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영웅 소녀 전쟁-164화 (164/486)

EP.164 징조

“안녕?”

버스에서 내린 한 여성이 민국을 물끄러미 보더니 친근한 목소리로 인사를 건넸다.

민국의 눈이 그녀를 빠르게 훑었다. 나이는 이십대 중, 후반? 마력이 각성하면서 신체의 재구성이 이루어지는 영웅이라 그런지 나이를 짐작하기가 쉽지 않았다. 강채영만 해도 이십대 초반으로 보이는 외모였다.

어쨌든 기어 스코어가 적힌 장비를 갖추고 있는 여성은 프랑스의 제국 근위대 소속의 영웅으로 보였다. 그것도 꽤 이름이 높은.

인사를 건네는 여자를 보고 탄성을 터뜨리는 동료들의 반응만 봐도 알 수 있었다.

‘그런데 누구지?’

하지만 민국은 여자의 정체를 알 수 없었다. 처음 보는 사람인데다가 베트남의 확산 현상 때도 프랑스 쪽 영웅들과는 함께 작전을 수행할 일이 없었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인사를 건네는 여성의 정체에 대해 민국이 의문이 담긴 얼굴로 현아를 바라보려고 할 때였다.

“크, 클로에 카스텔!”

잠시 눈을 깜빡이던 현아가 소리를 높였다. 연예인과 눈앞에서 마주치기라도 한 것 같은 팬과 같은 반응이었다.

클로에 카스텔.

프랑스의 딜러 랭킹 1 위이자 제국 근위 공격대 소속으로 수많은 어둠 괴물과의 전투에서 혁혁한 공을 세운 전쟁 영웅이라는 사실이 민국의 머릿속으로 빠르게 스치고 지나갔다.

오랜만에 경험하는 원주인의 경험이었다. 그리고 간단히 정리하자면 프랑스의 강채영이라는 말이었다.

“크…. 바로 알아보는 것 봐? 이래서 내가 딜러를 해야 됐다니까? 클로에의 이름은 다른 국가의 영웅이라도 누구나 다 알고 있잖아?”

“클로에처럼 딜을 잘 넣어야 이름을 날리는 거지?”

“혹시 나는 몰라? 브리짓이라고 하는데?”

뒤에서 제국 근위대 소속으로 보이는 영웅들이 잡담을 나누며 떠드는 소리들이 들려왔다.

그녀들의 대화를 들으며 민국은 속으로 피식 웃었다. 최상위 공격대라 해도 서로 간의 대화에 장난이 가득한 것은 자신들과 비슷한 것 같았다.

그리고 그런 민국의 앞으로 여성의 손이 내밀어졌다. 클로에의 손이었다.

“전선에서 뛰는 남자 영웅에 대한 이야기는 많이 들었어. 강채영이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을 하던데…. 한민국 맞지?”

그러면서 별안간 윙크를 살짝 하는 모습이었다.

“강채영?”

“아, 한국의 강하고는 조금 특별한 사이라서 말이야. 너도 그렇다고 들었는데?”

“으음….”

민국의 표정이 순간적으로 심각해졌다.

과연 강채영이 어디까지 말을 한 것일까? 하지만 그녀의 성격을 생각하면 많은 것을 이야기 했을 것 같지는 않았다. 오히려 눈앞의 여자가 강채영의 핑계로 들이대는 느낌이었다.

“그나저나 손이 떨어질 것 같은데…. 나랑 악수하기 싫은 거야?”

“아니, 그런 건 아닙니다.”

전쟁 영웅이라 그러기에 무거운 분위기를 풍길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수다스러운 영웅이었다.

하지만 8 등급 영웅, 그것도 선배 영웅이 내미는 제안을 거절할 이유는 없었다. 게다가 악수 정도야 언제든지 할 수 있는 인사였다. 그리고 민국이 클로에의 손을 맞잡을 때였다.

‘어?’

순간적으로 자신을 잡아당기는 강한 힘이 느껴졌다.

빠르게 시선을 옮기자 클로에가 자신을 바라보고 비스듬하게 웃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푹신한 카스테라와 같은 느낌이 민국의 얼굴을 뒤덮었다. 클로에의 커다란 가슴이었다.

“어, 어엇?!”

“앗!”

그 모습을 본 GGW 팀원들 사이에서 놀란 소리들이 터져 나왔다.

클로에가 자신의 팔을 휙 당기며 가슴으로 민국을 끌어 앉았기 때문이었다. 그 뿐이 아니었다. 소중한 무언가를 대하기라도 하듯 양 팔로 푹 감싸 안는 모습이었다.

“휘이이익!”

“뭐야?! 클로에! 너 혼자 그러기 있는 거야?!”

클로에의 충격적인 행동에 제국 근위대 소속 영웅들은 휘파람을 불며 소란을 피웠다.

그런 프랑스 영웅들의 행동에 민국은 속으로 실소를 터뜨렸다. 다들 외모는 모델 뺨치게 생겨서는 하는 행동은 여자를 희롱하는 거친 용병과 다를 바가 없었다. 실제로 지금 클로에의 행동은 여자가 남자를 희롱하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무슨 짓이죠?”

그리고 갑작스러운 상황에 잠시 어안이 벙벙해졌던 현아가 눈을 시퍼렇게 뜨고 말했다. 눈앞의 상대가 선배 영웅이라는 사실조차도 신경 쓰지 않을 정도로 공격적인 목소리였다.

“왜? 남자를 이렇게 넓은 가슴으로 안아주는 건 우리 프랑스만의 문화란다.”

“뭐, 뭐라고요?!”

날카롭게 쏘아대는 현아의 행동에 클로에가 유들유들한 목소리로 대꾸했다.

성인 여성 그것도 베테랑의 관록이 그대로 느껴지는 모습이었다. 클로에와 입술을 질끈 깨문 현아의 눈이 잠시 허공에서 맞붙었다. 만약 이게 영화의 장면이었으면 두 여인의 시선에서 불꽃이나 전기가 튀었을 게 분명했다.

그리고 클로에의 도발은 이게 끝이 아니었다.

“부러우면…. 너도 안아줄까?”

여전히 한 손으로는 민국의 얼굴을 감싸 안은 채 클로에가 다른 쪽 팔을 펼쳤다. 자신의 품으로 안기라는 모양새였다.

그런 클로에의 제안에 목에 핏대를 세우던 현아가 입을 멈칫했다. 여기서 어떤 식으로 반응을 해야 할지 생각을 하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현아뿐 아니라 다른 이들의 얼굴도 구겨지는 모습이었다. 다들 밥그릇을 빼앗겨서 분노한 멍멍이들과 비슷한 얼굴이었다.

그런 팀원들의 얼굴에 민국은 슬슬 풍만한 가슴에서 빠져나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의 시간을 더 즐기고 싶기는 했지만, 계속해서 가만히 있다가는 서로 간에 진짜로 앙금이 생길 것 같았다.

모르는 사람의 가슴에 얼굴을 묻는 것도 좋은 경험이었지만, 그렇다고 오랜 시간을 함께 한 현아의 감정을 상하게 하면서까지 즐기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그리고 지금의 상황에서 빠져나오는 것은 아주 간단했다.

“으읏?!”

코끝에서 느껴지는 클로에의 유두를 고개를 살짝 들어 입으로 깨문다.

그리고 놀란 눈을 뜨는 클로에의 얼굴을 바라보며 몸에 힘을 주어 벗어나면 끝. 마력을 사용한 여성 영웅의 힘은 일반 남자가 버틸 수 있는 수준이 아니라지만 민국 역시 영웅. 클로에의 품에서 벗어나는 건 그리 힘든 일이 아니었다.

“오, 와우….”

그리고 조금 전 자신이 당했던 행동이 살짝 충격적이었는지 클로에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자신이 느낀 게 착각이 아니라면 분명 남자가 먼저 자신의 가슴을 깨물었었다.

민국의 시선도 클로에를 훑었다. 새로운 영웅 그것도 자신에게 관심 있는 영웅이라면…. 언제나 환영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기분은 좋았다.

게다가 상대는 프랑스의 전쟁 영웅이었다. 그런 것을 생각하면 립 서비스 한 번 해주는 것 정도는 괜찮을 것 같았다.

“기회가 되면 한 번?”

클로에만 들을 수 있을 정도의 목소리로 민국이 조그맣게 중얼거렸다.

“으흥….”

그런 민국의 도발에 클로에의 입에서 미묘한 비음이 흘러 나왔다. 그러면서 눈동자를 반짝 빛냈다. 이런 제안이 놀랍고도 굉장히 마음에 든다는 모습이었다.

프랑스의 제국 근위대와의 만남은 그렇게 마무리가 되었다.

상황이 상황인지라 제국 근위대도 오랫동안 머무를 여유가 없었다. 하물며 사단급의 군대가 함께 움직이고 있었다.

제국 근위대의 버스가 멈춘 것 역시 클로에의 독단적인 행동이었던 모양이었다. 나중에 듣기로는 GGW 공격대에 남자 영웅이 있다는 말에 그대로 버스를 멈춰 세우고 뛰어 내렸다고 했다.

정말 즉흥적인 영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쳇. 가슴만 크면 단 줄 아나? 모양이 예뻐야지.”

제국 근위 공격대와의 만남 이후 던전으로 진입하면서 들려오는 현아의 중얼거림에 민국이 피식 웃었다. 클로에 카스텔의 팬으로 보였던 현아는 오늘의 만남 이후 팬질을 그만두었다.

* * *

“파괴 광선! 모두들 오른쪽으로 달려!!!”

“화염 폭탄이야! 모두들 함께 맞아야 피해를 줄일 수 있어! 대상 최유나!”

GGW 공격대는 계속해서 【A - 8】 과 【A - 9】 난이도의 임시 던전을 공략했다.

하지만 매일 【A - 9】 난이도의 던전의 공략을 강행하는 일정은 쉽지 않았다. 공략에 들어간 지 4 시간 정도가 지나자 집중력이 급격하게 떨어지는 모습이었다.

“정예린! 오른쪽!!!”

“아, 앗차?! 꺄아아아악!!!”

비명과 함께 화염에 휩싸인 예린이 그대로 사망했다.

그 모습을 보며 민국이 작은 신음을 내었다. 빙계 마법이 주특기인 예린은 불을 사용하는 보스급 몬스터와의 싸움에서 큰 임무를 수행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전투를 포기할 수는 없는 노릇.

“최유나가 정예린의 임무를 커버한다! 그리고 신나연이 보조해!”

민국이 빠르게 오더를 내렸다.

“네?!”

“네, 알겠습니다!”

갑작스러운 지시에 두 영웅은 잠시 우왕좌왕하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정예린이 사망하는 모습과 함께 자신들이 어떻게 행동을 해야 할지 예측은 하고 있던 모양인지, 그래도 바로 정신을 차리고 임무 수행에 들어가는 모습이었다.

그런 유나와 신나연의 모습을 보며 민국은 뿌듯한 생각이 들었다. 예전에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모습이었다. 아마 오랜 트라이 경험을 통해 레이드 지능이 조금씩 높아지고 있는 게 틀림없었다.

하지만 잠시 후.

김소정과 켄달 뷘드셴이 몬스터의 강력한 공격을 버티지 못하고 사망했고, 결국 민국은 부활석을 트라이를 포기하고 부활석을 깨뜨려야 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모든 영웅들이 되살아나자 가장 먼저 사망했던 예린이 팀원들에게 고개를 꾸벅 숙였다.

자신의 실수 때문에 트라이가 망쳤다고 생각을 한 모양인지 그녀의 표정은 영 좋지 못했다. 그리고 팀원들은 예린을 향해 화를 내는 것이 아닌 오히려 따뜻한 말로 위로를 해주고 있었다.

그리고 민국 역시 그녀에게 화를 낼 생각이 없었다.

‘실수가 계속 나오네. 아무래도 체력적인 부담인가?’

청더시 부근에서 시작된 확산 현상을 막기 위해 중국으로 비행기를 타고 온 지 벌써 일주일이었다.

그 동안 GGW 공격대는 하루도 쉬지 않고 계속해서 던전을 공략했다.

그것도 하루에 3 곳씩 던전을 파괴하는 강행군이었다. 오죽하면 GGW 공격대를 호위하는 지원대대의 사령관이 휴식을 취해야 하지 않겠냐고 넌지시 권할 정도였다.

그리고 민국은 슬슬 휴식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계속된 던전 공략은 효율이 좋지 못했다. 부활석을 계속해서 낭비할 가능성이 높았다. 게다가 반복된 실수 때문에 팀의 화합 또한 깨질 가능성도 있었다.

“이번 던전 공략이 끝나면 내일은 싱륭현에서 쉬겠습니다.”

집단군 규모의 병력이 주둔하고 있는 싱륭현은 확산 현상으로 오염된 땅에서 몇 안 되는 안전한 장소였다. 임시 던전을 처리하는 영웅들 또한 싱륭현을 중심으로 활동을 개시하고 있었다.

“어, 어엇?”

지금까지 힘이 많이 들었는지 환호성은 터지지 않았지만, 다들 기뻐하는 모습이 얼굴에 역력했다. 그만큼 휴식이 간절했던 모양이었다.

이어서 민국이 팀원들의 얼굴을 하나하나씩 훑으며 말했다.

“당연히 이번 던전 공략이 일찍 끝날수록 더 빨리 쉴 수 있습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떨어진 체력으로 인한 집중력 저하는 어쩔 수 없었는지 마지막까지 트라이를 끝내기 전까지 GGW 공격대는 무려 19 번의 전멸을 경험해야 했다.

GGW 공격대가 싱륭현에서 휴식을 취하고 싶다는 말에는 3182 순찰대대의 대대장 역시 반색하는 모습이었다.

공격대 영웅들을 호위해야 하는 만큼 그들이 던전을 공략하는 동안에는 군인들 역시 휴식을 취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때문에 싱륭현으로 향하는 준비는 순식간에 끝이 났다.

‘아쉽기는 하지만….’

방탄 버스를 타고 이동하면서 민국은 퀘스트를 확인했다

오늘의 던전 공략은 1 곳뿐. 때문에 일일 퀘스트 보상으로 획득할 수 있는 그린급 결정 역시 1 개뿐이었다.

왠지 꿀 이벤트의 보상을 하루라도 날리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기분이 조금 그렇기는 했지만, 그래도 뒤에서 들려오는 고로롱대는 소리를 들으니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이었다.

오후 3 시가 조금 넘어가는 시간이었지만, 대부분의 팀원들은 피로로 인해 골아 떨어져 있었다.

“…….”

싱륭현으로 향하는 동안 민국은 창문을 통해 밖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일주일 남짓한 시간동안 GGW 공격대는 대략 25 곳이 넘는 던전을 파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창문 밖에는 그 이상으로 많은 임시 던전들이 눈에 들어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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