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45 자매? 모녀?
“아니, 팀장님! 많은 걸 바라는 것도 아니고 딱 한 마디면 됩니다, 네?”
“김 기자님께서 왜 이러실까? 한민국 영웅에 대해서는 저도 아는 게 하나도 없어요. 제가 팀장이라 해도 한민국 영웅은 그 윗선에서 관리하는 영웅이라고요.”
가슴에 장미 방패단의 엠블럼을 단 세미 정장의 여성이 답답한 목소리로 말했다. 오늘만 이와 비슷한 요청을 몇 번째 받는지 모를 정도였다.
“그리고 아시다시피 GGW 공격대는 베트남 확산 현상을 해결하고 현재 휴가 중에 있어요. 클랜 하우스에는 오지도 않는다고요.”
“아이 참. 그래도 스케줄이라는 게 있을 거 아닙니까? 팀장님. 우리 이런 사이 아니잖아요? 제발. 인터뷰 한 번만 합시다. 네? 멘트 하나라도 못 따가면 저 부장님한테 죽는다고요. 아니면 클랜장이라도….”
“오현정 클랜장님도 현재 클랜에 안 계십니다. 본사에 가셨어요.”
GGW 공격대가 베트남에서 복귀한 이후 수많은 기자들이 R’s 의 클랜 하우스를 찾았다.
전부 민국과의 인터뷰를 위해서였다. 개 중에는 모 기업인 로즈 그룹의 빌딩 근처에서 대기를 타는 이들도 있었다. 그러나 다들 민국과 관련해서 하나의 소스라도 얻은 이들은 없었다.
그들이 건질 수 있는 정보는 기껏해야 며칠 전, 국내를 들썩였던 재계약 소식과 함께 GGW 공격대의 재계약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는 이야기들이 다였다.
“아주 끝내주네, 진짜. 아무리 남자 영웅이라고 해도 너무 싸고도는 거 아니야? 말 한마디 하는 게 뭐가 힘들다고?”
끈질기게 달라붙었지만, 결국 아무 소득도 얻지 못한 기자 한 명이 쉰 목소리를 내며 퉷하고 침을 뱉었다. 그렇게 말을 하면서도 클랜 하우스의 근처를 떠나지 못하는 모습이 아이러니했지만.
한민국은 현재 대한민국의 국민 영웅이었다. 그의 인터뷰를 하나만 따게 되도 그 과실이 어마어마한 것이다.
남자 영웅이라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기사 1면 감이지만 그 영웅이 세계에서 이름을 날리고 있는 다른 영웅들의 찬사를 한 몸에 받고 있었다.
그만큼 기량이 대단하다는 말이었다. 그리고 다른 영웅들의 칭찬은 으레 남자 영웅이라서 하는 단순한 립 서비스가 아니었다.
그 증거로 민국은 인류를 괴롭혔던 12 재앙의 분신과 관련해 공략법을 내놓기도 했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12 재앙이라는 괴물을 물리칠 것이라는 생각은 아무도 하지 않았지만, 어쨌든 그런 사실만으로도 국민들의 관심을 받기엔 충분했다.
“국민 영웅이잖아요?”
“밖에만 나가면 달라붙는 사람들 때문에 이동하는 것도 쉽지 않다던데?”
“원래도 유명한 공대장이었어. 하지만 베트남의 확산 현상을 막아낸 게 컸지. 1 년차에 그런 활약을 보였는데 몇 년 후면 얼마나 대단해 지겠어?”
하지만 한민국을 인터뷰하는 건 쉽지 않았다.
장미 방패단의 방어가 얼마나 튼튼한지 오죽하면 대한민국에서 가장 바쁜 영웅이라는 강채영을 취재하는 게 더 쉬울 거라는 볼 멘 소리들까지 나올 정도였다.
그리고 국내의 많은 기자들이 인터뷰를 원하는 민국은 현재 팀원들과 함께 던전에 들어와 있었다.
【B - 1】 난이도의 던전으로 R’s 가 아닌 이화 클랜이 관리하는 던전이었다. 언론의 과도한 관심을 피하기 위한 방법을 찾다가 생각해낸 방법으로 타 클랜의 던전을 공략하기로 한 것이다.
그리고 비밀리에 R’s 클랜의 제안을 받은 이화 클랜은 본인들이 관리하는 【B – 1】 던전의 공략 허가를 GGW 공격대에게 내주었다.
“감사합니다. 덕분에 편하게 레이드를 할 수 있게 됐어요.”
민국의 눈이 단발의 미녀에게 향했다. 마력을 각성한 영웅이라 그런지 30대라는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미모가 물이 올라 있었다.
“고맙기는 우리가 더 고맙지. 공짜로 【B - 1】 을 클리어 해주는 거잖아?”
“그래도 【B – 1】이면 리바이벌 팀이 관리하는 곳이잖아요?”
“그깟 부활석 몇 개쯤이야. 그런 것 보다는….”
순간적으로 눈이 마주친 단발의 미녀가 민국을 향해 싱긋 미소를 지었다.
그 눈빛에 담긴 은근한 호감에 민국은 속으로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역시 이 몸의 인기란…. 남녀역전 만세였다.
현재 민국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 상대는 이화 클랜 1 군을 이끄는 공격 대장이었다.
베트남의 확산 현상 때 짧게 인연을 맺었던 영웅으로 베트남에서는 강채영에게 신경을 쓰느라 그리 많은 대화는 나누지 못했던 상대였다.
그래도 오며가며 인사 정도는 한 적이 있었다.
“부활석이 있기는 하겠다만, 마지막 보스인 시체 매는 조심하는 게 좋아. 패턴이 제법 까다롭거든. 공략법은 알고 있지? 혹시 모르면 자세히 설명해줄까?”
걱정이 담겨 있는 은근한 말투로 이화 클랜의 공대장이 민국의 옆으로 바짝 붙었다.
동시에 그녀의 손이 살짝 민국의 어깨를 터치했다. 서로간의 거리를 좁히려면 그녀만의 애교였다. 그리고 그 순간 GGW 공격대에 속한 여인들의 눈동자에 불길이 화륵 타올랐다.
“하암….”
지금의 이 시간에 지루한 듯 하품을 하는 지젤 뷘드셴은 제외였다. 그녀는 자신이 쾌락만 즐길 수 있다면 아무래도 상관이 없다는 주의였다.
어쨌든 민국의 어깨를 스쳤던 이화 클랜 공대장의 손짓은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한 터치였다. 사실은 그게 아닐지라도 현아를 포함해 GGW 공격대에 속한 팀원들이 느낀 감정은 그랬다.
그리고 누가 봐도 유혹을 하는 게 분명해 보이는 선배 영웅의 행동에 소리를 낸 것은 팀 내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김소정이었다. 그래봤자 이화 클랜의 공대장과 비교하면 다섯 살이나 어렸다.
“선배님과 이화 클랜의 배려는 감사합니다. 하지만 저희들도 철저하게 준비를 한 만큼 더 이상의 브리핑은 필요가 없을 것 같습니다.”
“그, 그래?”
서릿발이 내리는 것 같은 차가운 목소리에 이화 클랜이 공대장은 떨떠름한 소리를 내었다.
흔하지 않은 남자 영웅이라고 금이야 옥이야 애지중지 하는 게 아주 눈꼴 시렸다. 하지만 민국과 친한 것도 아닌 만큼 더 이상 물고 늘어질 핑계가 없었다.
그렇게 어색한 시간이 흐르는 동안 던전에 부활석이 설정되었다.
이어서 준비가 끝났다는 보고를 받은 민국이 이화 클랜의 공대장을 향해 고개를 꾸벅 숙였다.
“이화 클랜의 은혜는 잊지 않겠습니다. 나중에 레이드와 관련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군요.”
“연락만 주면 언제든지.”
짧은 대답이었다. 하지만 그 안에는 민국에 대한 관심이 가득 담겨 있었다.
* * *
“1 파티 왼쪽! 최유나! 좀 더 거리 벌려!”
“5 초 후, 탱커 교대! 부 탱커 타냐!”
“Yes!”
“진입할 때 정신 바짝 차려! 상대의 공격이 바로 이어질 거야!”
“방어 태세로 진입하겠습니다!”
몬스터를 눈앞에 두고 민국의 오더가 쉴 새 없이 이어졌다.
그럴 때 마다 GGW 공격대의 영웅들은 민국의 지시에 따라 쉴 새 없이 무기를 휘두르며 자신의 능력을 사용했다.
【B - 1】 난이도의 던전이지만 GGW 공격대는 파죽지세로 몬스터들을 쓰러뜨려나갔다. 처음 상대해보는 몬스터들이 많았지만 큰 문제는 없었다.
민국의 리딩은 여전히 완벽했고, 베트남에서 쌓은 전투 경험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뿐만 아니라 GGW 공격대의 스펙은 베트남으로 떠나기 전과 비교해 크게 높아진 상황이기도 했다. 5 등급 특수 개체라도 전혀 문제가 없었다.
“꺄하하하! 모조리 태워 주겠어!”
레전드리 클래스인 피닉스 나이트를 획득한 오현아는 피닉스 나이트 고유의 스킬인 불꽃의 날갯짓으로 인해 단일 및 광역 탱킹에도 전혀 어그로가 흔들리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실수로 사망해도 S 등급으로 평가받는 두 번의 날갯짓으로 한 번은 되살아날 수 있기까지 했다.
그리고 시베리아 불곰전차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는 타냐는 방패를 이용한 태세 변화로 퓨어 탱커와 딜탱을 오갈 수 있는 영웅이었다.
아직 영웅의 성급이 부족해 기어 스코어가 높은 장비를 착용하지 못해서 그렇지 탱커진이 보유한 스킬과 실력만큼은 여타 1 군과 비교해도 꿇리지 않을 정도였다.
특히나 오현아의 피닉스 나이트는 미국과 중국에서도 탐을 낼 정도로 희귀한 클래스였다. 그리고 이러한 기량 상승은 탱커진만 이룬 게 아니었다. 딜러진과 힐러진 역시 마찬가지였다.
- 나의 새끼들아! 우리의 둥지를 침범한 이들을 쪼아 죽여라!
이화 클랜의 공대장이 경고했던 대로 시체 매의 패턴은 제법 까다로운 편이었다.
물론, 그건 이 세계의 영웅을 기준으로 삼았을 때의 말이었다. 레이드에 잔뼈가 굵은 민국에게 시체 매의 패턴은 평범한 수준에 불과했다.
“알! 알 낳았어!”
“씨발! 저 새끼는 대체 누구랑 붙어먹기에 알을 이렇게나 많이 쏟아내는 거야?!”
“자웅동체인가 보지!”
사방에 생겨나는 타원형의 알을 보며 딜러들이 욕설을 내뱉었다. 그러면서도 민국이 브리핑을 했던 대로 빠르게 시체 매의 알을 찾아내어 깨부수고 있었다.
“신나연! 좀 더 알에 신경 써!!!”
“네, 넷!”
알이 생겨날 때 마다 GGW 공격대는 시체 매보다 알의 처리를 우선순위로 뒀다.
시체 매의 알을 깨뜨리지 않으면 알에서 새끼들이 태어나 짹짹거리는 소리를 내며 영웅들에게 큰 데미지를 주기 때문이었다.
“시라누이 마이는 그대로 시체 매를 공격해!”
덕분에 단일 딜링에 장점을 보이는 시라누이 마이를 제외한 다른 딜러들은 사방에서 생겨나는 시체 매의 알을 처리하느라 바쁘게 마력을 끌어 올려야 했다.
“빨리 내려오지 못해!!!”
탱커인 오현아와 타냐는 계속해서 도발의 능력을 사용해 시체 매의 관심을 끌었다. 그리고 시체매가 땅에 발을 디디면….
“나의 검에는 우주를 담을 수 있다.”
장검을 쥔 말총머리의 여성이 시체 매를 향해 바람처럼 달려들었다.
서걱! 서걱! 서걱!
영웅들이 지닌 영웅 패드(Hero Pad)에 시라누이 마이의 DPS가 폭주하듯 올라가기 시작했다.
- 까아악! 깍!!!
자신들의 부모가 공격을 받는 모습에 시채 매의 새끼들이 발광하며 달려왔지만, 그들의 상대는 다른 딜러들이었다.
그리고….
집중 치료술사 클래스를 지닌 민국은 완벽하게 공격대를 연주했고, 뷘드셴 자매들도 힐러답게 확실하게 영웅들의 생명력을 책임지는 모습이었다.
탱커, 딜러, 힐러의 삼박자가 완벽하게 맞물리는 공세에 【B – 1】 던전의 최종 보스라는 시체 매도 버틸 재간이 없었다.
- 캬아아악!!!
비명과 함께 시체 매가 쓰러지자 사방에서 환호가 터져 나왔다.
원 트(One Try) 클리어. 그것도 사망자 없이 처음 경험하는 던전을 한 번에 클리어한 성과였다.
“꺄아아! 잡았어! 잡았다고!!!”
“브라보! 역시 GGW 공격대 입니다! 정말 최고였습니다!”
비명을 지르는 팀원들의 모습을 보며 민국은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기쁜 것은 알겠지만, 솔직히 말해 어려운 난이도의 던전은 아니었다. 시체 매만 봐도 그랬다. 베트남에서 상대했던 12 재앙의 분신이라는 세 마리의 병아리가 훨씬 더 강한 느낌이었다.
과거 민국이 즐겼던 우주 소녀 전쟁과 난이도를 비교하면 이 던전의 보통 난이도에도 끼지 못하는 수준이었다. 기껏해야 초보들이나 파밍을 하는 쉬움 수준의 던전에 불과했다.
하지만 쉬움 수준의 던전에도 얻을 수 있는 건 있었다.
“떴다아!!!”
언제 보상 상자를 열었는지 천호동 럭키걸의 함성이 크게 울려 퍼졌다.
그녀의 손에 들린 노란색의 결정이 반짝 빛을 내고 있었다. 5성 특수 개체에서만 얻을 수 있는 옐로우급 마력의 결정이었다.
“어떤 거예요? 민첩? 민첩 맞죠? 저는 현아 언니 믿고 있었어요.”
현아를 향해 유나가 빠르게 달려들며 말했다.
GGW 공격대의 영웅들은 현재 4 성과 5 성 중간에 있었다. 몇몇은 5 성을 달성한 이들이었고, 나머지는 5성이 되기 위해 마력의 결정이 필요한 이들이었다.
그리고 【A】 난이도의 던전을 공략하려면 적어도 5 성은 되어야 했다.
그래야만 기어 스코어가 450 이 넘는 장비를 착용할 수 있었고, 그 정도 장비는 되어야 【A】 난이도의 던전에서 등장하는 6 성 개체들에게 타격을 입힐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여자는 힘이지!”
“힘도 나쁘지 않죠. 솔직히 말해서 활을 당기는 데 민첩이 필요하다는 말은 다 거짓말이에요. 이게 얼마나 힘이 드는데요?”
유나가 너스레를 떨었다.
현아의 손에 들린 마력을 결정을 바라보는 그녀의 눈은 욕심으로 가득 차 있었다. 빨리 5 성 영웅이 되고 싶다는 욕심이었다. 그리고 이 욕심은 소정도 지지 않았다.
“둘 다 땡.”
소정과 유나를 바라보던 현아가 짓궂은 목소리로 외쳤다. 그리고는 그녀들의 앞에 손에 쥐고 있던 마력의 결정을 가까이 내밀었다.
“정신력입니다!”
힐러 혹은 그와 관련된 특수 클래스만이 필요로 하는 능력이었다.
“민국이거임.”
현아가 찜을 하듯 말했다. 그녀의 말대로 뷘드셴 자매는 이미 5 성 영웅인 까닭에 당장 옐로우급의 정신력 결정이 필요한 영웅은 GGW 에서는 민국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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