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영웅 소녀 전쟁-140화 (140/486)

EP.140 자매? 모녀?

삑! 삐빅! 삐삑!

민국이 부스럭거리며 시계를 확인하니 오전 9 시가 조금 넘어 있었다. 원래라면 일어나야 했을 시간이었다.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클랜의 많은 직원들을 대신해 제가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일주일간 휴가를 드릴 테니 푹 쉬고 복귀하도록 하세요.’

하지만 어젯밤 클랜 단장인 오현정이 했던 말을 떠올리며 민국은 다시 눈을 감았다.

‘시차 때문인지 몸이 엄청나게 무겁네.’

느낌이 아니라 진짜로 무거웠다.

잠시 얼굴을 찌푸리던 민국이 슬쩍 손을 뻗었다. 아니나 다를까 자신에게 바짝 붙어 있는 현아가 만져졌다. 마치 죽은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기절하듯 잠에 빠진 모습이었다.

아무리 탱커라도 베트남에서 있었던 강행군에 피로가 굉장히 많이 쌓였던 모양이었다.

“진짜 예쁘긴 예쁘네.”

마나를 각성한 영웅답게 현아의 미모는 진짜 어딜 가도 꿇리지가 않았다. 몸매는 두말할 것도 없었다. 시야에 들어오는 봉긋한 가슴을 슬쩍 눌러보니 현아가 귀찮다는 듯 몸을 뒤틀었다.

반응을 보이면 덮치려고 했는데, 현아의 모습이 너무나 피곤해 보여서 그럴 수가 없었다.

민국도 다시 잠을 자기 위해 눈을 감았지만, 한 번 잠에서 깼기 때문일까? 점점 정신이 맑아지는 느낌이었다.

“에이, 못 자겠다.”

결국 자는 것을 포기한 민국은 영웅 패드를 들고 와서 침대에 누웠다.

“어우…….”

그렇게 자연스레 인터넷 창을 연 순간 민국의 입에서 나지막한 신음이 흘러 나왔다. 포털 사이트의 메인 화면에 본인의 얼굴이 떡하니 박혀 있었기 때문이었다.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영웅들]

민국의 얼굴만 나온 게 아니었다. 메모리아의 공격대장과 딜러장인 강채영. 강한 여자들 클랜의 공격대장 등 베트남에서 활약했던 영웅들의 얼굴들이 메인광고란에 나와 있었다.

자연스레 새로 고침을 눌러 광고를 바꿨다.

“나 참….”

하지만 다시 나타나는 광고라고는 조금 전 모습과는 또 다른 형태로 찍힌 본인의 모습이었다.

세 달 가량의 베트남 원정 기간 동안 R’s 클랜의 공격대인 GGW는 베트남의 확산 현상을 성공적으로 막아내고, 한국으로 귀국할 수 있었다.

마지막까지 가루다가 무슨 해코지를 할까 걱정되었지만, 다행히 그런 일은 없었다. 이상한 목소리도 더 이상 들려오지 않았고 말이다.

오히려 가루다의 태도가 너무나도 조용한 까닭에 민국은 ‘가루다의 분신’을 상대하면서 본인이 들었던 소리가 환청이 아니었나 싶은 생각이 들었을 정도였다.

어쨌든 영웅들이 베트남의 확산 현상을 막아낸 것은 어떻게 보면 어둠 괴물과의 전쟁에서 승리했다고 말할 수 있는 결과였다.

실제로 세계 영웅 협회에서는 베트남의 확산 현상을 성공적으로 막아낸 것에 대해 인류의 승리라며 떠들고 있었다. 당연히 마지막까지 남아 최전선에서 전투를 벌였던 영웅들은 기자들은 물론이고 국민들의 많은 관심을 받았다.

- 한민국 공대장님! 한 말씀만 부탁드립니다!

- 공대장님! 공대장님!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가이드라인을 물 밀 듯이 밀고 들어오던 기자들의 모습이 떠오르자 민국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국내에서 다섯 개의 공격대. 그리고 오십 명의 영웅이 베트남에서 활약했지만, 기자들의 포커싱을 받는 영웅은 따로 있었다.

당연히 유일한 남자 영웅이자 ‘가루다의 분신’ 공략을 정리한 민국은 【A】 난이도를 공략한 공격대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많은 기자들의 질문을 한 몸에 받아야 했었다.

“생각 이상으로 힘들었지.”

진짜 연예인들은 이런 무시무시한 관심을 어떻게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지 신기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래도 마냥 힘들었던 것은 아니었다.

- 와아아아! 와아!!!

월드컵 우승 신화를 쏘아올리고 귀국한 국가대표팀 선수들의 기분이 이러할까?

회견장을 나서자마자 자신의 이름을 외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사방에서 들려올 때는 본인의 뜻으로 이 세계에 온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가슴이 벅차오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인터뷰를 포함해서 여기저기서 붙잡힌 까닭에 민국과 현아는 새벽에 다 되어서야 집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 이후는 바로 기절이었다.

인터넷은 메모리아를 비롯해 베트남의 확산현상에 참여한 공격대들의 찬양일색이었다. 그리고 GGW 공격대는 메모리아 다음으로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고 있었다.

아무래도 공대장이 남자 영웅인 까닭에 성과가 그리 대단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관심을 보이는 것 같았다.

‘퀘스트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끌려간 것이긴 한데…. 나쁘지 않았어.’

이번 원정을 통해 GGW와 민국이 얻은 수확은 굉장히 많았다.

다양한 레이드 경험을 쌓을 수 있었던 것은 물론이고, 다들 많은 양의 마력의 결정도 흡수할 수 있었다.

그 뿐인가? 레전더리 그리고 유니크 클래스 또한 손에 넣을 수 있었다. 많은 돈을 주고도 구할 수 없는 엄청난 성과였다.

‘안타까운 건….’

마지막에 일이 꼬이는 바람에 큐우♡의 퀘스트는 클리어하지 못했다. 가루다가 당장이라도 튀어나올 것 같은 상황이었던 터라 어쩔 수가 없었다.

공략 대상이 되어야 할 다른 공격대 또한 중국 협회의 발표가 있고난 이후로는 호텔에 붙어있는 경우가 거의 없던 까닭에 만날 기회도 없었다.

결국 민국은 큐우♡가 준 퀘스트의 마지막 보상 조건인 열 명을 채우지 못하고 퀘스트를 마무리 지을 수밖에 없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처음부터 들이댈 걸.’

상황이 이렇게 급작스럽게 흘러갈 줄은 예상도 하지 못했다.

결국 쉽게 클리어 할 수 있을 퀘스트라는 생각에 괜히 행동을 미적거렸던 것이 후회스러웠다.

‘2 단계 카오스 상점을 확인했어야 했는데….’

1 단계는 확실히 별 볼일 없는 아이템 밖에 구매할 수 없었다. 하지만 단계를 높일수록 더 좋은 아이템을 얻을 수도 있는 법. 결국 Sex 코인만 획득하고 퀘스트를 완료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안타깝게 느껴졌다.

하지만 이미 지나간 일이었다.

태블릿의 기사들을 읽던 민국은 큼지막한 화면에 【B - 1】 이라는 단어를 쳤다. 그러자 국내에 존재하는 【B - 1】 등급의 던전 목록이 빠르게 정리되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 중에는 포상금이 걸려 있는 던전들도 있었다. 던전 타이머가 얼마 남지 않은 던전으로 포상금 때문인지 여러 공격대들이 공략 신청을 걸어놓은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런 던전을 제외한 많은 【B – 1】 난이도의 던전들이 공격대를 기다리고 있었다.

“빠르게 달리면….”

【A】 난이도를 공략할 수 있는 마지노선으로 민국은 모든 팀원들을 5성까지 성장시키고 아이템 레벨 또한 최소한 440 까지는 맞춰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당연히 【B – 1】 던전. 그것도 5 등급 특수 개체만을 계속해서 때려잡아야만 얻을 수 있는 것들이었다. 다행히 국내에도 【B – 1】 난이도의 던전은 숫자가 제법 되는 터라 팀원들을 성장시키는 것에는 큰 무리가 없어 보였다.

임시 던전이라면 모를까, 일반 던전이 무너지는 일은 그리 자주 일어나는 일이 아니었다.

* * *

“밥을 먹기로 했다고? 여기서?”

현아를 바라보며 민국이 고개를 갸웃했다. 일어나자마자 핸드폰을 확인하더니 충격에 가까운 말을 꺼낸 탓이었다.

“응, 응.”

“밖에서 식사를 하는 게 더 좋지 않을까? 여기에 사람을 초대하기에는….”

자신의 허리를 꼭 끌어안는 현아의 행동에 민국의 입이 조용히 다물어졌다.

“괜찮아, 부담가질 필요 없어. 우리 언니는 그런 거에 신경을 쓰는 타입이 아니거든. 오히려 이런 장소에서 치맥 하는 걸 훨씬 좋아할 걸?”

“어, 음…. 그런가?”

히죽이며 웃어 보이는 현아의 반응에 민국은 머리를 긁적였다.

부담스럽고 크게 신경도 쓰이긴 했지만 집주인이자 친동생이 그렇다는 데 뭐라 할 말이 없었다.

‘그러고 보니….’

민국의 시선이 주위를 훑었다.

벽면 여기저기에 실금이 가거나 도배를 한 곳이 찢어진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딱히 의식한 적은 없었는데 이렇게 살펴보니 집이 꽤나 낡았다는 생각이 새삼스럽게 들었다.

‘이사도 생각해 봐야겠네.’

현재 둘이 살고 있는 집은 거실에 음식을 할 수 있는 공간까지 포함이 되어 있는 커다란 원룸이었다.

카오스 때문에 이 세계에 넘어온 이후, 정식 영웅이 되고 한 공격대를 맡게 되는 등 여러 변화들을 겪어야 했지만 그 때와 비교해 지금까지 달라지지 않은 것은 바로 이 보금자리였다.

하지만 평수가 제법 큰 지라 원룸이라고 부르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칸막이만 치면 투 룸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의 넓이였다. 물론 민국과 현아의 재력이라면 지금보다 훨씬 더 좋은 집으로 이사를 갈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까지 아무런 문제없이 살아왔다는 익숙함과 바쁜 일정 때문에 이사를 갈 겨를이 없었다.

“그런데 단장님이 갑자기 왜 여기를 오신다는 거야?”

민국의 기억 속에서 이 장소에 누군가가 찾아온 적은 공격대의 멤버인 유나를 제외하고는 없었던 것 같았다.

하지만 말을 꺼냈던 민국은 곧 자신의 실수를 깨달을 수 있었다. 언니가 동생을 보는 데 이유를 찾는 게 우스웠다. 그러나 민국의 말을 들은 현아는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잠시 후, 현아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아마 계약 때문일 거야.”

“계약? 너? 아니면 나?”

“당연히 우리 둘이지. 이번 베트남 원정에서 GGW 가 보였던 활약을 생각해 봐. 그게 어디 1 년차 공대장이 보일 수 있는 성과야? 게다가 지금 우리 GGW 는 R’s 클랜의 2 군 못지않은 전력을 지니고 있다고. 그게 다 누구의 덕인데?”

“으음.”

본인의 얼굴에 금칠을 하는 것만큼 부끄러운 것도 없다는 생각이었지만, 이건 답이 하나밖에 없었다. 곧 현아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런 이유 때문이야. R’s 의 클랜 단장인 언니는 다른 클랜들이 너에게 본격적으로 제안을 보내기 전에 재계약을 맺고 싶은 거야. 그래서 나를 만난다는 핑계로 여기에 오려는 거고.”

현아의 눈동자가 민국에게 향했다.

계약기간이라는 게 있기는 했지만, 클랜과 척을 지는 것을 감당하고서라도 영웅이 클랜을 나가려고 한다면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그리고 민국은 그런 패널티를 전부 감안하고서라도 영입을 하고 싶은 인재였다.

“그렇겠네. 이렇게 되면 연봉 좀 올라가려나?”

“엄청나게 올라가겠지?”

최소한 지금 받고 있는 4000 달러의 주급과 비교해 몇 배는 더 받을 수 있을 터였다. 남자 영웅 그리고 공격대장이라는 프리미엄을 생각하면 더더욱 조건이 좋아질 터였다.

“좋기는 한데….”

딱히 기분이 엄청나게 좋다거나 하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지금도 충분히 여유로운 정도의 돈이 있었고, 그 돈을 다 쓸 수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었다. 차라리 이 돈으로 현질을 해서 아이템 혹은 마력의 결정을 구입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인류를 지켜야 한다는 숭고한 사명은 없지만, 빨리 몬스터 아니 십이 재앙이라 불리는 녀석들을 때려잡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야 자신도 안전할 것 같았고, 원래 있던 세계로 돌아가기 위해서라도 어둠의 괴물들을 모두 물리쳐야 했다.

“그럼 지금부터 청소라도 해야겠네.”

“청소? 왜?”

민국의 말에 현아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청소라는 단어를 듣는 순간 그녀의 얼굴에 귀찮음이 잔뜩 나타나고 있었다. 하지만 민국은 오히려 그런 현아의 반응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집 상태가 이 꼴인데 사람을 들이겠다고?”

세 달 가까이 집을 비웠던 상황이었다. 당연히 그 동안 누구 청소를 해줬을 리도 없었다. 겉으로는 크게 티가 나지 않지만 손가락으로 책상을 슥 훑어도 먼지가 새카맣게 묻어나올 게 분명했다.

“…우리 그냥 나가서 먹을까?”

“…….”

현아의 말에 민국은 대답대신 그녀의 손에 걸레를 쥐어주었다.

그렇게 민국과 현아가 대청소를 하던 시각.

- Yes! Yes! Good! Oooooooh!

어두컴컴한 방 안에서 귀에 이어폰을 낀 소녀가 살색의 향연이 그려지는 영상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다.

행여나 자신의 부끄러운 모습을 다른 사람에게 들킬 세라 침을 삼키는 것조차 조심스러운 모습이었다. 하지만 영상에 푹 빠진 소녀는 자신의 이러한 모습을 이미 누군가가 지켜보고 사라졌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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