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영웅 소녀 전쟁-151화 (151/486)

EP.151 김소정

“다들 공략 영상을 보셔서 잘 아시겠지만….”

민국의 눈동자가 아홉 명의 미녀들을 훑었다.

지금까지 치열하게 전투를 치렀다는 걸 보여주듯 다들 온 몸의 장비들이 긁히거나 부서져 있었다.

“화염불꽃 오크와의 전투는 화염늑대 소환과 불꽃 베기 그리고 불꽃 사슬의 처리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먼저 화염늑대 소환과 관련해서 주의할 점을 얘기하겠습니다.”

던전의 최종 보스를 앞두고 브리핑이 길게 이어졌다. 그리고 영웅들은 다들 고개를 주억이면서 민국이 말한 내용을 다시 한 번 머릿속으로 기억하기 시작했다.

현재 민국과 함께 GGW 공격대가 공략하고 있는 던전은 【B - 1】 난이도의 던전 중에서도 특수 개체가 가장 많은 던전 중 한 곳으로 알려져 있는 ‘화염협곡 오크 성채’였다.

추가 설명을 덧붙이자면 ‘화염협곡 오크 성채’는 인간형 몬스터로 가장 유명한 오크들이 셀 수도 없을 정도로 많이 나오는 곳이라 대다수의 공격대들이 공략을 꺼리는 곳이기도 했다.

아무리 강한 영웅이라도 오크에게 재수 없게 잡히기라도 하면 순식간에 오크의 육변기가 되어 순식간에 타락할 가능성이 높았다.

때문에 ‘화염협곡 오크 성채’는 던전 타이머가 위험할 때 7,8 성 딜러 영웅들이 진입해 빠르게 처리하는 식으로 타이머를 초기화시키곤 했었다.

물론, GGW 공격대에 속한 영웅들은 타락과 관련해 아무 상관이 없었다.

GGW 에는 ‘서큐버스 퀸 - 루디아’에게 타락했던 시라누이 마이를 완벽하게 만족시킨 민국이 있었다. 물건의 크기는 몇몇 오크가 더 클지 몰라도, 민국의 체력과 스킬은 야만적인 오크보다 몇 수는 위였다.

“그러면 바로 트라이 들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일단 난이도도 있는데다가 처음으로 경험하는 녀석인 만큼 열 번 정도는 맛보기 식으로 진행해 보도록 하죠.”

“다들 타락 조심해.”

민국의 말에 이어서 현아가 팀원들에게 경고하듯 말했다.

공대장인 민국이 있다지만 그래도 조심할 건 조심해야했다. 오크로 인해 타락하는 영웅의 숫자는 대한민국에서도 달에 열댓 명이 넘었다. 그리고 전투가 시작되었다.

- 콰! 라누아! 무이쿰까!

영웅들이 안전거리를 넘어선 순간, 화염불꽃 오크가 포효를 터뜨리며 덤벼들었다. 곧바로 메인 탱커인 현아가 화염불꽃 오크의 앞을 가로막으며 어그로를 잡기 시작했고, 타냐가 그런 현아의 뒤를 받쳐주면서 보스 몬스터의 공격을 막아냈다.

콰앙! 캉!

몸에서 불꽃을 뿜어내는 오크가 커다란 대검을 사정없이 내리쳤다. 그리고 현아는 범상치 않은 포스를 내뿜는 ‘화염불꽃 오크’의 공격을 겁내지 않고 막아내거나 맞받아쳤다.

레전더리 클래스인 피닉스 나이트를 얻은 이후, 탱킹에 대한 자신감이 부쩍 늘어난 모습이었다. 그런 현아의 플레이를 보며 민국은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탱커 유망주 랭킹이 어떻게 변할지 벌써부터 기대가 되었다.

“아직 딜 금지! 어그로가 안정적으로 잡히면 그때부터 딜 시작 합니다!”

뒤에서 느껴지는 마력에 민국이 공격을 시작하려는 원거리 딜러들을 향해 말했다.

몬스터의 어그로가 빠르게 잡히고는 있었다. 그래도 아직은 어그로가 불안정한 상태였다. 딜러들의 폭격이 시작되면 순식간에 어그로가 넘어갈 가능성이 높았다.

게다가 오크와 같은 인간형 몬스터는 어그로를 잡기가 좀 더 까다로운 괴물이기도 했다. 트라이 시간이 길어지더라도 최대한 조심해야 했다.

그렇게 탱커들과 ‘화염불꽃 오크’의 이 대 일 매치가 30 초가량 진행되었을까?

“지금!”

회복 능력을 사용하면서 어그로를 쌓는 장면을 지켜보고 있던 민국이 자신의 팔을 번쩍 들어 올렸다. 이어서 요란한 소리와 함께 마력구, 화살, 마법 등이 화염 오크를 향해 날아가기 시작했다.

본격적으로 시작된 트라이는 화염 오크의 특수 패턴들이 하나씩 등장할 때 마다 처음부터 다시 전투를 진행해야 했다.

그러나 전멸을 한 번씩 경험할 때 마다 GGW 공격대의 움직임은 눈에 띄게 달라지고 있었다. 상대 몬스터와의 전투와 몬스터가 사용하는 능력에 빠르게 적응하고 있다는 말이었다.

네 번째 트라이 만에 ‘화염불꽃 오크’의 모든 패턴을 파악한 GGW 공격대는 민국의 리딩에 맞춰서 신나게 불꽃에 휩싸인 오크를 두들겼다.

그리고 이어진 여섯 번째 트라이.

“늑대 처리했어!”

트라이 막바지에 보스 몬스터가 발악하듯 불러낸 화염 늑대를 쓰러뜨린 시라누이 마이가 본진을 향해 외쳤다.

삐익!

▶ “화염 협곡 오크 성채의”의 토벌을 완료했습니다.

▶ 영웅 패드에 업적 포인트가 5 주어집니다.

▶ 영웅 도감의 횟수가 갱신되었습니다.

그와 동시에 레이드도 끝이 났다. 본진이 상대하고 있던 ‘화염불꽃 오크’가 피투성이가 되며 쓰러지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시라누이 마이가 주먹을 불끈 쥐었다.

“나이스!!!”

“굿 잡!”

몇 번이나 부활석을 깨뜨려가면서 트라이를 했던 괴물이 쓰러지자 영웅들이 일제히 환호를 질렀다.

그리고 민국 역시 한숨과 함께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조금 전의 트라이를 복기했다.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패턴에 적응을 하느라 실수가 몇 개 있었다는 걸 제외하면 움직임과 호흡 자체는 전체적으로 좋았던 트라이였다. 다들 이전보다 한 단계 더 성장한 느낌이었다.

‘아무래도 베트남에서 구른 까닭이겠지?’

거기에 다들 재능과 열정이 있는 이들이었다. 그리고 이제는 신나게 굴렀던 보상을 확인할 차례였다.

“앗! 아아…!”

앞에서 들려온 안타까운 탄식에 만세를 부르던 이들이 환호를 멈추고는 시선을 돌렸다.

일단 ‘화염불꽃 오크’의 보상 상자에는 옐로우급 결정이 들어 있었다.

하지만 GGW 공격대가 타락의 위험을 무릅쓰고 ‘화염협곡 오크성채’를 찾은 이유는 단순히 옐로우급 결정만을 얻으려는 게 아니었다.

“이러면 한 바퀴 더 돌아야겠는데?”

“천호동 럭키걸? 오늘은 운 빨이 조금 떨어지네?”

“그래도 옐로우급 결정은 뽑았거든?!”

동료들의 키득거림에 현아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민국과 GGW 공격대가 오크 성채에서 노리던 아이템은 ‘화염불꽃 오크’가 들고 있는 거대한 대검이었다. 기어 스코어가 무려 445인 이 아이템은 공격대 내에서 유일하게 대검을 사용하는 영웅인 김소정이 쓸 무기였다.

문제는 그게 나오지 않았다는 거지만.

“에휴, 언니. 다음에는 제가 꼭 화염대검 뽑아드릴게요.”

천호동 럭키걸의 운 빨을 무시하는 발칙한 동료들에게 정의의 꿀밤을 날려준 현아가 소정을 향해 미안한 얼굴로 손을 비비적거리며 말했다.

빛기둥 정도는 아니지만 보상 상자에서 영웅들이 장비할 수 있는 아이템이 나올 확률은 그리 높은 편이 아니었다.

소정 역시 그런 사실을 잘 알고 있을 터. 그것 때문에 뭐라 하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속으로 실망은 했으리라.

“…….”

아니나 다를까 소정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소정의 표정을 확인한 현아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언니? 호, 혹시 제가 상자 열었는데 대검 안 나와서 많이 실망하셨어요?”

“…….”

“언니?”

“응? 아? 아, 아니. 아니야, 괜찮아. 잠깐 다른 생각 좀 하고 있었어. 대검? 아, 아무 때나 얻으면 되지. 정 안되면 경매장에서 구입하는 방법도 있고.”

멍하니 허공을 응시하고 있던 소정이 자신을 바라보는 현아를 발견하고는 화들짝 놀라며 손을 내저었다.

“……?”

그런 소정을 보며 현아가 고개를 갸웃했다.

‘무슨 고민거리라도 있는 걸까?’

딱 봐도 그런 것처럼 보였지만 직접적으로 그런 걸 묻기도 조금 그랬다. 나이가 어린 유나라면 모를까 소정은 그녀보다도 여섯 살이나 나이가 많았다.

“모두들 수고하셨습니다.”

팀원들을 향해 민국이 말했다. GGW 공격대의 오늘 일정은 이걸로 끝이었다.

‘화염협곡 오크성채’는 등장하는 몬스터도 많은데다가 보스 몬스터의 숫자도 많아서 아무리 빨리 돌아도 하루에 두 번 이상 돌기가 쉽지 않았다.

게다가 내부 역시 어마어마하게 넓었다. 덕분에 돌아가는 길도 한세월이었다. 그렇게 보상을 챙겨서 던전 밖으로 나오니 벌써 하늘이 어둑해지고 있었다.

“다들 고생했어요!”

“저희는 여기서 먼저 가볼게요. 오늘 한국의 야시장에 놀러가기로 했거든요.”

밖으로 나오자마자 켄달과 지젤이 허리를 꾸벅 숙이며 쏜살같이 사라졌다.

이어서 전투 보고서를 작성하기 위해 클랜 하우소로 돌아가야 하는 민국을 제외한 다른 여인들도 하나, 둘씩 퇴근했다. 결국 클랜 하우스로 가는 리무진 버스를 타는 인원은 민국과 현아 그리고 김소정 뿐이었다.

“그러면 나도 여기서 이만….”

“네? 여기서 내리시게요?”

그리고 클랜 하우스에 도착하지도 않았는데 몸을 일으키는 소정의 모습에 민국과 현아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소정이 딸과 함께 클랜 하우스의 7 층에 있는 기숙사에서 생활을 하고 있다는 건 공격대 멤버라면 다들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아, 응. 오늘은 약속이 있거든.”

소정이 어색하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그러자 현아가 고개를 끄덕이며 재차 물었다.

“아항! 친구요?”

“아, 그건….”

현아의 물음에 소정의 얼굴 위로 곤란하다는 표정이 떠올랐다.

전 남편이 관계된 이야기라 그런지 이들에게 말하기가 영 껄끄러웠다. 소정이 슬쩍 민국의 눈치를 보다가 조심스레 말했다.

“가족, 가족일 때문에 만날 사람이 있어서. 금방 돌아올 거야.”

“아항. 역시 가족이 좋죠.”

소정의 말에 현아가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가족? 오랜만에 부모님이라도 뵙는 건가?’

민국 역시 크게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가족 일이라고 말하는데 시시콜콜 캐물을 이유가 있었다.

그리고 소정은 그런 민국의 행동이 조금 섭섭하면서도 다행이라고 느꼈다.

“후우.”

R’s 클랜의 리무진 버스에서 내린 소정이 다시 출발하는 버스의 뒷모습을 보며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는 남이나 다름없는 전 남편을 만나러 간다니. 한민국 카르텔에 소속된 여자로 크게 잘못하고 있다는 기분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전 남편이 보내온 편지를 무시할 수도 없었다.

“빌어먹을 새끼….”

전 남편의 편지 때문에 소정은 어젯밤 뜬 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때문에 오늘 레이드에서도 여러 번 실수를 저질렀었다. 다행히 팀이 위기에 빠질 정도의 실수가 아니었기에 조용히 넘어갈 수 있었지만.

“왜 하필 지금 연락을….”

소정이 강하게 입술을 깨물었다. 전 남편에 대한 미련 때문은 결코 아니었다.

물론, 아빠라는 존재가 딸에게 얼마나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지는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책임감 없이 도망을 간 아빠 없이도 소중하게 그리고 예쁘게 키워낸 자신의 자식이었다.

소정이 전 남편을 만나려는 이유는 그 예쁜 딸을 전 남편이 해코지를 할까봐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양육권이라도 주장하게 되면?

‘그건 곤란해.’

골치 아픈 일이 벌어질 가능성이 높았다.

이 나라의 법은 양육과 관련해서는 여자보다 남자의 편을 더 많이 들어주는 경향이 강했다. 그런 만큼 오늘의 만남으로 더 이상 자신에게 접근할 수 없도록 완벽히 끊어내야 했다.

그렇게 소정이 무거운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잠시 후, 소정이 가만히 서 있던 자리에 두 남녀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가족은 확실이 아닌 것 같지?”

“…글쎄. 그런데 이거 범죄 아니야?”

“범죄라니? 무슨 말을 그렇게 해? 소정이 언니는 팀 동료잖아. 그러니까 우리가 도와줘야지.”

현아가 민국을 향해 말했다. 목소리도 표정도 단호하기 이를 데 없었다.

“어휴.”

레이드 보고서도 작성해야 하고, 집에 가서 공략 동영상도 시청해야 하는데….

그게 아니더라도 민국은 팀원의 개인사에 깊게 관여하고 싶지 않았다.

무슨 일이 있다면 모를까 괜한 오지랖이 민폐로 변질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물론, 오늘 본 김소정의 얼굴은 집에 우환이 있다는 게 느껴질 정도로 평소와 다른 모습이기는 했다.

“그래, 어쩔 수 없지. 대신에 들키면 어떻게 할 건데?”

“응? 들켜도 상관없어. 우리는 데이트하는 걸로 하면 되잖아?”

“…….”

태연한 현아의 대답에 민국은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확실히 그런 핑계라면 아무 문제도 없을 것 같았다. 그렇게 두 남녀가 조심스럽게 소정을 미행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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