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영웅 소녀 전쟁-161화 (161/486)

EP.161 징조

“실례 좀 할게요.”

민국이 대답하기도 전에 현정이 먼저 입에 담배를 물었다. 그리고는 자신의 품을 뒤지기 시작했다.

뭐, 담배 냄새를 혐오하는 것도 아니고 한 때는 자신도 흡연자의 길을 걸었던 터라 민국은 저런 현정의 행동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지금과 상황에서 느껴지는 담배의 유혹은 마약 그 이상이었다.

“원래 실내에서의 흡연은 안 되는 거지만, 상황이 상황인지라 이번은 봐줍니다.”

치이익.

비서의 찡얼거림과 함께 필터에 불이 타들어갔다.

현정이 깊게 숨을 빨아들었다가 내뱉자 매캐한 연기가 클랜장실에 가득 찼다.

‘담배는 태우는 미인이라….’

민국의 눈동자가 현정에게 향했다. 현정에게서 느껴지는 퇴폐미에 몸이 뻐근해지는 느낌이었다.

문득 그녀와의 격렬했던 섹스가 떠올랐다. 현아와 함께한 쓰리섬이었다. 그 때는 담배 대신 자신의 것을 저 입술에 물게 했었다. 그리고 정액까지 싸질러 넣었다.

‘비서가 없었다면…. 아니, 있어도 상관없나?’

머릿속으로 드는 상상에 웃음이 절로 나왔다.

자신이 유혹만 한다면 눈앞의 두 여인이 알아서 대 줄 것 같다는 착각이 든 탓이었다.

요즘 인터넷 방송으로도 그렇고 자신을 띄어주는 사람이 너무 많다보니 별의별 생각이 다 드는 모양이었다.

“그렇다면 저를 부른 이유는 GGW 공격대로 하여금 중국으로 가라는 이야기겠군요.”

“네, 맞아요. 사실 보내고 싶지는 않았지만 영웅 협회에서 간절하게 요구를 하더군요. 그리고 이번 원정에는 클랜의 1 군도 함께 갈 예정이예요.”

“…네?”

민국이 현정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GGW 공격대가 가는 마당에 1 군까지 보내는 것은 조금 의외라는 생각이었다.

R’s 클랜의 1 군이 랭커 클랜에 비해 실력이 떨어진다 해도 7 등급 보스 몬스터들 정확히 말하면 7 등급 중에서도 공략 난이도가 조금 떨어지는 괴물까지는 공략이 가능한 이들이었다.

난이도로 따지면 【A - 4】 나 【A - 5】 까지는 공략이 가능한 나름 상위 축에 들어가는 영웅들이었다.

때문에 장미 방패단이 담당하는 던전 역시 그 정도 수준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국내에 남게 될 클랜의 리바이벌 공격대로는 결코 클리어 할 수 없는 난이도였다.

‘그럼에도 중국으로 1군 공격대를 보낸다는 이야기는….’

그만큼 상황이 좋지 않다는 말과 동일했다.

뭐, 그렇다고 해서 국내의 문제를 내버려두고 대책 없이 영웅들을 투입하는 건 아닐 터였다. 눈앞의 여인이 그 정도의 바보는 아니었다. 오히려 영악하면 영악했지.

“그래도 한민국 공대장님이 원하지 않으시면 억지로 보낼 생각은 없어요. 일단 베트남 원정도 다녀온 만큼 사람들도 그리 나쁜 시선으로 보지는 않을 거고요.”

이어지는 현정의 말을 들으며 민국은 고개를 끄덕였다. 거기에는 남자라는 이유도 큰 부분을 차지할 게 틀림없었다. 하지만….

‘가는 게 낫다.’

자신과 팀원들의 빠른 성장을 위해서라면 중국으로 떠나는 게 맞았다.

어둠의 폐허에서 우후죽순으로 생겨나는 임시 던전을 클리어하면서 마력의 결정을 흡수하고, 빠르게 성급을 높여야 했다. 그래야만 더 좋은 장비를 착용할 수 있고, 더 강력한 몬스터를 레이드 할 수 있었다.

자신에게 그리고 팀원들에게도 힘든 길이겠지만 성장을 위해서라면 어쩔 수 없이 감내해야 했다.

“언제까지 준비를 하면 됩니까?”

이왕 이렇게 된 거 갈 수 있으면 빨리 가는 게 좋았다.

이 세계는 아직 전쟁 중에 있는 세계였다. 잠시 짤막한 평화를 누리고 있을 뿐이었다.

언제 감당할 수 없는 적이 나타날 지 알 수 없었다. 그런 상황이 벌어지기 전에 빠르게 실력을 높여야만 했다. 시간은 GGW 공격대가 성장할 시간을 충분히 기다려주지 않는 느낌이었다.

“원하신다면 오늘 오후에라도 출발할 수 있어요. 중국에서 온 비행기가 이미 공항에서 대기 중에 있고요.”

현정이 말했다.

“아!”

그리고 그녀의 말은 이게 끝이 아니었다.

“GGW 공격대의 출장비용과 목숨 값은 중국 정부에게 톡톡히 받아낼 예정입니다. 그러니 베트남의 경우처럼 무사히 다녀오기만 하세요. 그리고 행여나 상황이 위험할 것 같으면 무조건 도망치셔야 합니다.”

민국이 고개를 끄덕였다. 위험할 때 도망치라는 것에는 민국 역시 동의하는 바였다. 그렇게 GGW 공격대의 중국 지원이 결정되었다.

* * *

부우우우웅!

엔진음과 함께 공항에 대기하고 있던 수송기가 날아올랐다.

수송기에 탑승한 영웅은 GGW 공격대와 라유니안이라는 클랜의 1 군 공격대였다.

랭킹 18 위의 클랜으로 라유니안의 공격대장은 잠깐 대화를 나눠본 결과 인류를 위해 싸우겠다는 정의감이 투철한 여인이었다. 물론, 그 이상으로 몬스터에 대한 적대감을 드러내는 걸 보면 뭔가 사연이 있어 보이기도 했다.

“…….”

수송기의 목적지는 베이징이었다. 베이징으로 향하는 동안 민국은 눈을 감고 정신을 집중했다. 베이징에 도착한 후 무엇을 해야 할지 우선순위를 머릿속으로 정했다.

‘일단은 임시 던전들을 처리하는 게 급선무겠지.’

던전 타이머가 짧은 임시 던전은 잠깐의 방심이 브레이크로 일어질 수 있었다. 그리고 어둠의 폐허로 변해버린 땅은 또 다른 던전과 몬스터들을 만들어내는 악순환을 불러올게 분명했다.

만약 GGW 공격대가 확산 현상에 투입되면 【A – 9】 난이도 수준의 던전을 도맡아 처리해야 할 게 분명했다.

여기서 공략 범위를 좀 더 높게 잡으면 【A - 6】 까지. 그 이상의 던전들은 베트남과 마찬가지로 상위 영웅들에게 맡겨야 했다.

‘원래는 【A - 8】 을 공략하는 것도 힘겨운 일이겠지만….’

자국이 처한 심각한 위기 때문인지 중국 영웅 협회에서 통 큰 결정을 내렸다.

자기네들이 보관하고 있던 영웅 장비들을 전부 중국을 도와주려는 영웅들을 위해 반출한 것이다.

최상위 영웅들에게는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은 결정이었지만 전체적으로 중급 영웅 수준에 속하는 GGW 공격대에는 엄청난 혜택이라 할 수 있었다.

덕분에 지금 사용하는 장비보다 몇 단계는 위에 있는 장비를 손에 넣을 수 있었다. 그것도 공짜였다.

물론 각인 장비는 한 부위라는 제한이 있고, 나머지는 일반 장비였지만 그래도 갓 5 등급 영웅이 된 GGW 공격대의 영웅들에게는 바로 기어 스코어가 600 에 가까운 장비를 손에 넣을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여기에 중국까지 가는 이상 결정을 많이 얻을 수 있으면 좋겠는데.’

확산 현상에서 생겨난 임시 던전에서는 마력의 결정을 포함해 장비 티켓, 클래스 스톤과 같은 희귀한 아이템들을 조금 더 높은 확률로 얻을 수 있다는 결과가 있었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정확히 밝혀진 게 없지만 어쨌든 영웅들의 경험과 기록을 통해 알려진 사실이었다.

그런만큼 이번 확산현상에서 옐로우급 결정의 다음 단계인 그린 결정을 많이 얻어 전투에 필요한 강력한 마력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해야 했다. 그래야만 6 성 영웅이 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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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종석에서는 여러 무선들이 계속해서 오갔다. 보아하니 전투가 벌어지는 상황에 따라 항로를 변경하는 모양이었다.

고개를 돌리자 옆에 앉은 현아는 눈을 감고는 팔짱을 끼고 있었고, 그 옆으로는 시라누이 마이가 몸이 찌뿌둥한지 팔을 쭉 뻗고는 좌우로 스트레칭을 하는 모습이었다.

그 뒤로는 뷘드셴 자매가 태블릿을 보며 조용히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전투가 코 앞인데 의외로 긴장을 하는 이들은 별로 없었다. 이런 생활이 익숙해서인지 아니면 의도된 행동인지 알 수가 없었다.

“아….”

그렇게 팀원들을 보던 도중이었다. 민국이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까닥였다. 그리고는….

‘나와.’

민국의 부름과 동시에 반투명한 창이 젤리처럼 출렁이며 등장했다. 테두리 색은 파란색. 뿌우였다.

《부르셨습니까? 민국님?》

뿌우의 말에 민국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자신이 용건을 머릿속으로 떠올렸다.

‘왜 이번에는 퀘스트가 없지?’

베트남 때와 똑같이 던전 브레이크가 일어난 상황이었다.

그리고 그 때 뿌우는 민국을 베트남으로 보내기 위해 레전드 클래스라는 엄청난 보상으로 유혹을 했었다.

《그, 그게 저희들도 드리고 싶지만, 12 재앙의 낌새가 심상치 않아서요,》

‘던전을 통해서 주면 되잖아?’

분명 전에 그렇식으로 이야기를 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렇긴 한데….》

메시지 창이 진동이라도 온 듯 파르르 떤다.

《그러면 저희들이 드릴 수 있는 보상이 한정됩니다.》

‘한정? 어느 정도 수준까지? 그렇다고 해서 뭐, 쓸모없는 플래티넘 장비 티켓 이런 걸 주지는 않겠지? 그리고 솔직히 말해서 유니크 등급의 클래스 스톤도 이제는 딱히 필요가 없는 것 같은데….’

민국의 생각이 길게 이어졌다.

뭐, 이 세계에 처음 떨어졌을 때는 브론즈 티켓과 같은 보상에도 별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하루라도 빨리 게임 속 레벨이나 다름없는 영웅의 성급을 높여야 했다. 더 좋은 장비나 클래스를 얻는 것 역시 마찬가지였다.

민국의 말에 메시지 창이 길게 출렁였다. 그리고는 곧 문장을 만들어내었다.

《저희들이 드릴 수 있는 보상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하지만 민국님이 원하는 보상을 드리려면 빛의 기둥을 만들어내야 합니다.》

‘그렇겠지?’

빛의 기둥이 터지지 않을 정도의 보상이면 굳이 받을 필요가 없었다. 클래스 스톤부터 장비까지. 그만큼 GGW 공격대의 수준이 높아진 까닭이었다.

《하지만 빛의 기둥을 만들어낼 경우 12 재앙의 레이더에 저희들이 걸릴 우려가 있습니다. 게다가 민국님이 그들의 위험에 노출될 가능성도 있죠.》

그건 곤란했다. 아직 자신과 GGW 공격대의 기량은 12 재앙은커녕 그 휘하에 있는 괴물들조차도 상대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그러면 간단하게 정리하겠습니다. 빛의 기둥을 만들어내지 않고 민국님에게 필요한 보상. 이 뿌우는 민국님에게 마력의 결정을 퀘스트 보상으로 드리겠습니다.》

‘……어?’

뿌우의 말에 민국은 눈을 깜빡였다. 나쁘지 않았다. 이 자식, 생각 외로 똑똑한 녀석이었다.

《하지만 여러 개를 한번에 드릴 수는 없습니다.》

상관없었다. 특수 개체를 잡고도 얻지 못하는 경우가 더 많은 아이템이 마력의 결정이었다. 여러 개? 던전 당 한 개씩만 더 나와도 나쁠 게 없었다.

바로 퀘스트가 생성되었다.

《이머전시! 이머전시! 긴급사태! 긴급사태!

중국에서 벌어진 던전 브레이크! 심상치 않은 공허의 마력은 분명 12 재앙 중 하나인 바이콘의 마력입니다. 그러나 바이콘은 던전 브레이크를 일으킨 채 말의 탑에서 관망을 하고 있습니다. 무슨 꿍꿍이인지는 알 수 없지만 바이콘의 강력함을 생각하면 정말 다행인 상황이죠.》

‘씨발.’

그리고 쿠우의 퀘스트를 읽어가면서 민국은 피가 차갑게 식는다는 게 어떤 느낌인지를 알 수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이번 던전 브레이크는 12 재앙인 바이콘과 관련이 되어 있었다. 인위적으로 생겨난 현상이라는 말이었다.

‘빌어먹을…. 또 병아리 같은 녀석들이 나타나는 건가?’

베트남에서 상대했던 가루다의 분신이 떠올랐다.

그 녀석들을 잡을 때 마다 자신에게 퍼부어지던 가루다의 소름끼치는 저주는 아직도 기억에 생생했다. 조금만 더 신경을 건드리면 당장이라도 새의 탑을 부수고 뛰쳐나올 느낌이었다.

《하지만 가루다의 꿍꿍이를 물리치신 카오스님의 영웅이자 이 세계의 희망이신 민국님이라면 바이콘의 마력으로 오염된 땅 역시 원래의 상태로 되돌릴 수 있을 게 분명합니다. 카오스님이 창조하신 이 뿌우가 민국님을 서포트 하겠습니다!

이 퀘스트는 추가 성과가 있는 일일 퀘스트입니다.

[목표] - 다른 영웅들의 공격대와 협력해 던전 브레이크로 생겨난 중국의 ‘임시 던전’을 모두 무너뜨려라!

[기간] - (아주 위험)바이콘이 움직일 때까지.

[보상] - 「던전 1 개 파괴 – 그린급 결정 1개.

던전 3 개 파괴 – 그린급 결정 3개.」》

퀘스트 자체는 나쁘지 않았다. 일일 퀘스트라는 점을 감안하면 더더욱 괜찮았다.

노력만 한다면 하루에 그린급의 결정을 4개씩 추가적으로 얻을 수 있었다. 그러나 민국의 얼굴은 뿌우와 대화를 나누기 전과 비교해 많이 어두워져 있었다.

그러는 와중에도 수송기는 베이징을 향해 계속 날아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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