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70 가루다의 친위대
던전을 클리어하고 호아빈의 숙소로 돌아온 민국은 식사를 마치자마자 바로 블루 드레이크의 레이드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브레스는 무조건 피해야 하고…. 아차, 광폭도 조심해야 했지?’
그렇게 블루 드레이크 레이드를 통해 알아낸 정보들을 하나씩 떠올리면서 민국은 영웅 패드에 블루 드레이크라는 새로운 괴물을 등록했다.
이렇게 공략본을 올리는 이유는 간단했다.
혹시나 블루 드레이크를 상대할 이름 모를 영웅들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것과 함께 공략본의 판매로 조금씩 명성을 떨치기 위함이었다.
‘남자 공대장치고는….’
그리고 정식 영웅이 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영웅치고는 실력이 굉장하다는 평가를 받고는 있었다.
하지만 인류의 수호자라 불리는 화이트 하우스나 텐센스 정도의 수준은 아니라는 게 대다수 사람들의 평가였다.
그리고 민국 역시 그런 사람들의 평가에 수긍하는 편이었다. 인류의 보루라 불리는 공격대들이 해낸 업적과 전공들은 창단된 지 불과 2 년이 되지 않는 GGW 공격대가 따라가기엔 아직 멀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새로운 몬스터에 대한 공략을 써 나가고, 많은 던전을 클리어 하다보면 사람들의 인식도 차츰 변화될 게 분명했다. 실제로 민국과 GGW 소속 영웅들은 확산 현상을 두 번이나 경험하고 있었다.
“그나저나….”
《부르셨습니까? 민국님?》
머릿속으로 생각을 떠올리기가 무섭게 뿌우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전부터 드는 생각이었지만 눈치가 참 빠른 녀석이었다.
“내가 왜 불렀는지는 알겠지?”
《물론입니다, 민국님.》
“그러면 어떻게 된 거지? 나 말고 퀘스트를 진행하는 사람이 또 있는 거야?”
젤리처럼 흐느적거리는 메시지를 창을 보며 민국이 굳은 얼굴로 물었다.
【A - 7】 난이도의 던전에서 등장한 네임드인 블루 드레이크를 쓰러뜨리면서 민국이 퀘스트의 조건을 달성했을 때였다.
띠링하는 소리와 함께 블루 드레이크가 한 마리 더 잡혔다는 말에 경악을 감추지 못했던 일이 아직도 생생했다. 그런 자신의 모습에 동료들이 화들짝 놀라며 무슨 문제가 있냐고 몇 번이나 물어본 것을 얼버무리느라 꽤나 고생하기까지 했었다.
아무튼 퀘스트가 진행되었다는 것은 누군가가 블루 드레이크를 잡았다는 이야기였다.
《아, 아닙니다. 카오스님의 이 세계로 불러온 분은 이 세계에서는 오직 민국님뿐입니다.》
뿌우가 녀석이 궁서체로 문장을 만들어 내었다. 그만큼 진지하다는 의미였다.
《하지만 민국님이 쓰러뜨린 블루 드레이크 말고도 또 다른 바라노라스의 수하 녀석이 사망한 것은 확실해 보입니다. 그러나 누가 잡았는지는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파악 못했다? 왜?”
《어, 음. 아시다시피 제가 여기서 혼자서 돌아다닐 입장은 아니지 않습니까? 가루다의 영역인 만큼 가루다의 수하한테 걸리는 순간 저는 끝입니다, 끝.》
“으음….”
당연하게 말하는 뿌우의 대답에 민국이 한숨과 함께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
퀘스트를 주는 것을 제외하면 정말로 도움이 안 되는 녀석이었다. 뭐, 그건 큐우♡도 마찬가지였다. Sex 코인 퀘스트를 준 큐우♡는 그 때 이후로 불러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가루다의 영역에서는 몸을 사리고 싶다는 이유였다.
아무튼 갑작스럽게 진행이 된 퀘스트의 내용에 대해 민국은 계속해서 뿌우와 대화를 나눴다. 그러나 딱히 짐작갈만 한 게 아무것도 없었다. 하지만 해답은 굉장히 가까운 곳에 있었다.
“고, 공대장님!”
“…응?”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민국은 옆으로 고개를 돌렸다. 유나였다. 급한 용건이라도 있는 모양인지 호흡이 가쁜 모습이었다.
“소, 손님이 찾아왔어요. 지금 로비에서 기다리고 계세요.”
“손님? 누가 찾아왔는데? 군인이야?”
“아, 아니. 군인이 아니라 영웅이 찾아왔어요!”
유나의 말에 민국은 고개를 갸웃했다.
한국도 아니고 요새 도시나 다름없는 호아빈에서 자신 혹은 GGW 공격대를 찾을 영웅이 있나 싶은 생각이 든 까닭이었다. 아니, 그렇다 하더라도 저렇게 다급하게 올 일인가 싶었다.
그리고 유나의 입에서 의외의 대답이 흘러 나왔다.
“프랑스의 제국 근위대요! 전에 중국에서 봤던 영웅 기억하시죠? 그 클로에 카스텔이 직접 우리 숙소에 찾아왔다니까요?!”
* * *
프랑스의 제국 근위대.
화이트 화우스, 텐센스, 비수뉴, 메이플등 【A - 1】 난이도의 던전 공략에 성공하고 현재는 【S】 난이도를 공략하고 있는 지구에서는 몇 되지 않는 최상위 공격대로 사람들에게는 인류 최후의 보루라 불리는 유명한 공격대였다.
‘제국 근위대라….’
프랑스의 자랑인 제국 근위대가 호아빈에 머무르고 있다는 것은 민국도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베트남에서 던전 브레이크가 터졌을 때 가장 먼저 중국에서 베트남으로 향한 공격대가 바로 그들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민국과 GGW 공격대는 그런 제국근위대와 가볍게 인사를 나눈 사이였다. 물론, 친분이 있는 사이는 아니었다. 서로 인연을 맺을 정도로 교류가 있는 것도 아닌데다가 양 공격대 사이의 기량 차이는 아직도 상당했기 때문이었다.
아무튼 그런 제국 근위대에서 영웅을 보낸 모양. 유나의 말을 들은 민국은 빠르게 로비로 향했다.
‘무슨 일일까?’
확산 현상이 진행되고 있는 시급한 상황에서 공격대의 친분을 다지기 위해 찾아온 것은 아닐 게 분명했다. 자신을 보기 위해서라면 더욱 말이다.
아무리 남자가 귀환 세계라지만 그렇다고 남자를 아예 볼 수 없는 것도 아니고, 제국 근위대와 같은 공격대에 속한 영웅들이 때와 장소를 가리지 못할 정도로 멍청할 것 같지도 않았다. 만약 그랬다면 인류 최후의 보루라는 명성 역시 얻지 못했을 테니까.
“여기야, 여기!”
“또 보네요?"
민국이 로비에 도착하자마자 익숙한 얼굴의 두 여인이 아는 척 손을 흔들었다.
한 명은 제국근위대의 상징이나 다름없는 딜러 영웅인 클로에 카스텔이었다. 그리고 나머지 한 명은 브리짓이라는 이름의 탱커 영웅이었다.
“또 뵙겠습니다, 클로에 카스텔님.”
“님은 무슨, 그냥 누나라고 불러.”
“누나는 무슨? 이상한 소리하고 자빠져 있네. 하여튼 남자만 보면 눈이 돌아가지고서는….”
그렇게 한참이나 클로에를 타박하던 브리짓이 민국을 향해 물었다.
“이번 일정 때 처음 보는 몬스터를 상대했죠? 네임드 명칭이 블루 드레이크?”
“어, 그걸 어떻게…?”
브리짓의 말에 민국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런 민국의 모습에 클로에가 피식 웃더니 자신의 가방을 뒤적거렸다. 그리고는 영웅 패드를 꺼내들었다.
“영웅패드에 블루 드레이크라고 공략본을 올렸잖아. 그걸 확인하자마자 바로 찾아왔지.”
클로에의 말에 민국은 고개를 주억였다. 공략본을 올린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바로 확인을 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궁금한 게 없는 건 아니었다.
“오늘 오후 【A - 7】 난이도의 던전에서 조우했고 트라이 끝에 간신히 쓰러뜨릴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국 근위대가 블루 드레이크에는 왜 관심을 보이는 겁니까?”
“별 거 아니야. 우리도 그 녀석과 마주쳤었거든.”
대답과 함께 클로에가 앞에 놓인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단 것을 좋아하는 모양인지 클로에의 커피에는 휘핑크림이 잔뜩 올라가 있었다. 보기만 해도 살이 찔 것 같지만 생각해보니 영웅은 다이어트와 비만과는 거리가 멀었다.
아무튼 조금은 의외라는 생각이 들었다.
제국근위대의 기량이라면 【A - 7】 난이도가 아니라 그보다 훨씬 난이도가 높은 던전을 클리어 해야 했다. 【A – 7】 난이도에서만 등장하는 그것도 퀘스트로 인해 네 개체밖에 등장하지 않는 블루 드레이크와는 마주칠 일이 없는 것이다.
그런 민국의 생각을 읽었는지 클로에의 옆에서 앉아 있던 브리짓이 낄낄거리며 말했다.
“【A - 3】 던전을 클리어 했는데, 마침 옆에 【A - 7】 던전이 떡 하나 나타나지 뭐야? 그래서 심심풀이로 공략을 시도했지.”
“아….”
그녀의 말에 민국이 낮게 탄성을 터뜨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제국근위대의 스펙이면 【A - 7】 난이도의 던전 쯤은 어렵지 않게 박살낼 수 있었다. 전멸기만 주의하면 말이다.
심심풀이라는 표현은 조금 의외였지만, 아무튼 확산 현상을 막아내려면 어둠의 땅에서 등장하는 임시 던전을 모두 소멸시켜야했다.
‘그런 만큼 코앞에 나타난 던전을 그냥 지나치고 갈 수 없었겠지.’
민국은 속으로 그렇게 가정을 내렸다. 그것도 【A – 7】 난이도. 제국근위대의 스펙이라면 공략에 그리 많은 시간이 들지도 않을 터였다.
“아무튼 내 옆에 있는 정신 나간 친구가 GGW 의 일을 도와줘야 한다고 우겨서 말이죠.”
하지만 제국 근위대가 【A – 7】 난이도의 던전을 공략한 이유는 그런 민국의 생각과는 180도 다른 곳에 있었다.
“브리짓. 그건 비밀로 한다고 하지 않았어? 어쨌든 부활석을 박고 들어가서 다행이었지, 하마터면 대참사가 날 뻔했다니까?”
“맞아. 언론에 대서특필될 뻔했지. 프랑스의 제국근위대 【A – 7】 난이도의 던전을 공략하다가 모두 사망.”
“진짜 그런 일이 벌어졌으면 역사책에 병신 같은 공격대라고 이름이 떡 하니 적혔을 걸?”
과장된 손짓발짓으로 이야기를 하는 두 영웅을 보니 블루 드레이크를 상대로 제법 고전을 한 모양이었다.
하기야 블루 드레이크의 브레스 공격은 8성 영웅으로만 구성된 제국 근위대의 스펙으로도 막아내기가 쉽지 않을 것 같았다. 당연하지만 GGW 공격대가 공략하던 도중 가장 많은 희생자를 낸 패턴이기도 했다.
‘그렇다면 퀘스트에 나온 블루 드레이크는….’
어째 말하는 것을 들어보니 아무래도 눈앞의 여인들이 처리를 한 모양이었다.
“그래도 잡긴 잡았나보네요.”
“당연하지. 뭐, 부활석은 몇 번 날려먹었지만 우리가 누군데? 【A – 7】 난이도를 클리어하지 못하고 포기하면 그건 그것대로 개망신 아니었겠어? 아무튼 우리 공대장이 공략본을 올리려니까 네 글이 딱 올라와 있더라고.”
“으음…. 그렇다면 제가 제국 근위대에 실례를 저지른 겁니까?"
클로에의 말에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신규 몬스터의 공략본을 올리면 많은 영웅들의 주목을 받게 된다. 게다가 그들이 공략본을 다운받을 때 마다 소소한 금전적인 이득도 있었다.
물론 제국 근위대의 공격대장에게 그런 이득 따위는 그리 대단한 것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뭔가 빼앗긴 느낌이 들지 않았나 싶었다.
그리고 그런 민국의 조심스러운 반응에 브리짓과 클로에가 둘 다 깔깔거리며 웃음을 터뜨렸다.
“우리 공격대가 그렇게 속 좁은 공격대는 아니거든요?”
“맞아. 공대장이 남자를 조금 밝히긴 해도 그리 나쁜 친구는 아니야. 아무튼 우리가 찾아온 이유는 별 거 없어.”
후륵 하는 소리와 함께 휘핑크림이 뭉텅이로 사라졌다.
“그냥 친분이나 다질 겸 그리고 【A – 7】 난이도에서 등장하는 괴물 치고는 강력한 녀석이 나타난 만큼 좀 더 몸조심하라고 불렀지.”
“아하….”
민국이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결국 제국 근위대가 찾아온 이유는 단순히 안면을 트기 위해서로 보였다. 그리고 블루 드레이크는 두 공격대의 관계를 이어줄 유일한 공통점이었고 말이다.
“몸조심하라는 말은 괜한 말이 아니에요. 새의 탑이 여기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거 아시죠? 가루다와 연관된 몬스터가 언제 나타날지 모릅니다. 그리고 그런 일이 벌어지면….”
브리짓이 다 마신 컵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바로 도망치시고, 상위 공격대에 지원을 요청하도록 하세요."
"알겠습니다."
"아무튼 할 말은 다 했으니 저희는 이만 가볼게요.”
“벌써? 나 아직 커피도 다 안 마셨는데?”
클로에가 아쉬운 얼굴로 말했다. 브리짓과는 다르게 클로에의 잔에는 여전히 커피가 가득 남겨져 있었다.
“아까부터 찔끔찔끔 먹더라니. 누가 네 년의 수작을 모를 줄 알고? 빨리 일어서. 오늘 새벽에 레이드 있는 거 몰라?”
“으윽….”
단호한 브리짓의 행동에 클로에가 똥 씹은 얼굴을 했다. 가기 싫다는 태도가 온 몸에서 드러나고 있었다.
‘으음….’
그렇게 티격태격하는 둘의 모습을 보다보니 순간적으로 큐우♡의 퀘스트가 머릿속으로 떠올랐다.
둘 다 스킨십을 한 사이가 아니었기에 이참에 잠자리를 함께하면 14 코인을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민국은 곧 고개를 저었다. 여자들이 아무리 남자 영웅에게 무제한적인 호의를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몇 번 보지 않은 상황에서 이 둘이 잠자리를 같이할 것 같지는 않았다.
아무튼 이들과 만나면서 민국은 블루 드레이크 퀘스트가 진행이 된 게 단순한 우연이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다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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