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영웅 소녀 전쟁-141화 (141/486)

EP.141 자매? 모녀?

● 현재 영웅 학교에 다니고 있는 초보 영웅입니다. 베트남에서 큰 활약을 한 R’s 의 GGW 공격대에 들어가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는데요. 혹시 1 년차 공격대 중에 GGW 만큼 어둠 괴물과의 전쟁에서 성과를 보였던 공격대가 있었나요?

└ 아뇨, 없었어요.

└ 1 년차 공격대 중에 GGW 이상의 성과를 낸 공격대는 여럿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공격대들은 전부 다년간 활약한 영웅들이 모여 만든 공격대입니다. 한민국 공대장처럼 1 년차 영웅이 이끄는 공격대 중에서는 없었습니다.

● R’s 가 한민국을 붙잡을 수 있을까요? 뉴스에서 떠드는 이야기를 보면 곧 미국이나 중국으로 갈 거라고 하던데….

└ 아직 계약기간이 3 년이 넘게 남았는데, R’s 가 한민국을 놔줄 리가요. 돈 때문에 한민국 이적 시키면 로즈 그룹 불매 운동 터질걸요?

● 한민국 계약이 어떻게 되나요? R’s 에서 재계약해야 하지 않을까요?

└ 현재 주급 4000 달러입니다.

└ 진짜 개 헐값이네. 다른 국가에서 가만히 있는 게 오히려 이상하겠다.

└ 베트남의 문제도 마무리 되었으니 조만간 재계약 소식이 들리지 않을까 싶네요.

“…그렇지 않아도 재계약 할 거란다.”

인터넷에 올라온 글들을 읽던 현정은 바로 태블릿을 덮었다.

이제 조금만 더 가면 동생의 집에 도착할 예정이었다. 그리고 그 집에는 현정이 가장 사랑하는 가족인 동생과 R’s 클랜의 미래 아니 대한민국의 미래라 일컫고 있는 핫한 공대장이 있었다.

‘이번 재계약을 꼭 제대로 마무리 지어야 할 텐데….’

클랜에 입단한 지 반 년도 되지 않은 영웅을 대상으로 재계약을 제안 하는 건 정말로 드문 일이었다. 그것도 영웅의 요구 없이 클랜이 먼저 재계약을 맺자고 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남자 영웅이라는 화제성은 둘째치더라도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던 민국의 능력이 이번 베트남 원정을 통해 진가를 드러냈기 때문이었다.

1 년차 영웅이 성공적으로 확산 현상을 막아낸 것도 모자라 영웅 커뮤니티에 ‘가루다의 분신’ 공략을 직접 작성해서 올리기까지 했었다.

‘거기에 어떻게 확산 현상으로 생겨난 임시 던전을 가장 많이 무너뜨린 공격대가 GGW가 될 수 있었던 거지?’

던전 브레이크로 인해 하노이를 찾은 공격대의 숫자는 얼핏 잡아도 백여 개가 훌쩍 넘었다.

그렇게 많은 공격대들 사이에서 1 년차 공대장이 이끄는 GGW 가 가장 많은 던전을 무너뜨린 것이다. 세계 영웅 협회에서 직접 발표한 내용이니 거짓일 리도 없었다.

정말 베트남에서 얼마나 빡빡하게 일정을 진행했는지 상상조차 되지 않았다.

[인도의 비수뉴 공격대! 한민국 공대장에게 러브콜!]

[캐나다의 메이플 리프를 이끄는 달리아, “만약 한민국 영웅이 메이플 리프에 입단한다면 흔쾌히 공대장을 넘길 의향도 있다.”]

그래서일까?

이번 베트남 원정에서 대한민국과 같은 구역을 맡은 캐나다와 인도 클랜이 한민국에게 보내는 러브콜은 엄청나게 뜨거운 수준이었다.

언론에 밝힐 수 있는 내용은 아니었지만 클랜 사이에서 물밑으로 오고간 제안서에는 어마어마한 액수와 대량의 부활석이 찍혀 있었다.

‘R’s 의 미래이자 어둠 괴물과의 전쟁에서 인류를 구원해 줄 수 있는 공대장이야. 다른 클랜에는 결코 보낼 수 없어.’

당연히 R’s 의 입장에서 한민국은 NFS(Not For Sale). 절대 이적 불가인 영웅이었다. 구단주까지도 반대하고 있었다.

“한민국 영웅 계약서. 다시 줘보시겠어요?”

“여기 있습니다.”

비서가 건네주는 계약서를 받으며 현정은 다시 한 번 꼼꼼하게 계약서의 내용을 살펴보았다.

『한민국, 22 세, 서울 영웅 학교 64 기(현 Class - 힐러)

계약 기간 - 6 년

계약금 - 500 만 달러

주급 -7.5 만 달러

공대 운영 보너스 - 월 14 만 달러

부활석 지원 - 월 100 개

던전 클리어 보너스 - 【B - 1】 이하 3500 달러, 【A】 난이도 5000 달러, 【A - 5】 이상 2만 달러.

던전 전리품 정산 비율 - 클랜 3.7 : 공격대 6.3

- 장비 아이템, 클래스 스톤, 스킬 스톤 경우 공격대원이 착용을 원할 경우 시세의 28.5 % 로 판매.

올해 던전 클리어 요구 사항

- 【B - 1】 이하 80 회』

1 년차 영웅의 계약서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과한 수준의 조건들이었다.

하지만 그 대상이 1 년차에 【B - 1】 난이도의 던전을 공략하는 데 성공하고, 5성을 바라보고 있는 영웅이라면? 그렇게까지 매력적으로 보이는 조건도 아니었다.

따지고 보면 이 조건은 현재 R’s 의 2 군 공격대장과 비슷한 수준의 조건이었다. 하지만 이는 R’s 가 제안할 수 있는 최고 수준의 조건이었다.

“설마 한민국 영웅이 재계약을 거절하지는 않겠지?”

“글쎄요. 1 년차 영웅이 이 제안을 거절하는 미친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 같지만…. 우리의 공대장님께서는 그야말로 전설을 써내려가고 있으신 분이시잖아요? 잘 모르겠네요.”

“…그건 나도 알고 있는데, 그냥 당연히 싸인하지 않을까요? 라고 말해주면 안 돼?”

“현실은 냉정합니다, 단장님. 괜한 기대감을 품었다가는 나중에 더 크게 실망할 거라고요.”

비서의 얄미운 말에 현정은 한숨을 내쉬었다. 진짜 조만간 단장 비서를 갈아치워야만 할 것 같았다.

‘진짜 이게 뭐라고….’

고작해야 계약서 하나에 싸인만 받으면 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여기에는 R’s 의 미래가 달려 있었다.

클랜의 구단주인 조수영은 계약서에 싸인을 받지 못하면 클랜으로 돌아오지 말라고 엄포까지 했을 정도였다. 언제부터 클랜에 그렇게까지 관심을 가졌는지…. 현정의 입장에서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정 안되면 몸으로라도 로비해 봐요. 이번 계약 그만큼 중요하잖아요?”

“…하?”

비서의 말에 현정이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순간적으로 손에 들린 종이를 비서의 얼굴에 집어던질 뻔했다. 하지만 이 계약서는 조금도 구겨져서는 안 되는 소중한 종이였다.

잠시 심호흡으로 내면의 평화를 되찾은 현정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여자 영웅에게 잘생긴 남자를 붙이는 것도 아니고, 남자 영웅에게 내가 로비를 하라고?”

실력이 뛰어난 여성 영웅을 본인의 클랜으로 데려오기 위해 잘생긴 남자를 협상 대상으로 삼는 클랜들이 더러 있곤 했다. 대표적으로 러시아나 아랍 쪽의 클랜들이 그랬다.

“너 바보냐? 그런 게 통할리가 없잖아.”

하지만 이건 상황이 달랐다. 여자 영웅이 아니라 남자 영웅을 설득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동생 분하고 동거하고 계시니, 동생분의 힘도 빌리면 어떻게 설득시킬 수 있지 않을까요?”

“…나 참. 그런 통했으면 다른 클랜들이 진즉에 써먹었겠지.”

민국이 현아에게 얼마나 특별한 감정을 지니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비지니스는 냉정한 법이었다.

“하긴 그렇겠죠?”

자신에게 되묻듯 말하는 비서를 향해 현정은 못 말리겠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정말 멍청해도 저렇게 멍청할 수가 있나 싶었다.

“대체 그 머리로 비서 자격증은 어떻게 얻은 거람?”

“옛날에는 머리가 잘 돌아갔는데, R’s 에 와서 단장님하고 같이 지내다 보니 이렇게 되었습니다.”

“네, 네. 제가 죽일 년입니다.”

“아시면 보너스라도 좀 주시죠? 이번 베트남 원정 때문에 클랜의 광고 매출이 어마어마하게 늘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하? 그게 GGW 때문인지 네가 잘해서야? 보너스를 줘도 한민국 공대장과 GGW 팀원들에게 주겠다.”

그렇게 친구나 다름없는 비서와 티격태격하는 사이 현정이 타고 있는 차는 어느새 현아의 집 근처에 도착해 있었다.

“화이팅, 단장님. 계약서에 무조건 도장 찍어 오시는 거 잊지 마시고요. 아시죠? 정 안되면 동생분하고 바짓가랑이라도 잡고 늘어지시는 거?”

“…….”

차에서 내리는 자신을 다시 한 번 놀리는 비서의 모습에 현정은 대답대신 가운데 손가락을 들어 올렸다. 그와는 별개로 손에 들린 서류 가방은 오늘 따라 너무나도 무겁게 느껴졌다.

하지만 현정의 이런 고민은 시간낭비에 불과한 것들이었다.

‘이렇게나 쉽게?’

1 분 전만 하더라도 잔뜩 긴장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숨기며 태연한 모습으로 계약서를 내밀었었다.

눈은 계약서를 보고 있는 민국에게 향해 있었지만, 머리는 그가 거절하면 어떻게 민국의 마음을 설득할 수 있을 지에 대한 여러 생각으로 복잡하게 뒤엉켜 있었다.

하지만….

“와, 주급이 엄청 올라갔네요. 7.5 만 달러면…. 1 년 차에 손흥민 반 정도 수준이라니. 아니구나. 던전 보너스까지 생각하면 얼추 비슷할 수 도 있겠는데?”

알 수 없는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거리낌 없이 계약서를 싸인을 하는 민국의 모습이 그녀의 눈에 들어오고 있었다. 협상의 밀당 같은 건 조금도 없는 모습이었다.

현정의 시선이 민국의 옆에 앉은 동생에게 향했다. 여러 의미를 담은 눈빛에게 현아에게 향했고, 언니의 물음에 현아는 어깨를 으쓱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그리고 싸인을 적힌 계약서를 확인하며 현정이 더듬거리며 말했다.

“이, 이렇게나 쉽게 재계약 협상을 맺어주셔서 감사드려요. 계약 내용은 내일 언론을 통해 발표될 거예요. 괜찮으시죠?”

“네.”

거침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민국의 모습에 현정은 계약서를 서류 가방에 챙기며 핸드폰으로 비서에게 문자를 보냈다. 자신의 임무인 민국의 싸인은 확실하게 받았다.

이제 남은 것은 비서가 처리해야 할 일들이었다. 조금 어안이 벙벙한 느낌이기는 했지만, 계약서에 적힌 민국의 싸인은 확실하게 본인의 것이었다.

“이렇게 재계약도 맺게 되었는데, 바로 식사 하러 갈까요? 오늘은 제가 모시겠습니다.”

“어? 치킨 시켰는데?”

뜬금없이 터져나오는 동생의 말에 현정이 기가 막힌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아, 아니! 너는 오늘 같은 날에는 밖에 나가서 맛있는 거라도 먹어야지?!”

“뭐야? 치킨 시킨다고 미리 이야기했었잖아.”

잠시 생각해보니 그랬던 것 같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상황에 치킨이라니. 뭔가 되게 없어 보였다. 하지만 현아의 생각은 다른 모양이었다.

“그리고 언니도 치맥 좋아하잖아. 조금 전에 네 마리 주문했단 말이야.”

“아니, 이렇게 재계약도 했는데 집에서 치킨이나 뜯고 있으면 한민국 영웅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겠어?”

“…저는 괜찮습니다.”

“맞아. 그리고 언니 온다고 해서 민국이랑 대청소도 했단 말이야. 집 더러워질 때까지는 난 안 나갈 거야.”

철딱서니가 없어도 이렇게나 없을까. 땡깡을 부리는 현아의 모습에 현정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다, 다음번에 제가 제대로 식사 한 번 살게요. 꼭 좋은 곳으로 모실게요.”

그리고는 조심스레 민국을 눈치를 살피며 말했다. 곧 네 마리의 치킨이 집에 도착했고, 세 남녀는 여러 이야기들을 나누며 치맥을 뜯기 시작했다.

“제가 한민국 영웅 계약서 때문에 얼마나 마음을 졸였는지 아세요?”

“네? 왜요?”

“아, 팬들도 그렇고 구단주도 그렇고. 한민국 영웅과 재계약 못 맺으면 가만두지 않겠다고 얼마나 닦달을 하던지…”

그렇게 술이 들어가기 시작하면서 몸의 긴장이 풀린 탓인지 현정의 입에서도 여러 말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어느새 그녀의 옆에는 맥주 캔들이 예닐곱 개나 찌그러져 있었다. 전부 그녀가 마신 것들이었다.

그에 반해 치킨은 이제 한 마리가 사라졌을 뿐이었다.

“계약 기간도 많이 남았는데, 재계약이 그렇게나 중요한가요?”

“물론이죠. 우리 한민국 공대장님은 R’s 의 미래거든요. 진짜 우리 현아랑 R’s 버리고 다른 클랜으로 넘어가시면 안 돼요? 아니지. 이제 6 년간은 우리 꺼구나. 흐으…. 우리 꺼.”

사석에서는 처음 만났기 때문일까?

얼굴 가득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부담스럽게 자신을 바라보는 현정의 모습에 민국의 고개가 삐거덕거리며 현아에게 향했다. 의외로 현아는 언니의 이런 모습이 익숙한 얼굴이었다.

“언니가 보기보다 술이 좀 약해. 그리고 술 취하면 재수 없게 귀여운 척도 많이 하고.”

“나 술 쎄거등?”

“봐 바. 어우, 소름 돋아. 피처로 소맥 두 병도 못 마시는 주제에 무슨 술이 세다고.”

‘그건 웬만한 사람이라면 다 못 마실 것 같은데….’

현아의 말에 민국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영웅이 되면 주량도 늘어나는 모양인지 영웅들 대부분 술이 굉장히 강했다. 예전에도 유나랑 린샤랑 함께 술을 먹다가 필름이 끊긴 적이 있었고, 최근에는 타냐와 술을 먹다가 정신을 한 번 놓기도 했었다.

어쨌든 치맥으로 시작된 식사 겸 재계약 축하 파티는 어느새 다른 야식까지 주문해가면서 밤늦게까지 계속해서 이어졌다. 그리고 술은 서로의 관계를 가깝게 만들어주는 마법의 묘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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