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67 가루다의 친위대
《민국님! 이건 가루다의 심복 가라이를 쓰러뜨릴 수 있는 아주 좋은 기회 입니다.
이 천재일우의 기회를 놓치게 되면 앞으로 있을 어둠 괴물과의 전쟁은 더욱 힘들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가라이를 쓰러뜨리게 되면 저희는 12 재앙인 가루다의 무서운 계획을 미연에 막아낼 수 있을 겁니다.
위대한 카오스님의 전사이신 민국님! 힘과 용기를 내주세요! 민국님을 위해 이 뿌우가 최선을 다해서 서포트 하겠습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밑천! 전부 다 털도록 하겠습니다!!!
[목표] - 가라이를 쓰러뜨려라.
[기간] - 가루다가 힘을 되찾기 전까지.
[보상] - 마력의 결정 다수. 【클래스 스톤(S) - 위그드라실】, 장비의 선택이 가능한 다이아 티켓 2장.》
“으음.”
퀘스트의 내용은 둘째치더라도 보상을 보니 입이 절로 떡 벌어진다. S 등급의 클래스 스톤이라니. GGW를 즐겼던 게이머답게 단호했던 마음이 바로 흔들린다.
“무슨 문제라도 있으십니까?”
그런 민국의 반응에 대대장이 의아한 시선으로 물었다.
그리고 민국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말과 함께 자리에 앉아 이번 임무의 수락 여부에 대해 고심하는 척 연기를 했다. 물론, 정신은 퀘스트에 쏠려 있었다.
대대장을 포함해 지휘 막사에 있는 다른 군인들은 다들 민국의 대답을 기다리는 모습이었다. GGW 공격대의 움직임에 따라 자기네들도 새롭게 임무를 하달 받아야 했기 때문이었다.
‘S 등급의 클래스라니….’
자연스럽게 태블릿으로 검색을 해봤지만 위그드라실에 대한 정보는 없었다. 그리고 민국의 궁금증을 풀어주려는 듯 뿌우가 글을 만들어내었다.
《제가 간단하게 설명을 해드리겠습니다. 세계수 위그드라실은 힐러 포지션의 레전드리 클래스입니다. 그리고 위그드라실의 특별한 점이라면 역시나 리바이벌이라는 특별한 스킬이 있겠습니다.》
‘리바이벌?’
묘한 느낌이 들었다. 단어 자체가 게이머들에게는 워낙 널리 알려져 있는 단어였다.
게다가 민국이 즐겼던 모바일 가상현실게임인 GGW에도 그와 동일한 이름의 스킬이 있었다.
당연하지만 전투 부활이라 불렸던 리바이벌 스킬은 레이드의 필수 스킬이었다. 민국도 그 스킬을 지닌 영웅을 얻기 위해 무료 뽑기를 한참이나 돌렸던 과거가 있었다.
《그렇습니다. 전투 중 사망한 동료를 부활시킬 수 있는 스킬이죠. 단, 던전에 부활석이 걸려 있는 상태에서 던전 내 몬스터와의 싸움에서 사망한 대상이라는 조건이 걸리기는 합니다. 강력한 스킬인 만큼 제한이 많죠.》
‘전투 부활이네?’
《…네? 그게 뭡니까?》
‘아니, 됐어. 너는 모르는 거 있어.’
간단히 말해 트라이 때만 사용할 수 있는 스킬이라는 말이었다.
그리고 그 효용성과 중요함에 대해서는 수많은 레이드를 경험해 본 민국이 모를 리 없었다. 아무리 그래도 게임도 아닌데 죽은 사람을 되살리다니…. 다시 생각해보면 부활석이라는 아이템이 진짜 사기인 것 같았다.
'그러니까 어둠 괴물과의 전쟁에서 인간이 그나마 버틸 수 있는 것이겠지.'
어쨌든 위그드라실이라는 클래스에 S 등급이 찍힌 이유는 리바이벌이라는 스킬 하나 만으로도 수긍이 되었다.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너, 이 자식? 12재앙의 낌새가 심상치 않아서 보상을 주기가 힘들다고 하지 않았어?’
매서운 눈으로 메시지 창을 노려보자 뿌우가 땀 모양을 연달아 만들어 내었다. 그리고는 말을 만들어 내었다.
《이 보상은 저도 큰 위험을 무릅쓰고 드리는 보상입니다. 원래라면 드릴 수 없는 보상이에요.》
‘자세히 설명해 봐.’
민국이 뿌우를 바라보며 생각을 떠올렸다. 혓바닥이 긴 느낌이었기에 그 이유에 대해서는 물어봐야 할 것 같았다.
《카오스님께서 창조하신 저희들이 12 재앙을 감시하는 것처럼 12 재앙도 저희들을 존재를 어느 정도 눈치 채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천사와 악마 정도죠. 한 마디로 서로 양립할 수 없는 존재라는 겁니다.》
‘그리고 서로의 존재를 눈치 채면….’
《바로 큰 싸움이 벌어질 겁니다. 그래봤자 제가 일방적으로 얻어터지겠지만요.》
너무나도 당연하게 말하는 뿌우의 대답에 민국은 헛웃음이 터져 나왔다. 퀘스트 창의 내용에 맨날 서포트, 서포트가 적혀 있더니만 이 녀석은 진짜로 자신의 서포트만 할 수 있는 놈이었던 모양이었다.
《일단 그런 이유 때문에 중국에서는 저의 존재를 밝힐 수가 없습니다. 바이콘 녀석이 눈을 부릅뜨고 있거든요. 그 놈한테 걸리면…. 지옥을 맛볼지도 모릅니다. 그 자식은 남성체에게도 자신의 더러운 것을 들이대는 녀석이거든요.》
‘씨발.’
뿌우의 말에 입에서 절로 욕지거리가 흘러 나왔다. 상상만 해도 소름이 끼쳤다.
《하지만 베트남은 조금 경우가 다릅니다.》
‘왜지?’
《이번 브레이크는 가루다가 무리하면서까지 만들어낸 던전 브레이크입니다. 자신의 지닌 모든 공허의 마력을 사용해 브레이크를 일으킨 것이죠. 지금의 상태라면 아마 몇 년간은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할 겁니다.
한 마디로 가루다 입장에서는 이번 기회에 사활을 건 셈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년의 심복인 가라이도 모습을 드러낸 거죠》
뿌우의 말을 들으며 민국은 가볍게 고개를 주억였다.
어둠 괴물을 막아내기 위해 인간들만 필사적인 줄 알았는데, 12 재앙이라는 강력한 괴물도 상황은 비슷한 모양이었다. 그러니까 이야기를 들어보니 바이콘과 가루다 녀석이 손을 잡고 던전 브레이크를 일으킨 모양이었다.
《베트남은 가루다의 영역입니다. 그리고 12 재앙은 같은 동료라도 12 재앙이 자신들의 영역을 침범하는 것을 극도로 혐오하죠. 그렇기 때문에 베트남에서는 가루다를 제외한 다른 12 재앙의 눈길을 피할 수 있습니다.》
메시지창이 흐물어졌다가 다시 문장을 만들어내었다.
《그렇기 때문에 제가 민국님에게 이런 보상을 드릴 수 있는 겁니다.》
‘가루다가 힘을 잃었기 때문에 네가 정체를 노출시키는 위험을 무릅써도 상관이 없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런 위험을 무릅쓸 정도로 가라이를 소멸시키는 게 중요하다는 의미입니다.》
결국 돌고 돌아서 어둠 괴물과의 전쟁에서 승기를 잡으려면 가라이라는 괴물을 물리쳐야 할 것 같았다.
한 마디로 확산 현상을 막기 위해 지금 당장 베트남으로 가라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이런 뿌우의 제안에는 아주 큰 문제가 있었다.
‘그런데 너 말이야. 나랑 GGW 공격대가 이제 【A - 9】 난이도의 던전을 공략했다는 사실은 알고서 그런 이야기를 하는 거야? 게다가 가루다의 심복이라면….’
못해도 S 등급의 던전에서 사는 끔찍한 괴물일 게 분명했다.
지금의 전력으로는 죽었다 깨어나도 이길 수 없었다. 트라이? 광역 공격에 한 방에 부활석이 하나씩 깨질 건 불을 보듯 뻔한 일이었다. 리딩의 의미가 전혀 없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그런 민국의 말에 뿌우는 자신만만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니, 궁서체로 글을 만들어 내었다.
《그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제게 다 방법이 있습니다.》
별로 믿음이 가는 대답은 아니었다. 그러나 딱히 다른 방법도 없었다.
‘내가 이 세계에서 로그아웃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이미 일은 터졌고, 중국과 베트남은 난리가 난 상황이었다. 눈앞의 군인들만 봐도 그랬다.
한국에 짱 박혀 있다고 해서 과연 이번 사태가 무사히 해결이 될까하는 생각도 들었다. 뭐, 해결이 되면 다행이겠지만, 그렇지 않는다면?
진짜 재수 없게 베트남이라는 넓은 땅이 가루다의 손에 넘어가 그 괴물이 힘을 찾아서 나를 찾아온다면? 베트남으로 가지 않는 지금의 결정을 후회하지 않을까?
그렇게 한참을 고민하던 민국이 천천히 생각을 떠올렸다.
‘큐우♡도 나와서 퀘스트 내놓으라고 해.’
이건 어쩔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면 이왕 일이 이렇게 될 거면 뽑아 먹을 건 제대로 뽑아먹을 생각이었다. 적어도 유그드라실 정도의 보상 하나는 더 받아야 할 것 같았다.
* * *
“베트남?”
“미친…. 진짜 전쟁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건가?”
베트남에서도 던전 브레이크가 터졌다는 민국의 말에 팀원들은 다들 혼란스러운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 와중에 소리를 높이여 전의를 드러내는 여인들도 있었다.
“무조건 가야지!”
“맞아요! 어둠 괴물들은 전부 쓸어버려야 해요!”
현아와 유나였다. 솔직히 말해 타냐 루스나 김소정과 같은 이들이 나설 줄 알았는데….
이 둘의 이런 반응은 민국도 조금 의외라는 생각이었다. 특히나 눈에 불을 켜는 유나를 보니 기분이 묘했다. 그러고 보니 예전에도 이와 비슷한 느낌을 받았던 적이 있는 것 같았다. 아무래도 무슨 사연이 있는 모양이었다.
“그러면 언제부터 이동을 하는 건가요?”
김소정이 물었다.
“내일 새벽부터 베이징으로 이동할 겁니다. 거기서 군용기를 이용해서 하노이로 가는 루트입니다.”
그리고 하노이에서 남서쪽에 위치한 호아빈을 주둔지로 삼아 임시 던전을 처리할 예정이었다.
GGW 공격대 뿐 아니라 프랑스의 제국 근위대를 포함 싱륭 현에 있는 공격대 중 9개 공격대가 베트남으로 향할 예정이었다. 뿐만 아니라 현재 중국으로 향하는 공격대들이 탑승한 비행기들 역시 소식을 듣고는 하노이로 항로를 바꾸고 있었다.
그와 더불어 영웅 전력이 높은 국가들은 또 다시 공격대를 편성해 중국으로 보낼 준비를 하고 있었다.
‘아, 예외가 한 나라 있었지.’
자국을 지킬 공격대 전력도 부족하다면서 유일하게 엄살을 부리고 있는 나라가 있었다. 일본이었다.
뭐, 그게 사실이던 아니던 간에 그런 때문에 그 이야기를 꺼내며 중국군 대대장이 얼마나 분을 토해냈는지 몰랐다.
그나저나 베트남에서 브레이크가 터진지 서너 시간도 되지 않아 그런 이야기들이 벌써 오가다니…. 세계 영웅 협회의 규모를 생각하면 신기할 정도로 빠른 일처리 속도였다.
GGW 공격대의 베트남 행에 대해 R’s 클랜의 클랜장인 오현정은 화부터 먼저 내었다.
아무리 상황이 급해도 그렇지 라이센스에 잉크도 마르지 않은 유망주 영웅들을 너무 부려먹는다는 이야기였다. 그러면서 중국 정부와 베트남 정부 그리고 세계 영웅 협회에 많을 것을 뜯어내겠다며 전의를 불태웠다.
“그러니까 오늘 밤은 다들 푹 쉬도록 해. 하노이로 가게 되면 죽을 만큼 굴러야 할지도 모르니까.”
민국의 말에 다들 알았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의외로 표정들이 나쁘지 않았다.
“와, 진짜 다행이다.”
“그래. 오늘 원 없이 마시고 놀았지. 분명 베트남으로 가고 나면 후회는 하겠지만….”
“여기서도 죽을 만큼 고생하다가 쉬지도 못하고 베트남으로 끌려가는 것 보다는 낫잖아? 어서 빨리 쉬러 가요.”
귀로 들려오는 팀원들의 대화에 민국은 피식 웃었다. 오늘의 휴식이 그만큼 만족스러웠던 모양이었다.
그리고 다음 날 새벽, GGW 공격대는 호위대대를 따라 베이징 공항으로 이동했다. 상황이 급박하다는 것을 보여주듯 공항에는 수송기가 미리 대기를 하고 있었다.
부우우우우웅!
요란한 엔진 음과 함께 커다란 수송기가 하늘을 날아올랐다. 그리고는 남서쪽으로 항로를 잡고 이동을 시작했다. 두 번째 베트남 행이었다.
* * *
하노이에 도착한 GGW 공격대는 베트남과 중국군의 호위를 받으며 호아빈으로 향했다.
호아빈으로 향하는 도중 몬스터 무리가 잠깐 마주쳤지만, 현대 화기들이 불을 뿜기 시작하자 금방 정리가 되었다. 나타난 몬스터들이 소형 개체라 가능한 전과였다.
“대형 개체가 나타나면 소대 단위의 병력에 기관총이 있어도 괴멸하는 건 순식간이예요.”
GGW 공격대의 방탄 버스를 운전하던 군인의 말이었다.
대형 개체가 나타나면 적어도 전차 부대가 피해를 무릅쓰고 막아내거나 탱커와 딜러 영웅이 나서야 한다고 했다.
그렇게 차를 타고 이동하던 도중 민국의 입에서 작은 신음들이 터져 나왔다.
“…씨발.”
몬스터의 손에 죽은게 분명한 시체들이 길거리에 널브러져 있었다.
헛구역질이 나올 정도로 끔찍한 장면이었다. 하지만 군인들은 그리고 영웅들은 이런 모습이 익숙한 듯 입을 굳게 다무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뿌우의 메시지 창이 나타났다.
《하노이에 도착하면 빠르게 던전을 공략해 주시기 바랍니다. 저는 민국님의 활약을 바탕으로 가라이를 끌어내보도록 하겠습니다.》
침착함을 유지하면서 민국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말해 조금 전 죽은 이들과는 자신은 아무 연고도 없었다. 아무 상관도 없는 남이라는 말이었다.
그러나 저런 모습을 보고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훗날 내가 아는 사람이 혹은 내 자신이 저런 미래를 맞이하는 것을 보며 후회를 하기 보다는 무엇이라도 하고 싶은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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