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79 위기에 빠진 공격대
“후우, 후우, 후우.”
커다란 심호흡 세 번.
이어서 현아가 빛의 기둥이 사라진 상자 안에서 무언가를 꺼내들었다. 601에서 800사이의 기어 스코어를 지닌 아이템을 얻을 수 있게 해주는 다이아 티켓이었다.
“…대, 대박.”
“저, 저게 6 등급 몬스터한테서도 나오는 거였어요?! 7 등급 특수 개체만 주는 게 아니었어요?”
“나도 몰라. 다이아 티켓은 태어나서 처음 보는 거야.”
“저도 책에서만 봤습니다. 저 영롱한 빛이란…. 역시 다이아 등급의 티켓이군요. 플래티넘과는 비교도 되지 않아 보입니다.”
현아의 손에 들린 티켓을 보며 팀원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감탄을 터뜨렸다.
레전드 등급의 클래스 스톤과 같은 초대박은 아니지만, 다이아 티켓 역시 엄청난 보상이었다. 특히나 다이아 티켓은 7등급의 괴물에게서만 얻을 수 있다고 알려진 물품이었다.
그게 왜 여기서 나왔는지는 의문이었지만, 공격대 멤버들은 빛의 기둥을 통해 본인들의 의문을 해소할 수 있었다.
“으음.”
“역시…….”
그러면서도 그녀들의 시선은 자신들을 이끄는 공대장인 민국에게 향해 있었다. 빛의 기둥이 등장했지만 민국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차분한 모습이었다.
“다이아 티켓 정도로는 공대장님을 놀라게 할 수 없나 봐요.”
유나가 속삭이듯 말했다. 타냐가 바로 말을 이었다.
“일반 남자와는 달리 굉장히 대범하신 분입니다. 그래서 더욱 매력적이기는 합니다만….”
“아무튼 우리 공대장님을 놀라게 하려면 마스터 아니 챌린저 티켓 정도는 얻어야 할 것 같네.”
어쨌든 다이아 티켓의 획득은 공격대 전력의 상승을 의미했다.
물론, 【Gear Score - 600】을 초과하는 장비는 6성 영웅만 착용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GGW 공격대에는 이미 6성에 도달한 영웅들이 있었다.
그리고 오늘 혹은 내일 6성으로 격을 높일 준비된 영웅들도 있었다.
아무튼 다이아 티켓은 플래티넘 티켓과 비교했을 때 외형적으로 보이는 때깔 자체가 차원이 달랐다. 플래티넘 티켓을 얻었을 때와는 달리 절로 눈이 가는 위엄이었다. 괜히 단계의 차이가 있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었다.
“받아.”
현아가 상자에서 획득한 다이아 티켓을 민국에게 내밀며 말했다.
그런 현아의 행동에 민국의 눈의 의아함으로 물들었다. 보통 이럴 경우 티켓을 찢는 주인공 역할은 지금까지 그녀가 도맡아서 했기 때문이었다.
“네가 안 찢고?”
“나는 빛의 기둥을 뽑았잖아? 그것만으로도 천호동 럭키걸의 임무는 다했다고 생각해.”
자신이 해낸 공헌에 대해 뿌듯한 표정을 짓는 현아.
그런 현아의 모습에 민국은 피식 웃으며 다이아 티켓을 받아 들였다. 진짜 천호동 럭키걸을 만들어 준 주인공이 자신이라는 것은 알려나 몰라.
아무튼 티켓을 받아는 민국은 영웅 패드를 통해 검색했던 아이템을 떠올리며 바로 티켓을 찢었다.
‘나와라! 질서의 수호자 스태프!!!’
민국이 원하는 아이템은 질서의 수호자.
기어 스코어 795의 아이템으로 지력과 정신력에 보너스를 주며 소유자에게는 받는 데미지 감소와 함께 회복 마법을 사용했을 경우 회복량의 10% 가량을 도트 형식으로 추가해주는 무기였다.
효과만 놓고 보면 거의 유니크 클래스 수준의 무기로 최상위 힐러 영웅들이 가장 선호하는 무기 아이템이기도 했다.
“오오오!”
펑하는 소리와 함께 굴림판이 나타나자 몇몇 여인들이 감탄사를 토해냈다.
플래티넘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영롱한 테두리가 섞인 굴림판이었다. 굴림판에 그려진 숫자는 605 부터 795까지 제멋대로 적혀져 있었다. 비율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러면 바로 돌리겠습니다.”
말과 함께 민국은 굴림판의 화살표를 붙잡고 힘차게 돌렸다.
어차피 결과는 정해져 있었지만, 굴림판을 바라보는 동료들의 표정은 그 어느 때 보다도 진지했다. 어쨌든 여기서 대박이 터지면 본인들의 가치를 크게 끌어올릴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기어 스코어, 장비 부위, 클래스까지.
굴림판이 크게 세 번 돌아갔고, 궁극적으로 자신이 원했던 질서의 수호자 스태프가 민국의 손에 들렸다. 역시나 퀘스트의 보상은 위대했다.
“축하드려요, 공대장님!”
“이거 제대로 스펙 업을 했는데요? 여기에 언니들까지 6성 영웅이 되면….”
“【A - 5】 던전에 도전하는 것도 가능해지겠지.”
유나를 향해 민국이 질서의 수호자를 갈무리하며 말했다.
중국에서 받은 깡 스펙 무기는 이번 사태가 끝나고 나면 경매장으로 팔아버릴 생각이었다. 두드러지는 옵션 효과는 없었지만, 그래도 기어 스코어가 높은 장비니 가격은 제법 나갈 터였다. 수요가 있을지는 의문이었지만.
“【A - 5】요? 아무리 그래도 7 등급 몬스터를 잡는 게 가능할까요?”
민국의 말에 유나가 충격에 빠진 얼굴로 말했다.
【A - 5】 이상의 난이도에서 등장하는 7 등급 몬스터는 세계에서 내로라하는 영웅들 그러니까 각 클랜의 에이스들만이 상대가 가능한 어둠의 괴물이었다.
8 등급 괴물이 【S】 난이도의 던전에서 등장한다는 것을 감안하면 7 등급 몬스터는 간단히 말해 일반적인 영웅들이 상대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개체라는 말이었다.
당연하지만 7 등급을 공략하는 공격대는 인류의 수호자이자 어둠 괴물과의 전쟁에서 잔뼈가 굵은 이들 뿐이었다.
“당연히 지금 당장은 불가능하겠지.”
민국이 유나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GGW 공격대가 7 등급 개체를 상대하려면 시간이 더 필요했다. 일단 모든 멤버들이 6성 영웅이 되어야 했고, 【A - 5】 던전의 장기 일정도 버틸 수 있을 정도로 던전의 공략 경험 또한 쌓아야 했다.
당연하지만 장비 스펙도 높여야 했다.
한 마디로 개인 기량, 클래스 등급, 장비 스코어, 이 모든 것들이 갖춰져야만 7 등급 몬스터의 공략에 들어갈 수 있었다.
‘뭐,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지만.’
GGW 공격대는 당장이라도 내일 질풍의 바라노라스를 상대해야 했다.
뿌우의 의하면 바라노라스의 전진 기지가 완공되기까지 이제 사흘 남짓한 시간이 남은 상황이었다.
바라노라스가 등장하는 던전의 위치는 이미 파악이 끝나 있었기에, 오늘 준비가 갖춰지면 바로 트라이에 들어가야 했다. 남은 시간을 생각하면 머뭇거릴 시간이 없었다.
“그러면 공략을 이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질서의 수호자라는 대박 아이템을 얻은 분위기를 이어서 GGW 공격대는 파죽지세로 던전을 공략해 나갔다.
그 와중에 6등급 특수 몬스터에서 원했던 스텟의 그린급 결정을 획득하면서 김소정, 신나연 또한 6성으로 본인들의 성급을 높일 수 있었다.
운이 좋게도 예상 이상으로 전력을 높여서 질풍의 바라노라스를 상대할 수 있게 된 상황이었다.
* * *
“날씨 진짜 더럽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밖의 날씨로 인해 대지는 한 발자국도 딛고 싶지 않을 정도의 진창이 되어 있었다.
이런 날 던전을 돌아다니며 트라이를 하면 백이면 백 감기몸살에 걸릴 분명했다. 뭐, 영웅이 감기에 걸릴 일은 없지만.
“이런 날 꼭 레이드를 뛰러 가야되나요?”
피로 때문에 눈도 뺨도 움푹 들어간 금발의 미녀가 옆에 누운 여성을 힐끔 쳐다보며 말했다.
누워서 영웅 패드를 만지작거리는 여성의 정체는 프랑스의 영웅이자 제국 근위대의 딜러장인 클로에 카스텔이었다.
“브리짓, 베트남의 국민 앞에서 조금 전의 이야기를 직접 할 용기가 있다면 내가 우리 공대장한테 건의 한 번 넣어볼게.”
“평생 욕만 먹다 죽을 일 있어요? 어휴, 이런 날에는 단단한 페니스를 가진 남정네들과 하루 종일 뒹굴 거리면서 보내야 하는데….”
“그러게. 남자는커녕 영웅밖에 없어서 숨통이 턱턱 막힌다, 숨통이.”
“맞아. 눈요기라도 할 수 있으면 좋은데 그것도 불가능하고.”
제국근위대 소속의 다른 영웅들이 브리짓의 말에 맞장구를 쳤다.
“정 급하면 너희들끼리 물고 빨고 해.”
그런 후배 영웅들의 대화에 클로에가 혀를 차며 말했다. 하지만 이어지는 후배들의 말은 그야말로 가관이었다.
“그러게요. 이럴 줄 알았으면 페니스 밴드라도 챙겨 오는 건데…. 신비로운 동양의 맛을 즐기겠다고 가지고 오지 않은 게 이렇게나 후회가 될 줄이야.”
“그러니까 우리도 독일이나 이탈리아 애들처럼 해피니스맨 시스템을 운영해야 한다니까요?”
“우리 프랑스의 자유, 평등, 박애 정신을 정확하게 외면하는 정책이로군. 그리고 그런 남자들이 도움이 된다고 해봤자 얼마나 되겠어?”
클로에가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쉴 새 없이 이어지는 던전 공략 때문에 스트레스와 함께 욕구 불만에 시달리는 건 그녀 역시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던전 브레이크와 터지면서 어둠 괴물과의 최전선이 되어버린 호아빈에 남자가 있을 리 없었다.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그런 남자들은 전부 임자들이 있었다. 당연하지만 공격대에 소속되거나 여성 영웅을 파트너로 둔 남자들이었다. 즉, 건드리는 순간 격한 마찰이 생긴다는 말이었다.
그 때였다. 브리짓이 눈을 둥그렇게 뜨며 외쳤다.
“아?! 괜찮은 남자 있잖아요! 아니, 이 사람을 왜 잊고 있었지?”
“…누구?”
갑작스러운 브리짓의 말에 모두가 관심을 보였다. 클로에도 예외는 아니었다.
“아이 참, GGW의 한민국 공대장이요. GGW도 호아빈을 거점으로 활동하고 있잖아요? 그새 까먹었어요?”
“어?”
브리짓의 말에 클로에의 눈이 번쩍 뜨였다.
그녀의 말대로 호아빈에는 대한민국의 GGW 공격대도 함께 머무르고 있었다. 쉴 틈이 없을 정도로 계속해서 이어진 공략 일정 때문에 바보처럼 잊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사실 그것보다는 일반 남자가 아니라 영웅이라는 존재감 때문에 민국을 성적 대상으로 생각하지 못한 이유가 더 크기는 했다.
어쨌든 클로에는 며칠 전, 브리짓을 대동해서 블루 드레이크와 관련해 민국과 만남을 가지기도 했었다.
“오늘 GGW 공격대 스케줄이 어때? 벌써 던전 공략하러 나갔나?”
“제가 확인해 보겠습니다!”
절도 있는 목소리로 한 영웅이 서둘러 영웅 패드를 조작했다. GGW 공격대와 관련한 SNS를 비롯한 정보들을 검색하기 위함이었다.
다른 영웅들의 행동도 비슷했다. 남성 영웅과의 만남과 함께 운 좋게 떨어질 콩고물을 기대하면서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모습이었다.
“이런 제국근위대의 정체를 우리 프랑스의 국민들이 알아야 하는데….”
그 모습들을 보며 클로에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리고 잠시 후, 아쉬움이 섞인 우울한 목소리들이 흘러 나왔다.
“에이. 텄네, 텄어. 이 친구들 아침 일찍부터 던전 공략하러 나간 것 같아요.”
“아니, 공대장이 남자 아니야? 남자가 몸을 사려야지, 왜 그렇게 열심히 활동해?”
“그러게 말이야.”
말은 그렇게 했지만 아쉬운 것은 클로에 역시 마찬가지였다.
스킨십이 아니더라도 남자 영웅과 시간을 보내는 것만으로도 힐링이 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물론 스킨십도 할 수 있다면 더욱 좋겠지만.
아무튼 브리짓의 말이 아니더라도 클로에 또한 지금처럼은 도저히 몸이 뻐근해서 버티지 못할 것 같았다.
‘베트남의 던전 브레이크가 당장 끝날 것도 아니고.’
자신들도 스트레스를 해소할 창구가 필요했다. 결국 클로에가 선언하듯 말했다.
“오늘 공략 일정 끝나면 내가 직접 한민국 공대장 만나러 간다. 그러니까 너희들은 빨리 레이드 뛰러 갈 준비해. 까마득한 후배들도 일찍부터 던전을 공략하러 갔는데 프랑스 최고의 공격대라는 우리 제국근위대가 이렇게 늦장을 부려서야 되겠어?”
클로에의 말이 끝나자마자 제국근위대 소속 영웅들이 부리나케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시각.
《민국님. 여기가 바로 가루다의 전진 기지입니다.》
‘난이도는 【A – 6】 수준이네. 그나저나 질풍의 바라노라스 녀석 6 등급으로 난이도가 하락한 건 맞는 거지?’
《저희들이 블루 드레이크를 전부 처리했으니 확실합니다. 이제 저 녀석을 쓰러뜨리면….》
‘12재앙인 가루다의 오른팔이라는 가라이 녀석을 불러낼 수 있다는 거지.’
그리고 그 녀석을 쓰러뜨려야만 이번 베트남의 확산 현상이 어떻게든 진정이 될 터였다.
“이 던전 왠지 느낌이 심상치 않은데?”
질풍의 바라노라스가 있는 가루다의 전진 기지를 앞두고 소정이 불안한 목소리로 말했다. 근접 딜러답게 위기에 대한 감각이 굉장히 좋았다.
“【A – 6】 던전이잖아요. 그 중에서도 상위 난이도인가보죠.”
그에 반해 현아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모습이었다.
어차피 부활석과 천재 공대장이라는 민국이 있는 이상 던전 공략에 실패할 거라는 생각은 조금도 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부활석 설정 끝났습니다!”
잠시 후, 부활석의 설정을 확인한 민국과 GGW 멤버들이 가루다의 전진 기지로 입장하기 시작했다. 가라이의 심복을 처리하는 중요한 전투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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