 몰살시켜서 가루다의 힘을 쫙 빼놓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조금 전, 전투가 끝나고 들려왔던 가루다의 목소리는 아직도 민국의 등줄기를 서늘하게 만들고 있었다.

“그럼 진입합니다.”

새롭게 진입한 【B – 1】 난이도의 던전은 전장이 넓은 평야인 던전이었다.

전에도 경험한 적이 있는 디펜스 형태의 던전이었다. 그리고 영웅 패드를 통해 던전의 이름과 공략 방법을 찾아낸 민국은 그에 대한 내용을 머릿속으로 기억하면서 빠르게 공략조를 편성하기 시작했다.

“디펜스 형태의 던전입니다. 그에 따라 공략조의 딜러진은 원거리 위주로 편성하겠습니다. 그리고 타냐는….”

“푹 쉬고 있겠습니다!”

던전의 특성상 탱커도 이리저리 바쁘게 돌아다니며 어그로를 잡아야 하는 던전이었기에 타냐에 비해 움직임이 날랜 현아가 좀 더 공략에 어울릴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타냐는 자신이 아닌 현아가 계속해서 팀의 메인 탱커로 활동하는 것에 별다른 불만은 없는 모습이었다.

“그러면 공략 들어가겠습니다.”

모든 준비가 완료되자 민국은 들고 있는 스태프에 마력을 불어넣었다.

민국을 포함한 다섯 명의 영웅들이 안전지대를 넘어서 전장 안으로 진입하자 마력의 결계가 밖에서 대기하는 영웅과 전투에 나선 영웅들의 사이를 단단하게 가로막았다.

- @#%$%

던전에 진입하자마자 민국의 눈에 들어온 것은 온 몸이 붉은색으로 물든 소인 괴물이 우득우득 무언가를 씹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러다가 일행들을 발견한 괴물이 입에 바람총을 가져다 대었다.

그것을 보며 민국은 반사적으로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바람총에서 독침이 발사되는 것과 동시에 마력의 보호막이 일행들의 몸을 단단하게 둘러쳤다. 시퍼렇게 변색된 독침이 마력의 보호막에 가로막혀 땅으로 떨어져 내렸다.

“모두 조심! 바람총을 입에 문 녀석부터 처리해!”

민국의 명령에 일행들의 공격이 홉 고블린들에게 날아들었다. 보스 몬스터도 아니고 일반 몬스터인 까닭에 홉 고블린들은 딜러들의 공격에 말 그대로 산산조각이 나 버렸다.

그리고 땅바닥에 떨어진 독침을 보며 현아가 말했다.

“이게 마비 독침인가 보네요. 조심해야겠어요, 영웅 패드의 공략 내용을 보니 마비 독침에 맞게 될 경우 마력을 운용하지 않으면 제대로 몸을 움직일 수가 없다고 나와 있어요. 독성이 꽤나 강해서 마비되는 시간도 제법 긴 모양이에요.”

“지쳤을 때 맞으면 끝이라는 거네?”

정예린의 물음에 현아가 다시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아무래도 그렇겠죠?”

그리고 그 뒷일은 안 봐도 뻔했다. 인간형 몬스터인 고블린은 오크와 마찬가지로 여자를 범하는 데 능숙한 놈들이었다. 심지어 마비에 걸리면 제대로 움직일 수조차 없으니 타락은 정해진 것이나 다름없었다.

- 케켁! 켁!

전에 경험했던 던전과 마찬가지로 이번 던전 역시 증명의 전장처럼 고블린들이 주로 나타나는 던전으로 보였다. 고블린 특유의 켁켁거리는 소리와 함께 괴물들이 달려오는 모습을 보며 민국은 연신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다행히 조금 전의 경험을 통해 고블린의 마비 독침 공격은 자신의 보호막으로 충분히 커버할 수 있는 수준의 공격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눈앞에 보이는 홉 고블린들이 【B – 1】 에서 등장하는 몬스터라고 하지만 기껏해야 일반 몬스터에 불과했다.

게다가 이 세계에 처음 왔을 때와는 다르게 지금의 민국은 【Gear Score】가 400이 조금 넘는 수준의 장비를 보유하고 있었다. 당연히 민국이 사용하는 보호막은 예전의 허접한 보호막이 아니었다.

‘결국 탱커만 제대로 커버하면 아무 문제도 없을 거란 말이지.’

딜러들에게는 보호막만 걸어 독침의 위협에서만 벗어나게 하고, 탱커인 현아만 집중적으로 커버를 하면 아무런 문제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말이었다.

“빡세게 커버할 테니, 마음대로 날뛰어도 됩니다.”

미친 듯이 달려오는 홉 고블린들을 바라보며 민국이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니, 정말로 월퍼킬을 앞둔 상황만큼이나 진지한 마음이었다. 자신의 안전을 위협하는 가루다 녀석에게서 벗어나기 전까지는 정말로 본격적으로 레이드에 임할 생각이었다.

* * *

“공략 속도가 굉장히 빠른 것 같지 않나요?”

흙과 잔디로 이루어진 넓은 초원과는 어울리지 않는 반투명한 돔 형태의 결계를 보며 시라누이 마이가 감탄한 목소리로 말했다.

GGW 공격대의 전력으로 감당해낼 수 있는 가장 높은 난이도의 던전이 【B – 1】 난이도의 던전이었다.

그런 던전을 공략 중임에도 불구하고, 공략조는 하위 난이도의 던전을 공략하는 것 마냥 파죽지세로 일반 보스급 몬스터들을 쓰러뜨려 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밖에서 안의 전투를 지켜보는 영웅들은 그러한 활약이 누구 때문인지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정말 우리 공대장님은 천재인 것 같아요.”

“저도 김소정 영웅의 의견에 동의합니다. 저런 남자를 자국의 영웅으로 둔 것은 대한민국의 큰 축복이라고 생각합니다.”

“맞아요. 그래서 이름도 한민국이잖아요? 대한민국.”

그녀들이 들고 있는 영웅 패드에 나타난 민국의 기여도는 A를 넘어서 S 그것도 S+ 에 육박하고 있었다.

조금의 위기도 느낄 수 없게 탱커인 현아의 생명력을 관리하는 것은 물론이고, 철저한 계산으로 딜러들에게 정확한 타이밍에 보호막을 거는 민국의 행동은 힐러의 정석이라 부를 수 있을 정도로 감탄이 나오는 움직이었다.

그 뿐인가?

여유가 생길 때면 직접 스태프를 들고 고블린과 육박전을 펼치고 있는 민국의 모습은 밖에서 전투를 지켜보고 있는 팀원들에게 다시 한 번 그의 대단함을 느끼게 하고 있었다.

지젤 또한 자신의 입이 벌어진 것도 모른 채 실시간으로 갱신되고 있는 영웅 패드의 기록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세계에서 손꼽히는 유망주답게 그녀 또한 본인의 능력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지만, 지금과 같은 민국의 행동은 죽었다 깨어나도 따라할 수가 없을 것 같았다.

“아무리 천재라고 해도….”

리딩까지 하면서 저런 활약을 펼치는 것은 사기와도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눈에 보이는 모습이 거짓일 리 없었다.

“우리 공대장님의 능력이면 십이 재앙도 잡을 수 있을까요?”

그런 민국의 활약에 무언가를 기대한 것일까? 잠깐 눈동자에 수심이 번졌던 지젤이 읊조리듯 말했다.

지젤의 말에 모두들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한민국의 능력이 대단하다는 것은 익히 인정하는 바였지만, 인류를 공포로 몰아넣었던 십이 재앙은 뭐라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한 적이었다.

하지만 단 한 명만큼은 생각이 다른 모양이었다.

“당연하지. 공대장님만 따라간다면 가루다? 그런 놈쯤은 금방 때려잡을 수 있을걸?”

민국에 대한 믿음이 강하게 담겨 있는 목소리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최유나였다. 그리고 유나의 말은 이게 끝이 아니었다.

“생각해 봐? 공대장님이 정식으로 영웅 자격증을 획득하고 공격대를 운영한 게 이제 반년이야. 그런데 벌써 5 등급 특수 개체는 물론이고, 그 까다로운 가루다의 분신까지 때려잡고 있잖아?”

지젤을 향해 속사포처럼 말을 내뱉던 유나가 잠시 말을 멈췄다. 어느새 모두의 시선이 그녀에게로 집중되어 있었다.

“에…헴헴. 그러니까 제 말은 공대장님만 믿고 따라간다면 【A - 1】 은 물론이고, 【S】 난이도도 충분히 공략할 수 있다는 말이죠.”

“…그래, 그럴지도 모르겠네.”

지젤은 유나의 말대로 정말로 그런 시간이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밖의 영웅들의 대화를 나누는 동안에도 내부의 공략조는 자신들이 지켜야 하는 오브젝트를 완벽하게 방어해내며 오히려 본인들이 막아내야하는 홉 고블린들 무리들을 전멸 시킬 기세로 달려들고 있었다.

그리고….

“이건 운이 좋다고 해야 하나? 아니면 나쁘다고 해야 하나?”

던전의 최종 라운드로 모습을 드러낸 보스급 괴물은 조금 전의 던전에서도 마주했었던 ‘가루다의 분신’녀석이었다. 그리고….

- 물러서. 건드리지 마. 내 자식들을 없애면 네 놈도 가만두지 않겠다!

또다시 가루다로 추정되는 중성적인 목소리가 민국의 머리를 울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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