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영웅 소녀 전쟁-138화 (138/486)

EP.138 코 앞에 닥친 위기

‘이거 제대로 찍힌 것 같은데?’

순간 가장 먼저 든 생각이었다.

정말로 눈앞에 있는 녀석들을 건드리고 나면 가루다가 새의 탑을 박살내고 뛰쳐나와 자신에게 날아올 것만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목소리에는 강한 원념이 담겨 있었다.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민국님. 원래 아무것도 못하는 녀석이 목소리만 큰 법 아니겠습니까?》

부르지도 않았는데, 알아서 나타난 뿌우가 한 말이었다. 나름 위로라고 말하는 것 같은데 뿌우 녀석의 전적이 있다 보니 딱히 위로가 되지는 않았다.

오히려 자신을 놀리는 것 같은 느낌이 더 들고 있었다.

어쨌든 귀에 들려오는 가루다의 목소리는 처절함을 넘어 몸서리가 칠 정도로 끔찍했다. 아무래도 자식들….

‘잠깐. 쟤네들 분신이 아니라 자식이었어?’

민국이 다시 ‘가루다의 분신’들을 바라보았다. 던전을 공략하면서 벌써 세 번째 마주치는 녀석들이었다.

덩치, 꽁지, 대머리. 이렇게 세 마리의 괴물들로 이루어진 ‘가루다의 분신’은 던전의 난이도와는 상관없이 동일한 외형으로 최종 보스 몬스터로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덩치, 꽁지, 대머리만 나오는 알만 수백 개를 깐 거야?’

가루다를 직접 본 적이 없으니 정확한 사실도 알 수 없었다.

《본인이 지닌 어둠의 마력으로 만들어낸 것들입니다. 자식이라면 자식이라고 말 할 수 있겠네요.》

하지만 그런 민국의 의문은 뿌우를 통해 풀 수 있었다. 생각해보면 얘도 은근히 별의별 내용들을 다 알고 있었다.

- 내 것을 건드리지 마! 저주한다! 죽여 버릴 거야!

다시 한 번 머릿속을 울리는 괴물의 소리에 민국은 전투를 준비하는 동료들을 응시했다. 짧은 침묵 후에 민국이 입을 열었다.

“너희들 혹시 이상한 소리가 들리고 그래?

“네? 이상한 소리요?”

“응. 막 저 녀석을 건드리지 말라는 괴성 같은 거. 나만 들리는 건가…?”

혹시 자신과 비슷한 경험을 하는 이가 있을까 싶었다. 하지만 모두들 서로를 돌아보며 의아한 표정만을 지을 뿐이었다. 뜬금없는 민국의 질문에 소정이 걱정이 담긴 얼굴로 물었다.

“아뇨. 왜요? 뭔가 이상한 소리가 들리고 그러세요?”

“아, 응. 막 자기 자식들을 건드리지 말라는 소리가 계속해서 들리는 데….”

“자식? 설마?!”

고개를 갸웃하던 소정의 얼굴이 ‘가루다의 분신’에게 향했다. 저 괴물들을 가리켜 자식이라고 말할 수 있는 존재는 십이 재앙인 가루다 밖에 없었다.

“설마 가루다가 직접 텔레파시를 보내는 건가?”

“대체 어떻게?”

민국의 말에 다들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민국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십이 재앙인 가루다와 연관이 된 것만으로도 좋은 현상이 아니라는 것은 확실하게 장담할 수 있었다.

“왜 우리 공대장님에게만 그런 소리가 들리는 거지?”

“그러게. 저 새대가리들은 우리도 때려잡았잖아. 이유가 뭘까?”

영웅들의 입에서 여러 가설들이 흘러 나왔다.

개 중 가장 유력한 가설은 민국의 뛰어난 마력 운용 능력 때문에 가루다의 마력 또한 느끼면서 목소리를 듣게 되었다는 가설이었다. 하지만 다른 생각을 하는 이도 있었다.

“십이 재앙이라는 녀석도 우리 공대장님의 천재적인 재능을 알아본 게 아닐까요?”

유나의 진지한 목소리에 민국의 입에서 기침이 터져 나왔다. 곧바로 예린이 유나의 말을 이어 받았다.

“그러게? 그 녀석들도 자신들에게 위협이 될 만한 사람이 누구인지 알게 된 모양이네. 그렇지 않으면 굳이 우리 공대장님에게만 정신감응을 보낼 리가 없잖아?”

“그 녀석들이 민국이를 노린다고? 어림없어. 무슨 일이 있어도 내가 민국이를 지킬 거야.”

“누가 동거녀 아니랄까봐…. 공대장님이 너만의 것은 아니거든?”

유나의 말을 시작으로 이야기는 어느새 다른 쪽으로 새어버리고 있었다.

그 사이 가루다로 추정되는 괴물의 목소리도 언제부터인가 들려오지 않고 있었다. 아무래도 힘이 다한 모양이었다.

‘가루다가 뭐라고 하던 간에….’

재잘재잘 떠드는 팀원들을 뒤로 한 채 민국은 다시 가루다의 분신 아니 자식들을 바라봤다.

괴물들도 잠은 자는 모양인지 꽁지가 킥킥 울어대며 고개를 꾸벅이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하지만 그 모습을 보며 귀엽다는 생각은 조금도 들지 않았다.

무슨 일이 있어도 이 자리에서 잡아야할 놈들이었다.

민국의 고개가 이번에는 동료들에게 향했다. 연신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늘어놓고 있는 동료들은 명령만 내리면 당장이라도 레이드에 투입될 준비가 되어 있었다.

“빠르게 끝내고 이어서 다른 던전을 공략하도록 하겠습니다. 포지션은 전과 동일합니다. 깃털 처리반은 최유나와 신나연. 타냐 전담 힐러는 켄달이 맡습니다. 그리고…,”

브리핑을 하던 민국은 잠시 말을 멈췄다. 자신을 가만두지 않겠다는 가루다의 말이 계속해서 신경 쓰였다.

심지어 가루다는 이곳 동남아에서만 천만 명이 넘는 인간들을 몰살시킨 괴물 중의 괴물이었다. 겁이 나지 않는다면 거짓말이었다.

“이번 트라이를 성공적으로 끝낼 경우, 기여도가 가장 높은 영웅에게 데이트 1회권 부여하겠습니다.”

그래서일까? 하노이에 돌아가서도 누군가가 옆에 있으면 마음이 조금 편해질 것 같았다.

당연히 동료들은 이런 민국의 제안에 환호를 내보냈다. 특히 하노이에서 데이트를 즐긴 타냐는 몸을 가만두질 못하고 있었다.

“그러면 레이드 시작하겠습니다. 탱커!”

민국의 지시에 따라 현아와 타냐가 방패를 들고 달리기 시작했다.

그 둘이 안전거리를 지나선 순간 고개를 꾸벅이고 있던 꽁지가 번쩍 얼굴을 들더니 자신들의 영토에 침입한 침입자들을 향해 빠르게 자신의 깃털을 날렸다.

강철판도 뚫을 정도의 위력을 지닌 빳빳한 깃털이 영웅들을 향해 날아들었다. 하지만 그런 꽁지의 공격도 타냐의 커다란 방패를 뚫기엔 역부족이었다.

터엉!!!

커다란 깃털이 마력이 은은하게 흐르는 방패에 가로막혀 땅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자신의 공격이 막혔다는 사실에 꽁지가 괴성과 함께 분노를 토해내었다. 곧 세 마리의 괴물 새들이 분노를 드러내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타냐를 향해 달려드는 괴물은 덩치와 꽁지뿐이었다.

‘가루다의 자식’들 중 머리가 벗겨진 녀석은 다른 영웅을 보고 눈에 불을 켜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카앙! 캉!

대머리의 날카로운 부리와 발톱 공격이 현아의 빈틈을 노리고 날아들었다.

5 등급 특수 개체답게 대머리의 움직임은 강력했고, 매서웠다. 하지만 현아의 검 또한 대머리의 약점을 거듭해서 파고들고 있었다. 자신의 위험은 생각하지 않는 거침없는 움직임이었다.

“괴물 새끼들이 감히 누구를 노려?!”

레이드가 시작되면서 얼버무리듯 넘어가게 되었지만, 현아는 민국에게 괴물의 텔레파시가 전해졌다는 사실이 굉장히 신경이 쓰였다.

정말로 괴물들이 민국의 뛰어난 능력을 경계해서 공격을 가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있는 이상…!”

현아가 민국에게 느끼는 감정은 단순히 동거남 혹은 남자 친구 그 정도 수준의 마음이 아니었다.

근 몇 달 간 그녀의 눈에 들어온 민국의 모습은 길고 긴 어둠 괴물과의 전쟁을 끝낼 수 있는 영웅과도 같은 모습이었다. 실제로도 엄청난 성장을 보이고 있었다.

이대로 십 년만 지난다면? 끔찍한 이 전쟁도 끝날 수 있을지 몰랐다.

“누구도 민국이를 건드릴 수 없어!”

자신의 행복은 물론이고, 인류를 위해서라도 민국이가 괴물들에게 해코지를 당하는 일은 결코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게 현아의 생각이었다. 설령 상대가 재앙이라 불리는 괴물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뒈져엇!!!”

굳게 쥐인 그녀의 검에 마력이 무겁게 실리기 시작했다.

괴물의 단단한 발톱과 현아의 검이 격돌하면서 날카로운 마찰음이 계속해서 울려 퍼졌다. 뜨거운 불꽃이 쉴 새 없이 튀어 올랐고, 그 사이로 붉은 색의 피가 허공으로 비산했다.

하지만 현아의 몸에 생겨나기 시작하는 생채기는 지젤이 손을 흔드는 순간, 순식간에 사라졌다. 통증 또한 빠르게 가라앉았다. 회복의 능력이 그녀의 몸에 난 상처를 순식간에 없애버린 것이다.

“공격!”

탱커들의 어그로가 잡힌 것을 확인한 민국이 딜러들을 향해 지시를 내렸다. 동시에 민국도 회복의 능력을 사용하면서 전투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키이익! 킥!”

‘가루다의 분신’ 아니 자식들은 분명 강력한 괴물들이었다.

저 녀석들을 잡지 못해 던전을 공략하다가 물러난 공격대가 하노이에 수두룩하게 있었다. 하지만 가루다의 분신 공략에 성공한 공격대에게는 어렵지 않게 상대할 수 있는 녀석들에 불과했다.

아무리 괴물들이 난고 긴다 하더라도 비슷한 패턴의 공격에는 다들 단련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GGW 는 그런 가루다의 분신을 두 번이나 성공적으로 공략을 마친 공격대였다. 특히 민국은 가루다의 분신 공략법을 영웅 커뮤니티에 직접 올리기도 한 장본인이었다. 괴물들의 움직임 따위는 쉽게 읽어낼 수 있었다.

* * *

며칠 전, 중국 영웅 협회가 발표한 새의 탑과 가루다의 분신이 관련된 내용은 하노이에 주둔하고 있는 공격대들 사이에서는 큰 이슈였다.

당장이라도 가루다가 등장해 베트남을 불바다로 만들어버릴 것 같은 절체절명의 상황을 임시 던전에 나타나는 특수한 괴물을 공략해서 저지할 수 있다는 내용이기 때문이었다.

- 화이트 하우스, 철수 대신 예정에 있던 임시 던전의 공략 진행!

- 【A – 2】 난이도의 임시 던전 공략에 들어간 중국의 텐센스!

사실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최상위 레이드 전력을 지닌 공격대들이 발 빠르게 던전 공략에 나섰다.

그리고 중국 영웅 협회에서 제공한 장비들을 사용한 텐센스 클랜이 가루다의 분신을 쓰러뜨리면 새의 탑과 연결되어 있던 임시 던전의 어둠 마력이 증발해버린다는 사실을 알아낼 수 있었다.

- 베트남의 구사회생!

- 세계 영웅 협회! 공격대들에게 무제한적인 지원을 제공하며 임시 던전 처리에 전력을 집중하겠다!

그런 이유로 인해 일찌감치 철수를 한 공격대를 제외하고 아직까지 하노이에 남아 있는 공격대들은 자국으로의 철수를 멈추고 다시 던전 공략에 들어가기 시작했다.

- 이 새끼들 대체 왜 이렇게 많이 나타나는 거야?!

확실히 던전 브레이크로 생겨난 임시 던전과 가루다가 있다는 새의 탑이 어떠한 영향이 있는 건 확실한 모양인지, 임시 던전을 공략하는 공격대들은 세 번에 한 번꼴로 ‘가루다의 분신’을 최종 몬스터로 맞닥뜨려야 했다.

- 영웅 패드에 공략 방법이 나와 있잖아? 좀 생각을 하고 움직이라고! 【B – 1】 난이도가 최고 성적인 GGW도 가루다의 분신을 때려잡고 다니는 데 우리 공격대가 못 잡으면 어떻게 해? 쪽팔린 줄 알아야지!

동일 등급의 몬스터에 비해 ‘가루다의 분신’은 높은 스펙과 전장을 누비는 회오리로 인해 까다로운 무빙이 필요한 보스 몬스터였다.

하지만 영웅 패드에 올라온 한민국의 공략법과 함께 공략에 성공한 이들의 주옥같은 충고, 그리고 무제한적인 부활석 러쉬로 인해 ‘가루다의 분신’이 있는 임시 던전들은 빠른 속도로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민국의 GGW는 저번 원정에서 ‘가루다의 분신’만 다섯 개체나 때려잡고 현재 하노이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마지막 휴식이었다. 끝나지 않을 것 같았던 임시 던전 처리가 공격대들의 적극적인 행보에 의해 슬슬 마무리가 되어가고 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이제까지 남아 있는 임시 던전 중에서 【B】 난이도의 던전은 이제 찾을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기껏 해야 【A】 난이도의 던전들만이 남아 있었는데, 안타깝게도 현재 GGW 의 전력으로는 공략이 불가능한 던전이었다.

‘뭐, 이제는 상관없겠지.’

이미 이번 원정을 통해 얻은 수확은 굉장히 많았다. 유니크와 레전더리 클래스는 물론이고, 베트남에서는 국민 영웅과 비스무리한 대접도 받고 있었다.

어제는 어떻게든 베트남 방송에 출연시키려고 하는 베트남 관계자들의 말을 거절하느라 고생을 하기도 했다.

그렇게 호텔 로비의 소파에 앉아 최근의 일들을 생각하던 도중, 누군가가 민국을 발견하고는 또각또각 구두소리를 내며 다가왔다.

얇은 브라탑과 핫팬츠를 덮은 스트라이프 무늬의 기다란 남방을 걸쳐 입은 구릿빛 골드 색상의 건강한 피부를 지닌 여성이었다.

“네가 기여도 순위에서 1 위를 할지는 몰랐는데….”

가벼운 차림새로 꾸미고 나온 주인공을 보며 민국은 머리를 긁적였다.

현아의 헌신적인 희생 아닌 희생으로 인해 ‘가루다의 분신’ 공략에서 기여도 1 위를 차지한 지젤이었다. 대머리와 사투를 벌인 현아를 지젤이 전담으로 치료한 까닭에 그녀의 힐량이 굉장히 높게 집계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자신이 지젤의 발판이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현아는 현재 아픈 배를 부여잡고 침대에 누워 끙끙 앓고 있었다.

“이래봬도 브라질 제일가는 힐러 유망주라고요. 뭐, 승산 없는 싸움은 바로 도망쳐야 한다는 제 생각은 지금도 변함없어요.”

“그래도 막상 전투가 시작되면 필사적으로 싸우고?”

“당연하죠. 괴물들의 손에 그냥 죽을 수는 없잖아요?”

대답과 함께 지젤이 혀를 베하고 내밀었다. 그녀의 혀에 박힌 구슬 모양의 피어싱이 호텔의 조명에 반짝 빛을 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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