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60 징조
중국은 넓은 땅덩이만큼이나 인구가 정말 많은 국가였다.
계속되는 괴물과의 전쟁으로 많은 사람들이 죽어 나갔지만, 그래도 중국에는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그런 까닭에 허베이 성의 청더시 부근에서 터진 던전 브레이크는 엄청난 인명 피해를 내었다. 브레이크가 터진지 반나절 만에 십만에 가까운 사망자가 나온 것이다.
갑작스러운 몬스터 군대의 공격에 청더시 근처에 있는 현급 도시가 전부 쓸린 까닭이었다.
“빨리빨리!!!”
“텐진에 사령부를 세우고 27, 38, 65 집단군을 출동시켜! 청더시와 쭌화시, 첸안시에서 몬스터를 막아내야 한다!”
중국 군대와 영웅들의 대응도 느리지는 않았다.
하지만 땅덩이가 워낙 넓은데다가 전혀 예상치 못하게 브레이크가 터진 까닭에 인명 피해가 컸다. 12 재앙의 움직임이 소강상태에 빠진 이후 생겨난 유례가 없는 엄청난 피해였다.
그리고 이는 많은 사람들의 끔찍한 기억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하루에도 수많의 병사들이 죽어나가던 어둠 괴물과의 본격적인 전쟁이었다.
- 중국 청더시에서 브레이크 발발!
- 인명 피해만 현재 10만이 넘어가는 중!
소식을 들은 세계 영웅 협회는 바로 화상 회의를 열었다. 그리고 중국에 대해 영웅들과 공격대를 지원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악몽과도 같은 시간이 다시 재현되는 건가?”
“12 재앙의 움직임은 아직 잠잠하다. ‘말의 탑’ 역시 중국의 두 개 공격대가 움직임을 주시하고 있네. 분명 이번에도 베트남의 사태처럼 잘 마무리 할 수 있을 거야.”
세계 영웅협회의 간부들은 실시간으로 갱신되는 보고서를 확인하며 서로의 의견을 나누었다.
다행이도 12 재앙의 본격적인 움직임은 없었다. 말의 탑에 있는 바이콘도 그렇고, 바이콘의 친위대라 할 수 있는 흑마들도 아직까지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물론, 그렇다 하더라도 방심은 금물이었다. 어둠 괴물과의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고 조금의 방심은 엄청난 인명 피해로 이어질 가능성이 컸다.
“느낌이 좋지 않아. 반 년 만에 벌써 두 번째 브레이크야. 적어도 자연적인 현상이라는 생각은 아닌 것 같네.”
미국의 영웅협회장이 자신의 의견을 개시했다.
“단순히 관리 소홀로 인한 터진 브레이크 일수도 있어.”
“설령 그게 아니면 어떤가? 우리는 베트남에서 터진 【A – 2】 던전의 브레이크도 막아냈어. 【A – 7】 정도면 어렵지 않게 막아낼 수 있어. 우리 영국에서도 최고의 실력자들을 지원하겠네.”
그에 반해 유럽 쪽의 영웅 협회장들은 이번 사태가 커지는 것을 우려하는 모습이었다.
어둠 괴물들과의 전면전이 소강상태로 이어진지 십여 년. 조금씩 평화에 익숙해질 시기였다. 그런 만큼 유럽의 협회장들은 이번 브레이크가 어둠 괴물과의 본격적인 전쟁으로 이어지는 시발점이 되는 걸 두려워했다.
- 이시연 한국 영웅 협회장! 중국의 브레이크 관련 문제로 클랜장들 소집!
허베이 성에서 일어난 브레이크 소식에 한국 영웅협회는 바로 각 클랜들의 클랜장들을 소집했다.
메모리아와 같은 랭커 클랜은 물론이고, 소속된 영웅의 숫자가 서른밖에 되지 않는 중소 클랜조차도 영웅 협회로 향했다.
뿐만 아니라 중국과의 국경선 근처에 배치된 한국 군대 역시 실전 배치에 들어갔다. 그들은 몬스터들이 몰려오면 영웅들과 함께 격퇴할 예정이었다.
이러한 한국 영웅협회와 군대의 행동은 중국과 한국의 거리를 생각하면 너무나도 당연한 대응이었다.
브레이크가 일어난 허베이 성은 중국의 수도인 베이징을 둘러싸고 있는 행정구역. 한 마디로 한국의 코앞이나 다름없는 곳에서 브레이크가 터진 상황이었다.
“우리도 가겠지?”
현아가 의자에 앉아서 말했다.
클랜 하우스에 있는 GGW의 회의실에는 모든 팀원들이 모여 있었다. 중국에 브레이크가 터졌다는 말에 모두들 당연하게 클랜 하우스를 찾은 것이었다.
GGW 공격대의 회의실만이 아니었다. R’s 클랜에 소속된 영웅들이 사용하는 회의실에는 하나같이 북적이고 있었다. 그만큼 사태가 심각하다는 말이었다.
“그렇지 않을까요? 이번 브레이크는 베트남보다도 범위가 넓다고 하던데….”
유나가 현아의 말을 받으며 말했다.
【A – 7】 난이도의 던전이 폭발하면서 생겨난 브레이크였다. 베트남과 비교하면 확산 현상의 범위는 좀 더 적을 게 분명했다. 하지만 확산 현상으로 생겨난 어둠의 폐허에 영향을 받는 던전이 한, 두 군데가 아니라고 했다.
‘언론들이 저렇게 떠들 정도면…. 진짜 상황이 엄청나게 심각한 거겠지?’
민국의 눈이 회의실의 티비로 향했다.
뉴스의 패널로 나온 여성이 목에 핏대를 세워가며 이번 현상의 위험성을 설명하고 있었다. 그녀는 어둠의 폐허 때문에 브레이크가 연속으로 터지는 것은 이미 기정사실이나 다름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어쨌든 확산 현상이 본격적으로 진행되던 오늘 아침부터 중국군과 몬스터와의 전면전 또한 벌어졌다고 했다. 이로 인해 얼마나 많은 영웅들과 군인들이 죽어나갈지는 상상조차 되지 않았다.
“후우.”
한숨과 함께 민국은 회의실에 모인 동료들을 바라보았다.
이 세계의 사람들은 수십 년이 넘도록 어둠의 괴물들과 전쟁을 치러왔다고 했다. 그래서일까? 팀원들의 반응은 생각 외로 태연했다. 으레 올 게 왔다는 반응이었다.
‘좋으면서도 진짜 암울한 동네네.’
남성이라는 성 자체가 권력인 세상. 자신의 의지에 따라 언제든지 예쁜 여성을 언제든지 품에 안을 수 있는 세상. 이것만 놓고 보면 이 세계는 남자에게 천국이나 다름없는 세상이었다.
하지만 끔찍한 괴물들이 시도 때도 없이 이 세상을 무너뜨리기 위해 달려들고 있었다. 마치 좋은 걸 누리고 싶으면 그에 상응하는 공헌을 쌓으라고 말을 하는 것 같았다.
“공대장님. 클랜장님이 주신 언질 같은 건 없습니까? 베트남의 확산 현상 때 원정을 떠났으니 이번에는 국내에 머무르라는 이야기라던가…?”
시라누이 마이가 물었다. 그녀의 검은색 눈동자가 민국을 주시했다.
‘공대장님은 어떤 생각을 하고 계실까?’
그녀가 본 민국은 여성이 아닌 남성이지만 그 어떤 여성 영웅보다도 적극적으로 어둠 괴물과의 전쟁에 임하는 모습을 보였다.
다른 남자 영웅들이 사무직 혹은 지원팀으로 몸을 빼는 것과는 완벽하게 상반되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렇기에 시라누이는 그런 민국이 더 걱정이 되었다. 이렇게 인류를 지키겠다는 사명을 지닌 영웅들의 최후가 어땠는지는 역사가 말해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직. 하지만 나 역시 우리 공격대가 중국의 확산 현상을 막기 위해 나설 거라는 말에는 동의하는 편이야.”
베트남의 확산 현상과는 상황이 달랐다.
이번 확산 현상이 조금이라도 커지게 되면 한국 역시 직접적인 영향을 받을 게 분명했다.
괜히 한국 영웅 협회가 확산현상이 터졌다는 기사가 나오자마자 한 시간도 채 지나지 않아 메모리아를 포함한 랭커 클랜의 클랜장들을 소집한 게 아니었다.
‘그런 위기 상황에서….’
자신을 그냥 둘리 없었다.
사람들에게 알려진 한민국이라는 영웅은 베트남의 확산 현상에서도 활약을 한 뛰어난 실력의 공대장이었다.
GGW 공격대 마찬가지였다. 7 등급 몬스터가 등장하는 【A – 5】 이상의 난이도는 공략이 불가능하지만 6 등급 몬스터가 등장하는 【A – 9】 난이도의 던전은 이미 클리어를 한 경험도 있었다.
그 말은 즉, 자신들의 기어 스코어에 따라 【A – 5】 난이도 이하의 던전 역시 공략이 가능하다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다른 이들도 민국과 비슷한 생각을 하는 모양이었다.
“저도 그래요. 아무래도 베트남에서 활약을 했던 우리들을 국내에 그냥 두지는 않겠죠.”
“또 원정이네. 그나저나 우리까지 원정을 나가면 리바이벌 팀이 엄청나게 바빠지겠는데?”
속된 말로 광부 팀이라 불리는 리바이벌 팀은 클랜의 2, 3 군 정도의 영웅들이 소속된 공격대를 가리켰다.
주로 【B – 1】 에서 【B – 3】 난이도의 던전을 클리어하면서 부활석을 획득하는 걸 목표로 하는 공격대였다. 그리고 이런 리바이벌 팀은 메인 공격대가 특별 임무로 인해 클랜을 이탈했을 때 클랜의 맡은 던전 타이머를 관리하는 역할도 겸하곤 했다.
“아무래도 원정을 나가는 동안에도 국내의 던전을 관리할 공격대는 있어야 하니까요.”
그렇게 팀원들 사이에서 여러 대화들이 계속해서 오갔다. 민국도 팀원들의 대화를 들으며 생각에 잠겼다.
‘일단은 오현정 클랜장이 회의에서 돌아와야 알 수 있겠지만….’
중국으로 가는 건 기정사실일 것 같았다.
그나마 자신을 포함해 모든 영웅들이 5 성이 되었다는 건 다행이었다.
일단 지금보다도 기어 스코어가 높은 장비를 착용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5 성 영웅의 한계라 불리는 기어 스코어 600의 장비라면 현재 평균 450 대의 장비와 비교했을 경우 대략적으로 1.3 배에서 최대 1.7 배에 가깝게 능력을 증폭시킬 수 있었다.
똑똑.
그러던 도중 누군가가 GGW 공격대 회의실을 문을 두드렸다. 막내인 신나연이 문을 열자 한 여성 영웅이 들어와 인사를 건넸다.
“한민국 공대장님, 클랜장님이 찾으십니다.”
여성 영웅의 말을 들은 민국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왠지 올 게 왔다는 기분이었다.
* * *
종종 걸음으로 빠르게 클랜장실에 도착한 민국은 노크와 함께 바로 문을 열고 클랜장실로 들어섰다.
“오셨습니까?”
“아, 생각보다 빨리 왔네요. 잠깐만 앉아주세요.”
익숙한 얼굴 둘이 민국을 반겼다. 오현정과 그녀의 비서였다. 민국이 왔음에도 불구하고 현정은 전화기와 태블릿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그렇게 얼마나 기다렸을까?
“기다리게 해서 죄송해요. 다른 클랜과 조율할 일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어서.”
“이해합니다.”
그런 현정의 말에 민국은 아니라는 듯 고개를 저었다. 오래 기다린 것도 아니고, 지금은 확산 현상이라는 비상 상황이었다.
“일단 지금 사태가 어떤 지는 대충 알고 계시죠?”
“네. 【A – 7】 난이도의 던전이 폭발하면서 던전 브레이크가 일어났고, 확산 현상이 시작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아침에 중국군과 몬스터와의 전투가 벌어졌다는 이야기도 들었고요.”
전부 뉴스에서 본 것들이었다. 그리고 민국은 지금 이후에 일어날 일들 역시 알고 있었다.
확산 현상으로 인해 어둠의 폐허가 된 장소에서는 임시 던전들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날 게 분명했다. 베트남처럼 말이다.
“네. 맞아요.”
오현정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녀의 말은 이게 끝이 아니었다.
“일단 알려진 것은 딱 그 정도예요. 하지만 그 쪽 상황은 뉴스에서 얘기한 것보다 훨씬 심각합니다.”
“네?”
민국의 반문과 함께 방 안은 무거운 침묵으로 일렁였다. 대답을 요하는 민국의 눈동자가 오현정에게 향했다.
“【A – 7】 난이도 뿐 아니라 【A – 9】 난이도의 던전도 같이 폭발했어요. 지근거리에서 두 개 던전이 동시에 폭발한 거죠.”
“…그러면 문제가 되는 겁니까?”
민국이 되물었다.
비슷한 장소에서 터진 브레이크면 오히려 다행이 아닐까? 확산 현상으로 오염되는 땅이 겹쳐질 테니 말이다. 하지만 오현정이 말한 내용은 제법 심각했다.
“네. 임시 던전의 밀집도가 문제가 되요. 그 조그마한 공간에 최소한 수천 개의 임시 던전이 생겨날 거예요. 그리고 던전이 생겨난 땅 위로는 브레이크에서 빠져나온 수많은 몬스터들이 돌아다니고 있겠죠.”
“…….”
“임시 던전을 클리어하고 나왔는데, 몬스터들이 공격대를 포위하고 있는 뭐 같은 사태가 일어날지도 모릅니다. 혹은 임시 던전을 클리어하고 나왔는데, 바로 또 다른 임시 던전으로 빨려갈 수도 있죠. 뭐, 후자와 같은 경우는 많지 않겠지만요.”
“어, 음….”
어쨌든 쉴 새 없이 전투를 해야 한다는 말로 보였다.
“몬스터들이 그렇게나 많다면 중국군의 지원은요?”
“그 쪽도 본인들의 상황을 파악하고 있으니 할 수 있는 만큼 최대한 하겠죠. 여기서 브레이크가 연달아서 폭발한다? 허베이 성은 물론이고, 베이징도 끝이에요.”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오현정의 손가락이 지도에 나타난 청더시의 북쪽 한 부분을 찍었다.
“여기에 말의 탑이 있는 거 아시죠? 몬스터를 물리친답시고 대규모로 폭격을 하거나 하지는 못할 겁니다. 행여나 바이콘이 뛰쳐나오기라도 하면 다시 전쟁이 시작되는 거니까요. 중국도 그것만큼은 피하고 싶을 거예요.”
목이 타는 모양인지 오현정이 앞에 놓인 컵의 물을 들이켰다.
“그리고 우리도 그런 일이 생기는 건 어떻게든 막을 생각입니다. 어디까지나 이번 확산 현상은 중국에서 끝내야 해요.”
그렇게 말을 끝낸 현정은 자신의 손가락을 부자연스럽게 까닥였다. 오래 전에 끊었던 담배가 다시금 생각나는 현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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