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영웅 소녀 전쟁-163화 (163/486)

EP.163 징조

던전 브레이크가 터지고 이틀 째.

9성 탱커인 미리암이 있는 미국 최강의 공격대인 ‘화이트 하우스’를 비롯해 잉글랜드의 대표 공격대인 원탁의 기사, 어둠 괴물과의 전쟁에서 혁혁한 전과를 올렸던 프랑스의 제국 근위 공격대, 러시아의 붉은 전차 공격대등 세계의 내로라하는 공격대가 속속 베이징에 도착했다.

세계 영웅 협회의 이런 발 빠른 대처는 그만큼 이번 사태가 얼마나 심각한 지를 보여주는 반증이었다. 말 그대로 전 세계의 공격대가 움직이고 있는 상황이었다.

공격대만이 아니었다. 영웅 전력이 부족해서 제대로 된 지원이 불가능한 동남아나 아프리카에서도 군대를 보내 자신들의 존재를 알렸다. 그래야만 훗날 본인들 역시 세계 영웅 협회의 지원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인접 국가인 한국과 일본, 러시아 등도 중국으로 향할 공격대를 편성하느라 분주했다.

이미 메모리아 1 군은 중국에 도착한 상황이었고, 이 외 랭커 클랜에서도 1, 2 군으로 편성된 공격대를 중국에 지원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특히나 청더시 근처에 영토를 맞대고 있는 한국과 러시아는 국내 공격대의 30 % 가량을 중국으로 보내는 초강수를 두고 있었다.

많은 이들의 우려가 있었지만 한국의 영웅 협회장인 이시연은 정치권과 여러 클랜들의 불만을 잠재우고 자신의 의견을 관철시켰다. 어떻게든 이번 확산 현상이 중국 내에서 해결되기를 바라면서 내린 결정이었다.

그리고 국민들은 이시연의 결정의 찬성하는 모습이었다. 십여 년 전 국내에서 벌어졌던 던전 브레이크는 아직도 끔찍한 기억으로 남아 있었다.

“상황은 어떤가요?”

“일단 몬스터들의 확산은 어떻게든 막아냈습니다.”

한 군인의 말에 모두가 다행이라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이어서 밝은 금발과 선홍빛 입술이 도드라지는 미녀가 다시 한 번 질문을 던졌다.

“임시 던전의 상황은 어떻죠?”

화이트 하우스의 메인 탱커 미리암 로스의 질문에 어깨에 별을 단 중국 군인이 빠르게 대답했다.

“많은 공격대들이 나서서 숫자가 많은 중급 난이도의 던전부터 처리를 하고 있습니다.”

중국의 공격대 대부분이 청더시 부근에 몰려 있었다. 그만큼 중국은 이번 던전 브레이크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었다.

“그러나 【A - 5】 난이도 이상의 던전은 파괴되는 숫자보다 생겨나는 던전의 숫자가 더욱 많은 상황입니다.”

“으음….”

“아무래도 브레이크가 중복으로 터졌으니….”

‘원탁의 기사’에서 공격대장을 맡고 있는 아델이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던전 브레이크가 중복으로 터지는 것은 어둠 괴물과의 오랜 전쟁 속에서도 몇 안되는 특수한 상황이었다.

“그래서 우리가 가야할 곳은 어디입니까?”

“원탁의 기사단은 청더시 남쪽에서부터 【A - 3】 난이도 이상의 던전을 공략해 주시면 됩니다. 자국의 중상위 영웅들로 이루어진 공격대들이 지원할 계획입니다.”

작전 계획이 빠르게 정해졌다.

메인 공격대가 상위 난이도의 던전을 처리하는 동안 그들을 보조하는 공격대들이 나머지 임시 던전들을 쓸어버린다는 계획이었다.

그렇게 세계 랭킹에 이름을 올리고 있는 공격대들에게 하나씩 임무가 하달될 때였다.

“프랑스의 제국근위대는 청더시 남쪽의 싱륭현에서부터 올라가시면 됩니다. 현재 한국에서 지원을 온 공격대를 포함해 17 개의 공격대가 중급 난이도의 던전을 처리 중에 있습니다.”

“한국? 발 빠르게 지원을 왔나 보네. 강! 혹시 아는 친구들이야?”

장군으로 보이는 중국 군인의 말에 제국 근위대의 딜러 클로에 카스텔이 자신의 오른쪽에 앉은 동양 여성을 향해 친근감 있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녀가 질문을 던진 여성은 대한민국 딜러 랭킹 1 위이자 메모리아 공격대를 대표해 이 회의에 참가한 강채영이었다. 그리고 클로에 카스텔과 강채영은 어둠 괴물과의 전쟁에서 몇 번 호흡을 맞췄던 동료였다.

“글쎄? 내가 우리나라에 있는 모든 공격대를 아는 건 아니잖아?”

클로에의 말에 채영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과 함께 어깨를 으쓱였다. 정말 진심으로 하는 질문일까? 프랑스만큼 영웅 전력이 대단한 것은 아니지만 한국에도 수십, 수백의 공격대가 있었다.

“그런가? 메모리아의 작전 범위가 어디지? 청더시 서쪽인가?”

“응. 그런데?”

“너희 나라의 공격대가 있다며? 그러면 우리랑 작전 지역 바꿀래? 우리 제국 근위대와 메모리아 1 군이면 트라이 실력도 엇비슷하니까 크게 문제없잖아?”

무슨 생각으로 하는 말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강채영에게 향하는 클로에의 말에는 장난기가 가득 담겨 있었다.

“됐어.”

그리고 강채영은 그런 클로에의 제안은 단칼에 거절했다.

자기네들끼리 마음대로 작전 지역을 바꾸는 행위는 중국군에게도 실례일 뿐더러 자국의 공격대가 거기 있다고 해서 서로 하하 호호 웃으며 떠들 상황도 아니었다. 아니, 얼굴조차 마주칠 일이 있을까?

‘그런데 벌써 중국으로 온 공격대가 있단 말이야?’

그러나 그들의 정체에 대해서는 살짝 궁금증이 들기는 했다. 그리고 강채영이 중국 군인을 향해 물었다.

“싱륭 현이라고 했죠? 그 쪽에 있는 대한민국 공격대 이름이 뭔지 알 수 있나요?”

“아, 네. GGW 공격대입니다.”

군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여기저기서 탄성과 말이 흘러 나왔다.

GGW 라면 그 한민국이 공대장으로 있는 공격대였다. 최근 뜨겁게 떠오르고 있는 GGW 공격대와 남자 영웅인 한민국에 대한 이야기는 이 자리에 있는 최상위 영웅들도 한 번 이상은 들어본 적이 있을 정도였다.

강채영 역시 눈이 동그래졌다. 그리고 다른 의미로 탄성을 터뜨리고 있었다.

‘자, 장미 방패단 클랜장이 누구지?! 진짜 미친 거 아니야?!’

한민국의 재능은 그녀도 인정한다. 함께 레이드를 한 적도 있으니까.

하지만 민국은 정식 라이센스에 그려진 잉크조차도 마르지 않은 신참 영웅이었다. 아무리 재능이 뛰어나다 한들 그의 실력은 기껏해야 중급 영웅에 불과했다.

강채영의 고개가 황급히 왼쪽으로 향했다.

“클로에, 조금 전 그 제안….”

“땡. 제한 시간이 이미 지나갔네? 그리고 GGW면 그 남자 영웅이 공격대장으로 있는 공격대 맞지? 누군지 정말 궁금했는데. 이 참에 한 번 만나보기라도 해야겠어.”

자신의 말을 자르며 말하는 클로에의 모습에 강채영은 고개를 푹 숙였다.

‘이럴 줄 알았으면 조금 전의 제안을 받아들일 걸….’

시간을 돌리고 싶은 기분이었다.

* * *

민국과 GGW 공격대는 최소한의 휴식을 취하며 계속해서 임시 던전을 공략해 나갔다.

하루에 【A - 8】 혹은 【A - 9】 난이도의 임시 던전을 세 곳 이상 파괴하는 강행군이었다. 던전에서 등장하는 몬스터의 난이도는 물론이고, 던전의 길이도 베트남에서 공략했던 낮은 난이도의 던전과는 차원을 달리했다.

그러나 공격대의 영웅들은 그 누구도 불평과 불만을 늘어놓지 못했다.

레이드에서 가장 고생을 많이 하는 공대장인 민국이 아무런 말없이 계속해서 던전을 공략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여자들에게 보호를 받아야 할 남자조차도 저런 모습을 보이는데, 여자 그것도 영웅의 입에서 약한 소리를 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자존심이 있었다.

하지만 그런 강행군을 수행하면서 얻은 것들도 많았다.

일단 던전을 공략하면서 하루에도 몇 개씩이나 그린 결정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손에 넣은 그린 결정은 곧 자신들의 마력으로 치환되었다. 조금씩 6성 영웅에 다가서고 있는 것이다.

“흐음….”

던전을 공략하고 나온 짤막한 휴식 시간.

민국은 자신의 영웅 도감을 펼쳤다. 공격대장인 까닭에 공격대에 소속된 휘하 영웅들과도 영웅 도감이 연결되어 있었다.

‘제법 오르긴 했네.’

민국은 자신의 영웅 도감을 보며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요 며칠 미친듯이 뺑뺑이를 돈 보람이 있었다.

일일 퀘스트 때문에 하루에 네 개씩 마력의 결정을 추가적으로 얻을 수 있던 것도 영웅들의 성장에 굉장히 큰 부분을 차지했다.

던전의 공략에 성공할 때 마다 마력의 결정이 분수처럼 쏟아져 나오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었다.

“아, 피곤하다. 손도 까닥할 힘도 없네.”

“그래도 오늘 일정 끝내려면 던전 한 곳을 더 돌아야 합니다.”

“그렇겠죠? 나연 선배님? 에휴, 들어가기 전에 뭔가 맛있는 게 땡기는데…. 뭐 없을까요? 전투 식량도 슬슬 물리는데.”

“흐음…. 중국애들이랑 바꿔 먹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아? 그럴까요?”

뒤에서 유나와 신나연의 대화가 민국의 귀로 들려왔다.

나이는 유나가 많았지만, 신나연이 영웅 선배라 그렇지 서로를 대하는 태도가 살짝 어색한 느낌이었다. 어쨌든 이제 이십대 초반과 십대 여자가 하는 대화가 절로 말년 병장의 모습을 연상케 했다.

‘아니지.’

생각해보면 전 세계의 말년 병장 역시 이십대 초반의 애들에 불과했다.

힐끔 뒤를 돌아보니 둘은 진짜로 식량을 가지고 중국 군인들에게 다가가고 있었다. 그리고는 식량을 바꿔 먹고는 울상을 짓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민국은 그 모습을 안쓰럽게 바라보았다.

애당초 영웅 지급품으로 특별하게 만들어진 식량과 중국군에서 대충 만든 것 같은 식량의 맛이 똑같을 리가 없었다. 그러던 도중 현아의 목소리가 옆에서 들려왔다.

“뭐 보고 있어?”

“아, 마력 상태. 얼마나 더 마력의 결정을 모아야 6 성 영웅이 될 수 있을까 계산해 보던 중이었어.”

“…얼마나 걸리는데?”

“지금 속도로 보면 한, 두 달?”

대답을 듣자마자 현아가 인상을 찌푸리며 손을 휘휘 저었다. 대놓고 저리 치우라는 행동이었다.

하기야 한 달간 이렇게 뺑뺑이를 돈다면 정신도 같이 돌게 분명했다. 웬만한 게임 폐인조차도 혀를 내두르게 할 정도로 빡빡한 공략 스케줄이었다.

더욱이 이 세계 영웅들이 레이드를 하는 주기를 생각하면 더더욱 충격이 클 게 분명했다.

하지만 이렇게라도 해야 빠르게 영웅의 성급을 높일 수 있었다. 상위 난이도의 던전을 클리어하려면 그리고 상위 영웅이 되려면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것들이었다.

“영웅 라이센스를 따고 2 년 만에 6 성 영웅이라니…. 누가 들었으면 소설 쓰냐고 했을 거야.”

현아가 좌절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민국이 위로하듯 말했다.

“원래 영웅은 난세에 나오는 법. 괜찮아. 조금만 더 갈리면 돼.”

“어휴….”

한숨과 함께 현아의 고개가 민국에게 향했다. 그리고는 입술을 꼼지락거렸다.

무언가 묻고 싶은 게 있는 것 같은 행동이었다. 하지만 그 뿐. 현아가 다시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숙였다.

“이번 확산 현상이 끝나면 적어도 일주일은 쉴 거야. 무조건 쉴 거야.”

“그래, 그래.”

귀여운 그녀의 협박에 민국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때 멀리서 먼지구름이 잔뜩 피어오르는 모습이 민국의 눈에 들어왔다.

‘몬스터?’

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생각 외로 중국군의 반응이 굉장히 조용했기에 민국은 잔뜩 끌어 올렸던 긴장을 풀었다. 아니나 다를까 먼지 구름은 대규모의 병력 이동이 만들어낸 것이었다. 거의 여단급 규모였다.

“청더시로 향하는 건가?”

현아의 물음에 민국의 고개가 자연스럽게 끄덕여졌다.

확실한 것은 알 수 없었지만, 저 정도 규모의 병력이 향할 곳은 청더시밖에 없다는 생각이었다. 그러던 도중 조금 특이한 것이 민국의 눈에 들어왔다.

중국군에게 엄중한 호위를 받는 방탄 버스였다. 그리고 방탄 버스는….

‘프랑스?’

자유, 평등, 박애를 상징하는 파량, 하양, 빨강의 삼색기로 도색이 되어 있었다.

‘사단급 호위를 받는 프랑스 영웅이라….’

제법 이름이 있는 공격대인 모양이었다. 멀리서 다가오는 방탄 버스를 보던 도중 문득 그 정체가 궁금해졌다. 그리고 이런 지식은 자신보다는 현아가 더 잘 알고 있을 터였다.

“프랑스 공격대 같은데, 어디인지 알것 같아?”

“제국근위대. 클로에 카스텔이 있는 제국 근위 공격대가 틀림없어.”

민국의 질문이 끝나기가 무섭게 현아가 자신 있는 목소리로 답했다.

그러면서 프랑스의 제국 근위대에 대해 여러 이야기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정확히 말하면 제국 근위대가 어둠 괴물과의 전쟁에서 활약했던 내용들이었다. 정말 엄청난 역사를 지닌 공격대였다.

그렇게 그녀의 말에 맞장구를 치며 이야기를 듣고 있을 때였다.

GGW 공격대가 쉬고 있던 자리에 제국 근위 공격대가 탑승한 것으로 추정되는 방탄 버스가 우뚝 멈춰 섰다.

다음화 보기―――――――――――――――――――――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