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영웅 소녀 전쟁-147화 (147/486)

EP.147 자매? 모녀?

‘…그나저나 어떻게 조은영을 유혹하지?’

남자가 이 세계에서 어떤 위치에 있는지는 잘 알고 있다.

남녀역전 세계. 그것도 남녀 성비가 완벽하게 깨진 세상이었다.

예전의 세계에서는 여자가 예쁘면 고시 3관왕과 맞먹는다는 말이 있었다. 하지만 이 세계는 남자가 잘생기지 않아도 고시 3관왕은 저리 가라 할 정도로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을 수 있었다.

남자라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권력을 누릴 수 있는 세계였다.

하지만 상대는 하나의 그룹을 이끄는 재벌.

아무리 남녀역전의 세계라 할지라도 저 정도 수준의 여자라면 남자는 질리게 만나봤을 게 분명했다. 남자라는 타이틀만 가지고 단순하게 들이댈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물론, 그런 방법으로 통하는 이들도 있겠다만, 상대가 상대인 만큼 조심스럽게 행동해야 했다.

‘어떻게 해야 되려나….’

그나마 성공률이 높은 방법은 영웅이라는 자신만의 장점을 어필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감이 잘 오지 않았다.

게다가 남자 영웅들 중 몇몇은 재벌의 정부라는 소문도 들은 적이 있는 만큼 조은영이 남자 영웅에 대해 목말라 할 것 같지도 않았다.

‘큐우는 왜 이딴 퀘스트를 줘가지고….’

퀘스트랑 달랑 던져 놓고 사라진 큐우♡를 떠올리며 민국은 속으로 툴툴거렸다.

하필이면 보상인 Sex 코인도 딱 81 개였다.

민국이 구매를 하려고 생각하고 있던 【클래스 스톤(A) - 유니크 급】의 가격과 딱 맞아떨어지는 숫자였다. 2 등급 카오스 상점에서 유일하게 구입할 가치가 있는 물건이었다.

“맛이 별로인가요?”

어떻게 조은영을 유혹할까 머리를 굴리던 도중이었다. 조은영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 아뇨. 맛있습니다.”

“그런 것 치고는 잘 못 먹는 것 같은데?”

다시 이어지는 조은영의 물음에 민국은 속으로 고개를 저었다.

큐우♡의 퀘스트에 신경을 쓰느라 정신이 다른 곳에 있다는 티를 낸 모양이었다.

‘그룹의 부회장인 자신을 앞에 두고 다른 생각을 하는 상대라….’

아무래도 기분이 상했을 게 분명했다.

아마 호감도 메시지라는 것이 존재한다면 호감도가 감소했다는 소리가 들렸으리라. 하지만 핑계를 댈 게 없는 것도 아니었다.

“잠시 레이드와 관련된 생각을 했습니다.”

“레이드?”

다행히 조은영은 레이드와 관련해 관심을 보이는 모습이었다. 최근 베트남의 확산 현상이라는 큰 사건 때문에 로즈 그룹도 영향을 받은 것 때문으로 보였다.

“그러고 보니 GGW 공격대가 【A】 등급 던전의 공략을 준비한다는 이야기가 있던데?”

“맞습니다, 회장님. 현재 GGW는 【B - 1】 난이도의 던전을 공략하며 옐로우급 결정의 수급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이르면 다음 달 쯤 【A】 등급 던전의 공략에 들어갈 예정입니다.”

조은영의 물음에 대답은 한 것은 R’s 클랜의 구단주인 오현정이었다.

오현정의 대답에 민국도 고개를 주억였다. 그녀의 말대로 성급을 높이고 나면 바로 【A – 9】 난이도의 던전을 공략할 예정이었다.

“【A】 등급이라….”

입에서 잠시 말을 굴리던 조은영의 눈이 민국에게 향했다. 그녀의 눈썹에 부드럽게 휘어졌다.

“1 선에서 물러난 내가 할 말은 아니지만…. 조금 성급한 거 아닌가? 한민국 영웅은 아직 1 년차에 불과하잖아?”

어느새 말이 짧아진 조은영의 음성에는 민국에 대한 걱정이 담겨 있었다.

하지만 속내는 조금 달랐다. 그녀가 진정으로 걱정하는 것은 R’s 클랜은 물론이고, 로즈 그룹의 중요한 재산인 남자 영웅이 손실을 보는 것이었다.

민국이 행여나 무리하게 【A】 등급의 던전을 공략하다가 다치기라도 한다면? 혹은 타락하기라도 한다면? 보통 큰 손해가 아니었다.

때문에 조은영의 이러한 질문은 R’s 클랜을 관리하는 오현정에게 향한 물음이었다.

그런 부회장의 속내를 알아챈 현정이 침착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렇지 않습니다. 한민국 공대장을 포함해 GGW 공격대에 속한 영웅들은 5 등급 이하의 몬스터를 상대로는 얻을 게 전혀 없다는 게 저희 보드진의 판단입니다. 그럴 바에는 조금이라도 빨리 상위 등급의 몬스터를 상대로 경험을 쌓는 게 공격대의 기량 상승에 더욱 도움이 될 겁니다.”

“옐로우급 결정이라면 【B – 1】에서 얻을 수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나?”

“어느 정도 수급은 가능합니다. 그러나 【B – 1】 에서 등장하는 5 등급 특수 개체로는 열 명이나 되는 인원을 전부 커버할 수 없습니다. 게다가 6 성으로 성급을 높이기 위해서 필요한 결정의 숫자는….”

“맞아요. 마력의 결정을 얻을 확률이 100%인 것도 아니잖아요?”

이야기를 듣고 있던 조수영도 끼어들었다.

어머니인 부회장이 클랜의 일에 참견하려는 낌새가 별로라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딱히 하는 일은 없었지만 그래도 명색이 클랜의 구단주였다.

두 여자의 반대에 이번에는 조은영이 시선이 민국에게 향했다.

“흐음…. 한민국 영웅은 어때요?”

“네?”

“보아하니 【A】 등급 던전의 공략 준비를 하는 모양인데…. 그렇다면 대형급 개체를 상대하는 거잖아요?”

조은영의 말에 민국은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5 성 특수 개체중에서도 대형급 개체가 있기는 했지만, 진정한 대형 개체는 6 등급 몬스터 부터였다. 이 녀석들은 기본적으로 덩치가 큰 놈들이 많았다.

“앞으로 그런 괴물들과 싸워야 할 텐데. 두렵지 않으세요?”

조은영의 물음에 민국은 속으로 코웃음을 쳤다.

‘그럴 리가 있나?’

우주 소녀 전쟁에 등장하는 몬스터들 중에는 그 크기가 너무나도 커서 머리, 몸통, 배 이렇게 따로따로 세 번의 레이드를 해야 하는 괴물도 있었다.

그렇다고 레이드 난이도가 어려운 것도 아니었다.

다소 패턴이 복잡한 녀석도 있기는 하지만 아직까지는 초급 수준이라는 게 민국의 생각이었다. 처음 상대하는 몬스터도 열 번에서 스무 번 정도면 모든 패턴을 파악하고 클리어를 할 수 있었다.

‘막말로 우주 소녀 전쟁에서는….’

시즌의 최종 보스를 쓰러뜨리기 위해서는 세 자릿수의 트라이는 기본이고, 네 자릿수가 넘도록 트라이를 한 적도 있었다. 어떻게든 패턴을 넘기기 위해 포지션과 스킬 조합을 바꾼 적 역시 셀 수가 없을 정도였다.

그 때의 고생과 비교하면 지금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던전에서 마주했던 몬스터들의 복잡한 공격 패턴도 재미있다는 정도지 까다롭다는 생각은 한 적이 없었다. 그만큼 이 세계의 레이드 수준은 민국이 생각했을 때 높은 편은 절대 아니었다.

‘아, 12 재앙이라면 조금 다를 수 있으려나?’

그렇다 하더라도 어떻게든 공략 방법을 찾아낼 자신이 있었다.

우주 소녀 전쟁에서 최악의 보스 몬스터였던 우라디우스의 월퍼킬을 성공시켰을 정도로 민국은 레이드에는 통달한 남자였다. 그리고 민국의 이러한 자신감은 말로 곧 이어졌다.

“아니요. 전혀 두렵지 않습니다. 어차피 6 등급 몬스터 역시 결국 스쳐지나가는 괴물에 불과한 녀석이죠.”

기껏해야 다음 보스를 만나기 위해 상대해야 하는 통과점인 것이다.

“으음?”

의외의 대답에 조은영이 관심을 보였다. 그리고 민국은 눈앞의 고기를 잘게 자르면서 말을 이어나갔다.

“마력을 사용할 수 있는 영웅은 사람들에게 수호자라 불리죠. 그렇게 불리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괴물과의 전쟁을 끝낼 수 있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뜬금없이 영웅의 정의를 내리는 민국의 말에 세 여자의 시선이 민국에게 향했다. 그리고 큼지막하게 잘린 스테이크를 입으로 삼킨 민국이 다시 입을 열었다.

“인류의 수호자인 영웅은 결코 본인의 기량에 그리고 성장에 만족해서는 안 됩니다. 조금이라도 실력을 키워 하루라도 빨리 이 전쟁을 끝내야 하는 게 영웅입니다.”

그런 것을 생각하면 【A】 등급이나 5, 6 등급의 몬스터에게 발목이 붙잡혀서는 안 됐다.

대형 몬스터라는 괴물을 뛰어넘어 12 재앙까지 물리쳐야만 이 전쟁을 끝낼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래야만…. 자신을 이 세계로 보낸 카오스라는 존재도 다시 만날 수 있었다.

“호오….”

민국의 대답에 조은영이 묘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녀의 얼굴이 흐뭇하게 변했다.

“확실히 남자라도 공대장이라 그런 걸까? 말 하는 게 다른 남자들과 다르긴 하네.”

“연약한 여자를 지켜줘야 하는 건 남자의 할 일이죠.”

귀로 들려오는 부회장의 말에 다시 고개를 썰던 민국이 대수롭지 않게 입을 열며 말했다.

하지만 이어서 들려오는 웃음소리에 곧 어색한 표정을 지었다. 생각해보니 이 세계의 남자는 여성의 보호를 받는 역할이었다.

그리고 자신의 이러한 대답은 조은영 부회장에게는 제법 신선하게 다가왔던 모양이었다.

‘뜨겁네, 아주. 남성성이 강한 남자에게 흥미를 느끼는 건가?’

아니, 이 세계에서는 여성성이 강한 남자라고 해야 되나?

어쨌든 자신을 바라보는 그녀의 눈동자는 자신과 처음으로 얼굴을 대면했을 때와는 다르게 흥미롭다는 감정이 가득 담겨 있었다.

그리고 민국 역시 그런 조은영 부회장의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나이가 생각나지 않을 정도로 빼어난 외모를 지닌 여자였다. 퀘스트 때문이 아니더라도 기회가 있으면 한 번 쯤은 따먹어 보고 싶은 상대인 것이다.

거기에 실질적으로 로즈 그룹을 이끄는 부회장이라는 타이틀까지 더해지면 그 정복감이 상당할 것 같았다.

‘뭔가 계기가 있다면 좋을텐데….’

그러면 바로 퀘스트를 클리어 할 수 있었다. 게다가 식사 장소의 상층은 호텔이기도 했다.

그렇게 미묘한 분위기에서 대화를 나누며 식사를 마칠 때였다.

“남자는 연약한 여자를 지켜줘야 한다고 했죠?”

냅킨으로 입가를 조심스럽게 닦던 조은영 부회장이 민국을 향해 물었다.

“…그렇습니다.”

“그러면 나는 어떻게 보이나요? 로즈 그룹의 부회장인 나 역시 한민국 영웅에게는 연약한 여성으로 보입니까?”

뜬금없는 질문에 오현정과 조수영의 눈동자가 휘둥그레 변했다.

그리고 조은영의 질문을 받은 민국은 속으로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민국의 눈으로 묘한 열기가 담긴 조은영의 눈동자가 들어왔다. 여기서 어떤 대답을 해야 할지는 이미 정해져 있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 * *

식사를 마치자마자 조은영은 클랜을 대표할 영웅인 민국과 더 대화를 나누고 싶다는 말로 조수영와 오현정을 내보냈다. 축객령이었다.

“칫!”

오늘 밤 회포를 풀 거라 생각했던 조수영이 민국을 향해 입술을 삐죽 내밀었지만, 민국은 애써 그녀의 모습을 무시했다.

모녀 덮밥이면 더욱 좋았겠지만, 어쨌든 퀘스트를 클리어하려면 조수영보다는 조은영과 잠자리를 가져야 했다. 조수영이 잡은 물고기라 그런 것은 결단코 아니었다.

그녀들을 내보낸 조은영은 바로 엘리베이터로 이동했다. 민국 역시 그녀 뒤로 바짝 따라붙었다.

- 72 층입니다.

조은영의 가느다란 손이 곧바로 버튼을 눌렀다. 재벌이라 그런지 개인적으로 매번 사용하는 객실이 있는 모양이었다.

민국이 그런 생각을 하는 도중 조은영의 눈동자 역시 민국에게 향했다.

‘호텔 방으로 향하는 게 무슨 뜻인지 모를 정도로 멍청해 보이지는 않는데….’

너무나도 태연한 모습이었다. 로즈 그룹의 부회장이자 실질적인 회장이라 불리는 자신을 앞에 두고도 전혀 주눅이 들지 않고 있었다.

그래서일까? 조은영은 이러한 민국의 태도가 제법 마음에 들었다.

R’s 클랜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그녀는 로즈 그룹이라는 거대한 집단을 이끌며 산전수전을 다 겪은 여인이었다. 그런 조은영에게 남자란 단순히 흥미 이상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대한민국에 열 명밖에 되지 않는 남자 영웅도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영웅이라고 일반 남자들과는 다른 모습을 보이기는 했지.’

하지만 그 뿐이었다.

생긴 게 조금 반반하고, 마력을 다룰 줄 안다는 것을 제외하면 일반 남자들과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

그러나 자신의 옆에 서 있는 남자는 조금 달랐다.

재미있게도 자신의 딸보다도 어린 남자는 자신을 향해 욕정을 품고 있었다. 눈만으로도 범할 것 같은 뜨거운 시선을 그녀가 눈치 채지 못할 리 없었다.

조은영이 한민국이라는 남자에게 흥미를 느낀 건 그 때문이었다. 그런 그녀의 눈에 민국의 커다란 손이 들어왔다. 다른 남자들의 가느다란 손과는 조금 다른 손이었다.

‘괴물들과 직접적으로 전투를 벌이는 공대장이라 그런가?’

단단한 근육 속에서 시퍼런 핏줄이 굵게 드러난 모습이 가슴이 떨릴 정도로 섹시하게 느껴졌다. 과연 이 남자의 맛은 어떨지 벌써부터 궁금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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