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영웅 소녀 전쟁-162화 (162/486)

EP.162 징조

“조용하네요.”

“그러게? 막 시민들이 도망치거나 그럴 줄 알았는데….”

던전 브레이크가 터지면서 청더시 부근에서 난리가 난 것과는 다르게 의외로 베이징은 평온한 분위기였다. 청더시와 베이징의 거리를 생각하면 신기할 정도였다.

그렇다 하더라도 눈만 돌리면 볼 수 있는 군인과 전차들을 비롯해 공기 중에 묵직하게 퍼져 있는 긴장감은 숨길 수 없었지만….

“오랜 전쟁으로 익숙해진 거야. 그리고 베이징이 혼란에 빠지면 확산 현상이 퍼지고 있는 전선 또한 곤란해진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거지.”

“…그렇군요.”

김소정의 말에 모두의 표정이 무거워졌다. 다들 하루라도 빨리 이 전쟁에 끝났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라유니안 클랜의 사람들과는 공항에서 헤어졌다. 그들은 청더시가 아닌 다른 곳으로 지원을 간다고 했다.

“이곳입니다.”

디지털 픽셀 패턴의 전투복을 입은 중국 군인이 창고를 가리키며 말했다. 커다란 창고에는 소대 단위의 병력이 엄중하게 경계는 서고 있었다.

그리고 조금 전에 말을 꺼냈던 군인이 민국과 GGW 공격대의 영웅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여기서 무기와 방어구를 선택하신 후, 싱륭현으로 이동할 겁니다. 한국의 GGW 공격대는 싱륭현의 【A – 8】, 【A - 9】 난이도의 던전 위주로 공략을 시작할 예정입니다.”

“몬스터들은요?”

“제 3182 순찰 대대가 호위할 겁니다. 그리고 싱륭현은 현재 38 집단군이 주둔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어느 정도는 안전이 보장되어 있으니 몬스터에 대해서는 크게 걱정하시지 않아도 될 겁니다.”

청더시 남쪽에 위치한 싱륭현은 중국군의 세력이 미치는 곳이었다.

그러나 청더시와 청더시 북쪽은 그야말로 아비규환인 모양이었다. 그나마 집단군을 동원한 중국군과 근방에 주둔해 있던 러시아까지 병력을 움직이면서 쏟아져 나오는 몬스터들이 퍼지지 않도록 막아내고 있는 모양이었다.

거기에 비행기 안에서 태블릿으로 확인을 해보니 한국군 역시 사흘 내에 사단 규모의 군대가 전선에 합류할 예정이라고 했다. 그만큼 베트남에서 퍼진 확산현상과는 분위기가 전혀 달랐다.

“그렇다면야….”

여성 군인의 대답에 질문을 했던 예린이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민국도 마찬가지였다.

전 세계의 중국이었다면…. 저 말 중 반 이상은 걸러 들었겠지만 이 세계의 중국은 그래도 양심적이었다. 아무래도 어둠의 괴물들에게 수십 년 동안 얻어맞다보니 다들 착하게 변한 모양이었다. 뭐,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인 모양이지만.

“자, 그러면 신중해서 무기 고르고, 아…. 각인 장비는 1 개밖에 선택 못하니까 잘 골라야 해.”

민국의 눈이 팀원들에게 향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민국은 그녀들의 장비 선택에 대해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다들 영웅으로 활동한 지 몇 년은 되는 이들이었다. 본인들에게 필요한 장비가 어떤 장비인지는 누구보다도 더 잘 알고 있으리라.

어쨌든 공대장인 자신이 할 일은 장비 변경으로 달라진 그녀들의 스펙을 최대한 이용해 몬스터를 쓰러뜨리는 일이었다.

‘상위 레이드일수록 현아보다는 타냐를 메인 탱커로 둬야겠지. 피닉스 나이트의 어그로 능력이 뛰어나기는 하지만 일단 방어력만큼은 현아보다 타냐가 높으니…. 딜러진 비율은 나쁘지 않고. 일단 유나의 기량이 다른 이들보다는 떨어지는 편이니 특수 임무를 위주로 시켜야겠네.’

지금까지의 트라이와 비교해 팀원들의 역할이 크게 달라질 건 없었다.

있다면 몬스터의 패턴을 대응하는 공격대장의 리딩 뿐. 하지만 실력에 대해 자신이 있는 민국은 몬스터를 공략하는 데 있어 시간을 걸려도 못 잡을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출발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모든 무기를 선택한 민국과 팀원들은 방탄버스에 탑승한 채 군인들의 호위를 받으며 싱륭현이라 불리는 지역으로 향했다.

콰앙! 쾅!!!

이동하던 도중 사방에서 포격과 진동이 느껴졌다.

아무래도 주위에서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GGW 공격대를 호위하는 3182 순찰대대는 근처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투를 피해, 계속해서 싱륭현 안으로 이동할 뿐이었다.

“…우리도 도와줘야 하는 거 아니에요?”

소란 속에서 최유나가 조심스레 물었다.

“그랬다면 우리를 호위하는 군인들이 먼저 반응을 했겠지? 그런데 그냥 무시하고 지나간다는 건 몬스터들과 싸우는 것보다 임시 던전의 처리가 훨씬 급하다는 거야.”

김소정의 말이었다. 그녀의 말에 모두의 얼굴에 긴장감이 다시 차올랐다.

저런 상황에서도 아군을 지원하지 않고 그냥 지나간다는 것은 그만큼 생각 이상으로 상황이 좋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했다.

잠시 후, 뒤에서 커다란 한숨이 흘러 나왔다. 누가 한숨을 쉬었는지는 굳이 확인할 필요조차 없었다. 보나마나 지젤이겠지.

“여기서부터는 도보로 이동해야 할 것 같습니다.”

지휘관의 말에 민국은 버스에서 내렸다. 그리고는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확인하며 낮게 신음을 내었다.

광활한 대지가 보라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확산 현상으로 인해 오염된 땅이었다. 그리고 오염된 땅 위로 익숙한 포탈이 군데군데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태블릿에 표기된 【A - 8】과 【A - 9】 난이도를 위주로 공략해 주시면 됩니다. 그리고 공략이 시급한 던전은….”

“어떻게 해야 할지 알고 있어요. 난이도에 관계없이 지원 공격대가 올 때까지 일단 붙잡고 늘어지고 있겠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리고 부활석 수량을 다시 한 번 체크해 주시기 바랍니다.”

지휘관의 당부에 민국는 고개를 끄덕이며 부활석을 확인했다.

520개.

클랜에서 들고 온 것과 중국 영웅 협회에서 지원한 것을 포함한 수량이었다. 많다면 많고 적다면 적은 숫자였다.

부활석의 수량을 확인하던 도중 언덕 너머로 여러 발의 총 소리와 함께 무언가가 터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근처에서도 소규모 교전이 벌어지고 있는 모양이었다.

호위대대 역시 경계를 하면서 진지를 구축하는 모습이었다.

“시간을 오래 끌 필요는 없으니까, 일단 던전으로 안으로 들어가자. 그 안에서 대충 식사를 하고 공략에 들어갈 거야.”

그런 군인들을 뒤로 하고 민국이 말했다. 군인들이 밖에서 버텨주는 동안 영웅들은 던전을 공략해야 했다.

* * *

“지금 작살 타이밍이야!”

“네, 알겠습니다!”

철컥!

성인 여성 크기 정도의 커다란 작살을 쇠뇌에 장착시킨 유나가 빠르게 눈을 움직였다. 그녀의 눈동자에 괴성과 함께 하늘을 날아오르는 비룡이 보였다.

가라이의 친위 비룡이라는 이름을 지닌 6 등급 괴물이었다.

‘저 놈이 끝까지 날아가면….’

강력한 브레스가 공격대에게 쏟아진다.

광역 보호막에 힐러들이 영혼까지 끌어 모아 힐링 능력을 사용 해야만 버틸 수 있는 위협적인 공격이었다. 그리고 유나가 맡은 임무는 저 비룡 녀석이 정해진 위치까지 날아가기 전에 떨어뜨리는 일이었다.

카라라라락!

녹슨 철들이 마찰하는 소리와 함께 쇠뇌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무게가 엄청나기는 했지만, 마력을 사용하면 간단히 움직일 수 있었다. 잠시 몬스터가 날아가는 루트를 머릿속으로 그린 유나가 호흡을 멈췄다.

발사 타이밍이 다가왔다.

터엉!

크롸라라라라락!!!

엄청난 속도로 날아간 작살이 용의 어깨를 그대로 관통했다.

이어서 팀원들의 환호가 들려왔다. 떨어진 녀석을 향해 마력이 섞인 공격이 셀 수도 없이 날아갔다.

임무를 끝낸 유나도 등 뒤에 맨 활을 꺼내들고 추락한 비룡을 향해 화살을 날렸다. 그런 유나의 귀로 정예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역시 궁수는 달라? 백발백중이잖아?”

“에헴.”

“이번 레이드는 진짜 유나가 다했네. 공략법에는 쇠뇌의 명중률이 모든 것을 결정한다더니만 진짜로 그렇잖아?”

팀원들의 칭찬에 어깨가 절로 으쓱였지만, 유나는 애써 침착함을 유지하며 조금이라도 더 빠르게 활을 당겼다.

GGW 공격대가 처음으로 진입한 【A - 9】 던전은 ‘비룡의 협곡’이라는 던전이었다. 말 그래도 날아다니는 몬스터들이 잔뜩 등장하는 곳이었다.

그리고 민국과 팀원들은 선배 영웅들이 알아낸 정보를 토대로 빠르게 공략법을 머릿속으로 익혔고, 그와 비슷하게 전투를 펼쳐나가며 계속해서 승리를 거뒀다.

몇 개의 부활석들이 연속적으로 깨져나가긴 했지만, 그것에 대해 신경을 쓸 틈이 없었다. 중요한 것은 부활석의 가격이 아니라 얼마나 빠르게 던전을 공략하느냐의 문제였다.

그래도 새롭게 상대하는 괴물들인 까닭에 보스 몬스터들의 공격 패턴에 대응을 하다가 여러 번 실수가 나오기는 했다.

하지만 중국에게서 지원받은 장비 때문인지 전멸기가 아닌 이상 공격대 전체가 무너지는 일은 크게 없었다. 스펙 빨의 영향을 어느 정도 받고 있는 셈이었다.

‘생각보다 다들 적응이 빠르네.’

한 번 저질렀던 실수는 다음 트라이 때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다들 높은 집중력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만큼 레이드에 그리고 자신의 리딩에 익숙해지고 있다는 말이었다.

과거 민국이 즐겼던 레이드 게임은 공격대 내의 구멍과의 싸움이었는데, 팀원들이 실력이 이 정도라면 팀을 이끄는 공대장의 입장에서는 더 이상 바랄 게 없었다.

“어? 그린 결정이다!”

빠른 속도로 마지막 보스 몬스터를 쓰러뜨리고 나타난 보상 상자에서 녹색의 결정이 흘러 나왔다.

정신력의 결정이었다. 그것을 제외한 나머지 물품은 당장은 사용이 불가능한 잡템들이었다. 가공을 한다고 해도 대단한 물건으로 변하는 것은 아니지만….

민국이 정신력을 결정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건 내가 먼저 섭취해도 될까?”

“물론이죠.”

“민국이 하고 싶은 대로 다 해.”

민국의 말에 모두들 동의했다.

민국은 팀을 지휘해서 이번 던전을 클리어 하는데 톡톡한 공헌을 했을 뿐더러 고작해야 그린급 결정이었다. 6 등급 특수 개체를 상대하다보면 계속해서 얻을 수 있는 아이템인 것이다.

파지직! 파지지직!!!

민국의 손에 들린 녹색의 돌멩이에서 스파크가 튀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결정에 있던 마력이 모두 사라지자 그린급 결정은 평범한 돌멩이로 변해 버렸다.

자신의 몸을 관조해보니 약간의 마력 상승이 있었다.

마력량을 대충 계산해 보니 그린급 결정을 200개 가까이는 흡수를 해야 6 성 영웅이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팀원들 전부를 6 성으로 만드려면 정말 오랜 시간이 필요할 것 같았다.

그리고 민국은 그런 돌멩이를 뒤로 휙 던져 버리며 뿌우의 퀘스트를 확인했다.

일일 퀘스트로 던전 1 곳을 파괴할 때 그린급 결정 1개, 3 곳을 파괴하면 그린급 결정 3 개를 획득할 수 있었다. 아무래도 지금의 결정은 퀘스트 보상으로 나온 결정인 모양이었다.

‘결국 마지막 몬스터를 잡고 나온 건 아무것도 없었다는 거네.’

그렇다 하더라도 딱히 아쉽다거나 하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비룡의 협곡을 공략하면서 GGW 공격대가 획득한 결정은 총 세 개로 타냐가 한 개, 신나연이 한 개 그리고 자신이 한 개를 흡수했다. 【A - 9】 난이도에서 얻은 결정의 숫자치고는 괜찮은 성적이었다.

모두가 던전에서 빠져 나오자 포탈이 찌그러지면서 사라지기 시작했다. 임시 던전이 닫혔다는 말이었다.

하지만 사방을 둘러보니 군데군데 포탈이 눈에 들어왔다. 그 사이 호위대대와 몬스터들과 한바탕 전투를 벌였는지, 괴물들의 시체가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태블릿으로 임시 던전 한곳의 공략을 끝냈다는 보고를 보낸 민국이 팀원들을 향해 말했다.

“일단 첫 날이니까 가볍게 세 곳만 공략해보자.”

“어…. 네? 하루에요?”

민국의 말에 지젤이 눈을 휘둥그레 떴다.

허접한 던전도 아니고 【A - 9】 난이도의 던전이다. 일반적으로 던전 한 곳을 공략하는 데 하루 이상은 잡아야 하는 곳이었다.

그런 지젤의 어깨로 누군가의 손이 올려졌다. 러시아의 폭주 전차, 타냐였다.

“포기해. 베트남에서도 이와 비슷한 경험 해봤잖아?”

“……아. 젠장. 남자 영웅이 있다고 해서 이 공격대에 들어오는 게 아니었어.”

하지만 후회는 이미 늦은 상황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투덜거리기는 했지만, 지젤 역시 상황의 심각성을 잘 알고 있었다. 영웅들이 좀 더 움직이지 않으면 이 땅은 몬스터들의 땅이 될 게 분명했다.

그녀의 어머니가 희생하면서까지 막아내고자 했던 아마존이 변한 것처럼 말이다. 그렇게 GGW 공격대는 십여 분 정도 휴식을 취한 후 다시 임시 던전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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