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55 김소정
“반사 신경 A, 임무 수행능력 A+, 위기 대응능력 B- …. 당장의 스펙으로는 국내를 대표할 수준의 유망주는 아닙니다. 그러나 경험만 많이 쌓으면 충분히 랭커 클랜에도 어울리는 괜찮은 딜러가 될 것 같습니다. 게다가 공대장이 한민국 영웅인 것을 감안하면…. 성장세를 더욱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R’s 클랜의 전술 2 팀장이 말했다. 그녀가 말한 프로필은 김소정의 것이었다.
그리고 클랜의 전술 2 팀장은 김소정 뿐 아니라 오현아를 포함해 GGW 공격대에 소속된 영웅들의 모든 프로필을 정리해 왔다. 그 중에는 한민국에 대한 프로필 역시 포함되어 있었다.
전술 팀장의 이야기를 듣던 오현정이 고개를 주억이며 말했다.
“확실히 근접 딜러면 공급보다도 수요가 많은 클래스니까요. 근딜은 닥치고 붕대만 감으라는 말도….”
“옛날 말이죠. 오히려 최근에는 힐러들의 숫자가 상대적으로 많은 편이라고 합니다.”
자연스럽게 끼어드는 비서의 현정은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어쨌든 비서의 말은 틀린 게 없었다. 이는 영웅 학교 졸업생들의 포지션 분포만 봐도 알 수 있었다. 그 때문에 클랜 입단을 위해 클래스 변경을 하는 졸업생들도 전보다 크게 늘었다는 보고가 있었다.
“아! 그리고 오늘 아침에 들어온 보고입니다. 김소정 영웅이 유니크 클래스인 디스트로이어를 손에 넣었다고 하더군요.”
이번에는 전술 팀장의 말이었다. 그녀의 말을 들은 현정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네?”
“‘화염협곡 오크성채’에서 클래스 스톤을 획득했다고 한민국 공대장이 보고서를 올렸습니다.”
“그 공격대는…. 참 운이 좋네요. 유니크 등급의 클래스 스톤이 이리 흔한 거였나요?”
현정이 자신이 들은 보고에 대한 감상을 말했다.
이어서 자리에 있는 모두가 하나같이 고개를 저었다. 클래스 스톤이 그리 흔한 아이템이었다면 시장 가격이 그렇게 비쌀 리도 업었다.
하지만 베트남의 확산 현상에서 현아가 레전드 클래스를 손에 넣었다는 보고 이후로, GGW 공격대는 연달아서 유니크 등급의 클래스 스톤을 손에 넣고 있었다.
이쯤 되면 공격대에 속한 영웅들 전부를 유니크 이상의 클래스로 도배를 할 기세였다.
실제로도 공격대에 소속된 영웅의 반 수 가량이 유니크 클래스를 보유하고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R’s 클랜의 1 군이라 할 수 있는 공격대보다도 유니크 클래스의 숫자가 많았다. 고작해야 【B - 1】 난이도의 던전을 공략하는 공격대가 말이다.
“신이 한민국 공격대장을 만들었을 때, 인간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넣은 게 분명합니다.”
“뭐, 그 재능을 잘 발휘해서 우리도 구원해줬으면 좋겠는데요.”
“저희들이 잘 뒷받침해야겠죠.”
전술팀장의 말에 동의하며 현정은 다시 한 번 고개를 주억였다.
아무튼 현정이 클랜의 전술 팀장을 모아놓고 이런 이야기를 나누는 이유는 앞으로 있을 괴물과의 전투에서 최고의 결과를 내기 위한 공격대 멤버를 추리기 위해서였다.
아무 문제없이 잘 돌아가고 있는 GGW 공격대에 대한 평가 보고서를 받은 이유도 이 때문이었다.
현재 R’s 클랜은 랭커 클랜을 포함한 여러 클랜에서 괜찮은 이적 제안 몇 개를 받을 수 있었다. 본인들의 요청에 의해 R’s 로 이적하고 싶다는 영웅들이었는데, 개 중에는 국내 랭킹 10 위권 내에 이름을 올리고 있는 최상위 영웅들도 있었다.
‘당장은 서로의 수준 차이 때문에 GGW 공격대와 함께 할 수는 없지만….’
그 의도가 빤히 보이고 있었다.
보나마나 한민국과 GGW 공격대의 무시무시한 성장세를 예측하고 미리 공격대의 한 자리를 찜해 두겠다는 의도가 틀림없었다.
그러나 R’s 의 입장에서는 굳이 비싼 돈을 들여 그런 영웅들을 영입할 이유가 없었다. GGW 공격대는 혼자서 잘 커나가는 모범생이나 다름없었다.
그래도 현정이 굳이 이런 자리를 만든 이유는 이적을 원하는 영웅들의 이름값이 제법 높았기 때문이었다.
“어쨌든 우리 클랜에 관심을 보이는 영웅들은 그 누구를 영입하던 간에 지금 GGW 이상의 효율은 내기 힘들다는 거죠?”
“그렇습니다.”
“설령 가능하다 하더라도 멤버 교체에 대한 기존 멤버들의 거부감이 공격대의 분위기에 더 안 좋게 작용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뭐…. 모든 문제는 한민국 공대장의 의지에 따른 일이지만요.”
“랭커들도 그럴까요?”
전술팀장들의 말에 현정이 만약을 가정해서 물었다.
강채영, 최시연, 김은하와 같은 랭커. 그녀들과 한민국이 호흡을 맞춘다면 과연 어떤 결과가 나올까? 그리고 한참을 고민한 전술 팀장이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단기적으로는 확실히 도움이 되겠습니다만, 장기적으로는 어떻게 될지 예측할 수가 없습니다. 그만큼 공격대의 호흡과 케미라는 건 누구도 알 수 없는 문제인지라….”
한민국을 중심으로 똘똘 뭉칠지 아니면 본인만의 에고가 강한 랭커들이 한민국과 파워 싸움을 할지는 예상할 수 없는 문제였다.
물론, 전자의 경우가 훨씬 많기야 하겠다만….
굳이 잘하고 있는 이들의 호흡을 깨뜨릴 이유는 없을 것 같았다. 그렇게 R’s 클랜은 새로운 영웅의 영입 없이 기존의 영웅들로만 던전을 관리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어차피 랭커 클랜의 타이틀도 빼앗긴 터라 관리할 던전의 수준도 그리고 양도 많지 않았다.
* * *
“안녕!”
“안녕하세요!”
밝은 인사 소리에 민국의 고개가 한쪽으로 돌아갔다. 던전을 앞에 두고 현아와 유나가 태블릿을 보며 큰 소리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누군가와 영상 통화를 하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은근슬쩍 그녀들이 하는 행동을 확인하던 민국이 헛웃음을 터뜨렸다.
둘이 무엇을 하는지 금방 알아차릴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둘은 다른 사람들을 상대로 인터넷 방송을 진행하고 있었다.
- 어, 어엇?! 언니! 뒤에! 뒤에요!!!
- 어엌ㅋㅋㅋㅋㅋㅋ 방금 내 눈에 영롱한 후광이 비쳤어요! 이게 바로 용안인 건가요?!
- 남자다! 남자!!!!
- 왜들 그래? 남자 손목 한 번 못 잡아 본 사람처럼? 자! 다들 침착해! 오빠아아아아아악!!!
채팅창에 올라오는 비명에 가까운 글들에 현아의 고개가 자연스레 뒤로 향했다. 아니나 다를까 공대장인 민국이 눈을 끔뻑이며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잠깐 민국을 바라보던 현아의 얼굴이 새카맣게 변했다.
‘어, 어라?!’
생각해보니 방송을 하는 것에 대해 공격대장인 민국과 상의를 한 적이 없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유나도 같은 생각을 한 모양인지 얼굴이 굳어 있었다.
그리고 잠시 고민을 하던 현아가 민국을 향해 조심스레 물었다.
“…우, 우리들이 영웅 방송 한 번 준비해 봤는데, 너도 팬들에게 한 마디 할래?”
“어? 그러지 뭐.”
시원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민국의 모습에 현아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히 쓸데없는 짓을 한다고 화를 내거나 하지는 않을 모양이었다.
“여기에 대고 이야기하면 돼?”
“응, 카메라는 여기를 보고 하면 돼.”
“…카메라? 이거 드론이야?”
민국의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검은색의 상자가 프로펠러 없이 허공을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안타깝게도 시청자들의 채팅은 태블릿으로 확인을 해야 했지만, 어쨌든 야외 촬영 용으로는 최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힐끔 태블릿의 채팅을 보자 채팅창이 완전히 난리가 나 있었다. 보나마나 남자가 등장했기 때문으로 보였다. 왜, 예쁜 여자가 게스트로 오면 시청자수가 폭발하는 것처럼 말이다.
‘나도 옛날에는 우주 소녀 전쟁을 다루는 BJ 가 되고 싶었는데….’
자신을 환영하는 사람들의 채팅을 보며 민국은 입술을 쓸었다. 괜히 옛날의 생각이 떠올랐다.
월드 퍼스트 킬을 달성하기 위해 우주 소녀 전쟁에 목숨을 걸며 백수 생활을 하던 무렵, 인터넷 방송으로 돈을 벌고 싶었던 적이 있었다. 실제로 외국 유저들은 그런 컨텐츠로 많은 돈을 벌어들이고 있었고 말이다.
게다가 우주 소녀 전쟁을 즐기던 자신은 대한민국의 랭커 1위였던 유저였다.
하.지.만….
성 상품화라는 단어를 내세운 정부 단체에서 우주 소녀의 소녀라는 단어에 대한 태클과 함께 소녀에 속하는 여성 캐릭터가 많이 등장하는 게임은 개인 방송을 하지 못하도록 법으로 금지를 때려 버렸다.
황당한 것은 말도 안 되는 그 법이 순식간에 통과가 되었다는 것.
덕분에 민국 역시 GGW를 통해서 한 푼도 벌어들일 수 없었다. 방송을 했다가는 벌금만 물게 될 뿐이었다.
기껏해야 게임 내 기능을 통해 여러 시청자들과 소통은 할 수 있었지만 안타깝게도 그걸로 수입을 올릴 수는 없었다. 다행히 이 세계는 그런 제한이 없는 모양이었다. 아니, 오히려 성 상품화를 권장하지 않을까 싶었다.
민국이 모습을 드러내자마자 후원창이 폭발하고 있었다.
1000 원, 3 달러, 50 달러, 만 원. 후원금을 보냈다는 메시지가 노래방에 예약한 곡들처럼 계속해서 생겨나고 있었다.
“와…. 역시 남자가 나왔다고 후원금 폭발하는 것 봐. 너희들 너무 속보이는 거 아니야?”
현아가 채팅창을 보며 입술을 삐죽였다.
자신과 유나가 콤비로 방송을 진행했을 때는 가뭄에 콩 나듯 가끔씩 들어오던 후원금 메시지가 민국이 등장하자 쉴 새 없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방송국이 가장 사랑하는 게스트가 남자 영웅이라는 데 그 이유를 제대로 알 것 같은 모습이었다.
“고, 공대장님. 한 마디 하세요.”
후원금이 폭발하는 데도 불구하고 아무런 리액션이 없는 민국의 모습에 유나가 눈치를 보며 말했다.
“아! 오랜만에 방송을 보는 거라 신기해서 한참 쳐다보고 있었네.”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어쩐지 말이 없더라니 그런 이유 때문 이었어ㅋㅋㅋ
- 아앗! 너무 커엽잖아!
유나의 말을 시작으로 민국은 두 여자와 함께 시청자들과 간단하게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아직 팀원들이 전부 오지 않은 터라 시간적으로도 여유가 있었다.
대화의 내용은 영웅들의 임무 그리고 GGW 공격대에 관련된 내용들이 주로 이어졌다.
간간히 자신에 대해 사적인 것들을 물어보는 질문도 있었지만, 민국은 본인이 대답해 줄 수 있는 수준이면 시원하게 대답을 해줬다.
그리고 그런 민국의 대답은 본의 아니게 팬들의 큰 환심을 사고 있었다. 대다수의 남자 방송인들은 신비주의를 표방한답시고, 알려주는 게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웬 방송이야?”
그렇게 십여 분 정도 시청자들과 대화를 나눈 민국이 현아와 유나를 향해 물었다.
“아! 내가 GGW 일기장 운영하는 거 알고 있지?”
현아의 말에 민국이 고개를 끄덕였다. 민국도 가끔 들어가서 현아가 올린 글들을 읽은 적이 있었다.
현아가 공격대에서 있었던 일들을 개인적으로 끄적거리며 팬들과 소통하는 SNS였지만, 나름 GGW 공격대에 대한 홍보도 겸하고 있었다.
‘그거 조회수가….’
실제로도 굉장히 높았다.
GGW 공격대의 객관적인 기량은 【B - 1】 난이도의 던전을 클리어 할 수 있는 정도에 불과했다.
하지만 GGW 공격대가 신규 공격대라는 점, 또한 극히 드문 남자 영웅이 공대장이라는 점과 더불어 공격대에 속한 영웅들의 성장세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빠르다는 이유 때문에 국내는 물론이고, 해외에서도 많은 관심을 받고 있었다.
물론, 베트남의 확산 현상을 막는데 공헌한 것 역시 주목도의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거기에 팬들이 방송을 해달라는 댓글이 너무 많이 달려서 말이야. 그래서 유나랑 함께 방송을 준비하기로 했지.”
“아….”
며칠 전, 그런 이유 때문에 밤늦게 집에 들어왔던 모양이었다. 어쩐지 유나랑 쇼핑을 하고 왔다고 하더니만.
“클랜장님은?”
“당연히 알고 계시지. 그리고 던전 공략을 풀 타임 방송하는 영웅들도 제법 많아.”
“…풀타임? 레이드 장면을 보여준단 말이야?”
“응? 응.”
“그다지 보기 좋은 장면은 아닐 텐데?”
민국의 시선이 채팅창을 흘끗 확인했다. 방송은 자극적일수록 인기가 많다지만 솔직히 말해 회의적이었다.
던전 공략은 우주 소녀 전쟁과 같은 게임이 아니다. 부활석이 있다 해도 언제 끔찍한 사고가 터질지 모르는 것이다. 하물며 인간형 몬스터에게 붙잡혀 영웅이 타락하는 모습이 방송으로 나오기라도 한다면….
‘어라? 상관없나?’
어떻게 보면 생방송으로 포르노를 진행되는 격이었다.
이 세계 여자들의 성욕을 생각하면 환호를 터뜨린 여자들이 더 많을 것 같았다. 영상 카테고리는…. 어디에 들어가야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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